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19화 (119/300)

# 119

상엽은 김만득을 집으로 초대했다.

테이블 위에는 오랜만에 많은 음식이 차려졌다.

“전부 배달 음식이군.”

중식, 일식, 한식이 전부 배달되어 있었다.

“저것도 있어요. 제 주종목이죠.”

상엽은 주방에 놓인 라면을 가리켰다.

“그럼 저걸로 하지. 제일 그리웠거든.”

“역시 뭘 좀 아시네요.”

그들은 화려한 배달음식들을 뒤로하고 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식사를 모두 끝낸 후에야 상엽이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왜 왔는지가 더 궁금할 거 같은데.”

“그것부터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안부는 그 뒤에 듣죠.”

김만득은 목적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한국에 특이한 음식을 만드는 친구가 있다고 들었다.”

“네. 저랑 제일 친한 친구예요.”

“그 음식이 필요하다.”

김만득이 한국에 돌아온 이유였다.

“이유가 있을 텐데요.”

“꼭 죽여야 하는 놈이 있거든. 빌어먹을 하얀 벌레 중에 한 명이지.”

상엽은 잊고 있던 김만득의 성향을 떠올렸다.

‘화이트 유저를 극도로 싫어하지.’

다행히 상엽은 블랙 유저로 알려져 있었다.

“알았어요.”

상엽은 아공간에서 동희에게 받은 음료수 중에 효과가 좋은 세 병을 꺼냈다.

그리고 김만득 앞에 내밀었다.

“너무 쉽군.”

“먼저 절 도와주셨잖아요.”

“어느 정도 효과인지 실험해 봐도 되겠나?”

“물론이죠.”

“그럼 같이 마시지.”

김만득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엽도 알고 있었다.

둘은 똑같이 음료수 한 병씩을 들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서울의 방어선 밖으로 갔다.

“산책치고는 꽤 멀리 왔네요.”

“그 정도 가치가 있겠지.”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음료수를 함께 마셨다. 그러자 곧바로 근육이 단단히 조여지며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대단하군.”

“저도 처음에는 많이 놀랐어요.”

“지속 시간은?”

“새로 개발된 거라서 10분이 조금 넘어요.”

“충분해.”

둘은 각자 무기를 꺼냈다.

상엽은 파이어스의 망치였고, 김만득은 칼날이 지그재그로 뻗은 특이한 형태의 칼이었다.

예전에 상엽이 봤던 종류였지만 문양이 달랐다. 같은 모양의 다른 무기를 쓰는 것이다.

“시작하지.”

그들은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싸워 보고 싶다.’

이는 서로를 인정하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조심하세요. 이 녀석이 좀 거칠거든요.”

둘은 서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쾅!

시작은 폭발이었다. 그런데 그 폭발 속에서 섬뜩한 공기 소리가 발생했다.

‘이런!’

순식간에 목을 노리고 다가오는 칼날을 피한 상엽은 이어지는 손목과 발목의 위협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김만득은 기세를 잡자 거리를 좁히며 더욱 빠른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상엽은 그 자리에서 버티며 고스트 실드를 두르고 다가오는 김만득을 밀어냈다.

힘에 밀린 김만득의 돌진이 멈추자 상엽의 해머가 직각으로 떨어졌다.

그렇지만 김만득이 옆으로 피했다. 상엽의 뒤를 잡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상엽은 이를 무시하고 바닥을 내려쳤다. 해머의 충격이 주변의 모든 것을 밖으로 밀어 버렸다.

김만득도 그 힘에 밀려났지만 반격을 잊지 않았다.

상엽의 발아래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쳤고 칼날안개가 주변을 잠식했다.

챙! 챙!

상엽은 이를 무시하며 멀어지는 김만득을 스크라이크로 뒤쫓았다.

그 순간, 김만득의 몸이 흔들리며 사라졌다.

‘어?’

상엽조차 김만득의 위치를 놓쳤다. 그때, 하늘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비처럼 쏟아졌다.

피하기는 늦었다고 생각한 상엽은 고스트 실드로 머리 위를 막고 반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김만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발밑.’

땅속에서 김만득이 솟구치며 상엽의 등을 길게 그으려 했다.

그렇지만 상엽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고스트 체인.

상엽은 등의 상처를 감안하고 솟아오르는 김만득의 몸을 체인으로 잡으려 했다.

챙!

결국 김만득은 상엽이 아니라 다가오는 체인을 쳐 내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후우.”

둘은 똑같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짧은 공방이었지만 숨을 쉴 여유조차 없었다.

“다시 할까요?”

“물론이지.”

그들은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렸다.

10분이 지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승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싸움이 지속되면 누가 이길지는 둘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졌을 거야.’

상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분 안에 쓰러지진 않았지만 상처가 많은 쪽은 상엽이었다. 그리고 위기를 맞은 횟수도 훨씬 많았다.

거칠고 파괴적인 상엽과 달리 김만득은 빠르고 치밀했다. 다양한 스킬로 현혹하는 데 능숙했고, 기회를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김만득은 상엽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은 반드시 죽이겠군.’

공격 기회나 승기는 확실히 김만득이 먼저 잡았다. 하지만 상엽의 전투방식은 김만득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상엽은 상처를 감안한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지 않는 상처라면 이를 기회로 여겼다.

인간의 본능을 무시한 전투였다.

“많이 배웠다.”

“그 말은 제가 해야죠.”

“친구에게 전해라.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상엽은 그가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아공간에서 음료수 두 병을 다시 꺼냈다.

“시음 행사 끝났으면 진짜를 가져가야죠.”

같은 효과를 가진 두 병이었다. 김만득은 거절하지 않고 이를 챙겨 넣었다.

“살아서 만난다면 꼭 보답하지.”

“보답은 지금 제가 한 거예요. 라면은 얼마든지 끓여 줄 테니까 꼭 다시 만나요.”

“그래. 또 보자.”

김만득은 그렇게 떠났다.

김만득과의 만남은 상엽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다.

‘강해져야 돼.’

지금까지 그가 만난 최고의 적수는 아레나 길드의 길드장 론드였다.

하지만 그것도 정상적인 싸움은 아니었다. 론드가 이미 강한 상대와 싸운 후였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어.’

김만득 같은 강자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김만득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동희의 음식이 필요했다.

‘얼마나 강한 사람과 싸우려고 하는 걸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거야. 그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게 끝이니까.’

단단한 표정 뒤에 그런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상엽은 같은 갓코인 유저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더 치열하게.’

상엽은 결정을 내리고 유물 보관함을 꺼냈다.

‘아오나의 신전.’

조각이 완성되었다.

이 조각들을 늘어놓자 추종자가 평소와 달리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 군인처럼 딱딱한 자세로 섰다.

“가자.”

상엽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뭉쳤다.

* * *

상엽은 전혀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

조각을 완성하는 순간, 하얀빛의 고리가 나타났고 상엽은 그 안으로 빨려 들었다.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그는 전혀 다른 세상에 서있었다.

그곳은 죽음의 땅이었다.

갈라진 대지에는 풀조차 차라지 않았고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용암에서는 매캐한 유황냄새가 났다.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어때?”

상엽은 추종자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추종자는 대답이 없었다.

“유령아.”

다시 불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추종자는 더 이상 상엽을 도와주지 않았다.

‘이것도 시험의 일부겠지.’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저긴가?’

죽음의 대지 중간에 뼈로 만들어진 높은 탑이 있었다.

아득하게 보이는 탑은 1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서 있는 곳이 평지라서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죽은 전사들의 신 아오나.

상엽은 그 시험을 시작했다.

모든 신은 자신의 능력과 신념에 어울리는 시험을 준비했다.

죽은 전사들의 신 아오나는 복잡한 능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 신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망자의 탑에 있는 아오나의 현신을 제거하라.

“친절하네.”

상엽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보고 있었다. 그가 겨우 다섯 걸음을 옮기고 발견한 팻말이었다.

그 외에 다른 힌트는 없었다.

“저 탑에서 가서 아오나를 잡으면 된다는 거지? 간단해서 좋네.”

상엽은 파이어스의 망치를 꺼냈고 탑을 향해 돌진했다.

10분 후.

쾅! 쾅!

죽음의 대지에서 끝도 없는 폭발이 이어졌다.

폭발로 인해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흩어진 유령들이 비명을 질렀다.

“겨우 이거야?”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죽음의 대지에서 300명의 해골 전사들이 다시 일어났다.

“거참. 치사하게. 말 한 마디 잘못한 거 가지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상엽은 이미 해골전사를 향해 뛰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

상엽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전부 내놔! 싹 털어서 가지고 갈 테니까.”

그가 이처럼 전사들을 모두 전멸시키는 이유가 있었다.

흩어진 전사들이 전부 빛이 되어 상엽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코인 내놓으라고!”

신전의 전사들은 모두 코인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상엽은 다가서는 모든 전사들을 처리했다.

갑옷을 입은 해골 전사도 있었고, 형체가 뚜렷한 유령전사도 있었다.

상대의 상태가 어떻든 그의 해머는 자비가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해머를 막아 내는 상대가 나타났다.

구오오!

탑이 3킬로미터 남은 지점이었다.

대지가 들썩이면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뭐야? 공룡이야?”

정확히는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길이만 500미터에 달했다.

거대한 머리뼈에 붉은빛으로 만들어진 눈을 가졌고 긴 꼬리에는 뼈가 가시처럼 돋아 있었다.

구오오!

“시끄러.”

상엽은 정면으로 달려가서 시선을 끌고 팔각대시로 방향을 바꿔 거대 도마뱀의 척추를 내려쳤다.

그러자 거대 도마뱀의 몸이 폭발하듯이 흩어졌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다시 하나로 모였다.

“재미있는 녀석이네.”

다시 완성된 도마뱀은 분노를 담아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공기가 찢어지며 상엽의 몸이 떨렸다.

“난 네 코인이 너무 가지고 싶거든.”

상엽은 도마뱀의 코인을 확인했다.

‘3만 코인.’

상엽은 죽음의 대지에서 코인을 재배하는 농부가 된 심정이었다.

“수확할 시간이네.”

그는 거대 뼈도마뱀을 향해 달렸다.

* * *

상엽은 어느새 망자 탑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이미 모두 찢어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온몸의 상처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쉽게 시작했던 싸움이 탑에 다가올수록 힘들어졌고, 수백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결국 왔어.”

그의 말대로 모든 위험을 뛰어넘어 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음에도 더 이상 나타나는 전사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여기도 전멸시킨다.”

상엽은 죽음의 대지에 있는 모든 전사들과 괴물들을 처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높이 솟은 망자의 탑뿐이었다.

창문 형태의 구멍을 통해 유추한 탑의 높이는 50층이나 됐다.

뼈를 쌓아 올린 것 같은 외관은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힘이 있었다.

“철거에 취약한 구조야.”

상엽은 대뜸 망치를 휘둘러서 망자의 탑 아랫부분을 때렸다.

쿵!

원하던 소음이 아니었다. 마치 충격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손맛이 영 별로네.”

상엽은 철거가 불가능한 시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탑에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상엽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해머를 고쳐 잡았다.

“오해하지 마. 그냥 노크한 거야.”

그는 철거를 포기하고 탑의 입구로 걸어갔다.

직사각형의 균열이 없었다면 입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입구였다.

여기에 손을 뻗자 뼈문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나며 내부를 공개했다.

특별한 구조물은 없었다.

다만 갑옷을 갖춰 입은 해골 전사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골 전사는 상엽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마치 전시물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상엽이 탑 안으로 들어오자 붉은 눈을 빛내며 칼을 세웠다.

쾅!

상엽의 등 뒤에서 소음이 발생했다. 문이 저절로 닫혀 버린 것이다.

이젠 후퇴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골 전사가 서 있었다.

“난 여기가 참 마음에 들어.”

상엽은 눈앞에 있는 거대 해골전사를 보며 말했다.

“단순해서 좋잖아.”

그는 아오나가 마련한 전장을 거부하지 않았다.

“다 부수면 돼.”

상엽은 해골 전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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