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이하나와 오명진은 예전부터 관계에 대한 오해를 받았다.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그 진실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전 이하나. 정확히는 정득수의 노예였습니다.”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자금이 정득수에서 시작되었다는 의혹은 마루나를 통해 상엽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정득수가 직접 운영에 관여한 건가?”
“아닙니다. 정득수는 미담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실질적인 결정권은 이하나에게 있었습니다.”
오명진에 의해 밝혀진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무너져 가던 미담 엔터테인먼트는 정득수의 자금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맞이했고 오명진이 대표 이사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회사를 살리려 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았다.
“비밀파티는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너다운 생각이었어.”
“아닙니다.”
“아니라니?”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상엽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오명진을 보았다.
“비밀파티의 실질적인 주최자는 이하나였습니다. 제가 실행하긴 했지만, 기획과 초대인물을 선정한 건 이하나였습니다.”
20살도 되지 않은 소녀가 비밀파티를 기획한 것이다.
“그 나이에 회사를 살리자고 그런 짓까지 했다고?”
“이하나는 미담 엔터테인먼트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그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밀파티를 주최할 이유가 없잖아.”
“처음에는 그저 병적인 질투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투?”
“이하나는 예쁜 아이들을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더럽히고 싶어 했습니다.”
상엽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밀파티 외에도 다양한 스폰서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약점으로 쥐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어?”
“걸그룹 릴리스. 그 아이들은 전부 이하나의 스폰서 제안을 받아들인 아이들입니다. 이하나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아이들은 데뷔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하나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은 계속되었다.
“릴리스의 아이들은 데뷔를 하고 나서도 이하나의 지시에 따라 성상납을 계속했습니다. 돈이나 인기가 아닌 이하나의 지시에 의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걸 즐겼다는 거야? 다른 아이들이 더럽혀지고 망가지는 걸?”
“이하나는 악마였습니다.”
상엽은 질문을 그만두고 오명진의 말을 기다렸다.
“회사는 비정상으로 돌아갔지만 성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욕망이 강한 아이들이 정재계의 인물과 직접 만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이하나가 단순히 즐기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요.”
미담 엔터테인먼트는 이하나에 의해 비정상적인 성장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스폰서를 두게 되었다.
이들 스폰서는 저질러 놓은 일이 있으니 미담 엔터테인먼트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선순환이었다.
“스폰서들과 회사의 관계는 이하나를 최고의 스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에 대한 이득은 이하나가 챙겼다.
“이하나는 인기가 많아지고 주목을 받자 더 이상 연습생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릴리스 멤버들은 아직까지도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지금 최고의 연예인이 된 것입니다.”
“갑자기 이하나의 행동이 변한 계기가 있을 텐데.”
이하나의 모든 소문은 한 지점을 계기로 완전히 변했다. 상엽은 그 부분을 물었다.
“이하나가 갓코인 유저가 된 순간부터입니다.”
“뭐?”
이하나는 갓코인 유저였다. 상엽은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상엽이 놀란 이유였다.
“그때부터 주변 인물들에게 천사처럼 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뭐가 있었지?”
“그녀는 자신만의 비밀파티를 열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별장에서?”
“그렇습니다.”
이하나는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가 오명진에 의해 밝혀졌다.
“그곳에서는 이미 유명한 연예인과 스폰서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서인가?”
“이하나는 자신의 라이벌들을 그런 식으로 추락시켰습니다. 강간도 있었고 회유를 통한 스폰서도 있었습니다. 라이벌이 사라진 이후에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악마라는 말이 부족했다.
상엽은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뒤에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왜 이하나가 우리 누나를 죽였다고 생각해?”
“다혜가 이하나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하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저에게 몇 번이나 화를 냈습니다.”
이하나는 정다혜를 망가트리고 싶어 했다.
가진 것이 없음에도 언제나 당당했고 모든 일에 열심히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다혜의 데뷔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하나는 그게 싫었던 겁니다.”
결국 이하나는 집요하게 정다혜를 괴롭혔다.
“다혜는 끝까지 버텼고 연습생을 그만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명진의 예상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하나라…….”
이야기를 모두 들었지만 상엽은 이하나에 대한 분노가 생기지 않았다.
직접 그녀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네 말을 증명할 수 있어?”
“증거가 있습니다.”
오명진은 상엽의 눈빛을 받아 내며 담담히 말했다.
“비밀파티의 장부. 그건 처음부터 이하나의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녀에게 있을 겁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오명진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상엽은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오명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명진은 고해성사를 끝낸 신도 같은 표정이었다.
“꺼져.”
“정말 살려 주시는 겁니까?”
“마음 변하기 전에 꺼져.”
상엽은 약속대로 그를 놓아주었다.
오명진은 눈치를 보다가 급히 레스토랑을 떠났다. 그런데 30억짜리 가방을 그 와중에도 챙겨서 나갔다.
‘유령아. 확인해.’
상엽은 오명진에게 추종자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오명진의 말과 마루나가 보낸 자료들이 모두 일치해.”
대표실에 자주 들어갔던 일부터 오명진에게 면박을 주었다는 것도 사실과 일치했다.
스폰서 의혹을 비롯해 갑자기 엄청난 푸시를 받은 부분도 이해가 됐다.
베일에 가려진 그녀의 저택과 갑자기 행동이 변한 것도 맞아떨어졌다.
“확인하자.”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 * *
대통령의 딸 정하나.
연예인 이하나.
이 둘은 분리될 수가 없었다.
이하나는 정득수가 대통령이 된 순간부터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대신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을 계속한다는 이미지만 주었다. 이에 대한 홍보나 방송활동도 역시 없었다.
그 점이 이하나의 인기를 더욱 증가시켰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었고, 파파라치들은 어떻게든 그녀의 사진을 찍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파파라치에 찍힌 대부분의 사진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하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을 넘어서 한국을 상징하는 여성이 되고 있었다.
이하나의 스케줄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박광신을 통해 간단히 스케줄을 알아냈다. 그런데 언론이 따라붙는 장소였다.
‘그전에 만날 사람이 있지.’
상엽은 이하나를 먼저 찾아가지 않았다.
‘진실을 말해 줄 사람은 많으니까.’
이하나의 진실을 밝혀 줄 가장 확실한 인물이 있었다.
‘릴리스 멤버들.’
그녀들이라면 이하나의 정체를 정확히 말해 줄 수 있었다.
“마루나. 약속 잡아.”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루나를 이용했다.
현재 릴리스는 공식적으로 해체가 된 상태였다. 이 역시 정득수의 대통령 당선과 맞물린 시점이었고, 릴리스는 마지막 콘서트에서 눈물을 보이며 해체를 선언했다.
이는 한동안 연예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다.
이하나를 제외한 4명의 멤버 중에 2명은 배우생활을 시작했고 이미 주연으로 드라마에 캐스팅 된 사람도 있었다.
반명 나머지 2명은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상엽은 마루나를 통해 이 중 한 명을 불러들였다.
이민지라는 이름의 멤버는 늘씬한 몸매에 귀여운 얼굴 덕분에 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루나와 저녁 식사를 할 때만 해도 새로운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마루나는 이민지를 오피스텔로 초대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와인이나 한잔해요. 좋은 와인이 있거든요.”
이민지 입장에서는 마루나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피스텔에 들어섰을 때, 이민지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오피스텔에 한 사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 연예인.”
오피스텔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은 상엽이었다.
이를 본 이민지는 마루나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죠?”
“왜? 익숙한 상황이잖아.”
마루나의 말에 이민지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제가 얻는 건요?”
그녀가 비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이에 마루나는 먼저 오피스텔을 나가면서 짧게 대답했다.
“목숨.”
쿵.
오피스텔의 문이 닫혔다. 그러자 상엽이 그녀를 불렀다.
“안 건드려. 그냥 몇 가지 사실만 알아내면 되니까 긴장 풀어.”
“국민의 영웅을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네요. 죽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명이 좀 길어. 우리 누나하고는 다르게.”
누나를 언급하는 순간, 이민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엽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자, 진실을 말할 시간이야.”
그녀에게 다가가가는 상엽의 손에는 은빛 바늘이 들려 있었다.
사용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민지는 일반인이었고 추종자를 통해 기억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상엽은 이마오의 실을 선택했다.
바늘이 머리에 꽂히는 순간, 이민지의 동공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동공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상엽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기다렸다.
‘일반인들은 저항할 힘조차 없다는 거네.’
전수유산이지만 상엽의 손에 들어왔을 때는 다시 1단계가 되었다. 세뇌할 수 있는 인원은 1명이 전부였다.
“이하나에 대해서 말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제안을 받았고,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전부.”
“네. 주인님.”
이민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상엽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런 여자였다니.’
이민지에게는 처참한 기억이 있었다.
스폰서 제안을 거절했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고 결국에는 울면서 받아들였다.
그 후로 수십 명의 남자를 만났다. 그중에 그녀가 원해서 간 곳은 없었다.
데뷔를 하고 인기가 높아질수록 상대하는 남자의 직급과 권력이 높아진다는 것만 달랐다.
당연히 이하나가 직접 접대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말 그대로 이하나의 노예였다.
오명진이 알고 있는 진실보다 훨씬 더러웠다.
“정다혜. 알고 있지?”
“네.”
“누가 정다혜를 죽였지?”
그 질문을 한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김 실장.”
“그게 누구지?”
“이하나의 명령을 듣는 남자입니다.”
“자세히 말해.”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하나는 릴리스 멤버와 안미영에게 정다혜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라고 지시했습니다.”
다섯 명이라고 해도 죽은 소녀를 나무에 매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하나는 그 상황을 즐거워했습니다.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죽은 정다혜와 이를 매달려는 다섯 명의 소녀.
그것이 이하나에겐 그저 코미디처럼 보였던 것이다.
“직접 보지 못했는데 왜 김 실장이 죽였다고 생각해?”
“그전에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걸 봤습니다.”
정다혜가 첫 번째가 아니었다.
상엽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혔다.
“정말 미친년이었네.”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거였다.
“후우.”
상엽은 잠시 질문을 멈추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누나…….”
잔잔하던 마음에 파도가 일렁였다. 그러더니 곧 폭풍으로 변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는 대가는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상엽에겐 언제나 희망적인 말을 했다.
“으아!”
결국 상엽은 괴성을 질렀다. 그의 고함에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분노했지만 희망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꼭 살려 줄게.”
상엽의 움켜쥔 주먹에 창틀이 가루로 흩어졌다.
“일단 악마부터 처리한 다음에.”
그는 이민지의 세뇌를 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이마오의 실을 보았다.
이민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곱게 죽일 수는 없지.”
상엽은 이를 악물며 오피스텔을 나섰다.
수십 대의 카메라 렌즈가 한 여인에게 집중되었다.
함께 손을 잡고 있는 어른과 아이들은 중앙에 서 있는 천사를 위한 배경이 될 뿐이었다.
이하나.
대통령의 딸이 고아원 봉사활동을 하고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촬영이 끝나자 경호원들이 급히 이하나의 주변을 지켰다.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은 이하나는 고아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된 승용차에 올랐다.
이 역시 언론을 의식해 먼 곳에 둔 것이다.
기자들은 그녀가 고아원을 빠져나와 300미터를 걸었다는 사실을 배려 깊은 천사로 포장해 줄 것이다.
“후우.”
그녀는 한숨을 쉬며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댔다.
“출발하겠습니다.”
기사가 출발을 알렸고 이하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절대 곱게 안 죽어. 네가 더럽다고 생각한 모든 일을 직접 하게 될 거야. 그 후에 자신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네가 괴롭힌 사람들보다 수백 배 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스스로를 죽이게 만들 거야.”
그 목소리에 이하나는 눈을 떴다.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해.”
그녀의 옆자리에는 맹수의 눈빛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상엽이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