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마일리.
28살의 갓코인 유저인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치열한 성장 끝에 5단계 유저가 되었고, 소수 사냥을 나갈 때면 언제나 리더가 되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판단력과 리더십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든 자부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
1급 위험 지역의 전사들.
이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들은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세상을 지배할 날이 온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일리는 자신의 꿈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저런 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변종이라 믿었다.
쾅! 쾅!
그의 모든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두 마리의 표범이 해머에 의해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다. 사내는 저 무거워 보이는 해머를 마치 단검을 휘두르듯 가볍게 방향을 틀었는데, 그 해머에 맞은 표범들은 시속 100킬로로 달리는 덤프트럭에 치인 것보다 더 뭉개졌다.
그 모습을 보며 원숭이는 등을 돌리며 도주를 시작했지만, 그들의 발목은 유령 전사에게 잡혔다.
유령 전사는 엄청난 실력으로 원숭이들을 유린했고, 그사이 두더지들도 모두 땅 깊숙이 몸을 숨기며 도망쳤다.
순식간에 전장을 정리한 존재는 ‘거만한 이방인’이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상엽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살려 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니들은 그런 것도 모르냐?”
상엽은 마일리를 향해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흰 모두 죽었을 거예요.”
마일리의 말에 상엽은 기분이 조금 풀린 듯한 말투로 물었다.
“내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상엽은 멍해 있는 세 명을 향해 물었다.
“시카고에서도 라면 먹냐?”
뜻밖의 질문에 세 명이 서로를 보았다. 이에 가장 키가 작은 사내가 대답했다.
“네, 먹습니다. 아마 있을 거예요.”
“좋아. 가자. 살려 줬으니까 그 정도는 받아도 되지?”
상엽은 먼저 몸을 돌려 호수로 뛰어들었다.
“뭐해? 안 가?”
“저희들은 걸어서 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통해 시카고로 돌아갔다.
“역시!”
상엽은 만족했다.
“이걸로 됐어.”
시카고에는 오래된 한국 상점이 있었고, 그곳에 보관 중인 라면이 있었다.
상엽은 그중에 3박스를 챙겼고 바로 3개를 끓여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면을 잔뜩 머금은 채, 시카고 경비대장 데이비스를 향해 말했다.
“목숨값은 이걸로 대신하면 좋겠는데?”
수하들 세 명을 살려 주고 상엽은 라면 3박스를 원했다.
‘한 명당 한 박스.’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엽은 귀찮아지는 것이 싫어서 그랬을 뿐이지만 마일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이 라면 한 박스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신경 쓰지 마. 다 먹으면 나갈 거니까.”
“원하시는 만큼 머무르셔도 됩니다.”
데이비스의 말투는 예전과 달리 정중했다.
“너희들이 나 싫어하잖아. 굳이 그렇게 예의 차린 말 안 해도 돼.”
상엽은 직설적이었다.
“사실 나도 너희들 불편하거든. 우리 첫인상이 별로였잖아.”
그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라면을 먹는 데 집중했다. 데이비스로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맛있다.”
상엽은 편하게 라면을 실컷 먹은 터라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잘 있어.”
상엽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비스는 멀어지는 상엽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아 참. 로키는 좀 만나고 가도 되지?”
“네. 상관없습니다.”
상엽은 드디어 이에 대한 대답을 들었다.
로키는 상엽이 건네는 초코바를 받았다. 처음 보는 음식은 아니지만 흔한 것도 아니었다.
로키는 주변을 지키는 관리자의 눈치를 보더니 얼른 초코바를 받아 챙겼다.
관리자는 이미 언질을 받은 터라 미리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다 먹어.”
“동생들 줄 거예요.”
“동생이 있어?”
“많아요. 한 백 명쯤 있어요.”
상엽이 건넨 초코바는 겨우 3개였다. 그런데 로키는 강가는 물론 도시 전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제 동생이에요. 형도 많아요.”
“에이. 어쩔 수 없네.”
상엽은 결국 남은 초코바를 전부 로키에게 건넸다.
라면은 바닥이 났지만 초코바는 아직 20개 정도가 남아 있었다.
어차피 달빛 캔디가 있어서 꼭 필요한 물품은 아니었다.
다만 달빛 캔디가 워낙 맛이 없어서 입가심을 위해 지니고 있었다.
“우와. 정말 다 주시는 거예요?”
“형이 원래 좀 화끈해.”
상엽은 기뻐하는 로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강가로 걸어갔다.
미시간호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돌아선 상엽을 향해 로키가 외쳤다.
“저 이제 캐나다 안 가요! 형처럼 돼서 여기 사람들 전부 지켜 줄 거예요!”
상엽은 이곳에서 화제의 인물이었다.
1급 위험 지역에서 홀로 사냥을 하는 사냥꾼. 이미 시카고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나처럼 되면 나한테 죽을 수도 있어.”
“네?”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나보다 더 강해져. 그래야 사람들을 지키지.”
상엽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미시간호로 뛰어들었다. 로키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더니 상엽이 멀어진 후에 다급히 외쳤다.
“고마워요! 형! 꼭 다시 만나요!”
거리는 멀었지만 상엽은 그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 * *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살던 상엽은 특별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징글벨~ 징글벨~
크리스마스가 된 것이다.
척박한 땅에도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상엽은 힘든 사냥을 마치고 호숫가에 누워 잠시 노랫소리를 들었다.
농경 사회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 음향 시설은 남아 있었고, 화려하진 않지만 도시를 밝히는 조명도 켜졌다.
본래는 변종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서 좀처럼 하지 않는 축제지만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허용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 한 시간 동안 방어 부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나도 오늘은 좀 쉴까?”
이미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상엽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사냥에 지친 머릿속을 한 번쯤은 쉬게 하고 싶었다.
그는 호숫가에 누워 아득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유령아, 사람들 표정이나 좀 보여 줄래?”
추종자는 상엽을 떠나 도시 쪽으로 접근했다. 상엽은 추종자의 눈을 통해 축제를 즐겼다.
도시 중앙에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일 년에 몇 번만 허락되는 맥주가 나눠지고 있었다.
노동에 지쳐 있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상엽은 눈을 감고 그 표정들을 즐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크리스마스 캐럴을 따라 불렀다.
“응?”
그런데 그의 눈에 홀로 호숫가에 앉아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도시 중앙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로키, 거기서 혼자 뭐하는 거야?”
상엽의 말은 전해지지 않았다.
추종자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지만 로키가 놀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로키는 추종자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모르고 혼잣말을 했다.
“형은 안 오나?”
로키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가자. 내가 산타클로스다.”
상엽은 곧바로 호수를 건넜다.
그의 모습을 발견하자 로키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커졌다.
“형!”
“날 기다린 거야?”
“네! 꼭 올 줄 알았어요!”
“내가 왜 올 거라고 생각한 거야?”
“크리스마스잖아요! 저한테 가장 큰 선물이 형이거든요.”
로키는 상엽을 보며 실제로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양손을 내밀었다.
나란히 하늘을 받친 양손 위에는 아직 온기가 남은 찐 옥수수 하나가 남아 있었다.
“드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넌 안 먹어?”
“전 많이 먹었어요.”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로키는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좋아.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줘야지.”
상엽은 옥수수를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먹어 치웠다. 대신 호숫가에서 라면을 끓였다.
“내가 이거 진짜 웬만하면 안 주는 거야.”
로키는 처음 보는 음식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 먹자!”
그들은 멀리서 들리는 캐럴 소리를 들으며 라면을 먹었다.
소소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해가 되었다.
“좋아.”
상엽은 새해의 기쁨을 강화로 대신했다.
망자의 손길 10단계.
유령 걸음 10단계.
팔각 대시 10단계.
그가 한 달 동안 목숨을 걸고 모은 모든 코인을 소모해서 얻은 것이었다.
은빛 여우가 물러나고 유령 군대를 활용해 엄청난 속도로 사냥을 하면서 얻어 낸 결과였다.
결국 단 한 번도 치료를 하지 않으면서 세 가지 스킬을 완성했다.
이제 아오나의 스킬 중에 완성이 되지 않은 건 단 두 가지뿐이었다.
유령 잔상.
충성 징표.
유령 잔상은 시작이 5만 코인이라 완성을 위해서는 3840만 코인이 필요해서 미뤄 둘 수밖에 없었고, 충성 징표는 20단계 강화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이야.’
상엽은 그동안 자신이 해낸 일에 크게 만족했다.
‘이제 신체 강화로 넘어가야지.’
그는 이미 다음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기쁜 표정이네. 축하해. 그런데 나한테 할 말 없어?”
레나는 호수를 둘러보며 상엽에게 물었다.
“뭐?”
“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스킬이 강화되어 있는 거야? 그것도 꽤 많이 강화가 됐는데.”
“아…….”
상엽은 그동안 레나 대신 시카고에 있는 말롯을 통해 스킬을 강화했다.
“사정이 있었어.”
“어쩌지?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가 시간이 너무 많은데.”
“에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럴 수도 있지.”
레나는 시선을 돌려 상엽을 보았다. 그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이제 단골 특혜는 없어.”
“뭐?”
“다른 상점을 이용한다는 걸 알았으니 어쩔 수 없잖아. 이제 다른 유저랑 똑같이 대해 줄게.”
바닥을 덮은 눈보다 더욱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상엽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좋아! 내가 잘못했어!”
“뭐?”
“잘못했다고!”
“사과를 참 박력 있게 하네.”
레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어차피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완전한 농담도 아니었다.
“널 고객님으로 부르게 하지 마. 너한테 말할 수 없지만 나도 장사는 해야 되거든.”
“알았어. 대신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줘야겠어.”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거면 얼마든지.”
“내가 바라는 게 그거야.”
상엽의 말이 끝나자 레나는 천천히 호수로 걸어 들어갔다. 얇은 옷이 젖으면서 몸매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레나는 서비스를 하듯이 잠시 물에 들어갔다가 머리를 젖혔다.
“설마 여기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고.”
“내가 가진 게 그거밖에 없어.”
상엽은 레나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았다.
24살의 정상엽.
그는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24살이야?”
상엽은 오랜만에 면도를 했다.
“유령아.”
-네, 주인님.
“이발할 줄 아냐?”
-물론입니다.
“내 기억 속에서 내가 가장 만족했던 모습으로 깎아 봐.”
추종자는 잠시 시간을 가지더니 곧바로 칼을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카락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호수 위로 어지럽게 떨어지고 잠시 후에 깔끔한 스포츠머리를 한 상엽이 비쳤다.
“유령아.”
-네, 주인님.
“왜 그동안 말 안 했냐? 이렇게 잘하면서.”
-필요하신지 몰랐습니다. 앞으로 제가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좋아. 너만 믿는다.”
-주인님께 충성을!
상엽은 세수와 목욕까지 마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늘을 보았다.
“이제 슬슬 깊이 들어가 볼까?”
우웅.
다시 사냥에 나서려던 그때, 상엽의 목에서 사라졌던 펜던트가 나타나며 빛을 뿌렸다. 상엽이 이를 쥐자 누군가의 기억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긴급.
박광신의 메시지였다. 상엽은 곧바로 핸드폰을 켜서 전화를 걸었다.
“형, 무슨 일이야?”
-요즘 중국이 좀 시끄러워. 갓코인 길드끼리 전쟁이 벌어졌거든. 여러 나라의 길드들도 참여를 위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이야. 우리도 마찬가지야. 바로 옆이기도 하고, 중국이 워낙 매력적인 땅이잖아.
“그래서?”
-정보를 모으던 중에 중국 운남의 대형 길드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어.
상엽은 설명을 기다렸다.
-거기 길드장이 네가 가진 유물을 노리고 있어. 샐러맨더의 조각. 네가 가진 게 맞아?
완성에서 단 하나를 남겨 둔 조각이었다.
“맞아. 그런데 어떻게 안 거지?”
-추격할 방법은 많아. 어쨌든 조심해. 그쪽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그리고 중국 상황이 많이 복잡해. 동생도 알 필요가 있어. 한국과도 계속 관련이 되고 있고. 우리도 전쟁 참여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무엇보다 지금 상위권 갓코인 유저들이 강해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어.
“그 정도야?”
-심각한 수준이야. 쉽게 생각하지 마. 동생을 쫓는 인물도 랭킹 35위라고 알려진 인물이야.
“랭킹? 그게 또 나왔어?”
-중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또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어. 광성이라는 유저인데 35위로 기록됐어.
“나는?”
-42위.
“별로 신빙성은 없네.”
상엽은 이번에도 역시 숫자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다.
“어쨌든 잘됐어.”
-잘됐다니?
박광신이 불안한 감정을 담아 물었지만 상엽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코인이 많이 필요하던 참이었거든.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오겠다니. 제대로 교육을 시켜 줘야겠어.”
상엽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