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24화 (124/300)

# 124

미담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명진.

죽음을 위장한 그는 중국으로 밀항을 한 뒤에 신분을 바꿨다.

성형으로 얼굴까지 바꾼 오명진의 다음 행선지는 태국의 방콕이었다.

방콕과 파타야는 본래부터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중에 하나였다.

변종 출현 이후에는 여행객이 더욱 증가해서 동남아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방콕과 파타야는 차량으로 2시간 거리였고, 태국 정부는 이 라인을 단 한 번도 변종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현재도 방콕에서 파타야로 이어지는 방어선은 동남아에서 가장 견고하다고 불렸다.

그곳에서 1년을 버티던 오명진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필리핀으로 넘어갔다.

그것이 실수였다.

방콕과 필리핀은 동남아의 유명한 성산업 관광지였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카지노였다.

태국은 성산업에는 관대하지만 카지노는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필리핀은 예전부터 카지노산업이 성행했다.

중국의 마카오가 변종들에 의해 파괴되면서 필리핀은 말레이시아와 함께 도박 중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가 되었다.

돈은 있지만 할 일이 없는 오명진.

그는 필리핀으로 이동한 후에 자연스럽게 카지노에 빠졌다.

“뱅커 윈.”

녹색 테이블 위에 탑처럼 쌓여 있던 칩은 딜러의 차지였다.

그 작은 행동하나로 오명진은 1억을 잃었다.

필리핀 특수경제특구 클락 필드.

이곳은 다른 필리핀 도시와 달리 치안이 강력히 유지되는 곳이었다.

필리핀에서 밤에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도시이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었고 당연히 많은 카지노가 이었다.

그중에서도 클락 필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5성급 위더스 호텔은 골프와 카지노를 즐기는 고급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었다.

“5억 더.”

가진 칩을 모두 잃은 오명진은 곁에 있는 사내에게 5억을 요구했다.

“사장님. 오늘은 그만하시죠. 내일도 날인데.”

“5억 더 가져오라고!”

오명진의 외침에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사장님. 먼저 결제를 해 주셔야 합니다. 미결제가 벌써 10억입니다.”

“10억? 내가 지금까지 너 벌어 먹게 해 준 게 얼만데? 그깟 10억 때문에 못 주겠다는 거야?”

사내는 카지노의 롤링업자였다.

롤링업자란 카지노의 프리랜서 영업 사원 같은 개념이었다.

자신의 데려간 손님이 배팅을 하는 금액에 따라 카지노에서 일정한 비율로 돈을 지급받았다.

당연히 오명진처럼 VIP실에 출입하는 손님을 잡으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때문에 큰 손님을 상대하는 롤링업자는 단순히 칩을 바꿔 주는 것 외에도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급 접대부를 알선하는 것은 기본이고 항공티켓을 자비로 끊어 주거나 랜트카, 골프장 부킹까지 비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비서와 롤링업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잃은 돈이 벌써 70억인데.’

롤링업자들은 자신의 손님이 얼마를 잃었는지 항상 계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현금을 미리 받고 칩을 내어주지만, 상황에 따라 돈을 빌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범죄들이 생겨난다. 특히 롤링업자들은 대부분 필리핀 현지의 범죄조직과 선이 있기 때문에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돈을 받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건 사채업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손님과 롤링업자는 채무로 맺어진 관계였다.

“사장님. 그만하시죠.”

결국 롤링업자는 결정을 내렸다. 오명진이 채무를 변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만?”

짝!

오명진의 손이 롤링업자의 뺨을 후려쳤다.

“내가 지금까지 해 준 게 얼만데?”

“이거 참. 나도 해 줄 만큼은 해 준 거 같은데.”

롤링업자는 맞은 부위를 만지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오명진이 그 표정을 보고 다시 손을 들려고 하자 근처의 보안요원들이 급히 그를 말렸다.

“나카타 상. 한국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돈부터 주셔야 할 겁니다. 곱게 귀국하고 싶으시면.”

롤링업자는 그 말을 남기고 먼저 VIP실을 나섰다.

쓴웃음을 남기고 떠난 그는 오명진을 나카타라고 불렀다. 이는 오명진이 얼굴을 바꾸고 만든 위장신분이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오랜 도피 생활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바꾸기 마련이다.

오명진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실수로 이어졌다.

오명진의 소재가 파악되었다.

“어디야?”

“필리핀 클락. 카지노에 다니고 있었나 봐.”

“어떻게 알았어?”

“도박자금이 급했나 봐. 비밀파티 멤버에게 돈을 요구했어.”

한때 한국을 시끄럽게 했던 비밀파티는 국민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박광신은 그들 중에 몇 명을 처벌하지 않고 일부러 남겨 두었다.

이는 박광신이 단체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목줄을 쥐고 박광신이 원하는 여러 가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처럼 덫이 되기도 했다.

“그 녀석한테 진짜 장부가 있었어. 비밀파티의 장부. 그걸 빌미로 30억을 요구했나 봐.”

“내가 직접 갈게.”

“조금만 기다려. 확실히 그물을 만들어 줄 테니까.”

상엽은 마음이 급했지만 박광신을 믿고 기다렸다.

사흘 후.

국회의원 조동철이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비밀파티의 일원이었지만 박광신이 임의적으로 검찰조사에서 빼 준 인물이었다.

비행기는 정확히 자정이 되자 클락 필드의 활주로에 도착했다.

-장부를 직접 봐야겠어. 내 이름은 확실히 지워서 가져와. 그걸 확인하면 원하는 돈을 줄 테니까.

이게 협상조건이었다.

도박자금이 필요했던 오명진은 이를 수용했고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혼자 오십시오.

조건은 단 하나였다.

약속장소는 클락 필드를 벗어난 앙헬레스의 레스토랑이었다.

코리아타운과 멀지 않은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레스토랑은 영업을 하지 않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끼익.

가득한 먼지가 내부를 가리고 있는 유리문을 열자 어두운 테이블 주변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조동철의 머리에 닿았다.

철컥.

총이었다.

표정이 굳은 조동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조동철은 오명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았다.

성형을 했을 거라고는 예상을 했지만 구타를 당해서 잡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돈. 돈 가지고 왔소?”

그는 필리핀의 조직폭력배에게 잡혀 있었다.

롤링업자가 고용한 이들이었다. 워낙 막 나가는 자들이라 당하는 사람의 공포는 더욱 컸다.

“여기 있다.”

조동철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들고 있던 가방을 던졌다.

그 안에는 한국정부의 허가 아래 정식으로 통과가 된 중국 위안화가 있었다.

오명진을 잡고 있던 사내 중에 한 명이 가방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명진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10억은 돌려주시오. 20억이 약속이었잖소.”

“그 와중에도 도박할 돈이 필요한 거야? 대단해.”

오명진은 10억을 빌렸지만 롤링업자에 요구대로 20억을 갚아야 했다.

그런데 오명진은 조동철에게 30억을 요구했다.

“좋아. 이 정도는 봐주지.”

롤링업자는 3억 정도의 돈을 오명진 앞에 놓았다.

“이건 너무…….”

“사장님. 살려 준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오명진은 뭔가 말을 하려다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는 조동철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려 했다.

이에 조동철이 그의 팔을 잡았다.

“장부는?”

오명진은 조동철의 손을 뿌리치더니 레스토랑을 나섰다.

처음부터 지킬 마음이 없던 약속이었다.

그렇게 오명진이 조동철을 버리고 떠날 때였다.

쾅!

밖으로 나섰던 오명진이 누군가에게 목이 잡힌 채로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얼굴이 많이 변했네.”

그 순간 총을 든 사내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성이 레스토랑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상엽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총알은 상엽의 몸에 닿았지만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으악!”

오히려 잘못 조준된 총알이 상엽에게 잡혀 있던 오명진의 허벅지에 박혔다.

“유령아. 처리해. 귀찮아.”

추종자가 나타나 총을 든 사내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갓코인 유저라면 몰라도 일반인이 추종자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상황을 파악한 롤링업자가 무릎을 꿇으며 양손을 비볐다. 하지만 상엽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팟!

결국 그의 뒷목에 추종자의 칼날이 들어갔다.

롤링업자와 사내들이 모두 제거되자 상엽은 오명진을 소파 위에 던졌다. 그리고 조동철을 향해 말했다.

“넌 이제 집에 가.”

“네?”

“못 알아들어? 꺼지라고.”

“장부는…….”

쾅!

상엽이 결국 발을 구르자 레스토랑의 반이 무너져 내렸다.

조동철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자. 이제 둘만의 시간이네.”

상엽은 무너진 레스토랑 안에서 오명진과 마주 앉았다.

오명진은 도둑질을 걸린 어린아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유령아.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죽여 버려.”

-주인님. 진짜 죽입니까?

‘손발이 안 맞네. 당연히 죽이면 안 되지. 전부 알아내기 전까지.’

-죄송합니다.

상엽은 협의를 끝내고 오명진을 노려보았다.

“나한테 할 말이 많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그것 죽기 전에 할 말이고, 지금은 다른 말을 해야지.”

“사, 살려만 주시면 뭐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엽은 그가 거짓말을 할 상태가 아님을 알았다. 이에 다른 전략을 펼쳤다.

“저기 돈 보이지?”

무너진 잔해에 깔린 검은 가방에는 여전히 30억 가치의 중국돈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면 저건 전부 네 꺼야. 당연히 널 죽이지도 않을 거고.”

희망을 미끼로 한 협상이었다. 하지만 오명진은 이를 판단할 상태가 아니었다.

“뭐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엽은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다 말해도 된다는 건가?’

그가 희망을 던진 이유는 하나였다.

‘누나와 관련이 있다면 저렇게 대답하지 못할 텐데.’

오명진의 표정은 간절했다. 당장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엽의 누나와 관련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 누나 알지?”

“네. 하지만 전 그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조금 다가와서 말을 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아는 대로 말해. 전부.”

“정다혜가 죽었다는 소식은 안미영에게 들었습니다. 전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건을 덮는 데 주력했습니다.”

“누가 누나를 죽인 거야?”

“안미영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 일에 정하나. 아니 이하나가 관련이 되어 있어서 뒤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명 정하나.

이하나로 활동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인이 다시 거론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외동딸이기도 했다.

“안미영이 죽인 게 확실해?”

“전 그렇게 들었을 뿐입니다.”

“누구한테 들었는데?”

“이하나입니다.”

상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하나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안미영이 다혜를 죽이고 나서 고백을 했다고 했습니다.”

상엽은 오명진의 말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그동안의 정보와 일관성은 있지만 뭔가가 맞지 않았다.

‘안미영이 누나를 죽였다는 건데.’

하지만 그가 만난 안미영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안미영이 이하나를 죽여 달라고 했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안경철은 안미영을 국도에 내려 줬다고 했어. 그런데 혼자 가서 누나를 죽였다?’

뭔가가 이상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상엽과 오명진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을 본 상엽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네 예상을 말해 봐.”

“네?”

“지금부터 진실이 아니라 네 예상을 말해 보라고.”

상엽의 지시에 오명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말 살려 주실 겁니까?”

그가 결심을 하며 물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정보라면 살려 준다. 그 기준이 절대 낮지는 않을 거야.”

“맹세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 네가 그런 걸 따질 상황은 아닐 텐데.”

상엽의 협박에 오명진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다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시면 전부 말하겠습니다.”

쾅!

화가 난 상엽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오명진의 피부가 하얗게 질렸지만 몸을 떠는 와중에도 상엽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이 정도 강단은 있는 놈이겠지.’

기회를 잡으면 물고 늘어진다. 상엽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이 있었다.

“누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단, 그 정도의 가치가 없다면 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잔인하게 죽일 거야.”

“아, 알겠습니다.”

상엽은 화를 참으며 오명진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주변에 떨어진 맥주병을 잡더니 급히 입으로 가져가며 목을 축였다.

그리고 신부 앞에서 오랜 비밀을 털어놓는 신도처럼 말했다.

“범인은 이하나입니다.”

상엽은 진실에 다가서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