소설리스트

갓코인-136화 (136/300)

# 136

“소방관들 월급 올려 주자. 연금도 많이 주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길 속에서도 상엽은 멈추지 않고 이동을 강행했다.

그가 있던 자리로 불꽃 창이 끝도 없이 꽂혔고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신전 다 타겠다!”

상엽의 경고에도 불의 정령은 더욱 거칠게 불을 확산시켰다.

그렇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한 방에 가자.’

상엽은 일부러 반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좀 더.’

상대가 오직 공격에만 몰두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츳!

일방적인 수비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꽃 창이 그의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순한 불길과 달리 상처를 내고 피부 속으로 파고든 불꽃은 엄청난 고통을 일으켰다.

“큭!”

피부를 태우는 불길에 자칫 해머를 놓칠 뻔한 상엽은 이를 악물고 스트라이크로 거리를 벌렸다.

‘아직 아니야.’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은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화염 피부가 없었으면 항상 이랬겠지.’

그래도 전투에서 이런 일은 자주 겪어 본 터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상엽은 20미터 거인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3분이 흘렀을 때,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쾅! 쾅!

거인이 접근한 상엽을 향해서 양손을 내려찍었다.

처음으로 창을 던진 것이 아니라 직접 쥐고 바닥에 꽂은 것이다.

‘지금.’

상엽은 짧은 찰나의 기회에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의 몸이 스트라이크로 거인의 머리를 향했고, 팔각 대시로 방향을 현란하게 바꿨다.

거인은 창을 놓고 다가오는 상엽에게 거대한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상엽의 몸이 팔각 대시로 다시 한번 꺾이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거인의 하체인 회오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콰쾅!

상엽의 한 방은 회오리 안에서 터졌다. 그러자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거인의 몸이 기울었다.

“끝이다. 불쟁이.”

상엽이 기울어지는 거인을 향해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쾅!

직선으로 날아간 상엽은 정확히 거인의 머리에 해머를 꽂았다.

콰직!

거인의 머리에 선명한 균열이 생기며 얼굴의 반이 무너져 내렸다.

상엽은 한 방으로 부족한 것을 인지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거인의 뒤통수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모든 힘을 실은 한 방이 펼쳐졌다.

쾅!

거인의 머리가 폭발하듯 깨져 버렸고 신전 전체가 한순간 화염에 휩싸였다.

시야를 가리며 요동치던 화염은 한순간 바람을 만난 연기처럼 신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화르르!

그리고 제단에 1미터 높이의 화염 기둥 하나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화염은 점차 제단으로 번지더니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후우.”

전투가 끝났다.

상엽이 또 하나의 신전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제단 위에는 코인이 담긴 하나의 상자와 주먹 크기의 붉은 불꽃이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상엽은 차분히 상자를 흡수하고 불꽃을 받아들였다.

불꽃은 상엽의 손이 닿자 잘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조심스럽게 몸속으로 흡수가 되었다.

“따뜻하네.”

심장이 따뜻해지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상엽의 의지에 따라 뜨거운 기운이 몸속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한순간 상엽이 주먹을 움켜쥐자 짓눌린 공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불꽃 파편이 튀었다.

그가 다시 주먹을 천천히 펴자 이번에는 불꽃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횃불처럼 타올랐다.

횃불은 상엽의 의지에 따라 다양하게 모양이 변하더니 천천히 파이어스의 망치로 스며들었다.

파이어스의 망치는 곧 불길에 휩싸였지만 서로의 힘이 충돌하지는 않았다.

“좋아.”

상엽은 불꽃의 움직임에 만족하며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파이어스의 망치로 옮겨 간 불꽃을 해머의 타격면에 점으로 응축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해머를 바닥에 내려쳤다.

그러자 본래의 폭발에 화염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신전이 흔들릴 만큼의 충격파가 퍼졌다.

충격파는 화염의 고리로 원형으로 퍼져 나갔고 폭발력도 예전보다 크게 증가했다.

유산–불의 정수

불꽃을 생성하고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게 된다.

샐러맨더의 신전이 남긴 유산이었다. 그리고 상엽은 항아리를 깨고 완성한 유산도 확인했다.

유산은 완성을 시키자 심장 위에 불꽃 모양의 문신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산–화염 정령의 불꽃

불에 대한 친화력이 생기며 뜨거운 기운에 의해 몸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물불 안 가려도 되겠어.”

상엽은 단순하게 이해를 했다. 실제로 화염 정령의 불꽃은 상엽이 물에 들어간 것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었다.

화염에 대한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 건 기본이었고, 그 안에서 상처와 피로가 회복되기도 했다.

“자! 이제 집에 가서 냉면 먹자!”

상엽은 제단 뒤에 나타난 불꽃의 고리를 보았다. 이를 통해 지체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 * *

“또 여름이네.”

봄이 사라졌다.

한겨울에 신전으로 들어갔던 상엽은 다시 한여름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냉면!”

사람이 없는 양평에서 신전으로 들어갔던 상엽은 급히 서울로 방향을 잡았다.

경계선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지역이라 3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방어벽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상엽은 급히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야?”

경계선의 망루에 낯선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본래는 대한민국의 국기가 있던 곳이었다.

“저건 뭐야?”

다시 보니 대한민국의 국기가 맞았다. 그런데 국기가 걸레처럼 찢어져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찢어진 국기는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망루의 모든 국기가 같은 모양이었다.

그때, 국기의 깃대 위로 뭔가가 내려앉았다.

‘까마귀?’

일반적인 까마귀보다 덩치가 컸다.

“저 녀석은 뭐야?”

까마귀가 잠시 상엽을 보다가 날아올랐다. 그러자 그나마 남아 있던 대한민국의 국기가 완전히 찢어져 깃대에서 떨어졌다.

“설마?”

양평 방어선의 깃발이 찢어졌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서울이 위험하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상엽도 이 사실에는 잠시 머리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급히 전화기를 꺼내 박광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

다행히 박광신은 전화를 받았다.

“형, 어떻게 된 거야?”

-서울이 함락당했어.

“누구한테?”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우리가 아는 건 새로운 변종이 나타났다는 거야. 그것도 한국에서 제일 먼저.

상엽으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새로운 변종이라니?”

-새들이 변종으로 변했어.

“뭐?”

상엽은 잠시 충격에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변종은 지상의 포유류뿐이었다. 조류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거야?”

-그것도 몰라. 다만 우두머리가 있다는 건 확실해. 그리고 뛰어난 지능을 가진 거 같아.

“어느 정도로 안 좋은 거야?”

-현재 북부는 전부 함락당했어. 수도권과 강원도, 대전까지 밀려났고 지금은 대구와 전주 방어선에서 지키는 중이야.

전화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수도권 시민 중의 절반이 대피에 실패했어. 지금은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야. 공격은 계속되고 식량이 바닥나서 계속 사상자가 나오고 있어.

상엽은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일단 알았어. 다시 연락할게.”

상엽은 또 다른 친구가 떠올라서 급히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그가 걱정하는 사람도 전화를 받았다.

“동희야,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런데 설악산은 위험해서 태백산으로 피신했어.

“거기도 공격을 당한 거야?”

-응. 새들이 변종으로 변했어. 다행히 담비들이 미리 알아채서 늦지 않게 피신했어.

“그래. 다행이야.”

-그런데 연지가 위험해. 아직 서울에 있어.

“서울에? 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서울에 남았어.

송연지는 이번에도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지자 모든 일을 미뤄 놓고 작전에 나섰다.

다만 블랙 길드를 믿지 않는 터라 흑점과는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상엽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아우. 머리 아퍼.”

오랜만에 짜증이 솟구쳤다. 그때, 상엽의 머릿속에 또 한 명의 사람이 떠올랐다.

‘상식이 형.’

그는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형은 안전해?”

-제주도로 피신했습니다.

“다행이야.”

-신전은 통과하신 겁니까?

“덕분에. 별로 어렵진 않았어.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알려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오상식은 박광신도 하지 않은 말을 했다.

-현재 강차연과 김대진이 국방부에 묶여 있습니다.

“뭐?”

-새들의 집결지와 멀지 않아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서울에 대해 좀 알고 싶은데.”

-그 부분은 박광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오상식은 상엽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정확히 말했다.

“알았어.”

-어떤 결정을 하시든 절 만나시는 게 먼저입니다. 유물과 유산 정리가 끝났습니다. 총 1700만 코인입니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치였다.

6개월의 시간 동안 오상식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유산까지 전부 정리를 한 덕분에 상엽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내가 가진 것까지 하면 4천만 코인.’

그가 기존에 있던 코인에 신전을 통과하고 얻은 코인이 2300만 코인이었다.

“알았어. 안전한 곳에서 만나.”

전투에 앞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구에서 뵙겠습니다.

오상식은 미리 준비한 듯이 약속 장소를 말했다. 그나마 상엽이 올 수 있는 안전지대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한 것이다.

오상식과 약속을 한 상엽은 기억 전달을 통해 동희와 송연지에게도 약속 장소를 보냈다.

일단 얼굴을 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것이다.

‘시간이 없어.’

그는 서둘러 대구로 이동했다.

한국은 달라져 있었다.

대구에 들어선 상엽은 이번 침공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분명히 보았다.

방어벽을 넘어 도시로 향하는 길거리에 들어선 순간, 상엽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한국이라고?”

수도권과 강원도, 대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수도권의 5할이 피난에 나섰고 그중의 절반이 새와 변종에 의해 사망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도착한 안전 지역이지만 그들이 쉴 곳은 없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난민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수도권 함락 3달이 지난 지금, 누구도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결국 도움의 손길마저 사라진 피난민들은 겨우 방어선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정부에서도 그들을 위한 정책을 쓸 여력이 없었다.

수도권을 잃은 대한민국은 그렇게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굶주림만 남은 얼굴에 희망을 잃은 눈빛은 눈물조차 말랐는지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는 듯했다.

아이를 안고 길거리에 앉아 있는 여인, 본래는 깔끔했을 정장 조끼를 바닥에 깔고 구걸을 하는 중년, 자존심마저 무너져서 그저 고개를 숙인 사람들.

모든 것이 상엽의 눈에는 낯설게만 보였다.

그들 모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는 것 걱정 없이 살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래 대구에 있던 사람들까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상황까지 왔다.

‘변종에 점령당한 도시는 전부 이렇겠지?’

실제로 이는 많은 나라에서 펼쳐진 풍경이었다. 다만 한국인에겐 낯설기만 했다.

“어? 정상엽이다!”

누군가 상엽을 알아보고 놀란 듯이 외쳤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길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상엽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엽은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을 때였다.

“오, 오빠…….”

누군가 상엽에게 다가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제대로 씻지 못한 아이는 해진 옷을 입고 있었고 눈이 퀭한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먹을 거라도 줘야 하나?’

상엽이 그 생각을 할 때였다. 여자아이는 상엽을 보며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가 서울에 있어요. 좀 구해 주세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당장 먹을 것이 아니었다.

이 사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끝나는 문제였다.

“도와주세요!”

누군가 상엽을 보며 외쳤다.

“살려 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일으켰다.

구걸을 하던 중년도 목에 핏줄을 세우며 외쳤고, 아이를 안고 있던 엄마도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절망으로 물들었던 거리는 상엽의 이름으로 인해 잠시나마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그 활기에는 즐거움이 없었다.

절박함.

그 목소리가 상엽의 심장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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