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20화 (120/300)

# 120

쿵!

또 한 명의 유령전사가 상엽의 망치에 쓰러졌다.

“34층 통과!”

힘차게 외친 기세와 달리 상엽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몸에는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들이 쌓여 있었다.

“코인이 있으면 뭐해? 쓸 수가 없는데.”

34명의 전사와 싸우면서 상엽은 많은 코인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레이 상점 소환권도 소용이 없었다.

‘700만 코인.’

상엽이 신전에서 모은 코인의 양이었다. 모든 전사를 전멸시키는 바람에 이만큼이 모였다.

게다가 유물과 유산 조각도 각각 3개씩 획득했다.

“이건 어쩌면 모조리 모일 거 같기도 한데.”

그가 획득한 유산 조각 3개는 모두 같은 문양이었다.

모양으로 봐서 5조각으로 보였고 이는 상엽이 전사들을 전멸시켰기에 3개까지 모을 수가 있었다.

곧장 탑을 향해서 안으로 들어왔다면 모을 수가 없는 유산이었다.

이를 모르는 상엽은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만 인식했다.

“아오나. 기다려. 내가 간다.”

그가 전투에 어려움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아오나의 스킬이 하나도 발동되지 않았다.

추종자는 물론, 고스트 체인과 고스트 실드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특히 고스트 실드가 사라진 것은 그에게 큰 약점이 되었다. 지금 남은 상처도 고스트 실드가 사라진 이유가 컸다.

“내가 반드시 잡는다. 반드시.”

상엽은 오기로 이를 악물며 몸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44층의 전사는 두 개의 긴 창을 가진 유령전사였다. 다리가 없는 대신 공중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과격한 전투를 펼쳤다.

그와의 싸움에서 상엽은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다가 거의 한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아오.”

승리 후에 바닥에 누운 상엽은 옆에 뭔가가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유산 조각이었다.

“일단 좀 쉬고.”

그는 조각을 확인할 힘도 없었다.

45층과 46층은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47층에서는 의외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속전속결.’

그 전략이 통한 것이다.

“이건 안 나오네. 하나 남았는데.”

5조각 유산 중에 하나가 남았다.

“문신 같은 건가?”

유산 조각에는 언제나 완성품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유산에는 그 자리에 문양만 있었다.

“자. 얼마 안 남았다.”

상엽은 두려움이 없었다.

사투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를 상엽은 인지하지 못했다.

상엽에게는 그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없으면 전진해야지.’

그는 이런 생각만으로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48층은 가장 긴 전투를 벌였다.

하체가 말의 모양인 해골전사였다. 단 한 번도 공격을 성공하지 못했던 상엽은 상대의 마지막 일격에서 기회를 잡고 반격에 성공했다.

그리고 49층에 도착했을 때, 상엽은 스스로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전투 실력이 늘었어.’

49층은 검을 사용하는 전사였다.

빠르고 정확했다. 하나에 특화되지 않고 고른 능력을 갖췄다.

상엽은 이 전투가 쉽다고 느꼈다.

차라리 개성을 가진 상대가 어려웠다. 49층 전투에서 상엽은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다가 의도대로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드디어 50층에 닿았다.

‘총 51층이구나.’

창문이 없는 또 하나의 층이 있었다. 거기가 마지막 층이었고 50층에는 기존처럼 유령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유령이었다. 다리가 없어서 공중을 날아다녔고 몸이 세 명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그 싸움은 힘들었다. 상엽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상처를 입었고 처음으로 늑대인간이 되었다.

‘아오나를 위해서 아껴 둔 건데.’

결국 만신창이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전투를 승리했다.

“하아. 하아. 또 살았어.”

그의 말대로 이겼다는 느낌보다 살아남았다는 기분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에 따른 보상이 있었다.

“어?”

유산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모든 전사를 처리해야 얻을 수 있는 아오나의 유산.

그것이 상엽에 의해 처음으로 완성되었다.

몸을 회복한 상엽은 유산을 곧바로 완성시켰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 팔꿈치와 손목 사이에 날카로운 느낌의 긴 문신이 새겨졌다.

상엽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지식이 머리에 새겨지듯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유산 – 아오나의 흔적

특수스킬 – 유령 걸음.

신체가 잠시 동안 유령처럼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벽을 통과할 수도 있고 생물을 통과하는 것도 가능했다. 무기를 피하는 거나 은신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 용도는 응용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

“강화를 못하는 게 아쉽네.”

강화를 통해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은 쓸 수가 없어.’

이 역시 아오나의 스킬이라 신전 안에서는 발동이 되지 않았다.

“예상보다 치졸해. 자기 스킬이라고 마음대로 못 쓰게 하다니. 여기 투자된 코인이 얼만데.”

상엽은 투덜거리면서 회복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얼굴 좀 보자. 진짜 개고생해서 올라왔다.”

상엽은 마지막 51층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떼는 순간, 상엽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경기장처럼 좁게 느껴지던 벽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곳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에 보았던 죽음의 대지였다.

그리고 죽음의 대지 가운데 한 명의 전사가 서 있었다.

투명한 유령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였다.

어지러운 문양이 새겨진 두개골의 두 눈은 붉은빛이 모여 있었고 양손에는 양쪽이 모두 뾰족한 얇은 창을 들고 있었다.

키가 3미터에 달하는 해골전사의 전신에는 차가운 느낌의 푸른 불꽃이 피부처럼 붙어 있었다.

죽은 전사들의 신 아오나.

그가 처음으로 인간 세계의 전사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날 이겨라. 그럼 넌 내 힘을 가지게 된다.

“말도 할 줄 아네.”

상엽은 아오나의 인사가 달갑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 때문은 아니었다.

‘강해.’

피부가 저릴 만큼의 힘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도 무릎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이다.’

그 단어가 떠올랐다.

푸른 불꽃에 감싸인 아오나는 표정을 알 수 없는 해골의 모습이지만 전장에서 평생을 바친 전사처럼 거칠고 묵직한 위용을 발산했다.

“겁먹지 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상엽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오히려 아오나에게 다가갔다.

-훌륭한 전사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스킬은 다 막아 놓고 폼 잡기는. 치졸한 신 주제에.”

쾅!

상엽은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았다.

두려움을 이겨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투를 시작해서 본능을 끌어내는 것이다.

상엽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았다.

-응해 주지.

아오나는 상엽의 전투시작을 피하지 않았다.

쾅!

상엽의 해머가 목표물을 타격했다.

아오나는 양손의 창을 교차해 해머를 막았고 상엽은 이를 보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죽음의 대지에 뜨거운 폭풍이 몰아쳤고 땅이 꿈틀대며 검은 잿가루가 흩날렸다.

그런데 흔들리는 대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건 상엽이었다.

‘이렇게 쉽게?’

아오나는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상엽의 해머를 받아 냈다.

그리고 당황한 상엽의 해머 옆으로 날카로운 창이 스치고 지나갔다. 창은 최단 거리를 잰 줄자처럼 정확히 상엽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급히 몸을 틀었음에도 상엽의 얼굴에 상처가 남았다.

드바란의 투구가 발동하기도 전에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빠르다.’

상엽이 이 생각을 하는 사이, 허벅지가 뜨끔해졌다. 또 다른 창이 살을 파고든 것이다.

다행히 상엽이 늦지 않게 물러나면서 관통이 되는 것은 피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실망이다.

아오나는 여유를 부리며 상엽을 질책했다.

“거 참. 말 많네. 그래 봐야 사골 재료.”

상엽은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달려갔다.

쾅!

또 한 번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이번 역시 반격으로 인해 상처가 쌓였다.

그런데 상엽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세 번이나 같은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아오나도 변화를 꾀하지 않고 힘으로 이를 막아 냈다. 그리고 다시 반격을 가했다.

-숨통을 끊어 주지.

이번에는 상엽의 목을 꿰뚫을 작정이었다. 드바란의 투구가 이미 발동했지만 이를 뚫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상엽은 오히려 해머를 거두며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골프를 치듯 해머를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렸다.

쾅!

올라가던 해머가 멈췄다. 이번 역시 교차한 창이 이를 막은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거리는 상엽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깨에 아오나의 창이 꽂혔고 허벅지에도 선명한 구멍이 남았다.

“큭.”

상엽은 큰 부상을 당하고서야 아오나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다시 간다.’

그런데 상엽은 또다시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는 아오나가 변화를 주었다.

스트라이크로 흩어지는 상엽을 향해 길게 창을 찌른 것이다.

팔각대시.

상엽도 이 정도는 대비했다. 그런데 목표 지점이 무모할 정도로 정면이었다.

쾅!

아오나가 다시 상엽의 해머를 막았다. 그런데 상엽은 그 상황에서 몇 번이고 같은 공격을 반복했다.

무려 열 번.

그동안 상엽의 몸에는 스무 개의 구멍이 뚫렸다. 즉사를 피한 것이 다행인 상처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지와 달리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근육들이 기능을 잃어 간다는 뜻이었다.

“간다.”

-멍청하군.

결국 아오나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희도 되지 않는군. 그만 끝내 주지.

콰쾅!

공격은 강력했지만 이번에도 아오나는 공격을 막아 내고 상엽의 목에 창을 꽂았다.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던 상엽도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끄윽.”

목이 관통당한 상엽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아오나는 묘한 광경을 보았다.

목이 뚫린 상엽이 웃고 있는 것이다.

펑.

작은 폭발과 함께 상엽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근육의 떨림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특수스킬 회생의 결과였다.

하지만 아오나는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달라질 건 없다.

“있을걸?”

상엽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무모하게 달려들던 사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제야 아오나는 자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았다.

푸스스.

뼛가루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양손의 손목과 팔꿈치, 그리고 창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균열이 생긴 것이다.

상엽은 이를 노리고 11번이나 같은 공격을 했다. 무모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아오나의 자존심을 이용한 계책이었다.

“어때? 한 번만 더 치면 부서질 거 같은데.”

-감히!

“죽을 놈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바로 그거야.”

이번에는 아오나가 먼저 상엽을 향해 달렸다. 그러자 상엽의 모습이 변했다.

“크흐.”

인간의 몸으로는 아오나의 공격에 반응할 수가 없었다. 상엽은 결국 늑대인간이 되어 아오나의 공격을 피하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아오나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스트 체인, 고스트 실드, 유령잔상, 유령걸음까지. 상엽이 쓸 수 없는 모든 스킬들이 펼쳐졌다.

그 장면에서 상엽은 아오나의 스킬이 완성되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고스트 실드는 하늘까지 이어진 장막처럼 높이 솟았고 고스트 체인은 뱀처럼 꿈틀대며 스무 줄기로 늘어났다.

유령잔상은 본래의 힘과 같은 위력을 냈고 유령걸음은 모든 공격이 허공을 가르게 했다.

늑대인간 상엽은 어느 순간부터 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 있던 아오나는 어느새 뒤에서 나타났고 두 개의 창은 수십 개로 보일 만큼 빠르게 위치를 바꿔 날아왔다.

겨우 급소를 피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상엽은 약점을 보이고 말았다.

빠르게 뒤를 돌다가 스텝이 꼬인 것이다.

그러자 아오나의 창이 직선으로 상엽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지금.’

상엽은 위기 속에서 처음으로 기회를 잡았다.

‘거산.’

돌기둥은 아오나가 아니라 상엽의 아래에서 치솟았다.

자연히 몸이 떠오르며 창은 돌기둥에 박혔다. 그 순간 상엽의 모습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기둥에서 뛰어내리며 아오나를 덮쳤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해머를 휘둘렀다.

‘부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모든 것을 건 일격이었다. 지금까지 오직 이것 하나만을 노렸기에 뒤는 없었다.

콰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상엽의 해머는 공중에 멈추고 말았다.

폭발의 잔해가 사라졌을 때, 아오나와 상엽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뼈다귀가 다 그렇지 뭐.”

투툭.

아오나의 양손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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