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구조 요청! 빨리 지원하라!
다급한 명령을 받은 헬기가 스미스 팀의 머리 위로 접근했다.
그 순간, 헬기의 프로펠러 위에서 거대한 망치가 소환되었다.
구조를 위해 이동을 멈췄던 헬기의 기동성으로는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쾅!
헬기가 추락했고 그 진동은 더 많은 변종들을 불렀다.
“야. 너희들 왜 이렇게 늦었어?”
상엽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표범 무리를 보았다.
쿠쿵!
그는 다시 한 번 바닥을 내려쳐서 진동을 만들고 스미스 팀을 향해 뛰었다.
“이쪽이야.”
상엽은 표범무리를 스미스 팀으로 이끌고 한순간 포위망 외부를 돌았다.
‘위험.’
스미스 팀은 이미 변종들에게 포위를 당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명의 사내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탈출을 시도했다.
그 순간, 상엽의 심판 스킬로 그의 머리 위에 해머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동시에 웅크렸던 표범이 다른 변종을 밟으며 튀어 올랐다.
촤앗!
그의 목에 표범의 선명한 발톱 자국이 남았다.
스미스 팀은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슬슬 준비해 볼까?’
상엽은 스미스 팀이 무너지는 걸 끝까지 확인했다. 그들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끝도 없이 덤벼드는 변종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던 스미스도 멧돼지의 돌진을 허용하며 바닥에 쓰러졌고 처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식사 끝났으면 이쪽이야.”
상엽은 여전히 변종들의 포위망 외부를 돌고 있었다. 그의 뒤로 수백 마리의 변종이 뒤따랐지만 상엽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멧돼지는 직선거리로 달리고, 표범도 마찬가지, 사자는 공격 거리에 있다가 갑자기 피하면 느려지는 특징이 있고.’
결국 그의 뒤로 스미스 팀을 포위한 변종들까지 따라붙었다.
“자. 출발!”
상엽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롬 컴퍼니의 임시 기지가 있는 방향이었다.
20미터의 방어선.
그것은 그저 강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변종들은 본능적으로 물을 피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막아! 무조건 막아!”
이미 상엽이 다가올 때부터 대대적인 폭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변종들은 워낙 속도가 빠르고 웬만한 충격을 몸으로 견디는 터라 효과가 없었다.
피부가 약한 변종들이 쓰러지며 숫자가 줄긴 했지만 정작 위험한 맹수들은 여전히 상엽을 뒤따르며 기지에 접근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랜들은 기지에서 모니터를 보며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명령이 아니었다.
“빨리!”
이성을 잃은 그는 그저 다급히 외치기만 했다. 수하들이 각자의 노하우대로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정상엽이 강가에 도착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가에 두 개의 돌기둥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돌기둥은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저런…….”
랜들은 그 광경을 보며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가 만들어졌다.’
상엽의 돌기둥은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었다.
상엽이 먼저 돌기둥 위를 달렸고 변종들이 뒤를 따랐다.
“헤, 헬기를 준비해라!”
랜들은 탈출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날 때쯤에 굉음이 시작되었다.
“헬기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랜들은 이성을 잃고 임시 막사를 뛰쳐나갔다.
그의 눈에 폭발하는 헬기들이 보였고 여전히 상엽을 뒤쫓는 변종이 보였다.
그리고 상엽은 랜들을 발견하자 웃으며 방향을 바꿨다.
“너희들은 어째서 학습능력이 없는 거지?”
그의 혼잣말이 랜들의 귀에 정확히 들렸다.
“날 봐. 헬기 먼저 부쉈잖아.”
그 순간 상엽이 랜들의 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전부 죽어 버려.”
상엽은 굳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랜들을 지나쳐서 반대편 강물을 넘어가 버렸다.
상엽이 강을 넘는 순간, 몇몇 맹수들이 함께 뛰어올랐지만 대부분은 이동을 멈췄다.
사냥감을 놓쳤다는 분노도 잠시, 맹수들의 눈에 또 다른 인간들이 보였다.
“머, 멈춰.”
랜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오히려 맹수들의 시선을 끌었다.
“멈춰!”
그는 분노해서 소리쳤다. 그 순간 맹수들이 비웃듯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임시 기지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엽은 뒤따라온 맹수 세 마리를 손쉽게 처리했다.
“무작정 쫓아오면 안 되지.”
맹수가 강물 위에 몸을 띄웠을 때, 상엽은 스트라이크로 하나를 처리하고 팔각대시로 방향을 바꾸며 나머지도 처리했다.
그가 몸을 띄우면 위험하듯이 맹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난 할 수 있지.”
상엽은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이를 알고 있었다.
“자. 다음 장소로 가 볼까?”
상엽은 폭발이 이어지는 임시 기지를 보며 그 자리를 떠났다.
* * *
영국 런던.
시내 중심에 오래된 카페가 있었다.
세월의 모습을 운치 있게 보존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커피숍의 2층은 특별한 손님을 위한 개인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1년에 두세 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명상과 차를 마시는 것이 그 손님이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1년 매상에 버금가는 예약금을 주기에 카페는 언제나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그런데 오늘.
언제나 조용히 차를 마시던 손님이 화가 나서 고함을 쳤다.
그의 목소리는 1층까지 전달되어 카페 사장을 불안하게 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딴 녀석 하나 잡지 못하는 것이냐!”
배불뚝이 정장을 입은 사내 앞에 50대 후반의 비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빅토리 타워에 이어 임시기지까지 무너지다니! 그것도 전멸이라니!”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배불뚝이는 화가 났다.
“하롬 컴퍼니가! 내 모든 것을 건 회사가!”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하롬 컴퍼니의 회장 바이슨.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상황에서 진정하라니!”
챙!
결국 그는 들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졌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바이슨의 호통은 계속 이어졌다.
“반드시 잡아라! 그리고 한국도 쑥대밭으로 만들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정상엽과 한국을 죽여 버리라고!”
“준비하겠습니다.”
“당장 실행해!”
결국 최후의 명령이 떨어졌다. 비서는 그때부터 바쁜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동부의 하롬 컴퍼니 공군 기지.
뉴욕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공군기지는 빅토리 타워가 있던 하롬 시티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자산이었다.
하롬 컴퍼니는 총 3개의 공군기지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동부.
하와이 근교의 밀리티 섬.
마지막은 일본 정부와 밀약을 맺고 건설한 일본 공군 기지였다.
특히 일본 공군기지는 공군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잠수함과 전함을 정박하는 해군기지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 동쪽 해군기지가 여전히 일본 소유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공군은 하롬 컴퍼니의 주력 병력이었고 이렇게 된 이유는 변종 출현 이후에 일어난 상황 때문이었다.
변종 출현 이후, 모든 나라에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군대는 육군이었다.
직접 변종들과 싸워야 했고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 반면 해군은 가장 적은 피해를 받았고 그다음이 공군이었다.
때문에 무기를 확보하기가 가장 용이했다. 그렇다고 하지만 공장은 땅 위에 지어져야 했기에 생산 라인은 거의 중단 상태였다.
그나마 하롬 컴퍼니는 자체 생산이 거의 막바지에 달한 상태였고 그 핵심이 미국 동부 공군기지였다.
“이륙 준비 완료!”
지금 미국 하롬 컴퍼니 공군기지에는 특별한 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병력은 일본 기지로 집결하라.
한국을 대대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
하롬 컴퍼니의 공군과 해군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동안 육군을 최대한 모으기는 했지만 빅토리 타워가 무너지면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육군 무기 생산 공장이 하롬 시티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에는 현대 전쟁의 핵심인 미사일기지까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힘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한국과의 전쟁에서 손실이 크게 되면 더 이상 하롬 컴퍼니를 유지할 힘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롬 컴퍼니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 냈다.
-유럽 연합이 움직일 것이다.
이는 하롬 컴퍼니의 믿는 구석이 되었다. 물론 처음 유럽연합과 이야기하던 협상조건에서 엄청난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도 합류한다.
또 하나의 협상이 이루어지자 하롬 컴퍼니는 전쟁 승리를 확신했다.
-한국을 역사에서 지운다.
그 결과는 곧 현실이 될 듯했다.
“이륙합니다!”
드디어 대형 수송선이 첫 이륙을 준비했다. 한국을 겨냥하는 첫 비행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모든 병력이 뒤따를 계획이었다. 그렇게 수송선이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달렸다.
“어?”
관제탑에 있던 군인 한 명이 바다에서 튀어 오르는 작은 점을 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쾅!
수송선이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 버렸다.
“아우! 겨우 도착했네!”
활주로 위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임시 기지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상엽이었다.
상엽은 기지로 들어서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얼마 되지 않아 총성이 울리며 총알이 빗발쳤지만 그를 제대로 맞추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맞췄다 하더라도 상엽의 피부를 뚫어 내지 못했다.
쾅! 쾅!
공군 기지에는 안타깝게도 갓코인 유저가 상주하지 않았다.
결국 기지 안에 상엽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혼자였지만 그 힘은 중화기를 갖춘 군대를 넘어섰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늘에서 끝도 없이 거대한 해머가 떨어졌고, 돌기둥이 솟아 전투기의 이륙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가 휘두른 한방은 작은 미사일을 능가하는 위력이었다.
자신이 만든 폭발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상엽을 보며 군인들은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그럼에도 상엽은 자비가 없었다.
독이 바짝 오른 악마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했다.
“그, 그만…….”
공군기지의 사령은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안녕. 군인 아저씨.”
악마가 그의 앞에 선 것이다. 누구도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 악마…….”
“에이. 아저씨. 악마는 아저씨들이지. 하롬 컴퍼니가 악마고 여긴 악마의 군대잖아. 내 말이 틀려?”
“우린 그저…….”
“그저 뭐?”
사령실 안에는 스무 명의 군인이 있었다. 그중에 누구도 상엽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타임 오버.”
상엽은 그들을 향해 잔뜩 비웃음을 흘리며 해머로 바닥을 내려쳤다.
쾅!
그 한 방으로 사령실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젠 명령을 내릴 지휘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공사는 확실히 해야지.”
상엽은 그 후로도 철거를 멈추지 않았다.
기지의 땅 위에 서 있는 것은 무엇이든 무너트렸다.
‘이게 뭔지 모르니까 부수고 보자.’
이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어김없이 무너트렸다.
어느 순간 연료 탱크가 폭발하며 기지 전체로 화염이 번졌다.
불타오르는 기지에서도 상엽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30분 만에 공군 기지 하나를 완전히 사라지게 해 버렸다.
“공사 끝! 아! 막걸리 먹고 싶다!”
그의 감상은 이것이 전부였다.
박광신은 상엽의 전화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
-형. 동부 공군기지 철거 끝냈어.
“동생. 정말 그걸 해낸 거야?”
-형이 도와줬잖아.
“나 아직도 그걸로 화가 많이 났어. 연락 한 통 없다가 갑자기 하롬 컴퍼니 공군기지를 찾아 달라니.”
-미안해. 형. 나랑 통화하는 사람은 누구든 위험해져서 어쩔 수 없었어.
상엽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싸운 이유였다.
-사과는 한국 가면 제대로 할 테니까 내가 말한 거 알아봤어?
“시드를 닦달해서 알아냈어. 그도 어차피 공범이라고 협박하니까 통하더라고.”
-그럴 줄 알았어. 위치 좀 알려 줄래?
상엽의 요청에 박광신은 대답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형. 왜 그래?
“동생. 거길 꼭 가야겠어?”
-당연하지. 진짜 핵심이 거기 있는데.
상엽이 박광신을 통해 알아내려는 장소는 하롬 컴퍼니의 육군 부대였다.
“거기 갓코인 유저들이 있을 거야.”
진짜 핵심이 그곳에 있었다.
시드가 자료를 넘기면서도 그곳만큼은 알려 주지 않았다. 하롬 컴퍼니의 일급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설하는 것은 하롬 컴퍼니를 적으로 두는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상엽이 하롬 컴퍼니를 공격하면서 그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형. 나 못 믿어?
“알았어. 위치 전송해 줄게. 그런데 조심해. 아무리 생각해도 거긴 아니야.”
-걱정 마.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 1급 위험지역에서 살아남은 남자라고.
상엽의 자랑도 박광신을 안심시켜 주지 못했다.
“동생이 간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스스로 함정으로 가는 꼴이라고.”
-거기만 무너트리면 하롬 컴퍼니도 더 이상 까불지 못할 거야.
“내 말을 듣긴 하는 거야?”
-미안해서 딴소리 한 거야. 그냥 날 믿어. 당당히 살아서 돌아갈 테니까.
상엽의 말에 박광신은 말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미안해. 혼자 싸우게 해서.”
-난 형이 좋아. 진짜야.
상엽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