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이하나는 정다혜가 싫었다.
‘가진 것도 없는 년이.’
그녀의 눈에 정다혜는 위선자였다.
가진 게 없으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확실치 않은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
얼굴에 언제나 웃음이 걸려 있었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남을 도와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왜 저런 위선자를 다들 좋아하는 거지?’
이하나는 이 점이 가장 싫었다.
가진 것도 없는 위선자를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을 볼 때마다 훈계를 하려는 재수 없는 늙은 경비도 정다혜를 보면 언제나 웃었다.
평소 말이 없던 로드 매니저는 정다혜가 밥을 먹었는지, 아프지 않은지를 물었고, 항상 신경질적인 아줌마 실장도 정다혜를 보면 조카를 대하듯 품에 꼭 안았다.
이하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망가트려 주겠어.’
그녀는 결심했다.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년으로 만들어 주지.’
그게 목표였다.
처음에는 평범한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그것은 세차 아르바이트였다.
정다혜는 새벽 세차 아르바이트를 받아들였고, 이하나는 일부러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정다혜가 있는 세차장을 이용했다.
자신과 정다혜의 차이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다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하나에 대해 고마워했다.
이하나가 원했던 상하관계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것은 큰돈을 버는 아르바이트였다.
-아저씨 한 명이랑 잠깐 만나기만 하면 돼. 하루에 500만 원은 벌 거야.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정다혜는 거절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오히려 화까지 냈다.
이하나는 정다혜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겁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점이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수많은 시도를 했다.
오명진을 압박해서 정다혜에게만 연기 수업에 대한 수강료를 내도록 했다.
그런데 정다혜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를 버텨 냈다.
그사이에도 이하나는 계속해서 정다혜에게 고액의 스폰서를 제안했다.
갑자기 고가의 선물을 주며 유혹하기도 했고, 친구라고 속여 스폰서와 직접 만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정다혜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오히려 이하나를 비난한다.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
그게 결정적이었다.
이하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하나는 일방적으로 정다혜가 데뷔하기로 예정된 릴리스를 해체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실의에 빠진 정다혜에게 다시 접근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다른 기획사로 갈 거야.
이하나로 인해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옮겼고 자연스레 정다혜에 대해서도 소문이 났다.
재능과 인성을 인정받은 정다혜는 결국 다른 기획사에서도 기회가 있었다.
이하나는 마음에 급해졌다.
-어떻게든 내 손으로 끝장낼 거야.
결국 안미영을 통해 일을 꾸몄다.
안미영 역시 릴리스 멤버였다가 데뷔가 무산되었지만 정다혜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녀는 이하나의 스폰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없는 큰돈에 만족하고 있었다.
-정다혜를 불러내.
안미영은 명령에 따랐고 정다혜를 인적이 드문 작은 상가의 지하주차장으로 불러냈다.
그곳에서 정다혜는 건장한 두 명의 남성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고 양평의 한 야산으로 끌려갔다.
-빌어. 벌레처럼 기면서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줄게.
이하나는 거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요구했다. 건장한 두 명의 남성이 정다혜를 잡고 있었고 이하나는 그 앞에서 진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정다혜는 저항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두 명의 남성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하나는 그 상황을 즐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러면 좀 달라질까?
이하나는 정다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정다혜의 용기가 무너진 것도 그때였다.
-사, 살려 줘.
이하나가 자신을 정말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다혜는 공포를 느꼈다.
-더 빌어. 더 비굴하고 더럽게 빌라고.
이하나는 목을 조르며 그 과정을 즐겼다.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그 과정을 반복했고 결국 정다혜는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목숨을 잃었다.
정다혜가 죽고 난 뒤, 이하나는 미친 사람처럼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새로운 릴리스가 멤버가 될 자신의 충복과 안미영을 불렀다.
-너희들도 똑같이 되기 싫으면 똑바로 해.
이하나는 정다혜의 시체를 다섯 명의 소녀가 직접 나무에 매달도록 했다.
-다 같이 공범이야. 뭘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
그녀는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웃고 있었다.
정다혜는 오명진에 의해 단순자살로 처리되었고 이하나와 그 일행에겐 어떤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죄책감이 컸던 안미영은 기획사를 떠났지만 다른 멤버들은 이하나와 함께 릴리스로 데뷔를 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정다혜의 죽음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하나의 엽기적인 괴롭힘이 더 심해졌다는 점이었다.
릴리스 멤버들은 그야말로 노예처럼 살아야 했고 원치 않는 만남을 더욱 많이 가졌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이하나의 행동이 바뀐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아버지 정득수에 의해 알게 된 갓코인의 존재였다.
그 당시, 대중들은 이하나에 대해 예쁘지만 그뿐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노래가 좋아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인기는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컸던 이하나는 갓코인을 이용해 여러 가지 스킬을 획득하게 된다.
-세이렌의 고백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유산 – 영혼을 훔친 자의 마스크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를 획득한 이후로 이하나는 노래와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의구심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또 하나의 독특한 유산을 획득했다.
-코로테르의 장막
자신의 모든 정보를 숨길 수 있다.
스카웃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산 중에 하나로 눈으로는 상대의 능력을 판단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뛰어넘는 유산이 존재했지만 상엽은 이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하나가 달라졌다.
갓코인의 스킬을 획득한 이후로 이하나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게 되면서 주변사람을 대하는 행동도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롤모델로 삼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다혜였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그녀는 정다혜처럼 행동하고, 정다혜처럼 말했다.
그때부터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런 거였구나.
처음에는 거부감이 심했다.
-위선자.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구나.
자신의 작은 문제 하나까지 주변 사람들이 챙겨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진심은 이하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정다혜처럼 살자.
이하나는 그때부터 모든 상황에 정다혜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고민했다.
자신이 죽인 그녀의 인생을 그때서야 인정한 것이다.
* * *
휘이잉.
강한 바람이 상엽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겼다.
“으아아!”
상엽의 괴성이 이름 없는 산을 뒤흔들었다.
고이 잠을 자던 새들이 날아오르고 주변의 나무들은 폭풍을 만난 배처럼 흔들거렸다.
양평의 야산.
누나가 죽은 장소를 보고 있는 상엽의 뒤로 또 한 명이 멍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고백한 이하나였다.
상엽의 움켜쥔 주먹이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와 슬픔.
두 감정이 하나로 섞이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힘껏 고성을 질렀지만 그 후로는 머리를 강하게 맞은 사람처럼 상엽은 멍한 상태에서 몸을 떨기만 했다.
뚝.
그러다가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쾅!
땅을 차고 튀어 나간 상엽이 이하나의 목을 잡았다.
이하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숨이 막혀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있지만 그뿐이었다.
이마오의 실.
그녀는 상엽에게 세뇌를 당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여인이 상엽에겐 독을 품은 살모사처럼 보였다.
“개 같은 년…….”
떨리는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그걸로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은 더욱 커졌다.
“너 따위가 우리 누나를…….”
상엽은 그녀의 목을 잡은 채로 누나가 죽은 나무 밑으로 갔다.
고스트 체인.
체인이 나무에 걸리고 고리처럼 엮여서 이하나의 목을 감았다.
“똑같이 당해 봐.”
상엽이 체인의 한쪽을 잡아당기자 이하나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이하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는지 몸을 뒤틀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를 본 상엽은 세뇌를 풀었다.
그러자 이하나가 놀란 표정으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자신의 목을 감은 체인을 잡았다.
상엽은 그녀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자 체인의 형태를 바꿨다.
체인은 고리를 잡고 있는 그녀의 양팔을 뒤로 묶었다. 그러자 이하나는 목에 힘을 주며 깊이 잠긴 목소리를 냈다.
“사, 살려 줘.”
이하나가 겨우 입을 열어 상엽에게 빌었다. 갓코인 유저라서 그나마 목이 완벽히 졸리지 않고 말까지 할 수 있는 상태로 버티는 것이다.
“제발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살려 줘. 제발…….”
그녀는 간절했다.
대한민국을 흔들던 미소는 이미 사라졌고, 특유의 여유로운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간절히 상엽을 보며 힘겹게 말을 할 뿐이었다.
“우리 누나도 그렇게 빌었겠지?”
“미안해. 내가 전부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이하나는 그렇게 말했다.
상엽은 잠시 이하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체인을 풀었다.
쿵!
바닥에 떨어진 이하나가 벌레처럼 기어오며 상엽 앞에서 엎드렸다.
“제발 살려 줘. 정말 미안해. 다혜는…….”
쾅!
그녀 옆에 망치가 떨어졌다.
“닥쳐.”
“아, 알았어.”
이하나는 비굴하게 빌었다. 그러다 상엽의 반응이 없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끝이 아니구나…….’
상엽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분노가 담겨 있는 눈빛.
지금까지 그녀가 본 어떤 눈빛보다 지독하고 악으로 가득 찼다.
“이걸로는 부족해.”
“제발…….”
“쉽게 죽으면 안 돼. 누구보다 비참하게 살다가, 벌레처럼 죽어야 돼. 그리고 죽은 뒤에도 영원히 비난 받아야 돼.”
상엽은 떨고 있는 이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에게 말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시켰던 일을 직접 하게 될 거고. 그게 무슨 일이든 두 배, 세 배로 직접 하는 거야.”
상엽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내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때, 네 세뇌를 풀어 줄게. 아마 네가 살던 세상이 많이 변해 있을 거야. 그 안에서 네가 살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제발…….”
푹!
“진짜는 지금부터야. 너한테 어울리는 인생을 살게 해 줄게.”
이마오의 실이 다시 그녀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녀의 동공이 다시 멍해지자 상엽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기자회견을 준비해서 오명진의 장부를 공개해. 그리고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에게 알려.”
첫 번째 명령에 이어 두 번째 명령이 이어졌다.
“다섯 시간 후에 넌 무죄를 주장해. 그리고 넌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대신 그 방법이 뭐든 네가 직접 해. 다른 사람을 시켜선 안 돼.”
명령을 내린 상엽은 무릎을 꿇고 있는 이하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제 꺼져.”
이하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그 자리를 떠났다.
“유령아. 따라가서 방어벽 안까지 보호해.”
복수를 위해 당장은 이하나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휘이잉.
다시 바람이 불었다.
양평의 바람에는 예전의 시원한 풀냄새 대신 변종들의 비릿한 혈향이 섞여 있었다.
“누나.”
상엽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시 눈물이 흘렀다. 홀로 남은 그의 눈물은 훨씬 진하고 거칠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고 심장이 아플 만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누나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슬픔이 아직도 이 자리에 남아 있는 듯했다.
“미안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상엽은 그렇게 말했다.
죽음 앞에서도 꿋꿋이 버티던 그의 의지가 눈물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미안해!”
자신을 위해서 온갖 수모를 참은 누나에게 상엽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 사과는 슬픔을 지우지 못했다.
털썩.
심장이 물에 젖은 것처럼 그의 몸이 가라앉았고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에 그는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내가! 무조건 살려 줄게! 반드시 살려서! 억울하게 죽은 거 보상해 줄게!”
그렇게 외친 후에야 상엽은 고개를 숙여 마지막 눈물을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