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돌매화.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꽃이었다.
이슬을 먹고 사느라 바위틈에서만 자라는 불운한 운명의 꽃이기도 했다.
“유통이 되는 꽃이 아니야. 따로 키울 수도 없고.”
가연수가 조사를 마치고 상엽에게 말했다.
“특별히 보호종은 아닌데 서울에서 구하려면 쉽지는 않아.”
상엽은 돌매화의 사진을 직접 보았다. 가연수도 시간이 없어서 직접 구할 수는 없었다.
“작네.”
상엽은 사진을 확인한 뒤에 다시 가연수를 보며 물었다.
“정식으로 유통하는 곳이 있어?”
“아니. 없어.”
“그 녀석이 이걸 구하러 직접 제주도에 갔을 거 같지는 않은데.”
“당연히 아니겠지.”
그들의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공급책이 있는 거야. 정식이든 그 녀석의 지시에 의해서든.”
“그 녀석만 찾으면 된다는 거지?”
“맞아. 지금부터 거기에 집중하자.”
상엽은 다른 모든 상황을 버려두고 오직 돌매화를 옮기는 자에 주목하기로 했다.
“내 생각에는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오빠. 자신감이 넘치는데?”
“당연한 거잖아. 누군가 몇 년 동안 계속 돌매화를 채취를 했어. 이걸 아무도 모를 리가 없잖아.”
“알았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도 않을 거고.”
“바로 그거야.”
“뭘 해야 하는지 알았어.”
“광신이 형한테도 말할 테니까 너도 개인적으로 알아봐.”
“내가 더 빠를 거야. 기대해.”
박광신은 정식 루트를 이용했고 가연수는 개인 정보망을 가동했다.
그리고 결과는 불과 2시간 만에 나왔다.
박광신과 상엽이 대화를 나누는 집무실로 가연수가 들어왔다.
그녀의 출입을 허가하느라 그들은 진짜 집무실이 아닌 가짜 집무실에 있었다.
“나의 승리야.”
가연수는 그렇게 말하며 사진 한 장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름 박성주. 나이 41세. 원래 지리산에서 활동하던 심마니였는데 7년 전부터 제주도로 내려가서 한라산 근처에 살고 있어.”
투박한 인상에 턱수염이 길게 자란 사내였다.
“주변에서는 돌매화 중독자로 불린데. 하도 그것만 캐러 다녀서. 그런데 술자리에 자랑을 몇 번 했나봐. 돌매화가 산삼보다 비싸다고.”
“뭐 거의 확실해졌네.”
“자. 이제 날 칭찬하고 찬양해.”
가연수가 양팔을 벌리며 신도를 앞에 둔 교주처럼 하늘을 보았다.
“대단해. 광신이 형이 지는 건 처음 봤어.”
상엽의 평가에 박광신이 웃었다.
“인정해. 내가 졌어.”
“어머. 이 오빠도 화끈하네. 샌님 같아서 별로였는데 조금은 마음에 들어.”
“그럼 대단한 아가씨. 이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찾았어?”
“당연하지. 주변 심마니들을 통해서 생활습관을 알아냈어. 이른 아침에 이슬이 묻은 돌매화를 캐면 그날 오후 비행기로 서울에 들어와.”
“그래서?”
“오늘 아침에 돌매화를 캤어. 아직 눈이 많아서 한라산은 입산금지거든. 그런데 심마니들은 보통 봐주나 봐. 국립공원에서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를 통해 알아냈지.”
공식 루트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정보망이었다.
“그럼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는 거네.”
“한 시간 남았어.”
그들은 김포공항으로 이동했다.
상엽은 모든 일을 조용히 진행했다. 김포공항 외부에 자리를 지키며 추종자로 상황을 살폈다.
‘도착했어.’
공급책 박성주는 예정대로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택시를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상엽은 그때까지도 별다른 행동 없이 뒤를 따르기만 했다.
‘분명히 만날 거야.’
그는 확신을 가지고 택시를 쫓아갔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린 택시는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했다.
‘납골당?’
도시 외곽에 지어진 고급 납골당이었다.
변종 출현 이후에 화장을 하는 문화가 생기면서 납골당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박성주는 그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고급스러운 납골당에 도착했다.
상엽은 그를 가만히 지켜봤다.
박성주는 입구의 사무원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주 보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경비로 보이는 노년의 사내가 그를 안내했다. 그리고 납골당 중앙의 원형 건물로 들어섰다.
작은 원형 건물은 이곳에서도 특별히 관리를 하는 곳이었다.
경비가 문을 열어 주자 박성주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여인의 사진이 있는 곳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작은 꽃을 꺼냈다.
정성스럽게 꺼낸 꽃을 사진 앞에 놓아둔 그는 다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그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이렇게 끝이라고?’
박성주는 다시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탔다.
‘따라갈까?’
상엽은 그 자리에서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따라가는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박성주를 따라가. 난 여기서 기다려 볼게.”
상엽은 납골당에 남았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직접 찾아올 거야. 돌매화에 집착할 정도라면 확인하지 않을 리가 없어.’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원형 건물의 구조물에 몸을 숨겼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이어폰을 통해 박성주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보고됐다.
-김포공항으로 돌아왔어요. 제주도로 갈 거 같아요.
박성주에게 더 이상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광신이 형. 공개 수배를 하루만 늦춰 줄래?”
상엽은 변수를 없애고 싶었다. 공개수배를 당하면 함만철의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결국 상엽의 요청으로 모든 계획이 미루어졌다. 이젠 결과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반드시 여기로 올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두운 밤이었다.
납골당의 불이 모두 꺼지고 당직을 제외한 직원은 모두 퇴근을 했다.
그때까지도 상엽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달빛만이 유일한 조명이 되어 을씨년스런 바람이 부는 시간에 드디어 누군가 나타났다.
납골당의 낮은 벽을 넘은 인물은 천천히 중앙의 원형 건물로 다가왔다.
상엽은 웃었다.
굳이 추종자를 보내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어둠은 그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 개새끼.”
상대는 함만철이었다.
상엽은 곧장 망치를 세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한 함만철이 급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로 따라오는 상엽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쾅!
어두운 밤을 밝히는 폭발이 일어났다.
“일어나. 죽을 만큼은 안 때렸어.”
함만철은 악마였지만 투신은 아니었다.
여러 능력이 있지만 전투에는 특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는 전투스킬들을 저급하다며 멸시했다.
으득!
그의 무릎이 상엽에 의해 가루로 부서졌다.
“으아!”
“왜 비명을 지르는 건데? 즐겨야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이 개새끼야.”
으득!
상엽은 다른 무릎도 같은 방식으로 부숴 버렸다.
함만철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고 이를 본 상엽이 그의 심장을 밟으며 눈을 마주쳤다.
“왜 울어? 너무 기뻐서 우는 거지? 그것도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상엽이 해머로 그의 오른팔을 찍었다.
쿵!
그의 오른팔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떡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함만철의 비명이 멎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멀쩡한 왼손이 상엽의 목을 향했다.
그의 손에는 은빛 바늘이 들려 있었다.
툭.
“모를 줄 알았냐?”
쾅!
결국 그의 왼손마저 기능을 잃었다.
그들의 전투능력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 함만철이 전투스킬에 투자를 했더라도 상엽에게 이길 확률은 많지 않았다.
상엽의 전투력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함만철이 어떤 반격을 하든 어린아이가 주먹을 뻗는 수준도 되지 못했다.
“자. 놀이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상엽의 사지를 잃은 그의 머리채를 잡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자, 잠깐! 부, 부탁이 있다!”
“뭐? 부탁?”
“하, 한 번만 내 아내를 보고 갈 수…….”
상엽은 그의 턱을 내려쳤다.
“닥쳐. 저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넌 누군가를 그리워할 자격도 없어.”
상엽은 납골당의 사진이 함만철에게 소중한 사람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추종자를 통해 그곳에 새겨진 문구와 편지들까지 확인했다.
김수정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함만철의 부인이었고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함만철의 엽기적인 행각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제, 제발…….”
“로맨스는 네 장르가 아니야.”
상엽은 열려 있는 그의 입에 주먹을 꽂았다.
“고어. 넌 지금부터 이 장르야.”
그는 함만철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로 납골당을 떠났다.
* * *
“어?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마음대로 써. 이왕이면 좀 험하게 쓰고. 결국에는 죽을 수 있게.”
“고마워.”
상엽은 사지를 잃은 함만철을 바닥에 던졌다.
이를 흥미롭게 보이는 이가 있었다.
“헤헤. 실험체다. 막 써도 되는 실험체.”
그렇게 말하는 이는 동희였다.
동희의 눈빛에 함만철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처음으로 동공이 흔들렸다.
“너도 똑같이 당해 봐. 미친 새끼야.”
“상엽아. 난 좋은 일로 하는 거야. 알잖아.”
“이번에는 좋을 일로 하지 마.”
“헤헤. 사실 그것도 해 보고 싶었어.”
동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함만철의 상처에 투명한 액체를 뿌렸다.
“이게 상처로 파고들 거야. 그러면 힘줄을 녹이기 시작해. 그리고 뼈도 녹기 시작하고.”
함만철은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턱이 부서져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과는 간단해.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지. 혹시 가진 스킬 중에 공중부양이나 염력 같은 거 있어?”
동희를 그를 보더니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네. 그냥 내가 지루해질 때까지 그대로 있어.”
함만철의 몸이 떨렸다.
실험체.
그는 자신이 했던 일을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
“언제쯤 끝날 거 같아.”
“운이 좋으면 오늘. 운이 나쁘면 일주일.”
“누구 운을 말하는 거야?”
“실험체가 가진 운. 오늘 죽으면 다행인데 살아남으면 진짜 끔찍할 거야.”
“네가 말하는 끔찍의 기준이 일반적이진 않을 거 같은데.”
“헤헤. 그건 비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거든.”
동희가 심하다고 하면 어느 수준일까?
상엽은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결과만 알려 줘. 맡기고 갈게.”
“응. 조심해서 가.”
상엽은 마지막으로 함만철을 보며 말했다.
“세상의 고통을 다 느끼면서 끔찍하게 죽어.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고통 받다가 다시 살고 싶어질 때, 그때 죽어. 절망하고 후회하면서. 널 직접 죽이지 않는 건 너의 이런 최후를 위해서니까.”
상엽은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동희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렇게 될 거야.”
오늘은 그 소름 끼치는 대답이 상엽에게 더없이 만족스럽게 들렸다.
함만철은 열흘을 더 살았다.
상엽의 말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느끼고 거기에 익숙해질 때쯤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한 여인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살아났다.
“고마워요. 절 또 구해 주셨네요.”
“그게 내 특기야. 예쁜 여자 구해 주는 거.”
“저한테 예쁘다고 하는 건 처음인데요.”
마루나는 웃었다. 다행히 어떤 후유증도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상엽의 집을 찾아왔다.
“함만철은?”
“죽었어요. 제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고통스럽게.”
“잘됐네.”
“동희 선생님이 이걸 전해 주라고 하셨어요.”
“동희 선생님?”
“절 구해 주셨잖아요. 제가 그래도 복이 있나 봐요. 살려 주는 사람이 많네요.”
상엽은 그녀가 전해 주는 물건을 받았다. 목각에 들어 있는 건 은빛 바늘이었다.
이마오의 실.
전수유산인 이마오의 실은 완성된 모습으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동희 선생님이 그랬어요. 이건 저주 받은 유산이니까 제일 강한 사람이 지켜야 한다고.”
“내가 싸움을 좀 하긴 하지.”
“그게 아니라.”
마루나는 주먹을 가리켰다가 다시 심장을 가리켰다.
“여기가 강한 사람요.”
그 말에 상엽이 웃고 말았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상으로 돌아가야죠.”
“그래. 더 이상 내가 시키는 일은 하지 마. 나하고 만날 생각도 하지 말고.”
상엽의 갑작스런 제안에 마루나의 표정이 변했다.
“싫어요!”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 짓을 당하고도 느끼는 게 없어?”
“있어요.”
“뭘 느꼈는데?”
“따뜻해요.”
상엽은 천천히 마루나에게 다가갔다.
“너 뭔가 후유증이 있는 거 같은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상해진 건 여기예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가 계속 따뜻해요. 그게 막 느껴져요.”
“그거 후유증이야. 동희한테 돌아가. 내가 말해 놓을게.”
“이미 동희 선생님한테 진단 받았어요.”
상엽은 불안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기다렸다.
“소장님만 치료할 수 있다던데요.”
상엽은 해맑게 웃고 있을 동희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