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하롬 컴퍼니 녀석들이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거지?”
“갓코인 유저들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전쟁이 그렇게 쉬워?”
상엽은 박광신을 보았다.
박광신은 시드의 말을 종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있어.”
“난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미국이 붕괴되고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거든. 문제는 누가 최강국이냐는 거야.”
많은 이들이 중국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은 지금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 상태였다.
결국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건 유럽연합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에 그런 의미가 있는 거야.”
“무슨 의미?”
“서열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의미.”
벨기에 수도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수백 명이 죽었지만 국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대응을 하려고 할 거야. 국가가 도저히 갓코인 유저들을 감당할 수 없기 전에.”
말을 듣던 시드는 박광신을 흥미롭게 보았다.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군.”
“그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이미 협상은 끝났지만 서비스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하롬 컴퍼니에 그럴 힘이 있는 건가?”
시드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러더니 간단하게 말했다.
“거긴 이미 국가야.”
그 말에 박광신의 표정이 굳었다.
“하롬 컴퍼니는 다국적 기업이었고 최대 용병을 거느린 군사기업이었어. 그런데 갓코인이 더욱 힘을 실어 주었지. 초반부터 전부를 걸고 지원을 했거든.”
시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처음 하롬 컴퍼니를 만난 건 겨우 1단계 상점에 머물 때였어. 그런데 하롬 컴퍼니가 접근해서 날 키워 줬고. 계약 조건도 간단해. 그들이 원하는 일을 처리하면 돈과 코인을 지급하지.”
“그걸로는 하롬 컴퍼니에 대한 충성심이 크지 않을 텐데.”
“충성심? 용병한테 그딴 건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있지.”
박광신과 상엽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살 수 있는 곳. 가장 강한 곳. 내가 가장 안전한 곳. 내 삶에 가장 유리한 곳.”
“그게 하롬 컴퍼니라는 건가?”
“그들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무기도 있고, 엄청난 실력의 갓코인 유저들도 있어. 내가 저 녀석과 엮이지만 않았으면 절대 거길 나오지 않았을 거야.”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좋아. 그런 놈들이 날 노린다는 거지?”
“정확히는 시비를 걸 대상을 찾는 거지. 그리고 넌 훌륭한 방아쇠가 될 거야.”
“방아쇠?”
“국가끼리의 분쟁을 만들 방아쇠. 그게 당겨지면 전쟁이 시작인 거지.”
상엽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시드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이렇게 될 거야. 벨기에에서 널 국가범죄자로 지목하고 한국 정부에 널 보내 달라고 하겠지. 범죄자라는 명목으로.”
“그건 이미 시작됐어.”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뭐 지금은 정부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설사 정상이라 해도 널 내줄 수는 없을 거야.”
상엽이 동의할 리도 없고, 한국에서 상엽이 사라진다는 건 치안과 지지율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국이 벨기에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유럽의 많은 국가가 한국을 비판할 거야. 그리고 점점 여론을 몰아가겠지.”
“그다음은 전쟁이라는 거야?”
“빙고.”
마치 소설책의 스토리를 말해 주듯 간단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된다면 한국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자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네가 이 상황을 벗어나고 한국도 무사한 방법이 있으니까.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그 말에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박광신이었다.
“확실한 방법?”
“간단해.”
시드는 시선을 상엽에게 옮기며 그 방법에 대해 말했다.
“하롬 컴퍼니에 들어가. 한국을 내버려두는 조건으로.”
상엽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시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너에 대한 비난 여론이 철회될 거야. 그럼 한국은 안전해지고, 넌 더 큰 배경을 얻게 되지. 너 정도의 실력이면 아마 최고의 대우를 받을 거야.”
“최고 대우라…….”
“잘 생각해 보면 손해 볼 것도 없어. 돈도 더 많아지고, 코인을 모으는 방법도 더 다양해지지. 거기다 안전하기까지 해.”
상엽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하자 시드의 말이 빨라졌다.
“이건 기회라고 친구. 어서 잡아.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상엽은 고민을 멈추고 박광신을 보았다.
“형. 어떻게 생각해?”
이번 문제는 박광신조차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속임수 없이 받아만 준다면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긴 해.”
“그런가?”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무슨 뜻이야?”
박광신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엽을 보며 말했다.
“동생은 그때부터 한국의 볼모가 되는 거야. 동생이 컴퍼니를 나오면 바로 한국이 위험해지는 거지.”
“평생 하롬 컴퍼니에 있어야 한다는 건가?”
“맞아.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어.”
이 문제는 시드도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결정은 상엽의 몫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상엽은 곧바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상엽은 한강공원을 걸었다.
-친구. 시간이 많지 않아. 3일 내로 결정해.
시드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미 2일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상엽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지만 서울의 한강공원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수많은 악재 속에서도 한국은 훌륭하게 모든 걸 극복했다. 그런 한국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시드의 말대로 이제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한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유럽 모든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었다.
“하롬 컴퍼니라.”
상엽은 벤치에 앉아 한강을 보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아저씨.”
별로 익숙한 호칭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저 아저씨 알아요.”
7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였다. 아이의 곁에는 젊은 엄마가 있었지만 이 상황을 말리지 않았다.
“날 알아?”
상엽은 앉은 채로 허리를 굽혀서 아이와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아저씨가 한국을 구해 줬어요. 그래서 알아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한 거야.”
“아니에요. 엄마가 그랬어요. 아저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아이는 그 말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작은 손에는 사탕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선물. 이건 아빠가 달라고 해도 안 줘요.”
“그런데 날 주는 거야?”
“응. 아저씨니까.”
꼬마는 상엽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인지 포장지에 문구가 써 있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여자아이는 배꼽에 손을 대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젊은 엄마도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자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킬 가치가 있는 사람도 많구나.”
상엽은 자연스레 과거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치열한 삶이라 좋은 사람들이 잊고 지냈다.
철거반 소장과 그의 가족들.
변종에게 죽어 버린 철거반 사람들.
동희와 송연지.
박광신과 흑점 길드도 있었다.
그의 고민이 깊어질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송연지였다.
-오빠. 어디예요?
“한강 보고 있어.”
-혼자요?
“응. 혼자.”
-실연이라도 당했어요? 청승맞게 왜 거길 혼자 가요?
“그러게.”
상엽의 짧은 대답을 들은 송연지의 말투가 바뀌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있구나. 지금 어디예요. 만나요.
“난 없다고 했는데.”
-말투는 있다고 하던데요.
상엽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이게 친구구나.’
상엽은 결국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30분 후, 예상과 달리 송연지는 동희와 함께 한강공원에 나타났다.
“둘이 만날 일이 있었어요. 변태 요리사의 연금술을 무기에 접목시킬 수 있나 실험해 보려고요.”
“이젠 너희들도 친구네.”
그 말에 송연지의 표정이 굳었고, 동희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처음에는 블랙과 화이트라고 절대 함께할 수 없다더니.”
지금까지 상엽이 빠진 자리에서는 그들이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
“자. 이제 무슨 일인지나 말해 봐요.”
“그래도 되는 걸까?”
“돼요.”
“응. 돼.”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고 결국 상엽은 모든 상황을 털어놓았다.
긴 이야기가 끝났다. 그러자 송연지는 상엽보다 훨씬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동희는 아니었다.
“상엽아. 난 네가 뭐 때문에 고민하는지 모르겠어.”
“야. 변태 요리사.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정리하자면 상엽이 하롬 컴퍼니에 들어가면 한국은 안전하지만 영원히 거길 못 나온다는 거잖아.”
“다 이해했네. 그런데 뭘 모르겠다는 거야?”
송연지가 괜히 심술을 부리며 묻자 동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롬 컴퍼니가 지금 협박을 하고 있는 거잖아. 난 상엽이가 하롬 컴퍼니에 간다고 한국이 안전할 것 같지 않은데?”
“그건 무슨 소리야?”
“유럽 연합을 움직일 수 있는 집단이 한국을 상엽이 너 하나 때문에 그냥 내버려둔다는 게 웃기잖아.”
상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송연지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동희는 좀 더 자세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롬 컴퍼니가 하는 짓을 보면 결국 자신들이 가장 강한 국가가 되겠다는 거잖아. 그럼 한국도 결국 다른 나라처럼 식민지가 되는 거고. 나쁜 놈은 믿는 게 아니야.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나쁜 놈을 믿어선 안 된다.
상엽은 그 말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럼 넌 어떻게 하는 게 정답 같아?”
상엽의 질문에 동희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몰라. 헤헤. 그냥 하롬 컴퍼니에 들어가는 건 최악 같아.”
상엽은 동희와 함께 웃었다.
모든 고민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오빠. 뭐에요? 뭔가 결정을 한 거 같은데.”
“했지. 너희들 덕분이야.”
상엽은 그 결정을 친구들에게 말했다.
“싸워야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는 하롬 컴퍼니와의 일전을 결심했다.
* * *
이른 아침.
시드는 콧노래를 부르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걸로 큰 건을 하나 성사시키겠군.”
그는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롬 컴퍼니에 상엽을 소개해 주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콧노래가 더욱 커졌다.
“결국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난 역시 훌륭한 협상가야.”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상엽이었다. 이에 그는 계약 성사를 확신했다.
그렇게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상엽이 먼저를 그를 보고 손을 들었다.
“자. 친구. 사인할 준비는 됐나?”
“무슨 사인?”
“그냥 상징적인 거지. 갈 준비가 됐냐는 뜻이야.”
“안 가.”
시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하롬 컴퍼니에 안 간다고.”
계약은 불발되었다. 그런데 상엽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세 개의 유물 조각이었다.
“50만 코인이야.”
“무슨 뜻이지?”
“정보를 사겠다는 거야.”
시드는 상엽이 어떤 결심을 했는지 짐작했다. 그렇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하롬 컴퍼니와…….”
“맞아. 싸울 거야. 그러니까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겨.”
시드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시드는 허탈한 듯이 웃었다.
“하긴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시드는 테이블 위에 있는 조각 중에 두 개를 챙겼다. 그리고 하나는 상엽에게 내밀었다.
“그건 내 치졸함에 대한 사과로 반납하지.”
“뭐 그렇게까지 자책할 건 없어.”
“나도 한때는 세계 최강을 꿈꾸는 갓코인 유저였는데 이런 짓이나 하고 있다니.”
상엽의 결정은 시드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 이게 너답지. 굽힐 거였으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했을 거고.”
시드는 상엽을 보며 결정을 내렸다.
“좋아. 계약 성립. 내가 알고 있는 하롬 컴퍼니에 대해서 전부 알려 주지. 내일이면 문서로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는 더 이상 상엽을 설득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가?’
시드는 지금 상황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넌 죽을 거야.”
“안 죽어.”
상엽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당한 목소리로 시드를 향해 물었다.
“내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기적이 일어나도 안 돼.”
그 말에 상엽이 웃으며 말했다.
“넌 기적보다 더 한 기적을 보게 될 거야.”
상엽의 당당함에 시드의 심장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