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급 위험지역.
그 의미를 상엽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으.”
상엽은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았다.
그의 손목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망할.”
그의 앞에 있던 변종 사자가 빛으로 흩어졌다. 상엽과 사투를 벌였던 녀석이었다.
‘5만 코인짜리라니.’
사자와의 싸움에서 상엽은 손목을 물리는 부상을 당했다. 워낙 민첩해서 손목을 내어주고서야 해머를 꽂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어.”
뜯겨져 나가지는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있는지가 문제였다.
크앙!
또 다른 변종이 상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자.’
상엽은 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백산에서 변종 곰을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상엽이 등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손목의 고통을 참으며 초원을 달렸다.
예전에는 도로였던 곳이 이제는 풀이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서 초원이 되고 있었다.
크앙!
상엽의 뒤로 변종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상엽의 속도로 따돌릴 수 없는 녀석도 있었고, 오히려 거리가 좁혀지기도 했다.
“저기까지만 가자.”
상엽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속도를 높였다. 변종들이 점점 다가왔고 앞을 막기도 했지만 대응할 수가 없었다.
‘멈추면 죽어.’
그는 살기 위해서 달렸다.
그때, 바로 곁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발 빠른 표범이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망할.’
멈춰야 했다. 그때, 갑자기 표범 앞에서 밝은 빛이 뿌려졌다.
유령추종자였다.
시야를 잃은 표범이 비틀거리다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위협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상엽이 잠시 주춤한 사이 변종과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진 것이다.
그리고 상엽을 향해 수십 개의 이빨과 발톱이 다가왔다.
‘거산 소환.’
상엽은 주변에 돌기둥을 세우며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그리고 고스트 실드를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칫!
그의 등으로 사자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옷이 찢어져 나가고 피부가 긁혔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일단 살았어.’
풍덩!
그의 몸이 달빛을 희미하게 머금고 있는 물 위로 떨어졌다.
꽤 큰 호수였다.
변종들은 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붉은 눈빛을 번뜩였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수영은 내가 훨씬 빨라.”
상엽은 그제야 여유를 부렸다.
‘치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그는 으르렁거리는 변종들을 보며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아침이 되었을 때, 통증은 사라졌다.
블랙 유저의 특유의 빠른 회복이었다.
‘회생은 아직이야.’
30일에 한 번 쓸 수 있는 회생의 시간이 아직 남은 상태였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
통증은 사라졌지만 워낙 큰 상처라서 완벽히 회복되진 않았다.
-주인님.
잠시 더 시간을 가지려던 상엽은 추종자가 보낸 영상을 확인했다.
‘헬기.’
하롬 컴퍼니의 전투 헬기였다. 주변을 수색하고 있는 것이다.
‘망할. 거리 상으로는 이미 잡혔겠지?’
3시간이 넘게 이동을 멈췄으나 헬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물속에 있다는 걸 알까?’
다행히 변종들은 상엽이 오랜 시간 잠수를 하자 주변을 떠났다.
이상한 낌새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헬기에서 작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미친!’
미사일은 정확히 호수를 향했다.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최대로 끌어 올리며 미사일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콰쾅!
미사일이 호수 바닥에서 폭발하며 엄청난 물보라가 일었다.
상엽은 그럼에도 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부에서 버텼다.
쾅! 쾅!
헬기는 세 번째 미사일을 쏘고 주변을 배회한 뒤에야 그 자리를 떠났다.
‘미친.’
그나마 물속이라 충격이 완화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 정보가 있었던 거야.’
하롬 컴퍼니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상엽이 물 안에서 버틴 것이다.
‘결국에는 여기 있다는 걸 보여 줘야 돼.’
그가 이곳을 탈출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레나를 불러서 등록지점을 통해 벨기에에 있는 그레이 상점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그 후에 다시 레나에게 돌아가면 간단히 한국으로 갈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야 한국을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가 바로 미국을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한국을 위해서 그는 미국에 머무르는 선택을 했다.
‘아직 시간이 있어. 지금은 회복부터 하자.’
그는 폭격으로 늘어난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하루를 꼬박 호수 안에서 보낸 상엽은 자정이 막 지난 시간에 호수에서 빠져나왔다.
‘서두르지 말자.’
그가 여유를 찾은 이유가 있었다.
‘갓코인 유저도 추격은 쉽지 않아.’
직접 변종을 경험하고 내린 판단이었다.
추격조가 원하는 만큼 원활한 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위험에 빠질 확률이 컸다.
‘좋아. 게릴라전이다.’
본래의 계획과는 달라진 부분이었다.
원래는 미국 안에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서 최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적은 지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벌고 하롬 컴퍼니의 관계자들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상엽은 오히려 지금 상황이 더욱 좋다고 느꼈다.
‘공격하는 거야. 도망가지 말고.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 기지가 있어.’
문제는 안전지대였다.
‘주변부터 파악하자. 물이 있는 곳이 필요해.’
물속은 안전지대였다. 수영은 당장 상엽만이 가진 스킬이었다. 갓코인 유저 중에 수영 스킬을 올리는 자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유령아. 확실하게 수색해.’
상엽은 그만의 방식으로 게릴라 전을 시작했다.
새벽 무렵이었다.
상엽은 헬기 소리를 듣고 급히 나무 아래로 숨었다. 다행히 변종은 없었고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렸다.
‘지금.’
헬기가 다가왔을 때, 상엽은 나무를 뚫으며 위로 솟구쳤다. 고스트 실드로 한 번 더 도약을 했지만 헬기가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심판.’
최대한 높이 뛰어오른 상엽은 헬기 위에 해머를 떨어트렸다.
상엽을 발견한 헬기 안의 조종사와 군인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반가워.”
쿵!
해머에 깔린 헬기가 중심을 잃고 곧 바닥으로 추락했다.
쾅!
추락과 함께 폭발한 헬기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폭발 직전에 빠져나온 것이다.
갓코인 유저였다.
수색 헬기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갓코인 유저가 동승했고 이는 상엽이 예상한 바였다.
쾅!
헬기의 주변에 또 한 번 폭발이 일어났다.
상엽이 떨어지면서 만든 폭발이었다. 갓코인 유저는 그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지만 폭발의 잔해 속에서 갑자기 상엽이 튀어나왔다.
바닥에 내려서며 바로 쫓아온 것이다. 하지만 갓코인 유저도 만만치 않았다.
전투에 익숙한 그는 상엽을 발견한 순간 오른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 뭔가가 그의 어깨에 부딪쳤다.
‘이런!’
유령추종자가 그의 앞을 막은 것이다. 갓코인 유저를 처리할 힘은 되지 못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뭔가가 막히자 본능적으로 이동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상엽이 그를 덮쳤다.
쾅!
또 한 번의 폭발로 인해 갓코인 유저는 빛으로 흩어졌다.
“자. 빨리 피하자.”
상엽에겐 여유가 없었다. 폭음이 변종들을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전리품을 챙기고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상엽의 의도대로 그의 위치가 알려졌다. 그때부터 수색은 더욱 강화되었다.
‘미치겠네.’
모든 것이 상엽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후우.”
그는 높게 자란 나무가 작은 숲을 형성한 지역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변종들과 긴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는 수십 개의 상처가 있었고 허벅지와 옆구리, 왼쪽 발목에는 꽤 큰 상처가 있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인 상태였지만 변종들은 여전히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원숭이 숲.
상엽이 헬기를 피해 숨으려던 곳은 삼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진을 친 곳이었다.
그리고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절반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다시 초짜가 된 기분인데.”
태백산에서 처음 변종을 사냥할 때, 상엽은 이런 기분을 느꼈다.
그는 성장했지만 1급 위험지역에서는 겨우 살아남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끼익! 끼익!
동료를 잃고 분노한 원숭이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상엽을 위협했다.
“아직 안 끝났어.”
변종 원숭이들은 상처 입은 상엽이 곧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빨리 덤벼.”
상엽이 그들을 도발하려 해머로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그 진동만으로 부상당한 왼쪽 발목에서 엄청난 통증이 올라왔다.
열다섯 마리의 원숭이를 상대할 몸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를 파악한 원숭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상엽의 몸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촤앗!
달려들던 원숭이 하나의 목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한 마리의 원숭이는 옆구리가 잘려 내장이 흘러내렸다.
원숭이들은 당황했다. 그들이 사냥하는 인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크흐.”
대신 늑대인간이 서 있었다.
드바란의 투구. 특수스킬 광기의 외침.
늑대인간 상엽은 광기에 젖어 사냥을 시작했다.
잠시 당황했던 원숭이들이 반격을 가하자 상엽의 몸에 금세 상처가 쌓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원숭이의 숫자가 줄었다.
“크흐!”
늑대인간 상엽은 광기에 젖어 움직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팔목이 꺾이고 어깨가 부서지고 결국에는 갈비뼈가 내장을 찔렀다.
그럼에도 늑대인간은 싸웠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원숭이의 목에 움켜잡았다.
끼! 끼!
원숭이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자비가 없었다.
우득!
마지막 원숭이의 목이 꺾였고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더 이상 적이 없자 광기의 외침이 풀렸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상엽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러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주인님!
정신을 잃으려는 상엽을 추종자가 급히 불렀다.
‘여기서 기절하면 죽어.’
추종자로는 변종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호수로 가야 돼.’
상엽은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온몸에서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가자. 무조건 가야 돼.’
그는 거의 기다시피 호수를 향해 움직였다.
‘이런 곳이야. 적응하고 이겨내야 돼.’
상엽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이동했을 때, 뒤에서 묵직한 걸음소리가 들렸다.
‘망할.’
변종 코끼리였다.
그 걸음 하나하나가 상엽에게 명확히 느껴졌다.
‘얼마 안 남았어.’
상엽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코끼리를 따돌릴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코끼리는 상엽을 밝고 지나갈 것처럼 돌진속도를 높였다.
‘거산.’
쾅!
스킬로 발악을 했지만 코끼리는 솟아오른 돌기둥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오히려 스킬을 쓰느라 상엽의 고통만 늘어난 셈이었다.
‘20미터만.’
평상시 몸이라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고스트 체인!’
결국 상엽은 또 한 번 스킬을 사용했다.
달려드는 코끼리가 아니라 호수를 향해서였다. 체인이 호숫가의 바닥에 꽂혔고 상엽은 이를 악물며 이를 잡아당겼다.
모든 힘을 다해 힘을 주자 그의 몸이 떠올랐다.
아슬아슬한 순간, 코끼리가 떠오른 상엽의 아래를 지나갔다.
“다음에 만나면 가만 안 둬.”
풍덩!
상엽은 결국 호수의 위로 떨어졌다.
* * *
“어때? 이제 좀 살 만해?”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그 기분을 기억은 하는 거야?”
레나의 핀잔에 상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왜 그 웃음이 슬퍼 보이지?”
“나 거지됐잖아.”
상엽은 결국 레나를 불러서 치료를 선택했다.
가지고 있던 코인은 물론 이곳에서 변종을 사냥하며 얻은 코인까지 모두 소모되었다.
그만큼 큰 부상이었다. 대신 그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원한다면 지금 바로 여길 떠날 수도 있어.”
“아니. 전부 처리하기 전에는 안 가.”
“변종한테 먼저 죽을 거 같은데?”
“그렇게 걱정되면 치료비나 좀 깎아 주든가.”
“정찰제입니다. 고객님.”
그렇게 말하면서도 레나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상엽의 계획이 무모한 고집으로만 보였다.
“1급 위험지역이야. 이건 자살행위라고.”
결국 레나가 진지하게 충고를 했다. 그렇지만 상엽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가 이겨. 넌 놀랄 준비나 해.”
“한국을 지키려고 이러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레나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상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강해지기 위해서. 난 여기서 더 강해질 거야. 아무도 쫓아오지 못할 만큼.”
레나에겐 그 말이 변명으로만 들렸다.
“아주 나쁜 놈이 되든가. 아니면 솔직하게 착한 놈이 되든가. 한 가지만 해. 그래야 살아남아.”
“내가 어떤 놈인지 잊었어?”
“어떤 놈인데?”
“난 한 가지만 할 수가 없는 놈이잖아.”
상엽은 레나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화이트와 블랙을 다 가졌으니까.”
그의 어이없는 변명에도 레나는 설득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