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모든 대화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과 주변인물에 대한 협박. 그 모든 것이 악몽을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상엽은 이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나이트메어의 유산은 적설에 의해 처음 완성되었기에 어떤 정보도 없었다.
“뭐야? 또 적설이네.”
야릇한 꿈은 계속되었다. 예전보다 더욱 강렬한 느낌을 선사했지만 끝이 찜찜했다.
“아이씨. 재수 없게 암살이나 당하다니.”
단순히 야한 꿈이 아니라 마지막에는 적설의 단검에 목이 꿰뚫렸다.
그런데 목이 꿰뚫린 상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상엽은 그런 자신의 표정을 보면서 꿈에서 빠져나왔다.
“이걸 좋아해야 되나? 싫어해야 하나?”
꿈에서는 다양한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꿈이 아닌 것 같은 생동감이 있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욱 짜릿한 순간도 있었다.
그 끝이 정말 악몽일 때도 있지만 오히려 따뜻하게 끝날 때도 있었다.
“이거 왠지 중독되는데.”
상엽은 이런 느낌마저 들었다.
“유령아. 나 지금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유령추종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엽은 이를 믿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루나의 예상대로였다.
전 세계의 언론은 영국에서 시작된 뉴스가 사실임을 인정하는 보도를 쏟아 냈다.
이삼 일간 지속되던 진실 공방은 증언과 증거 앞에 무기력하게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실제 갓코인 유저들이 방송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디나 저런 사람은 있으니까.”
그 놀라운 방송의 시작은 일본이었다.
-갓코인 유저가 직접 출현해서 진실을 밝혀 드립니다.
얼굴과 신분을 모두 공개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는 모든 방송사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지만 일본이 가장 빨랐다.
그다지 뛰어난 유저는 아니었다.
2단계 중반 유저였고 스킬도 특화된 것이 없이 이것저것 구입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30대 초반의 자동차 샐러리맨은 그 방송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기획이 좋네.”
야외 공개방송이었다. 조작을 없애기 위한 장치였다.
-갓코인 유저 마우라.
그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커스 같은 쇼를 펼쳤다.
그 자리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10미터를 뛰어오르고, 단단한 철근을 엿가락처럼 구부렸다.
분위기를 잡은 그는 상체의 옷을 벗더니 장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불꽃을 만들었다.
작은 불꽃은 바닥에 던졌음에도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고 흙이 그을릴 때까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환호를 하면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영국 뉴스의 자료화면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우라는 아공간 가방을 꺼냈다.
멀쩡하던 물건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이것은 아주 신비한 광경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를 유혹했다.
아나운서는 눈에 띄게 볼이 붉게 물들며 마우라에게 호감을 보였다.
-이런 스킬도 있습니다.
그는 매너 좋게 스킬로 시도한 유혹을 풀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저분한 스킬만 익혔네.”
그의 쇼를 본 상엽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 뉴스에서 밝히지 못한 세부 사항을 말한 것이다.
그 내용은 위험한 부분도 많았다.
-사람을 유혹할 수도 있고 죽이는 데 특화된 스킬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꼭 필요한 스킬도 있답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모두 말했다.
“유명해지고 싶은 거군. 이것 또한 그의 꿈이니까.”
모두의 꿈이 다르듯 마우라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어 했다. 그래도 상엽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저건 아닌데……”
상엽은 그를 이해했기에 비난하진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절대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했다.
-일반인들도 대부분 1에서 2에 해당하는 갓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은 흡수할 수 없지만, 2를 가진 사람을 죽이면 1을 얻게 됩니다.
“미친 새끼.”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마우라의 방송이 시작이었다.
유명해지길 원하는 갓코인 유저들이 끝도 없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꽤 실력자도 있었다.
이런 방송기조는 갓코인을 더 이상 의심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
-방어선 밖으로 나갔던 다섯 명의 실종자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이 변종 사냥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다 검거되었습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흉기난동이 일어났습니다. 범인은 같은 학교의 학생으로 갓코인을 모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갓코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신의 힘을 가지기 위한 인간의 욕심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상엽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저것들은 뭐야?”
아파트의 입구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연예인을 보기 위해 모인 학생들처럼 단 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엽 오빠!”
한 여고생의 외침은 아파트 전체를 울렸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정상엽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거짓도 있었고 진실도 있었다.
정상엽을 위한 특집 프로그램이 준비되었고, 해외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갓코인 유저의 상징.
가장 강한 갓코인 유저의 상징이 바로 상엽이었다.
“내가 1등이 아니라니까!”
상엽은 이렇게 외쳐 봤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도 직접 확인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알고 있었다.
‘괴물은 얼마든지 있어.’
1급 위험 지역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전투가 펼쳐졌다.
‘결국 살아남은 녀석은 다 가지게 되니까.’
그저 상엽이 가장 많이 공개되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엽이 형 같은 갓코인 유저가 되고 싶어요.
-꼭 한 번만 만났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상엽을 목표로 꿈을 꿨다.
어디나 특이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이는 갓코인을 특이하게 발전시킨 자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인터넷에 나타났다.
-갓코인 유저 랭킹.
처음에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한 사이트였다. 그런데 이 사이트는 사회 현상에 맞물려 단숨에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갓코인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진실을 밝혀 왔던 사이트.
무려 2년 전부터 이 사이트는 같은 주장을 했고 이제야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리고 여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갓코인 유저들의 랭킹이 업데이트되었다.
운영자는 알 수가 없지만 그가 공개한 정보들은 꽤나 신빙성이 있었다.
이 사이트가 유명해지자 즉각적으로 반항을 일으킨 나라는 한국이었다.
-정상엽의 순위가 50위라니!
한국인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화젯거리가 생겼다.
-김만득이 누구야?
랭킹 39위의 유저 김만득.
영문으로 쓰여 있었지만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화젯거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크릿 랭킹? 이건 뭐지?
공개된 랭킹은 100위까지였다. 그런데 운영자는 그 외에 실력을 파악하지 못한 괴물 유저들이 있다고 했다.
-시크릿 30.
3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실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하위권에 포함될 리가 없다.
결국 그들의 실력이 랭킹에 포함되면 상엽은 5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높은데?”
오히려 상엽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박광신은 웃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누군지 알고 싶은데. 내 정보와도 많은 부분이 일치해. 아무래도 한 명이 운영하는 곳은 아닌 거 같아.”
“단체라는 거야?”
“그럴 거야. 이걸 혼자서 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정보를 주로 다루는 단체가 여론의 힘을 모으려고 만든 것으로 보여.”
100위권 안에 강청의 이름은 없었다. 박광신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이런 사실은 길드에 대한 신뢰를 평가하는 잘못된 잣대가 될 수도 있었다.
박광신은 그런 점이 우려됐다.
“그런데 김만득은 누굴까?”
박광신의 혼잣말에 상엽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블랙 유저야. 만난 적 있어.”
“그래?”
상엽은 금산에서 그와 만났던 일을 알려주었다.
“그런 한국 유저가 있었다니. 꼭 우리 길드로 데려와야 하는데.”
“39위라. 그 아저씨도 대단해.”
“벌써 그 순위를 믿는 거야?”
박광신은 순위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하잖아. 누굴 경계해야 되는지도 알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어. 아무리 정보력이 뛰어난 집단이라도 전부를 파악하진 못했을 테니까. 시크릿으로 묶어 놓은 명단 말고도 또 다른 자들이 있을 거야.”
“그럼 내 순위는 더 밀려나겠네?”
상엽이 박광신의 충고를 농담으로 넘겨 버렸다.
“형. 걱정하지 마. 난 그 순위 안 믿어. 내가 50위라니 말이 안 되잖아.”
“몇 등이라 생각하는데?”
“당연히 1등이지.”
상엽으로 인해 심각한 분위기가 사라졌을 때, 박광신의 전화기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친 새끼들.”
“왜?”
박광신이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욕설을 뱉었다.
“이놈들이 길드 순위라는 걸 새로 만들었어.”
이는 정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박광신과 상엽은 곧장 싸이트에서 순위를 확인했다.
“94위.”
박광신이 주먹을 움켜쥐며 흑점 길드의 순위를 말했다.
100위에 겨우 턱걸이를 한 수준이었다.
“숫자놀이 따위 잊어버려.”
상엽이 위로해 봤지만 박광신의 분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랭킹 따위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전투를 모르는 녀석들이 하는 말이지.”
힘이 강하다고 이기는 게 아니었다. 스킬을 강화하고 뛰어난 유산을 얻어도 결국 전투는 다양한 변수가 있었다.
‘그 안에 암살자가 없다는 것도 그렇고.’
암살자의 능력은 평가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 순위에 있는 자들을 죽일 수 있는 암살자가 있었다.
“솔직히 동희가 1등이야.”
상엽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랭킹 정보 어디에도 동희는 없었다.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상엽은 처음부터 그 수치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상엽만이 아닌 듯했다.
-랭킹 싸이트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싸이트가 길드순위 공개와 함께 폐쇄되어 버렸다.
당연히 조금씩 공개하던 갓코인에 대한 진실도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흔적을 쫓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왜 사라졌는지도 결국에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운영자가 원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남은 것은 폐쇄되기 직전에 각자가 보관해 놓은 자료들뿐이었다.
랭킹 사이트는 사라졌지만 많은 것이 남았다.
무엇보다 최강자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안녕. 고민이라도 있나 봐?”
소파에서 다음 계획을 세우던 상엽은 다시 적설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마워.”
상엽은 적설의 목소리에 감사 인사부터 전했다.
“뭐가?”
“네 꿈을 많이 꿨어. 꽤 즐거웠거든. 인사는 해야 할 거 같아서.”
“취향에 맞다니 다행이네.”
“누군가 내 꿈을 조종하고 있는 거 같은데. 너야?”
상엽은 이 부분을 확신하고 있었다.
평소의 꿈과는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적설이 계속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맞아. 내가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뭐 고맙게 받긴 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어.”
“미안함의 표시 같은 거야. 앞으로 꾸게 될 악몽은 좀 다른 종류거든.”
“미리 경고하러 온 거야?”
“이 정도는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래도 꿈속에서 좋았던 사이인데.”
“차라리 목숨 걸고 덤벼 보는 게 어때?”
“그럴 거야.”
상엽이 예상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정상엽. 넌 한 달 안에 죽을 거야.”
“기간이 꽤 기네.”
“네 고통이 그만큼 길다는 거야.”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적설의 예고는 허풍이 아니었다.
상엽은 강한 졸음을 느꼈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어두운 숲이 나타났다.
어두운 숲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상엽은 모두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이는 함만철이었다. 함만철은 은빛 바늘을 들고 상엽의 목을 그었다.
상엽은 피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쓰러진 상엽의 위로 여러 명의 얼굴이 겹쳤다.
모두 자신이 죽인 인물들이었다.
함만철을 시작으로 이름을 잊어버린 사냥꾼들까지.
그들은 원망 어린 눈으로 상엽의 시체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꿈속이지만 죽음은 고통을 끝내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꿈이기에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고통은 계속되었고 꿈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저 꿈을 꾸고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하루를 꼬박 보냈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 꿈에는 단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이질적인 경험을 했다.
함만철이 해머를 들고 상엽의 사지를 하나씩 부숴 버렸다. 그리고 머리채를 끌고 거친 흙길을 달렸다.
상엽이 했던 그대로였다.
악몽은 함만철로 그치지 않았다.
상엽은 그가 죽였던 모든 자들에게 자신이 했던 방식으로 살해를 당했다.
그 느낌이 워낙 생생해서 상엽은 몇 번이나 절망을 경험했다.
“헉. 헉.”
꿈에서 깨어나면서 상엽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설.”
상엽은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취미가 고약해졌네. 이제 나도 못 참아.”
상엽은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