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06화 (106/300)

# 106

상엽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였다.

그 2주가 3일 남은 시점이었다.

하롬 시티의 외부경계근무는 200개의 첨탑에서 이루어졌다.

철벽의 중간에 솟은 첨탑 중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경계를 서는 곳은 20곳이었다.

이 외의 다른 곳은 무인 시스템으로 이동물체가 있으면 자동으로 카메라가 움직였다.

각 첨탑마다 50대의 카메라가 있었고 이동물체가 발견되면 사람이 근무를 하는 곳으로 영상을 보냈다.

그리고 위험이 판단되면 감시병이 중앙본부로 영상을 전송하고 필요에 따라 포격명령이 내려졌다.

단 한 번도 철벽이 뚫린 적은 없었고 이런 사건이 반복되자 변종들도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하롬 시티에서 경계근무는 가장 지루한 시간으로 알려졌다.

“어디 사냥감이라도 안 나타나나?”

25호 첨탑의 경계를 서던 군인은 메인 화면을 보며 하품을 연발했다.

“센서는 더럽게 좋아서.”

수시로 바뀌는 화면에는 대부분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바람에 날린 종이들이었다.

“뭐라도 좀 나와라. 심심하니까.”

그는 변종의 출현을 기다렸다.

홀로 다니는 변종 정도는 그의 판단에 따라 직접 발포를 할 수도 있었다.

이는 재미로 즐기는 사냥이기도 했고, 코인을 획득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의미 없는 영상들을 지루하게 쳐다볼 때였다.

새벽 2시.

갑자기 영상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리고 위험을 표시하는 경고들이 켜졌다.

큰 움직임이 포착되면 화면의 테두리가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시스템이었다.

“뭐, 뭐야?”

빨간 테두리의 영상이 올라왔다.

대형 코끼리 변종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삑! 삑! 삑!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며 수십 개의 영상이 뒤따랐다.

각 영상에는 서로 다른 변종들이 잡혀 있었다.

큰 화면에 50개의 화면이 분할되어 떠올랐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화면이 작아지며 더욱 많은 영상이 나타났다.

2백이 넘기 시작했고,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위험 경보!”

영상의 변종들은 모두 철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미친 것들이!”

그는 처음 겪는 일에 놀랐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좋아. 내가 오늘 전부 끝장내 주지.”

철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실적도 올리고! 좋아!”

그는 빠르게 영상들을 중앙 본부에 업로드했다.

같은 시간 하롬 시티 중앙 본부.

그곳에는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북쪽 경계선 전체 화면으로 띄워!”

하나하나 포착한 변종들이 너무 많았다.

본부장은 북쪽을 한 번에 잡은 화면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화면이 본부의 메인 스크린에 올라왔다.

“저게 무슨…….”

본부에 있던 모두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2천 마리가 넘는 변종들이 성문을 부수려는 군인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방어시스템 가동한다. 지금 이 시간부터 변종을 향한 모든 포격을 허용하며, 전멸시킬 때까지 유지한다.”

그는 익숙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본부의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대 뚫을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초창기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습격도 있었다.

하지만 철벽은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흥분되는군.”

그는 지금 사태가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 조금 놀랐지만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전부 가루로 만들어 주지.”

본부장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다.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화면 띄워.”

메인 화면이 바뀌었다. 그런데 화면에는 분명히 사람이 철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저자는…….”

그가 떠올리기 전에 보고가 먼저였다.

“정상엽입니다! 변종들은 그를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젠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본부장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방어시스템을 가동할 경우 정상엽에게도 피해가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치겠군! 상부에 연락해!”

결국 방어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철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변종들은 결국 철벽에 부딪치고 이동이 멈추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폭격과 총알에 사라진다.

아주 간단한 시나리오였다.

여기에는 필수적인 전제가 있었다.

바로 철벽이었다.

지금 그 철벽을 향해 달려오는 사내가 있었다.

“빨리 빨리 따라와. 이제 다 왔어!”

그는 뒤를 따르는 변종들을 도발하며 철벽을 향해 달렸다.

“자. 철거할 시간이다!”

하롬 시티 방어시스템의 기본. 그 철벽을 향해 상엽이 돌진했다.

‘스트라이크.’

그의 몸이 일순간 안개로 흩어졌다.

4등급 상점. 상급 상점의 강화가 드디어 그 힘을 발휘했고 팔각대쉬의 속도 상승까지 더해졌다.

‘전부 실어서.’

10단계 파이어스 망치가 상엽의 힘에 반응하며 금색 빛을 뿌렸다.

이는 상엽도 처음 경험하는 현상이었다.

그 짧은 순간 상엽은 모든 힘을 해머 끝으로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해머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철벽을 때렸다.

쩌어엉!

엄청난 진동파가 터져 나왔다. 철의 울림에 첨탑에 있던 군인들이 고막이 찢어졌고 약한 변종들은 발이 꼬이며 바닥을 굴렀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소음과 진동이 끝났을 때, 철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됐어.”

상엽은 만족했다.

철벽은 그 자리를 버텼지만 10미터 지름의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이게 철거 기술이지.”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 점에 모은 결과였다.

“자. 이쪽이야. 마음껏 날뛰어 봐.”

상엽이 구멍 난 철벽을 통과했고 변종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하롬 시티에 처음으로 변종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혼란과 절규, 비명이 뒤따랐다.

총성이 난무했고 폭격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철문의 균열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곳으로 여전히 변종들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종들은 철문이 뚫렸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고 내부로 들어오면 사방으로 흩어졌다.

게다가 하롬 시티의 경계 시스템은 대부분 외부를 향하고 있었다.

이 역시 철벽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건물을 스스로 무너트리면서까지 방어에 나섰다.

그리고 혼란스런 전장에는 변종보다 더욱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철거 왔습니다!”

상엽은 군수공장의 지붕에 집행자의 심판을 떨어트렸다. 엄청난 규모의 해머가 지붕을 박살 내며 내부까지 부숴 버렸다.

군수 공장에 이어 미사일 발사대가 상엽의 손에 쓰러졌다.

콰쾅!

“어우. 놀래라.”

보급품 창고는 건물이 무너지자 폭발을 일으키며 화염을 뿜어냈다.

다행히 상엽은 재빨리 몸을 피해 무사할 수 있었다.

‘다음은 저기.’

상엽은 무작정 건물을 부수는 게 아니었다.

확실한 목표를 잡았고 정확히 계산된 동선으로 움직였다.

‘군사시설만 부수면 돼.’

그가 원하는 것은 방어시스템과 무기 파괴였다.

쾅!

다시 한 번 그의 손에 항공기 격납고가 무너져 내렸다. 내부에 있던 자들에겐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미안해하지 말자.’

상엽은 그렇게 다짐했다.

‘전부 적이야. 이미 전쟁은 시작됐어.’

하롬 시티에는 갓코인 유저가 아닌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들을 죽이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어차피 그들은 곧 전쟁을 치를 적군이었다.

연민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상엽은 약해지는 마음을 잡으려 더욱 강하게 해머를 휘둘렀다.

해머가 닿는 건물은 단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건물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뒤엉킨 구조물은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야! 나 지금 아군이잖아!”

자리를 옮기던 상엽에게 변종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지금까지 상대한 변종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고 위험지역의 변종들.

상엽을 스친 동물은 겨우 고양이였지만 지금까지 본 어떤 변종보다 빨랐다.

‘제일 약한 놈이 2,500코인이라니.’

특별하지 않은 변종도 기본이 2,500코인이었고 대부분 4천 코인이 넘었다.

쿵!

‘아우. 5만짜리 변종. 잡고 싶다.’

중앙에서 날뛰고 있는 변종 코끼리의 경우 5만 코인이 넘는 수치를 보였다.

‘이런 놈들이 도시에 들어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나도 신경을 좀 써야겠어.’

시간이 갈수록 변종들과 상엽의 동선이 겹치고 있었다. 이제 중앙 쪽으로는 접근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쯤에서 빠질까?’

지난 시간 동안 상엽은 하롬 시티의 군사시설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군수공장들을 무너트린 것이다. 나머지는 변종들이 알아서 점령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곳이 있었다.

‘빅토리 타워.’

변종들은 빅토리 타워를 에워싸며 힘싸움을 하고 있었다. 타워 자체에 방어 시스템이 있었고, 내부에 있던 갓코인 유저가 드디어 방어를 시작했다.

‘도망가는 놈이 있잖아.’

타워 30층 부근의 헬기장에서 헬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상엽은 결단을 내렸다.

‘확실하게 하자.’

그는 물러서던 걸음을 돌렸다.

빅토리 시티는 다른 건물과 달리 단단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철벽만큼은 아니었고, 결국 강한 변종들이 계속해서 들이받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알기에 빅토리 타워에 있는 갓코인 유저들이 일제히 방어에 나섰다.

그리고 외부에서 지원병력이 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내부에서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상엽이 기본 시설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단 한 명에 의해 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 틈도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했다.

-버틸 수 있다.

그들은 외벽 내에 시간을 끌 수 있는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외부 병력이 도착하면 적어도 탈출할 수는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고위 직책은 헬기를 통해 타워를 벗어나고 있었다.

-시간만 끌자.

그 생각이 가득할 때였다.

쿵!

갑자기 타워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이 발생했다.

벽에 금이 가고 기둥이 흔들렸다.

쿵!

또 한 번 충격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쿵!

세 번째 충격은 그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그리고 그 충격음은 더욱 빨라졌다.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

타워 내에 있는 핵심 기둥들이 잘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이라도 기둥이 쓰러지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2층! 정상엽이 진입했다!

다급한 방송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외벽 근처에 있어서 내부로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들이 내부에 지원을 오면 외부에 있는 변종들이 방어 준비가 되기 전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것 역시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결론이었다.

아무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고, 그 짧은 시간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죽음을 알리는 괘종처럼 결국 서른 번의 충격음이 발생했을 때, 고층에서부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무너진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그들 막아 주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콰르릉!

결국 200층의 타워가 무너져 내렸다.

그들의 상징이자 꿈이었던 타워는 사신이 되어 그들을 덮쳤다.

그 충격은 주변에 있던 변종들마저 물러서게 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변종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건물의 잔해에 묻혔다.

울림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변종들이 모든 행동을 멈추거나 도망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먼지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고 높이 솟았던 만큼 오랫동안 충격이 이어졌다.

빅토리 타워.

그 이름과 달리 그들은 단 한 명에 의해 산업폐기물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 안에서 안심하던 자들도 건물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철거 끝.”

상엽은 멀리서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었다.

“소장님이 이걸 봤어야 하는데.”

건물이 무너질 때의 손맛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었다.

“빨리 가자. 갈 길이 멀어.”

그의 작전은 완벽히 성공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것만 남았네.”

그는 혼자였고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주변은 1급 위험지대였고 그를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다.

“내 인생도 참 고단하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싸움은 지금부터야.”

타워가 무너질 때, 갓코인 유저는 전부 위험지역을 벗어났다. 그들이 추격을 시작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외부에서도 이 사건을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하롬 컴퍼니의 모든 힘이 상엽을 잡기 위해 집중될 것이다.

“덤벼 봐. 전부 박살 내줄 테니까.”

상엽은 유유히 철거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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