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29화 (129/300)

# 129

“아우! 지독한 놈!”

상엽은 도망가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지만 도저히 맞설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두두두!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울렸다. 그리고 바닥에 쌓인 눈이 먼지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300마리의 코뿔소들.

기본이 1만 코인인 코뿔소 300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상엽을 뒤쫓고 있었다.

감히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상엽은 등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뛰어오를까?’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끼앙!

비명을 닮은 울음소리를 내는 은빛 여우가 그와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자칫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완전히 도주하지 못하면 코뿔소 사이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끼앙!

여우는 마치 놀리듯이 상엽의 말에 반응했다.

“저걸 진짜!”

은빛 여우를 보며 상엽은 설악산의 담비를 떠올렸다.

‘지능이 있는 거야. 다른 변종들을 조종할 만큼.’

처음에는 여우 무리만 움직이던 은빛 여우가 상엽을 죽이기 위해 다양한 변종들을 몰고 다녔다.

-주인님!

여우의 도발에 당해 코뿔소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스트라이크를 활용해 다시 거리를 벌였고 지루한 도주를 계속했다.

그러다 10여 분이 지나서야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풍덩!

결국 그는 안전지대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처음 사냥을 시작한 미시간호의 북부였다.

은빛 여우로 인해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드디어 이동을 멈춘 코뿔소들은 호숫가에 늘어서서 상엽을 노려봤다.

“열 받으면 들어오든가.”

끼앙!

상엽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여우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코뿔소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은빛 여우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놈이 뭔가 노리는 거 같은데.”

코뿔소들은 물러났지만 은빛 여우는 그 자리를 지켰다.

상엽은 300미터의 거리를 두고 여우를 계속해서 지켜봤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 때였다.

여우의 주변으로 바닥을 기듯이 걷는 동물들이 나타났다.

몸길이는 2미터가 평균이었고 이를 넘는 녀석도 있었다. 300마리에 이르는 새로운 동물들은 여우 곁에서 이동을 멈췄다.

‘뭐지?’

상엽이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2미터의 암갈색 털을 가진 동물들은 경계심이 사라질 만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상엽이 동물들을 살피던 그때, 은빛 여우가 다시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300마리의 동물들이 일제히 물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상엽은 동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해달!’

보통은 1미터가량의 몸길이지만 변종이 되면서 덩치가 커진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천에 사는 녀석들은 수달, 바다에 사는 녀석들은 해달이었고 수중생활이 익숙한 종류였다.

수달은 아메리카 지역에 분포하지 않지만 해달은 꽤 많은 개체수가 있었다.

은빛 여우가 상엽의 특성을 파악하고 해달까지 끌고 온 것이다.

300마리의 해달은 물속으로 들어오자 엄청난 속도로 상엽에게 돌진했다.

“여기선 내가 대장이거든.”

상엽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물속 깊이 잠수를 하며 다가오는 해달을 기다렸다.

‘심판.’

상엽은 수면을 이동하는 해달의 위로 해머를 떨어트렸다. 이를 피해 해달들이 물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상엽이 스트라이크를 시도했다.

‘스트라이크.’

물속에서 처음 펼쳐지는 스트라이크였다.

가장 선두에 있던 해달의 머리에 해머가 정면으로 꽂혔다.

콰쾅!

폭발과 함께 잠잠하던 호수의 물이 해일처럼 솟아올랐다.

쿠쿠궁!

300미터의 넓이의 물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며 오랫동안 숨어 있던 바닥이 드러났다.

다가서던 해달들이 모두 수류에 휩싸여 물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50마리는 빛으로 흩어졌다.

콰콰!

비어 있던 공간에 다시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진공상태처럼 물이 사라진 자리의 경계선에 서 있던 상엽은 짧은 순간 은빛 여우와 눈이 마주쳤다.

“또 덤벼 봐.”

그 말이 끝날 때쯤에 물이 다시 들이닥쳐 상엽의 몸을 가렸다.

-물러서고 있습니다.

은빛 여우는 더 이상 해달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제야 상엽은 마음을 놓고 쉴 수 있었다.

* * *

‘어떤 유산을 흡수한 걸까?’

은빛 여우가 나타난 뒤로 상엽은 사냥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변종들이 일정 간격으로 서 있어서 호수를 벗어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땅으로 접근하면 어김없이 은빛 여우가 나타나서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열 받으면 덤비든가!”

그렇게 외쳐 봐야 심드렁한 표정의 여우가 하품을 할 뿐이었다.

마치 사람처럼 상엽을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이 변신한 건가?’

상엽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주인님. 해달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쳇.”

상엽에겐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해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미시간호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카고에 호수 쪽 방어벽은 없어.’

시카고와는 꽤 먼 거리지만 호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위험요소였다.

‘나 때문에 도시 전체가 함락당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 안에는 많은 민간인이 있었다. 그래서 상엽은 해달의 이동을 예의주시했다.

이번에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해달을 발견한 상엽은 곧바로 사냥에 나섰다.

“나 진짜 해녀가 된 거 같은데.”

지금까지 백 마리가 넘는 해달을 사냥했지만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고, 이젠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상엽이 도착했을 때, 해달들은 이미 왔던 장소로 되돌아간 후였다.

그의 수영이 해달보다 빠르긴 하지만 넓은 미시간호를 전부 지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변종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물이 아니라 땅을 이용해 시카고에 접근했다. 여전히 넓은 호수가 있지만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의도가 위험했다.

‘저 자식이.’

상엽이 해달들을 계속 막아서자 그 이유를 눈치챈 것이다.

은빛 여우는 더 이상 상엽을 감시하지 않고 오히려 시카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상황이 묘하게 꼬여 버렸다.

엄청난 숫자의 변종들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시카고를 노리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쉽게 점령을 당할 상황은 아니었다.

워낙 넓은 호수라서 그들 사이에 거리가 무려 65킬로미터에 달했다.

변종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예전에 미시건 시티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시카고에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일반변종들이 65킬로미터의 호수를 넘어오는 일은 없겠지만, 기습이 가능한 해달이 500마리를 넘어섰고, 발 빠른 지상 변종의 숫자도 1,000마리에 달했다.

지상변종들이 시카고를 둘러싼 강에 도착한다면 65킬로미터였던 거리는 2킬로미터로 줄어들게 된다.

2킬로미터의 강을 넘어서면 시카고를 유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방어선을 구축한 시카고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의 위협이었다.

“일단 알려야겠어.”

결국 상엽은 시카고로 돌아갔다.

시카고에서는 이미 변종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엽이 해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누군가 앞을 막았다.

40대 중반에 단단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짧게 자른 갈색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으로 인해 강렬한 눈빛이 더욱 도드라졌다.

“데이비스. 내 이름이다.”

그의 말투는 철저히 감정이 통제되어 있었다. 갓코인 유저임은 분명했고 딱딱하고 짧은 문장을 구사했다.

‘군인 출신인가?’

상엽은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변종에 관한 정보인가?”

“맞아.”

“안내하지.”

데이비스는 상엽을 그레이 상점이 있던 20층 건물로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건물의 19층이었다.

20층 건물은 시카고의 주요 인물들이 머무는 곳이었고 군인들의 집이기도 했다.

시카고 권력자들의 공간인 것이다.

19층 회의실에는 이미 많은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힘을 보여 주려는 듯 20명의 갓코인 유저들이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네.”

갓코인 유저들의 눈빛에는 원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이를 무시하고 회의실의 중앙에 도착한 상엽은 데이비스의 배려로 먼저 발언 기회를 얻었다.

“욕을 하든, 싸움을 걸든 일단 내 말부터 들어.”

상엽은 당당히 현재 상황을 말했다.

은빛 여우와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능을 가진 특별한 변종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 상엽을 쫓아올 만큼의 집착이 있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현재 변종의 분포와 상태를 이야기하는 걸로 발언이 마무리되자 누군가 상엽을 향해 외쳤다.

“너만 죽으면 전부 해결되겠군!”

20대 후반에 찢어진 눈을 가진 자였다. 그의 말을 시작으로 그동안 참았던 원성이 터져 나왔다.

“넌 재앙이야!”

“너 때문에 전부 죽을 수도 있어!”

쏟아지는 비난은 데이비스의 말 한 마디로 정리가 되었다.

“모두 그만!”

그의 외침에 비난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힘을 합쳐서 변종들을 처리한다. 이게 우선이다.”

그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위해 힘을 길러 왔다. 이제 그 힘을 쓸 때가 된 것뿐이다.”

모두의 표정에 어쩔 수 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단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반문을 하는 이는 상엽이었다.

뜻밖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상엽에게 모였다. 이에 상엽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냥 이런 상황이라고 알려 주는 것뿐이야. 너희들과 함께 싸울 생각은 전혀 없어.”

“무슨 뜻인가?”

데이비스의 질문에 상엽은 원래의 의도를 말했다.

“오늘밤부터 싸움이 시작될 거야. 그런데 변종의 행동을 나도 예상할 수가 없어. 혹시나 도시 쪽으로 오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알려 주는 거라고.”

“그 많은 변종과 혼자 싸우겠다는 건가?”

“그게 내 방식이야.”

상엽의 말에 다시 한 번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미쳤군.”

“역시 오만한 놈이야.”

처음에는 그냥 넘겼지만 이번에는 상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부 닥쳐.”

상엽이 낮은 목소리에 힘을 주자 모두의 귀에 선명히 들렸다.

“불만 있으면 입으로 지껄이지 말고 덤벼. 아니면 논리적으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말하든가. 한 번만 더 이유 없이 지껄이면 그 자식 때문에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죽게 될 거야.”

상엽의 분노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외부인이 아니라 친위대였다.

30명의 유령전사가 상엽을 둘러싸며 일제히 소환되었다.

그 위용에 회의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속되던 침묵은 데이비스에 의해 깨졌다.

“그만두지.”

데이비스의 말에 상엽도 친위대를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입까지 다물진 않았다.

“내가 변종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60킬로미터 밖에 있는 변종 무리를 처리하는 데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알려 준 것뿐이야.”

상엽은 회의실을 둘러보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친절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말을 끝으로 상엽은 회의실을 나섰다.

* * *

어두운 밤이었다.

둥근 달을 가리는 눈송이들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자연의 색깔이 점점 하얀색으로 변하는 광경은 언뜻 보기에 평화를 떠올리게 했다.

변종들은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을 감았고 야행성 변종들도 할 일이 없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의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다.

쿠릉!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금빛 해머가 떨어졌다.

쾅!

뛰어난 실력의 변종들은 기습적인 공격에도 빠르게 몸을 피했다.

단 한 마리도 다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진짜 습격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콰쾅!

호숫가에서 쉬고 있던 대량의 해달 사이에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변종들은 본능에 따라 폭발지점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폭발의 여파가 사라진 지점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에서 다시 해머가 떨어졌다.

이를 피하는 사이에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고 그 과정이 반복되자 살아남은 해달들은 호숫가를 떠나서 지상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기습은 그 후에야 멈췄다.

끼앙!

다른 변종들은 사방을 둘러보고 있지만 은빛 여우는 아니었다.

은빛 여우는 어두운 호수 위로 겨우 고개만 내민 인간을 보고 있었다.

“오함마 암살자가 부활했다.”

방어 같은 것은 애초에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상엽은 은빛 여우를 향해 보란 듯이 비웃음을 흘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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