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한국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전부 차단했어. 시도도 하지 못할 거야.
함만철은 상엽의 분노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은신처를 잃었다.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흑점 길드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수색에 나섰고, 대한민국의 공권력도 함만철에게 집중되었다.
-역대 최악의 연쇄살인범.
함만철에게 붙은 타이틀이었다.
갓코인 유저가 되기 전부터 연쇄살인을 저질렀으니 적어도 80명 이상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고급 룸살롱으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늦게 오셨네요. 처음 뵙는 분인 거 같은데 혼자 오셨어요?”
마담은 불경기에 찾아온 고급 양복의 손님에게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예쁘군요.”
중년 사내는 중후한 목소리로 칭찬을 하며 마담을 보았다. 그 눈빛이 깊고 따뜻해서 마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술이 좀 마시고 싶은데요.”
“아. 죄송해요.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본래 웨이터가 하는 일이지만 마담은 중년 사내의 깔끔한 외모와 매너에 반해서 직접 룸을 안내했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라 잘 모릅니다. 이 돈에 맞춰서 준비해 주시죠.”
긴 코트를 마담에게 넘긴 사내는 테이블 위에 5만 원 한 다발을 내려놓았다.
500만 원이라는 돈에 마담의 눈빛이 빛났다.
‘이거 제대로 한 명 잡았는데.’
그녀는 돈을 먼저 챙기지 않고 코트를 옷걸이에 정성스럽게 건 뒤에 사내의 곁에 앉았다.
“운이 좋으세요. 마침 오늘 좋은 애들이 늦게 출근해서 놀고 있던 참이거든요.”
“아무나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절 믿으시는 건가요? 시험하시는 건가요?”
“믿습니다. 친절하신 분이니까요.”
사내는 웃었다. 워낙 부드러운 미소라 마담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왜 이러지?’
마담은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른 테이블 위의 돈을 집고 룸을 나섰다.
룸을 나서서 문을 닫고서야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믿으면 안 돼. 다 똑같은 놈들이야.”
그녀는 자신의 신조를 떠올리며 업무에 집중했다.
“크큭.”
룸에 홀로 앉은 사내는 마담이 문에서 멀어지자 낮은 웃음을 흘렀다.
“빨리 노예를 골라 오라고. 이왕이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말이야. 그래야 고통을 줄 때, 네 표정이 더 재미있어지거든.”
중년 사내의 손에는 검은 실이 연결된 은빛 바늘이 들려 있었다.
이마오의 실.
룸살롱에 나타난 사내는 함만철이었다.
두 시간 후.
룸살롱의 셔터가 내려갔다. 더 이상 손님은 없었고 일하는 사람도 모두 퇴근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그 안에 남아 있었다.
마담과 20대 초반의 귀여운 웃음을 짓는 여성.
그녀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구두만 신은 상태에서 함만철 앞에 서 있었다.
함만철은 목석처럼 서 있는 그녀들의 신체를 꼼꼼히 체크했다.
“내가 이래서 술집년들을 싫어하지. 몸 관리가 형편없거든.”
함만철은 마담의 배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피부까지만 신경을 쓰니까 속이 이렇게 더럽잖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하면 벌을 받아야지.”
그는 마담에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슬리퍼를 건넸다.
“뭐해? 죄송한 만큼 벌을 받아야지.”
짝!
마담은 슬리퍼를 건네받더니 자신의 뺨에 후려치기 시작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함만철은 젊은 여성의 뺨을 가리켰다. 그러자 여성도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크큭!”
여인들의 피부가 붉은색을 넘어 검게 물들 때까지 함만철은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지루해. 그만.”
그가 손을 들자 여인들이 바로 행동을 멈췄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함만철은 진심을 다해 고마워하는 그녀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나의 전사가 된다. 아주 용기 있는 전사가 되는 거지.”
함만철이 자줏빛 액체가 든 주사기를 꺼냈다.
* * *
처음에는 단순한 신고라 생각했다.
성폭행 신고를 하러 온 여성은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얼굴에는 심한 폭행 흔적이 있었다.
경찰관들은 메뉴얼에 따라 그녀들의 신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녀들은 같은 말을 했다.
“앞으로 함만철을 찾지 마세요. 이 말을 상부에 전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폭발했다.
녹색 독무를 남긴 채였다.
지구대와 경찰서의 인원이 독무에 갇혀 사망했다.
피해자만 무려 250명.
이것은 명백한 테러였다.
하루에 2곳.
경찰서와 지구대, 주민센터에서도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함만철을 찾지 마라.
그 메시지가 드디어 모든 관공서에 퍼졌다.
이 사실을 흑점과 상엽이 모를 리가 없었다.
“개새끼. 두고 보자.”
상엽은 분노했다. 하지만 풀 길이 없었다.
“서울 안에 있어.”
박광신은 그렇게 판단했다.
“은신처를 잃은 녀석이 위기를 느끼고 있는 거야. 그래서 막 나가는 거고.”
“잡아야 돼.”
“진정해. 흥분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숨는 데 익숙한 놈이야. 서두르면 피해자만 늘어날 뿐이야. 한 번에 확실하게 잡아야 돼.”
현재 모든 시스템을 가동해 함만철을 찾으려 했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진정해. 결국에는 걸리게 되어 있어. 함만철은 자신을 너무 과신하고 있거든.”
박광신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함만철을 잡는다는 확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늘부터 공개수사로 진행될 거야.”
“더 큰 피해가 나오지 않을까?”
“그냥 놔두면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 그것도 힘없고 약한 사람만.”
상엽도 그 점에는 동의했다.
“악마 같은 새끼.”
“악마도 신이야.”
그 말이 상엽의 뇌에 다트처럼 꽂혔다.
“악마로 신이라. 하긴 그러네.”
상엽도 그 말을 이해했다.
갓코인 유저는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악마는 현재도 많았다.
“착한 놈은 포기했지만 악마는 되지 말아야지.”
“그게 딱 적당해.”
박광신과의 대화로 상엽은 잠시 함만철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냉정하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조급해하고 있어. 이건 위기감을 느낀다는 거고.’
그는 차분히 모든 상황을 살폈다.
‘공개수사로 전환되고 사진이 공개되면 더욱 급해질 거야. 당연히 발악을 할 텐데.’
상엽은 그 생각을 하다 머리를 저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 녀석이 있는 곳을 찾아야 돼.’
그는 수많은 정보를 생각하느라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서울에도 그 녀석의 은신처가 있어. 이건 분명해.’
상엽은 계속해서 추리를 했지만 여기까지였다.
‘이것도 아니야.’
그는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머릿속의 정보들을 지웠다.
‘처음부터 하나씩.’
상엽은 다시 한 번 이번 일에 대해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뚜렷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누나. 예상되는 거 없어?”
강차연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미치겠네.”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상엽은 박광신의 집무실에서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다.
‘있을 거야. 반드시 흔적이 있을 텐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루나로 시작되었고, 두 명의 희생자. 그리고 계속되는 두 곳의 동시 테러. 어?’
상엽은 드디어 뭔가가 떠올랐다.
“왜 두 명이지?”
상엽은 급히 박광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보 수집을 위해 다른 장소에 있던 박광신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형. 이마오의 실이 10단계까지 강화하면 세 명까지 세뇌가 된다고 했지?”
-맞아.
“세뇌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건 쉬워?”
-그냥 풀어 주면 되는 걸로 알고 있어.
상엽은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녀석이 두 명만 이용을 한다는 건 다른 노예가 있다는 건데.”
그 노예가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마루나.”
이미 쓸모가 없어진 마루나를 계속해서 노예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필요가 없다면 당장 버리는 게 정상이야.”
발악을 하고 있는 그에게 한 명의 노예가 아까웠다. 그런데 마루나의 세뇌를 여전히 풀고 있지 않았다.
“마루나에게 뭔가가 있는 거야. 세뇌를 풀면 안 될 만큼 중요한 게.”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함만철이 꺼려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상엽은 곧장 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루나는 어때?”
-일단 독을 정화하고 있어. 고비가 남긴 했는데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야.
“혹시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멀쩡한 정신으로?
“가능해?”
-그건 시도를 안 해 봤어.
“위험하지 않으면 해 줄래? 내가 지금 갈게.”
-알았어.
상엽은 곧장 설악산으로 이동했다.
“감사합니다!”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아직 너무 높…….”
조종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상엽은 헬기를 벗어났다.
“너무 높은데.”
조종사의 우려와 달리 상엽은 설악산 대청봉에 무사히 착지를 했다.
그리고 곧장 동희의 연구실로 달려갔다.
다시 본 마루나는 혈관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호흡도 안정된 상태였다.
“동희야. 어때?”
“방법을 찾았어. 그런데 오래 지속하면 위험해. 그리고 고통으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식이라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후유증도 있을 수 있어?”
“아니. 짧게 하면 그렇지 않아.”
“얼마나 가능한데?”
“5분. 그 이상 넘어가면 후유증이 생길 거야. 죽을 수도 있어.”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자. 그래야 마루나도 살아. 그 자식을 제거해야 세뇌도 풀리니까.”
“알었어.”
동희는 이미 제조가 끝난 투명한 액체를 꺼냈다. 그리고 주사기를 마루나의 목에 꽂았다.
“곧 깨어날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루나가 눈을 떴다.
“으…….”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엄청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상엽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눈을 맞췄다.
“내 말 들려?”
마루나는 정신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루나! 정신 차려!”
상엽이 힘을 주어 외쳤다. 그러자 마루나는 떨리는 몸으로 상엽을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서 굵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상엽은 심장이 저려 왔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상엽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너무 미안한데 그 녀석을 꼭 잡아야 돼. 부탁해. 정신 좀 차려 봐.”
“아, 아파요. 너무 아파요.”
상엽의 진심이 통했을까?
드디어 마루나가 입을 열었다.
“알아. 그래도 조금만 힘을 내. 내가 전부 끝내 줄게. 그 자식이 더 이상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해 줄 테니까.”
“함만철…….”
“그래. 그 녀석.”
마루나는 이야기를 하다 다시 고통이 엄습하자 이를 악물었다.
이에 상엽은 그녀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네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소장님이 절 구해 준 거처럼요?”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상엽의 말이 통하고 있었다. 마루나에게 고통과 싸울 의지를 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3분 남았어.”
동희가 타임아웃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잘 들어. 지금 함만철의 은신처를 모두 찾아내서, 그 녀석이 서울에 숨었어. 그런데 그 녀석을 찾을 방법이 없어.”
상엽은 최대한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너한테 그 새끼의 약점이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너에 대한 세뇌를 풀어 주지 않는 거야.”
“저한테요?”
이제 진짜 고통의 시간이었다. 마루나는 몸을 찢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뭔가를 생각해야 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 생각해 봐. 반드시 있을 거야.”
“모, 모르겠어요. 너무 아파요.”
상엽은 그녀를 재촉하려 다시 입을 열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고통에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더 이상 강요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지금까지로 충분해.”
상엽은 그녀를 다시 안아 주었다. 그리고 동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1분 남았어.”
“아니. 됐어. 그만하자.”
동희는 상엽의 말대로 해독제가 든 주사기를 세웠다. 그리고 이를 마루나의 목에 다시 꽂았다.
그때였다.
“돌매화.”
마루나가 상엽의 품에서 낮게 속삭였다.
“돌매화?”
“함만철은 그 꽃에 집착해요. 한 여자를 위한 평생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희귀한 꽃 돌매화.
힌트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고마워. 그리고 너무 수고했어. 이제 좀 쉬어.”
“따뜻해요.”
고통 속에서도 마루나는 상엽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너도 따뜻해.”
상엽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고통은 그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