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13화 (113/300)

# 113

“음.”

상엽은 15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전이라…….”

진고식이 두 명을 태우고 도착한 장소는 서울이 아니었다.

목적지는 대전 외곽의 오피스텔이었다.

15층의 고급 오피스텔로 지하에는 고급 룸살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로 간 거 같은데?”

가연수는 룸살롱을 가리켰다.

“아직 오픈하려면 시간이 좀 있어. 주변을 좀 둘러보자.”

상엽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납치를 할 건데 룸살롱으로 데려갈 이유가 없어.’

그는 함만철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다.

‘녀석이 원하는 건 비밀을 유지하는 건데.’

이런 고급 건물은 어떻게든 자료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룸살롱에 미모의 여성 두 명이 들어온다면 기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상엽은 15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그곳은 상가 지대로 고급 식당과 룸살롱들이 밀집해 있었다.

“잠깐. 진고식이 여기 도착한 시간이 언제라고 했지?”

“오전 10시.”

“유흥가의 오전 10시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종업원 정도겠지?”

상엽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적은 시간에 빌딩에 내렸다. 그런데 빌딩으로 들어갔다는 확신은 없어.’

근처는 주택가가 없었다.

‘저기다.’

상엽은 한곳을 주목했다.

사방이 높은 나무로 둘러싸인 소형 공원이었다.

“아침 10시에 유흥가의 공원이라.”

함만철이 가장 원하는 장소였다.

상엽은 직접 공원을 살폈다.

“여기서 납치를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빌딩과 공원 입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형 공원이라 매점도 없었고 외곽은 나무가 가리고 있었다.

“변태 도깨비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거야?”

상엽은 가연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기라면 확실히 그 녀석이 원하는 여자가 많긴 할 텐데.’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대전에는 가장 유명한 장소였고 고급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여성의 미모도 뛰어났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상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흑점에서 수색을 했는데 찾지를 못했어. 그리고 녀석도 그 사실을 알 텐데.’

사람이 많다는 건 감시자가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곳은 유흥가인 만큼 많은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나라면 여기 있지는 않을 텐데. 굳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상엽은 좀 더 생각을 확장했다.

‘잠깐.’

상엽은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건물의 옥상을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아닌 곳이 있었다.

“방어벽.”

이곳은 대전의 외곽이었고 군인들이 진지를 구축한 방어벽이 있었다.

상엽도 예전에 이런 방어벽을 통해서 금산으로 갔다.

“나라면 방어벽 밖에 숨어 있을 거야.”

그저 예상일 뿐이지만 상엽은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두 여인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방어벽 너머로 가기 위해서라면 많은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흑점에서도 찾지 못한 거야.’

모든 시스템이 사라진 곳.

범죄자들에겐 이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추리네.”

“내가 머리가 많이 좋아졌어.”

“변태라서 변태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거 아닐까?”

“내가 변태인 건 인정하는데 강제는 싫어.”

“훌륭한 취향이야. 적절해.”

그들은 방어벽 너머를 주시했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수색할 테니까.”

“알았어. 방해하지 않을게.”

변종들의 지역이라면 상엽 혼자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유령아. 준비해.”

상엽은 망설이지 않고 방어벽을 넘었다.

대전 동쪽은 옥천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었다.

옥천에는 꼬불꼬불한 강이 자리하고 있어 한때는 대전 근교의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변종에게 점령당한 지역으로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금산에 비해서는 변종들의 힘이 약한 지역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었다.

크앙!

상엽이 들어서자 들개가 앞을 막았다.

“참 예전에는 이 녀석한테도 긴장했는데.”

쾅!

상엽은 망치를 꺼내지도 않고 들개의 머리에 주먹을 꽂았다.

들개는 주먹 한 방에 빛으로 흩어졌고 10코인이 상엽에게 추가되었다.

“10코인…….”

상엽은 괜히 추억에 젖으려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수색에 집중했다.

첫날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변종들까지 무시하고 찾아다녔지만 수상한 지점이 없었다.

단 하루라고 해도 그의 속도를 감안하면 옥천의 절반을 수색한 셈이었다.

‘추종자가 못 찾는 걸까?’

추종자가 레이더처럼 주변을 살폈지만 절반 정도만 수색할 수 있었다.

‘일단 전부 살펴보자. 방어벽에서 그렇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상엽은 인내심을 가지고 하루를 더 소비했다.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틀렸나?’

옥천을 전부 수색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변종뿐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그는 결과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크앙!

그런데 또다시 변종이 앞을 막았다. 이번에는 열 마리의 늑대 무리였다.

“상황을 보고 덤벼야지.”

쾅!

상엽은 단 한 방으로 변종들을 처리해 버렸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변종들이 달려왔다.

고양이와 들개, 또 다른 늑대 무리도 있었다.

‘여기도 참 많네.’

상엽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달려드는 변종들을 전부 처리했다.

“그래. 변종.”

옥천 전체에 변종이 퍼져 있었다.

“없는 지역이 있었어.”

유난히 변종이 개체수가 적은 곳은 언제나 특별한 변종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특별한 변종이 없는데도 개체수가 적은 지역이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 뭔가를 해 놓았을 테니까.’

어떤 곳이든 자리를 잡으면 변종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야 한다.

‘전부 처리한 거겠지.’

그래서 개체수가 적어지고 새로 들어온 변종은 처음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상엽은 곧바로 이동에 나섰다.

‘확실해.’

그는 기억을 더듬어 다시 수색에 나섰다.

예전에는 여름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몸살을 알던 옥천군의 계곡이었다.

‘숲이 있는데 개체수가 적다?’

상엽은 숲을 천천히 이동하며 직접 이 부분을 확인했다.

“유령아. 찾아. 분명히 여기 있을 거야.”

추종자는 정밀 수색에 나섰다. 그렇게 10분이 흐르자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굴이 있습니다.

그래서 추종자가 찾지 못한 것이다.

“내부는?”

-수색하겠습니다.

함만철에게는 추종자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추종자는 의심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여기 있었던 흔적은 있으나 지금은 사람이 없습니다.

상엽은 직접 추종자가 찾은 장소로 이동했다.

‘대피소구나.’

산속에 지어진 오래된 대피소였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가자 함만철이 직접 개조한 것으로 보였다.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는 복도가 있었고 대피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나타났다.

전기는 물론, 베이지색의 벽지가 나타나며 넓은 복도가 시작되었다.

복도 끝의 철문을 뜯어내자 호텔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아의 또 다른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의 양쪽으로 세 개의 문이 있었고, 각각 침실, 집무실, 9개의 모니터가 있는 경비실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그곳을 열었을 때, 상엽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실험실.”

육각형의 넓은 공간이었다.

각 면은 철창으로 되어 있고 안쪽으로 감옥처럼 누군가를 가둘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육각 공간의 중앙에는 커다란 대리석 침대가 있었다. 침대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기구들이 있었고 한쪽 장식장은 실험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미친 새끼.”

상엽은 천정을 보고 이를 갈았다.

천정에는 백 명에 이르는 여인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은 하나같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찍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 사진을 천정에 액자처럼 붙여 놓은 것이다.

“여기에 누우면 저게 보이겠지.”

침대에 눕게 된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을 사진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녀석은 그걸 즐길 테고.”

구역질을 동반하는 상상이었다.

“이 자식은 죽여야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엽은 화를 꾹 참고 천정의 사진들을 다시 보았다.

“아직 두 명은 살아 있어. 마루나까지 셋.”

다행히 그들의 사진은 없었다. 상엽은 이를 확인하며 박광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변태 도깨비가 있던 곳을 찾았어.”

-알았어. 바로 조치할게. 거기가 어디야?

“대전 방어선 근처에 옥천.”

-대전?

“왜 그래?”

박광신은 기억을 더듬는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도권 근처를 수색했거든. 녀석에 대한 정보가 전부 수도권 근처라서.

그 말을 들은 상엽은 바로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은신 장소가 한 곳이 아닌 거 같아. 내가 패턴을 알아냈으니까 바로 수색해 줄 수 있어?”

-알았어.

“방어선 근처에 변종들이 적은 장소를 찾아. 거기 녀석이 있을 거야.”

이제 다시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전국에 퍼진 의심장소는 꽤 많았다.

모두 21곳이었지만 흑점의 인원이 있어서 동시에 수색을 할 수 있었다.

상엽은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를 찾아갔다.

서울 북부 방어선 너머였다. 예전에는 양주시로 불렸던 곳이기도 했다.

양주시의 이름 없는 산에 옥천에서 보았던 오래된 대피소가 있었고 상엽은 여기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상엽은 확실한 처리를 위해 가연수를 비롯한 흑점 길드원과 함께 대피소를 습격했다.

쾅!

상엽이 문을 부수며 재빨리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옥천에서 보았던 복도가 나타났다.

‘찾았다.’

그는 확신을 하며 철문을 열었고 단숨에 세 개의 방을 재빨리 확인했다.

‘없어.’

남은 방은 하나.

고문실이었다.

끼익! 끼익!

고문실에서는 철기 긁히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들어오지 마.”

상엽은 뒤따르는 자들에게 손을 들어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망치를 꺼내며 숨을 멈췄다.

‘유령아. 확인해.’

상엽은 추종자를 먼저 안으로 보냈다. 그리고 고문실 안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 순간 상엽은 모든 행동이 멈췄다.

“이 개새끼가!”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흐른 것처럼 상엽이 철문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다.

그리고 철문이 부서지고 바닥을 굴렀다.

끼익. 끼익.

천정에서 쇳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여러 겹의 얇은 실의 천정의 고리를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수백 가닥의 실은 아래로 뻗어 뭔가를 매달고 있었다.

두 명의 여인.

홍연희와 김아연이었다.

수백 개의 실은 그녀들의 피부를 관통해 박제를 시킨 나비처럼 공중에 매달고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죽기 직전의 끔찍했던 고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피부는 성한 곳이 없었고 일부러 고통을 주려 무너트린 신체 부분도 있었다.

그 잔인함에 상엽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발 늦게 가연수가 도착했다. 그녀는 충격적인 장면에 할 말을 잃었다.

갓코인 유저는 잔인한 장면을 수도 없이 보게 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두 여인의 몸에는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반드시! 이 개새끼도 똑같이 죽여 버릴 거야!”

상엽은 화를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그 순간, 가연수는 두 여인을 내려다 주기 위해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한 번에 뛰어올라 줄을 제거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홍연희를 안았다.

그때였다.

삑.

상엽은 짧은 전자음을 들었고 다급히 가연수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홍연희를 밀쳐 내며 가연수를 품에 안고 등을 돌렸다.

쾅!

폭탄이 터지며 녹색 안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숨 쉬지 마.”

폭탄을 몸으로 견뎌 낸 상엽은 가연수를 안고 무너진 대피소를 빠져나갔다.

무사히 대피소를 빠져나오자 흑점 길드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그들은 상엽의 명령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았다.

“괜찮아?”

가연수는 상엽의 품에 안긴 채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는 상엽에게 감동해서 아니었다.

“폭탄이 몸속에 있었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 살아 있었어.”

폭탄을 몸 안에 품은 채로 살아 있었다.

“내가 잡을 거야. 그리고 그 아이들보다 더 잔인하게 죽일 거야. 약속해.”

상엽의 말은 약속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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