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00화 (100/300)

# 100

데카르트와 아레나 길드의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장소는 벨기에의 브뤼셀의 중심에 있는 흰색의 대저택이었다.

이곳은 아레나의 본부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 중에서는 넷만 갈게.”

상엽은 전면전을 앞두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의사를 직접 데카르트 길드장에게 전달했다.

“약속과 다르군.”

데카르트의 길드장은 키가 크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꺽다리였다.

‘무슨 장의사 같네.’

검은 옷을 입어서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 약속에는 원래 내가 없었지?”

“정상엽이라고 했던가?”

데카르트의 길드장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기싸움을 벌였다.

“맞아. 정상엽.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싸울 거야. 어때? 그리고 이건 선물.”

상엽은 동희에게 받은 음료수 박스를 내밀었다.

“충분하군.”

데카르트의 길드장도 더 이상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흑점 길드는 지켜야 돼.’

실력이 떨어지는 그들이 대규모 전투에 나선다면 사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상엽은 정예멤버만 움직이기로 했다.

상엽과 강청, 동희와 켄사로였다.

“동희야. 넌 담비만 조종해.”

“알았어. 상엽아. 조심해.”

“조심은 무슨. 동희야. 넌 저게 뭐로 보여?”

상엽은 저택 앞에 도열해 있는 아레나 길드원들을 가리켰다.

“실험체. 너는?”

“코인 밭. 수확만 하면 돼.”

둘의 대화에 켄사로는 허를 찌르는 개그를 본 사람처럼 웃었고 강청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 죽지 마. 나 죄책감 가지는 거 싫어. 맘 편히 사는 게 내 인생의 모토야.”

그 말을 남기며 상엽은 선두에 있는 데카르트 길드장에게 갔다.

“형.”

“형?”

“그렇게 부르면 안 돼?”

상엽의 질문에 길드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대로.”

허락을 받은 상엽은 시선을 정면에 있는 저택으로 옮겼다.

“내가 먼저 가도 돼?”

“자신 있다는 건가?”

“그게 내 스타일이라서.”

“저 녀석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허락하지?”

길드장의 시선은 상대 정면에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여자처럼 예쁜 얼굴을 가진 미청년이었다.

아레나의 길드장 론드.

데카르트의 길드장은 그를 직접 처리하고 싶어 했다.

“알았어. 저 녀석만 안 건드리면 되지?”

상엽은 길드장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한 발 늦게 따라와. 다치니까.”

“무모하군.”

길드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엽이 상대를 향해 뛰었다.

서로 진을 친 상태에서 오직 혼자만 달려 나간 것이다. 누가 봐도 이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다.

상엽이 양 진형의 가운데에 닿는 순간, 수십 개의 스킬이 그를 덮쳤다.

‘거산.’

상엽은 자신이 뛰어가는 방향에 거산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멀쩡하던 바닥에서 땅이 치솟아 원뿔 기둥이 형성되었고 상엽에게 향하던 모든 스킬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상엽은 이 틈을 이용해 고스트 실드를 밟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상엽의 거산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다시 스킬이 쏟아졌고 몇몇 전사들은 같은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저런…….’

이를 지켜보던 동희는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당했어.’

아레나 길드에서 사용한 스킬의 향연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할 곳이 없었고 고스트 실드로 막을 수준도 아니었다.

데카르트는 그 모습을 보고서 혀를 찼다.

‘그저 멍청한 놈이었군.’

상엽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 상엽이 소멸할 거라 예상했다.

그때였다.

상엽의 발 아래로 거대한 해머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상엽은 해머의 윗부분에 바짝 엎드려 몸을 숨겼다.

낙하를 시작한 해머는 고스트 실드와 달리 모든 스킬들을 튼튼히 버텨 냈다.

“자. 폭탄 배달.”

해머는 아레나 길드원들이 도열에 있는 중앙에 떨어졌다. 상엽을 잡을 거라 확신했던 그들은 다급히 스킬을 멈추고 몸을 피했다.

그리고 해머가 떨어졌다.

상엽은 상승한 모든 힘을 그 한 방에 실었다.

쩌어엉!

해머와 함께 떨어진 상엽이 바닥을 때리는 순간 미사일이 떨어진 것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공기마저 밀어낸 폭발은 주변을 일순간 진공 상태로 만들었고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을 무너트렸다.

폭발의 파편은 총알 같은 무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졌고 해머가 닿은 땅은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크레이터 주변의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져 완전히 뒤집어졌다.

모두가 그 한 방에 정신이 멍해졌다. 충분히 피했다고 생각했던 아레나 길드원 스무 명이 그 한 방에 소멸했다.

“전쟁 시작!”

폭발 후의 정적 속에서 상엽의 외침이 들렸다. 그 순간 데카르트의 길드원이 일제히 돌진했다.

“목숨을 다해 싸워라!”

아레나 길드장 론드가 이를 악물며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데카르트에게 유리한 싸움이었다. 아레나는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 전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상엽의 선공은 힘의 기울기를 더욱 극명하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데카르트의 전사들은 동희의 음료까지 지원을 받은 상태였다.

언뜻 보기에 첫 충돌은 치열해 보였지만 죽어 나가는 쪽은 대부분 아레나였다.

그중에서도 상엽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학살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다. 상엽은 짐승처럼 전장을 누비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상엽은 팔각대시를 이용해 상식에서 벗어난 움직임을 보였고, 유령처럼 그 뒤를 따라붙는 잔상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폭발을 일으켰다.

게다가 상엽과 개인전투를 벌일 때면 어김없이 추종자가 나타나 등 뒤에서 급소를 노렸다.

조금이라도 후방에 신경을 쓰면 상엽의 망치가 어김없이 신체를 부숴 버렸다.

“유령아. 가자.”

상엽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레나 길드원들에겐 또 하나의 악재가 있었다.

바로 담비들이었다.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담비들은 후방에서 지원을 하던 자들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지원이 끊기고 원거리 스킬이 정확도를 잃자 전사들까지 어려움에 빠졌다.

‘이겼어.’

이는 상엽의 생각뿐만이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된 지 겨우 10분 만에 모든 이는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결과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저 형이 문제네.”

전장에서 유일하게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두 길드장의 대결이었다.

길드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누구도 그 싸움에 도움을 주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얇은 검을 쓰는 론드와 짧은 도끼를 양손에 쥔 데카르트 길드장의 대결은 승패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다.

‘일단 다른 곳부터 처리하고.’

상엽은 그들의 싸움을 내버려두고 자신이 할 일에 집중했다.

설사 데카르트의 길드장이 죽는다고 해도 상엽으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을 제외한 싸움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레나 길드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성난 맹수처럼 달려드는 상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하나 빛으로 흩어져 이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끝도 없이 전장을 누비던 상엽도 어느 순간 목표가 사라졌다. 더 이상 처리할 상대가 없는 것이다.

“유령아. 전부 기억했지?”

-네. 주인님.

“월급 챙기러 가자.”

상엽은 자신이 처리한 자들의 조각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각 획득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다.

“유령아. 내가 지금 무지 찜찜하거든. 왜 그럴까?”

이번에는 추종자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동희가 다가와서 뭔가를 물었다.

“상엽아. 그 여자 봤어?”

“그 여자?”

“텔레포터.”

상엽은 뒷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없었어.’

텔레포터 마리는 이번 싸움에서 보이지 않았다.

상엽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유령아. 찾아.”

추종자가 위성처럼 하늘로 치솟아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다 무너진 건물 뒤쪽에서 움직임을 포착했다.

-주인님. 찾았습니다.

마리는 아직 근처에 있었다. 상엽은 곧장 추종자의 시선이 머문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리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로 악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냥 안 둬.”

그녀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상엽이 스트라이크로 다가왔지만 블링크라는 단거리 순간이동 스킬로 간단히 피해 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유언 접수. 투정은 저승에서 부려.”

상엽은 집요하게 그녀를 뒤쫓았다. 유령추종자까지 추격에 나섰지만 마리도 만만치 않았다.

‘제길. 잡을 수가 없어.’

속도에는 꽤 자신이 있었지만 마리는 그 부분에 특화된 직업이었다.

상엽을 죽일 수는 없어도 도망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 마리였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건 아무도 못 가져. 차라리 없애 버리겠어.”

“무슨 개소리야?”

“아무도 못 가져!”

마리는 그 말을 하더니 전투를 포기하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설마…….”

상엽의 그녀의 독기 어린 외침을 듣자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한국.’

그녀가 한국으로 가서 일반인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

“망할!”

상엽은 급히 상점소환권을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브뤼허에 있는 그레이 상점 라이라의 소환권이였다.

그런데 이를 사용하려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죽여라!”

“길드장님의 복수다!”

데카르트의 길드장이 소멸했다. 론드가 이긴 것이다. 그리고 상대 길드장을 처리한 론드는 얇은 검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순간 그의 주변으로 하얀 갑옷을 입은 유령들이 일어났다.

-유산 정의의 검.

-특수 스킬 정의의 군대를 소환한다.

최고라고 평가 받는 유산들 중에 하나였다. 그 평가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전황이 바뀌어 버린 느낌이었다. 게다가 소환된 유령 군대의 중앙에 상엽의 친구들이 있었다.

“쳇.”

상엽은 소환권을 집어넣고 다시 전장으로 뛰었다.

“비켜!”

그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소리치며 스트라이크로 론드를 향해 뛰었다.

쾅!

상엽의 해머는 론드를 지나쳐 바닥을 찍었다. 론드는 단 한 번의 동작으로 가볍게 상엽의 뒤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뒤로 또 하나의 상엽이 뒤따르고 있었다.

유령잔상.

데카르트 길드장의 싸움에 열중하던 론드는 유령잔상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론드도 만만치 않았다. 급히 바닥을 굴러 유령잔상을 피해 냈다.

그런데 그가 있던 땅이 갑자기 치솟았다.

거산 소환이었다. 론드는 다시금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방향은 다시 다가오는 상엽이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상엽을 향해 달렸다.

정면충돌은 자신이 있던 상엽은 해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상대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쾅!

‘어?’

상엽의 해머는 론드의 머리가 아니라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옆구리가 뜨끔했다. 그리고 곧 피가 튀었다.

론드가 해머를 피하고 지나치며 옆구리를 그은 것이다. 그나마 테리아의 은총이 10단계로 완성되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충격이었다.

‘급하게 싸울 상대가 아니야.’

상엽은 단숨에 처리하려던 생각을 접고 론드와 마주 섰다.

‘한국은 잊자. 이 녀석부터 처리해야 돼.’

그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한편.

마리는 상엽의 예상대로 워프존을 만들어 한국으로 갔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정신 나간 여자처럼 마리는 그 말을 반복했다.

“무슨 위험한 생각을 하는 거야?”

“신경 꺼!”

레나의 질문에 마리는 그렇게 외치며 클럽을 나섰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서로 애정을 확인하는 일반인 커플이 있었다. 그런데 마리는 그들을 보더니 다짜고짜 손을 뻗었다.

푹!

그녀의 양손이 각각 남녀의 심장을 잡았다. 피부를 뚫고 들어간 손에 힘을 주자 심장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두 명의 남녀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지자 골목에 있던 다른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사, 살인이다!”

“크크큭!”

피가 잔뜩 묻은 손을 꺼낸 마리는 악귀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무도 못 막아. 한국은 내 손으로 끝장낼 거야. 내 손으로!”

“누구 마음대로?”

갑작스런 질문에 마리는 급히 몸을 돌렸다. 누군가 접근한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그녀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움직이면 더 아플 거야.”

마리의 등을 관통한 긴 바늘이 심장을 파고든 상태였다. 그 순간부터 마리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갓코인 유저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내 이름은 송연지. 네가 끝장내려던 한국인이야.”

마리의 눈빛이 간절해졌다. 분노는 사라졌고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눈빛으로 송연지에게 빌고 또 빌었다.

‘살려 줘.’

송연지는 이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심장이 찔리면 이렇게 아파. 잘 가.”

마리의 몸이 빛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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