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22화 (122/300)

# 122

“왜 여름이 됐지?”

그는 3월에 신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보니 8월이 되어 있었다.

“6개월 동안 싸움만 한 거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특수치안대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갓코인에 대한 정보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제는 물론 정치와 외교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광신이 형이 바빠진다는 뜻이지.”

상엽은 그동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제일 먼저 박광신을 만나러 갔다.

박광신은 상엽이 찾아오자 반색을 하며 입구까지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신전에 다녀왔어.”

“무사히 와서 다행이야.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라져서 걱정했어.”

6개월이나 소식이 없었으니 다양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널 죽었다고 한 뉴스도 많아.”

“그럼 이제 살아왔다고 기사를 쓰겠네.”

한국에서 상엽은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혹시 만득이 아저씨에 대한 소식은 없어?”

상엽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점을 제일 먼저 걱정했다.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박광신은 김만득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지금 김만득이 문제가 아니야. 너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이 많거든.”

박광신은 웃으며 상엽을 빌딩 안으로 안내했다.

“누가 그렇게 화가 났는데?”

“데스문.”

“아…….”

상엽은 잊고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화내는 게 당연하지.”

데스문과는 약속한 일이 있었다.

“현재 상황이 어때?”

“직접 충돌은 없어. 그런데 데스문이 대부분의 영역을 잃었어.”

“켄사로가 화가 많이 났겠는데.”

“우리도 지원요청이 오려면 가려고 준비 중인데 계속 후퇴만 하고 있어. 어쩔 수가 없을 거야. 전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거든.”

“폭발 직전이겠네.”

“아마도. 화이트 길드끼리의 연합이 너무 공고해. 데스문 말고는 거의 무너졌어. 단순히 일본 연합끼리의 동맹은 아닌 거 같아.”

“무슨 뜻이야?”

“대형 화이트 길드가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직접 인원을 파견한 것 같지는 않은데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 같아.”

박광신은 상엽을 위해서 예를 들어 주었다.

“예전에 미국의 민주주의와 소련과 중국이 주장하던 사회주의의 충돌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음. 생각이 더 복잡해졌어.”

“하하. 알았어. 쉽게 말해 줄게. 그 당시에 민주주의 진영의 1등이었던 미국은 사회주의가 퍼지는 걸 극도로 경계했어. 소련과 중국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여러 전쟁에 직접 참여를 한 거야. 정보를 가짜로 꾸미기까지 하면서.”

상엽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싸움은 블랙과 화이트의 싸움이거든. 그리고 이제 국가들이 하나의 진영을 선택하고 있어. 화이트는 블랙이 국가를 장악하는 걸 경계하는 거야. 블랙도 마찬가지지.”

이제는 큰 크림을 봐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래도 카케루가 용케 버텨 냈네.”

“요다라는 부길드장 만나 봤지?”

“응. 재수 없는 놈이야.”

“위기가 있었는데 잘 피해 냈어. 거의 피해 없이 물러서는 데 성공했거든.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상엽도 요다의 능력은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로 몰린 거야?”

“도시 하나. 그것도 작은 섬 도시. 나머지는 전부 잃었어. 곧 화이트 길드의 마지막 토벌전이 펼쳐질 거야.”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네.”

“바로 갈 거야?”

“그래야지. 내가 돌아온 건 비밀로 해 줘. 카케루한테만 슬쩍 알리고.”

박광신은 상엽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조심해.”

“걱정 마. 나 신전 다녀온 남자야.”

상엽은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바로 빌딩을 나섰다.

“아.”

상엽이 떠나고 박광신은 실수를 깨달았다.

“깜빡했네. 화가 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빌딩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산적 오빠!”

그 목소리가 1층 전체를 울렸다. 하지만 상엽은 이미 떠난 뒤였다.

* * *

일본 화이트 길드는 오래전부터 블랙 길드와 전쟁을 벌였다.

그들 사이에는 다양한 역사가 있었고 서로 우세를 잡은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 기세가 급격히 기운 시점은 료사기리의 길드장이 상엽에게 죽은 후부터였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블랙 길드가 득세를 시작했고 오랫동안 우위를 점했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전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화이트 길드들이 은밀히 연합을 해서 대대적인 블랙 길드 소탕에 나선 것이다.

그것도 전략적으로 1위에 있는 데스문을 제외한 하위 길드를 타격했다.

힘의 차이가 명백했던 블랙 길드들은 습격을 버텨 내지 못했고 이미 승패가 갈려 버려서 데스문이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블랙 길드 진영에서는 워낙 큰 타격이라 화이트 길드의 계속된 추격에 피해가 누적되었다.

그렇게 최근에 들어서는 데스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블랙 길드가 와해되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다고 해도 당장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데스문만 무너트리면 끝난다.

화이트 길드 진영에는 일본 장악을 위한 마지막 관문 하나가 남았다.

-이미 승부는 정해졌다.

그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전력 차이가 컸다.

일본 규슈의 남쪽 해안.

1킬로미터 밖에 있는 작은 섬도시를 향해 배가 출발했다.

이에 동원된 어선과 유람선, 화물선은 무려 200척이었다. 그 안에는 2천 명의 화이트 길드원이 타고 있었다.

겨우 1킬로미터의 거리를 감안할 때는 지나친 준비였다. 이번 작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선두에 선 화물선을 시작으로 배가 출발했다. 어느 배에 누가 탔는지는 각 길드의 길드장만 알고 있었다.

혹시나 데스문에서 배를 습격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로 일본에서 블랙 길드는 사라진다.

배가 출발하자 화이트 길드원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시간.

요다는 카케루를 설득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지금 가셔야 합니다!”

그들 근처에서는 헬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낸다.”

“길드장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있단 말이냐!”

카케루는 지금까지 요다의 요청대로 계속해서 싸움을 피했다. 덕분에 길드원들의 피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길드의 자금줄이 되는 사업이 모두 사라졌고 그동안 축적했던 인맥과 영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명령이다. 비켜라.”

결국 카케루는 이번에도 도주를 요청하는 요다를 밀어냈다. 그리고 도열해 있는 길드원을 향해 말했다.

“누구든 두려운 자는 떠나라. 내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

카케루의 말에 한 블랙 길드원이 외쳤다.

“귀신이 되면 문제 삼겠다는 말입니까?”

“큭큭! 그것도 약속하지. 죽어서 구천을 떠돌아도 너희들 탓은 하지 않는다.”

“그럼 그깟 구천. 같이 가야지요!”

길드원들은 웃었다.

데스문은 그런 자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카케루는 길드장으로서 권위를 내세운 적도 없고 모두의 개성을 존중했다.

가입은 어려웠지만 탈퇴에 따른 불이익은 없었다.

데스문이 위기에 놓인 순간에도 그 규칙은 굳건했다.

“마지막 기회다! 여기 있는 건 개죽음이다! 현명한 놈들은 떠나라!”

“대장 닮아서 무식합니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반드시 죽는 싸움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차이는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었다면 진즉에 맞서 싸웠을 것이다.

“요다. 떠나라. 그동안 수고했다.”

카케루가 요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무식한 길드장 말리는 게 꽤 고역이었을 게다.”

“아닙니다.”

요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무기인 짧은 도끼를 꺼냈다.

“같이 싸우죠.”

“현명하지 못하군.”

“현명한 놈이면 길드장님을 모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우리 집에 있는 쿠나짱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쿠나짱?”

“제가 기르는 식물입니다. 빨간 꽃이 예쁩니다.”

“크큭! 귀신이 되면 쿠나짱을 제일 먼저 찾아가겠군.”

“그럴 겁니다.”

결국 요다도 싸움을 결정했다. 그는 현명한 선택을 좋아하지만 길드를 버릴 수는 없었다.

“가자!”

카케루를 선두로 데스문의 길드원들이 해안에 나타났다.

반대쪽에서 출발한 화물선은 이미 중간지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데스문을 위하여!”

카케루가 자신의 무기를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그러자 바다를 울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불사한 마지막 항전이 그렇게 시작되려 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쾅!

바다 중간지점을 지나던 어선이 갑자기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거꾸로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거대한 해머가 떨어져 또 다른 어선을 덮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한 사내는 바다 위에 있는 50척의 배를 단숨에 침몰시켰다.

어두운 바다 위는 헤엄을 치는 갓코인 유저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사내는 이들도 그냥 두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물속으로 몸을 감춘 직후, 갓코인 유저들이 하나씩 빛으로 흩어졌다.

바닷속에서 발생한 충격은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바닷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길드장님.”

“이제야 왔군.”

카케루는 사내를 알아봤다.

“정상엽.”

“길드장님.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확실히 말해라.”

요다는 웃으며 조언을 시작했다.

“적을 전멸시킬 시간입니다.”

“들었지? 전부 공격한다!”

데스문 길드원들이 바다에 뿌려진 잔해를 밟으며 전투를 시작했다.

쾅! 쾅!

상엽의 해머는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로 인해 2천 명의 화이트 유저 중에 1천 명이 바다에 빠졌다.

‘데스문이 처리하기는 너무 많은데.’

바다에 빠졌다고 목숨을 잃을 갓코인 유저는 없었다. 상엽은 이를 아는 터라 곧장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고스트 실드를 만들고 물에 떠 있는 잔해를 밟기도 했다.

츠팟!

그의 몸에 푸른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자유롭게 형태가 변하며 상엽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적군의 심장을 찔렀다.

직선으로 1킬로미터 바다를 왕복했을 때, 상엽의 불꽃에 죽은 이만 100명에 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상엽은 움직임이 빠른 녀석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했다.

당황하거나 부상을 입은 자들은 데스문에게 맡겼다.

“정상엽이다!”

화이트 유저 진영에서 혼란이 일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블랙 길드를 몰아붙인 것은 상엽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위험요소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상태였다.

“진정해라! 막을 수 있다!”

화이트 유저 연합의 수장 테츠는 혼란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러자 원거리 스킬을 가진 유저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바다 위를 뛰던 상엽은 난무하는 스킬을 보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카케루. 늦어서 미안해. 변명은 나중에 할게.”

상엽은 물러난 틈을 이용해 카케루와 만났다.

“끝나고 한잔하지. 다행히 술이 남았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화끈하게 갈 거니까 준비해.”

상엽은 아공간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남은 음료수를 모두 꺼내 카케루에게 주었다.

총 12병이었다.

“너무 가까이 붙지 마. 위험하니까.”

상엽은 다시 바다 위를 뛰기 시작했다.

“쏴라!”

상엽이 접근하자 다시 한 번 스킬들이 난무했다. 상엽은 이를 보며 몸을 띄웠다.

그러자 스킬들이 방향을 바꿔 다시 한 번 상엽을 덮쳤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무모한 선택을 했다. 스킬들을 향해 직선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게 상엽이 거대한 창에 꿰뚫리기 직전이었다.

‘유령걸음.’

상엽의 몸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모든 스킬들이 그의 몸을 통과해 버렸다.

마지막 스킬까지 몸을 통과했을 때, 상엽은 이미 상대 진영의 가운데 닿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힘을 실은 한 방이 떨어졌다.

콰콰쾅!

유령 잔상까지 따라붙은 충격은 몇 겹의 지진이 되어 주변을 완전히 찢어 버렸다.

안전을 위해 하나로 뭉친 것이 그들의 최대 실수였다.

한 방으로 200명의 유저들이 빛으로 흩어졌고 이것이 상엽에게 흡수되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폭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엽은 겨우 목숨을 건진 유저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크흐!”

이젠 망치를 든 인간이 아니었다.

푸른 불꽃에 휩싸인 늑대인간.

늑대인간 상엽은 광기에 찬 눈빛을 빛내며 살육을 시작했다.

폭발로 일어난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그 안에서 살점이 튀고 피가 솟구쳤다. 그 모습은 늑대인간을 더욱 흥분시켰다.

늑대인간이 지나간 곳은 어김없이 빛이 형성되었고 별동별처럼 길게 늘어지며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마, 막아라!”

테츠는 다시 외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특기인 방패를 세우며 상엽에게 달려갔다.

쩍!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푸른 불꽃을 머금은 세 줄기의 선이 그어졌다.

투둑.

그의 자랑인 방패가 늑대인간의 손톱에 찢어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크흐.”

그 숨소리가 테츠에겐 악마의 웃음소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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