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05화 (105/300)

# 105

박광신과 상엽은 시드에게 받은 정보를 살피고 있었다.

“이건 진짜 국가네.”

하롬 컴퍼니의 본사는 붕괴된 미국에 있었다.

변종들이 득실거리는 한복판에 자리한 본사는 말 그대로 천연의 요새였다.

이동은 전부 헬기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만큼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국가의 눈을 피해서 운영되는 본사에는 당장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무기들이 준비되었고 연구도 활발했다.

소속된 군인만 2천 명.

동원할 수 있는 군인은 1만 명 수준이었다.

소속된 군인들은 모두 무기를 다루는 전문분야였고 동원 가능한 인원은 총을 드는 용병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약소국의 정식 군대도 있었다.

“갓코인 유저도 3백 명이나 돼. 이 정도면 현존하는 최고 집단 아니야?”

“그럴 거야. 대신 화이트와 블랙이 섞여 있어서 따로 운영을 하는 거 같아.”

시드도 그랬다. 그들은 갓코인 유저를 30개의 팀으로 나눠서 움직였다.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거야. 팀끼리 서로 교류도 별로 없는 거 보면.”

어떤 집단이든 힘을 가지면 배신의 싹이 트게 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팀끼리 철저히 분리했다.

“동생. 이건 아무리 봐도 무리야. 기본적으로 전력이 너무 탄탄해. 갓코인 유저만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항상 긍정적인 방법을 찾아내던 박광신도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 녀석들이 결국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지?”

“맞아.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해. 차라리 지금은 그들 의도대로 하고, 시간을 봐서 함께 처리하는 게 어때?”

박광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생각이 달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 그 녀석들도 다 생각할 거야.”

“하긴.”

박광신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런데 상엽은 자료를 보면서 생각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저 녀석들이 생각하지 못한 짓을 하려고.”

“뭐?”

“미친 짓. 그 정도는 돼야 예상을 못하겠지.”

상엽은 박광신이 그 계획을 듣고 싶어 했지만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형을 위해서야. 이해해 줘.”

그 말을 끝으로 상엽은 박광신의 빌딩을 나섰다.

* * *

대한민국 인천공항.

시드는 기분이 묘했다.

“뭔가 배신당한 기분이야.”

“자료를 보니까 엄두가 안 나서. 광신이 형이 부탁한 것도 있고.”

“내가 자료를 줬다는 건 비밀로 해.”

“당연하지. 나도 앞으로 잘 먹고 잘 살려면 그런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잖아.”

“평범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 너도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어.”

“칭찬 고마워.”

그들의 대화를 하는 사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접근했다.

“가시죠.”

그는 상엽을 향해 인사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에 시드가 같이 움직이려 하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초대 받지 못하셨습니다.”

“난 받아야 할 게 있는데.”

“곧 지급될 것입니다.”

“확실히 하라고.”

시드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럼 원하는 대로 잘 먹고 잘 살아.”

“네 덕분이야.”

상엽과 인사를 마친 그가 떠났다.

“전용기가 준비되었습니다.”

하롬 컴퍼니의 대우는 확실했다.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유럽 연합의 압박이 사라졌고, 상엽에게 전용기가 배정되었다.

-본부로 오십시오.

모든 하롬 컴퍼니 용병들은 계약을 하면 본부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첫 번째는 그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특별한 소속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상엽도 규칙에 따라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이를 위해 전용기를 내어준 것이다.

“내가 살면서 전용기도 타 보네.”

그는 검은 양복의 사내를 따라갔다.

미국에 존재하는 공항은 단 2개뿐이었다.

시카고와 덴버.

수백 개의 공항 중에 유일하게 2개만 살아남은 것이다. 미국의 붕괴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상엽이 탄 전용기는 워싱턴으로 비행했다.

워싱턴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지 않는 변종들의 지역이었고 여기를 지나면 더 이상 공항이 없었다.

그런데 전용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그러자 워싱턴 외곽에 높게 솟은 담이 나타났다.

‘500미터는 되겠는데?’

빌딩으로 치면 100층에 달하는 높이였다. 이것이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지역에 담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담의 뒤로 활주로가 있었다.

미국의 공개된 활주로는 2개지만 하롬 컴퍼니는 항공기가 내릴 수 있는 개인 활주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용을 확인하자 상엽은 하롬 컴퍼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변종들이 바글바글한 지역에 당당히 구조물을 세운 것만 해도 그들의 자신감을 알 수 있었다.

-착륙합니다.

비행기가 드디어 활주로에 내려섰다.

* * *

상엽은 하롬 컴퍼니 본부가 어느 규모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고도 계산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롬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항공기에서 내리자 3명의 사내가 그를 맞이했다.

두 명은 경호원이었고 한 명은 50대 후반의 사내였다. 셋 모두 갓코인 유저였지만 직책은 다른 것으로 보였다.

“랜들 아저씨.”

“말씀하시지요.”

상엽의 편한 부름에도 랜들은 표정변화가 없었다.

“이걸 다 지으려면 얼마나 들어요?”

“하하. 그게 궁금하십니까?”

랜들은 어린 손자를 대하듯 인자한 표정이었다. 처음 인사를 할 때부터 그는 사람의 경계심을 무너트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저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계산하려면 일 년쯤은 회계장부를 봐야 할 겁니다. 그때쯤이면 또 다른 공사로 비용이 더욱 늘었겠지만요.”

“어마어마하네요.”

활주로에서 보이는 것은 200층 높이의 어마어마한 타워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멀었다.

“빅토리 타워입니다. 이 본부의 중심점입니다.”

그 타워를 시작으로 정사각형의 부지를 만들었고 500미터짜리 철벽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상주하는 군인은 500명이며 이 안에서 전 세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까지 있습니다. 상시 운영 가능한 헬기만 100대, 항공기는 10대입니다.”

랜들은 친절한 여행 가이드처럼 설명을 시작했다.

“본부 안에는 원하시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앞으로 빅토리 타워 100층 이하까지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당연히 공짜겠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규칙은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규칙이 뭔데요?”

“간단합니다. 이 안에서는 어떤 무력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격에 따라 분리된 곳은 절대 방문하실 수도 없습니다.”

금지된 지역에 가지 말고 힘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상엽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빅토리 타워를 시작으로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건물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철벽은 연결점을 망루처럼 올려 감시가 원활하도록 했다.

“저 벽은 정말 안전한가요? 거대 변종이라면 뚫을 수도 있을 텐데.”

“안전합니다. 지속적인 공격이라면 무너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겁니다. 그전에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철벽 근처에는 거대한 공장 같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빠르게 수송이 가능하도록 철로 같은 레일이 있었다.

상엽은 그것이 군사 목적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었다.

“타시죠.”

그들 앞에 대형 리무진이 도착했다.

이곳은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도 힘들 만큼의 규모였다.

“빅토리 타워로 가겠습니다. 회장님을 먼저 만나 보시죠.”

“대우가 좋네요. 직접 만날 수 있다니.”

“생각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랜들은 웃었고 그들을 태운 리무진이 빅토리 타워를 향했다.

직접 도착한 빅토리 타워는 상엽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용을 자랑했다.

‘이건 뭐 도시네.’

하롬 컴퍼니 본부는 하나의 도시였다. 그리고 빅토리 타워의 1층은 한국의 작은 동네 전체와 맞먹는 규모였다.

“이쪽입니다.”

상엽은 랜들과 함께 빅토리 타워로 들어가서 3층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3층 중앙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전면에는 한쪽 면을 전부 차지하는 스크린이 있었고 누군가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하지.”

랜들이 지시를 내리자 스크린 앞에 있던 20대 중반의 사내가 들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스크린이 커지며 누군가 나타났다.

“회장님이십니다.”

“아. 만난다는 게 이런 식이군요.”

“그렇습니다.”

상엽은 그 말을 듣고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회장 아저씨.”

회장은 50대 중반의 외모였다. 턱살이 늘어지고 코가 넓은 전형적인 사업가 인상의 백인이었다.

-어서 오게. 자네의 결단을 환영하네.

중저음의 목소리는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둥근 얼굴에 나타난 욕심은 분명히 드러났다.

눈이 작고 이마가 넓은 회장은 인사를 하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했다.

-랜들이 필요한 것은 전부 준비해 줄 것이네. 자네는 앞으로 하롬 컴퍼니의 일원으로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을 걸세.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네.

자만심이 가득한 인사였다. 상엽은 그 점이 불쾌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팀 배치와 임무는 2주일 안에 주어질 걸세. 그럼 그때까지 편하게 쉬게.

“고마워요.”

상엽이 대답이 끝나자 스크린이 꺼졌다. 회장과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어느새 랜들과 경호원 외에 또 한 명이 회의실 박에 대기하고 있었다.

20대 중반의 여자로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앞으로 자네의 적응을 도와줄 사람이네. 편하게 비서라고 생각하게.”

“루시입니다.”

루시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작은 키에 귀여운 외모의 금발 여인이었다.

도드라진 붉은 입술과 보조개가 감정을 선명히 보여 주는 특징이 있었다.

“그럼 편히 쉬게.”

랜들과의 만남도 여기까지였다.

상엽은 루시의 안내를 받아 빅토리 타워 81층으로 이동했다.

“타워가 숙소군요.”

“네. 51층부터 100층까지 홀수층은 숙소, 짝수층은 휴게실이에요.”

“루시도 여기 있나요?”

“네. 전 51층에 있어요. 51층부터 60층까지는 저처럼 이곳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숙소예요.”

“대단하네요.”

“외부에도 숙소가 있어요. 사실 외부에 더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루시는 내부의 사람을 안내하는 역할이라 타워에 머무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타워에서 지내길 원해요. 상징성도 있지만 실제로 대우가 달리지거든요.”

루시는 자신의 정장에 꽂힌 배지를 가리켰다.

삼각형과 사각형이 오각형 안에 겹쳐 있는 하롬 컴퍼니의 문양이 새겨진 금색 배지였다.

이것을 타워를 출입할 수 있는 통행증 같은 것이었다.

“그럼 루시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겠네요.”

“네. 그럼요.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제가 실적 채우려고 헬기랑 비행기를 500번 넘게 탔어요.”

“무슨 실적이었는데요?”

“인재 섭외요. 제가 무려 20명이나 이곳에 데리고 왔어요.”

“훌륭한 협상가네요.”

하롬 컴퍼니는 여전히 인재를 모으고 있었다. 그것이 미래를 지배할 힘이라 믿었다.

서로 대화를 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상엽은 10미터 폭의 긴 복도를 지나 배정된 방에 도착했다.

“넓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200평이 넘는 규모의 어마어마한 방이 나타났다.

가구는 전부 고급스러웠고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통유리 벽은 외부의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진열장과 냉장고에는 음식과 술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필요한 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인터폰을 누르면 저한테 바로 연결돼요.”

“고마워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시고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한 게 있었는데.”

루시는 상엽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 표정이 귀엽게 보인 상엽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여기 전부 짓는 데 얼마나 들었어요?”

랜들에게 했던 질문과 같았다. 이에 루시는 잠시 생각을 했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가 모르는 질문이네요. 죄송해요.”

“할 수 없죠. 괜찮아요.”

“그런데 그런 질문은 왜 하세요?”

상엽은 몸을 돌려 통유리 밖의 세상을 보며 대답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루시는 더 이상 질문이 없자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상엽은 웃음을 지우고 눈에 보이는 엄청난 도시를 보았다.

“궁금하잖아. 여길 철거하면 얼마짜리를 날리는 건지.”

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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