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벨기에는 오랫동안 상엽을 요구했다. 그걸 빌미로 유럽 연합이 나섰고 하롬 컴퍼니는 한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다.
상엽이 벨기에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서 자수를 했다.
대대적인 압박을 준비하던 하롬 컴퍼니의 상황이 묘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상엽이 위험한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롬 컴퍼니의 갓코인 멤버들이 벨기에로 출발한 것이다. 그 인원만 무려 200명이었다.
한 명을 잡기 위한 숫자라고는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예멤버가 벨기에의 유치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
하롬 컴퍼니의 일본 기지가 습격을 당한 것이다.
벨기에의 데카르트와 일본의 데스문, 한국의 흑점이 연합해서 펼친 작전이었다.
기지를 지키는 갓코인 유저는 겨우 50명 수준이었고 동희의 음식을 먹은 400명의 갓코인 유저가 습격에 나섰다.
하롬 컴퍼니에 모여 있던 병력들은 그날 밤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졌다.
정박해 있던 군함까지 침몰했고, 겨우 잠수함만 빠져나간 정도였다.
당연히 저항하던 갓코인 유저도 전부 섬멸되었다. 그리고 벨기에로 출발했던 200명의 갓코인 유저도 허탕을 쳤다.
상엽은 이미 유치장을 빠져나간 후였고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박광신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정보는 시드가 제공했다.
“다음 장소로 갈게.”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방으로 찾아도 도저히 나타나지 않던 상엽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하와이의 하롬 컴퍼니 기지였다.
철저히 감시를 했지만 최첨단 레이더도 상엽을 잡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기지와 한참 떨어진 곳을 지나는 어선을 탔고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업이다!”
상엽은 항구에 세워져 있는 전함을 침몰시키는 것으로 전투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의 습격을 보고 받은 탓에 하와이 기지의 방어는 꽤나 훌륭했다.
중화기가 동원되었고 엄청난 숫자의 기관총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상엽의 신경을 건드릴 뿐이었다.
상엽은 지금까지와 달리 기지를 내버려두고 방어선이 펼쳐진 진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늑대인간으로 변했다.
광기의 외침 10단계.
그는 1급 위험지역에서 모은 코인으로 드바란의 투구를 드디어 완성했다.
빠른 속도로 늑대인간으로 변한 상엽은 진지로 뛰어들어 군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늑대인간은 일반인의 눈에 그저 갈색의 잔상으로만 보였다.
“그만!”
기관총의 총구가 아군을 향했고 군인들이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중화기를 날려 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상엽에게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늑대인간이 된 상엽은 본래의 신체능력에서 민첩성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런 상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탈출하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늑대인간은 다시 상엽으로 변했다.
‘이제 조절도 된다고.’
경험이 준 선물이었다.
상엽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변신을 풀 수도 있었다. 그리고 늑대인간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했다.
이는 10단계 강화가 주는 효과이기도 했다.
“심판.”
상엽은 탈출이 가능한 모든 요소를 제거했다.
“한 놈도 못 살아간다.”
그는 다시금 해머를 휘두르며 철거를 시작했다.
상엽은 집요했고 실제로 악마처럼 살육에 나섰다.
“적은 적이야. 더 이상의 의미는 없어.”
하와이 기지의 마지막 구조물이 사라질 때까지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하롬 컴퍼니의 마지막 기지가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명이 이루어 낸 성과였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일반인들은 이 사실을 몰랐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기본적인 생각을 모두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핵무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갓코인 유저 한 명이 군대 하나를 전멸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건 모두가 망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와이의 기지가 파괴되자 유럽 연합은 더 이상 한국을 압박하지 않았다.
이는 박광신이 이뤄 낸 성과였다. 말은 협상이었지만 거의 협박에 가까웠다.
-당신들의 무기는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하롬 컴퍼니와 같은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결국 유럽 연합이 발을 빼자 하롬 컴퍼니는 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악재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용병들이니까.”
하롬 컴퍼니의 가장 큰 약점은 충성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 움직였고,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결코 목숨을 걸지 않았다.
하롬 컴퍼니의 모든 기지가 파괴되고 군수공장이 사라지자 그들은 더 이상 회장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300명의 갓코인 유저 중에 1급 위험지역 이슈로 인해 50명이 떠났고, 유럽 연합이 발을 빼면서 200명이 추가로 떠났다.
남은 인원은 겨우 50명.
이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가와 같은 힘을 지닌 하롬 컴퍼니의 몰락.
결국 유럽 연합은 하롬 컴퍼니와의 모든 커넥션을 잘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갈 곳마저 잃어버린 하롬 컴퍼니는 그나마 남은 것이라도 지키기 위해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은 또 한 번 위기를 넘겼다.
* * *
최고 수준의 위협을 이겨 내고 상엽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 집이 최고야!”
그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피로임에도 버릇처럼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일단 좀 자자.”
마음 편히 잠을 자고 싶은 욕구를 드디어 풀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런데 그에겐 편한 휴식이 허락되지 않았다.
-중요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마루나였다.
그녀는 상엽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상엽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중요하다는 말에 약속을 잡았다.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었다.
-303호로 오세요.
마루나는 이미 호텔에서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유혹하는 건 곤란한데.”
상엽은 고개를 저으며 303호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속옷이 비치는 얇은 가운을 입고 있는 마루나가 보였다.
“이런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단 말이야.”
“제가 싫으세요?”
“싫었다가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었지.”
마루나는 입구에 서 있는 상엽에게 다가와 체온이 선명히 느껴지도록 깊이 안겼다.
“전 좋아해요. 원하는 건 뭐든지 해 드릴게요.”
“고백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오셨잖아요. 위로가 되고 싶어요.”
상엽은 품에 안긴 마루나를 보았다.
몸으로 느껴지는 촉감과 간절한 표정을 보자 마지막 경계심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마루나는 남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몸매와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위로를 하고 싶다고? 말이 참 착해졌네.”
“소장님 앞에서만요.”
소장님이라는 호칭에 상엽은 웃고 말았다. 그가 지시한 일이었다.
“위로를 받는다고 앞으로 우리 관계가 달라지진 않을 거야.”
“지금 순간으로 만족할게요.”
마루나가 상엽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상엽은 더 이상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
* * *
10분 후.
열기로 가득하던 침대 위에서 상엽은 마루나의 목을 잡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상엽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등에는 손톱에 긁힌 긴 상처가 남아 있었고 피부가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 고통으로 인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다.
‘위험해.’
신경이 꼬여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상엽은 위기감을 느꼈다.
“주, 죽여. 죽여.”
마루나는 목이 잡힌 상태에서 미친 사람처럼 그 말만 반복했다. 목이 졸리는데도 마치 악귀처럼 그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상엽은 마루나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미치겠네.”
등에서 시작된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마루나의 손톱에 있던 독이었고 상엽은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
독은 점점 더 큰 고통을 만들었고 이젠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코인이 없어.’
가장 간단한 치료 방법이 있었지만 드바란의 투구를 강화하느라 보유하고 있는 코인이 없었다.
그런데 독은 엄청난 속도로 퍼지면서 상엽의 호흡마저 가빠졌다.
심장이 아려 왔고 호흡에 독향이 뿜어져 나왔다.
블랙 유저의 강화로도 버틸 수 없는 독이었다.
‘시간이 없어.’
결국 상엽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회생.’
한 달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 있던 독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유령아. 주변 살펴.”
다시 멀쩡해진 상엽이 진지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수상한 자는 없습니다.
“죽여. 죽여. 정상엽을 죽여.”
마루나는 그때까지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상엽은 그녀를 제압한 상태에서 좀 더 상황을 지켜봤다.
그렇게 5분쯤 같은 말을 반복하던 마루나는 서서히 눈을 감더니 정신을 잃었다.
“이건 뭐야?”
상엽이 안심하고 잠시 힘을 풀자 갑자기 마루나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독을 품은 손톱으로 상엽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하지만 이미 경계를 하고 있던 상엽은 가볍게 피해 냈다.
“정신 차려.”
결국 상엽은 그녀의 다시 제압해 뒷목을 눌렀다. 그리고 강제적로 기절을 시켰다.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그건 분명히 알아 둬.”
상엽은 기절한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 *
“상엽아. 너 이런 취향이었어?”
“아니라니까.”
“괜찮아. 난 다 이해해.”
동희의 오해를 상엽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현재 마루나는 상엽이 대충 입혀 놓은 가운만 걸친 채로 고스트 사슬에 묶여 있었다.
동희는 이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한 것이다.
“빨리 좀 살펴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응.”
마루나를 기절 시킨 상엽은 동희를 불렀다.
독에 관해서는 잘 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헤헤. 이런 거 꼭 해 보고 싶었는데.”
동희는 상엽의 심각함과 달리 흥미로운 연구를 시작한 박사처럼 천천히 과제에 접근했다.
“손톱에 독이 있었다고 했지?”
동희는 보라색 빛을 띄운 마루나의 손톱을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혀를 내밀어 손톱의 맛을 봤다.
“야. 맹독이라니까.”
“난 괜찮아.”
동희의 혓바닥이 잠시 보랏빛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이내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이거 맛있는데?”
“뭐?”
“맛있는 거 보니까 연금술이 접목된 독이야.”
“판단근거가 좀 의심스럽지만 결론은 믿을게.”
동희는 상엽의 평가에 관계없이 마루나의 몸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우와.”
“어떤 의미에서 감탄이야?”
나체에 가까운 여자를 코가 닿을 정도로 관찰하는 것을 보며 상엽이 물었다.
“이 독 말이야. 심장에서 시작된 거 같아.”
“뭐?”
“여기 보이잖아. 이 여자 피부가 하얘서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마루나의 혈관은 녹색이 아니라 보랏빛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고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신체가 완전 개조가 됐어. 피 대신 이 독이 돌고 있는 거 같은데?”
끔찍한 결과였다. 상엽은 처음으로 마루나에게 연민을 느꼈다.
“본인이 직접 하진 않았겠지?”
“그럴 거야. 이거 정말 끔찍한 고통이거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그럼 누군가 했다는 건데.”
상엽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동희에게 또 다른 요구를 했다.
“미친 사람처럼 날 죽이려 했어. 그런데 그전에는 멀쩡해 보였거든.”
“그래?”
동희는 눈을 감고 있는 마루나의 얼굴 유심히 보았다.
그러더니 약병을 꺼내 스포이드로 마루나의 이마에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그 순간 마루나가 고통에 반응하며 눈을 떴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마루나는 상엽을 보더니 이를 갈며 덮치려고 했다.
하지만 고스트 체인으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확실히 이상하네.”
“미친 건가?”
“아니. 내가 볼 때는 뭔가에 지배당한 거 같아.”
“왜 그렇게 판단해?”
“고통을 못 느끼고 있잖아. 그건 정신이 인체의 감각을 무시한다는 뜻이야.”
동희는 자신이 꺼냈던 약병을 들어 보였다.
“이거 무지 아프거든. 정상이라면 지금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야 돼. 한 5분쯤 계속.”
상엽은 동희의 말과 마루나의 상태를 보며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설마 세뇌당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누군가 널 죽이라고 시킨 거야. 몸속의 독도 그렇게 주입했을 거야.”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한 건지 알아?”
“알 것 같아.”
“누군데?”
상엽은 세뇌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변태 도깨비.”
그가 드디어 상엽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