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9화 (99/300)

# 99

“미안. 인사할 시간이 없어서.”

그레이 상점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온 상엽은 레나를 뒤로하고 곧장 검찰청을 향해 뛰었다.

-브뤼셀에 지원 간 걸 확인했어.

결국 한국에 남은 이들은 소수였고, 그나마 전염병의 막바지 통증을 느끼고 있는 자들이었다.

‘아직 격리되어 있어.’

격리실은 검찰청과 멀지 않은 개인 병원에 마련되어 있었다.

본래 일반 환자로 붐비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레나의 요청으로 인해 진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많은 보상으로 병원 측에서는 손해가 없지만 환자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든 대가야.”

콰쾅!

상엽은 그들의 병실 벽을 부수며 난입을 시도했다.

최고 통증이 막 끝난 이들은 모두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여전히 통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수가 없었다.

상엽은 그런 이들을 철저히 유린했다.

“비겁한…….”

“미안. 끝까지 못 들었네.”

20명의 환자들은 제대로 대비할 틈도 없이 폭발과 충격으로 인해 빛으로 흩어졌다.

몇몇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난전으로 인해 제대로 스킬을 펼칠 수도 없었다.

“그러게. 왜 남의 나라에 자빠져 있어? 아프면 집에 가야지.”

상엽은 남은 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이 소식을 박광신에게 전했다.

-벨기에에서 지원군이 출발했어.

“아저씨 형한테 조심하라고 해. 내 친구도 잘 돌봐 주고.”

한국에 온 이는 상엽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몸을 숨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지원군이 출발한 순간, 강청과 동희가 프랑스에 있는 아레나의 지부를 습격했다.

본진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아레나가 이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충분한 인원을 남겨 놓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50명의 뛰어난 전투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균 수준이 흑점을 훨씬 웃도는 터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또 한 번 그들의 착각이었다.

습격에 또 다른 단체가 끼어든 것이다.

데스문.

일본의 블랙 길드가 흑점과 함께 총공세를 펼쳤다.

-피해를 줄이려면 차라리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켄사로의 결정은 상엽이 원하는 대로였다.

이미 마리를 통해 한국으로 대규모 지원군이 넘어온 터라 그들은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대규모 워프존에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엽은 병원을 습격한 뒤로 몸을 숨겨 버렸다.

결국 아레나의 프랑스 지부는 습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흑점과 데스문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는 행운이 아니었다.

-상엽아. 여기 끝났어.

상엽은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프랑스 지부가 무너진 이유가 바로 동희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동희의 음료가 지급되었고 이는 숫자가 많을수록 큰 힘을 발휘했다.

100여 명이 상점 1단계가 넘는 능력 상승을 가진 채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담비들까지 전투에 합류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래?”

아레나의 피해 인원이 100명을 넘어갔다.

“난 또 계산을 벗어날 거 같은데.”

상엽은 기다리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오상식의 메시지였다.

상엽이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시간이 왔다.

오상식과 만난 곳은 양평의 이름 없는 산이었다. 이곳은 가연수를 만난 곳이기도 했다.

“형. 잘 찾아왔네.”

그들은 긴 인사를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1,500만 코인입니다.”

상엽은 엄청난 수치에 만족했다.

본래 700만 코인으로 예상됐지만 그동안 상엽이 활약을 하면서 처분할 것이 더욱 늘어났다.

“이것도 있는데.”

오늘 병원에서 처리한 자들의 전리품이었다.

“유물은 바로 흡수하시고, 유산은 정리하겠습니다.”

“형. 그런데 괜찮아?”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나 악당이잖아. 한국 역사상 최고의 악당.”

“저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상식은 실제로 그런 여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만 형.”

상엽은 돌아서는 오상식에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동희가 대량으로 주었던 것 중에 한 병을 꺼낸 것이다.

“필요할 때가 있을 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오상식은 눈인사를 하더니 음료수를 받았다.

“형. 고마워.”

“저도 충분히 이득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전부 내가 죽는다던데?”

“항상 그런 싸움에서 이겨 오셨으니까요. 이번에도 믿습니다.”

“뭔가 힘이 되는데?”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오상식의 덤덤한 대답이 상엽에겐 자신감이 되었다.

‘훌륭한 파트너야.’

그가 빨리 떠나는 것은 상엽을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강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가 떠나고 혼자가 된 상엽은 좀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마지막 계산을 마쳤다.

‘2,000만 코인.’

오늘 처리한 10명 중에 70만 코인짜리 유물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그동안 상대를 소멸시키고 모아 온 코인만 200만 코인이 넘었고 획득한 유물을 전부 흡수하자 2,000만 코인이 넘는 수치가 나왔다.

“레나 만날 시간이네.”

그는 상점소환서를 사용했다.

레나는 평소와 달리 수수한 모습이었다.

어깨가 살짝 드러나긴 하지만 몸매를 가리는 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그것도 어울리네.”

“용케 살아 있었네.”

“장소 이야기를 안 하는 거 보니까 나한테 관심이 먼저 가나 봐?”

“그 이야기는 이제 지겨워서 안 하는 거야.”

상엽은 레나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늘 매상은 내가 책임질게.”

“짠돌이가 얼마나 쓰는지 볼까?”

레나는 상엽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2,000만이 넘는 코인 수치를 보았다.

“너 지금 놀란 거 맞지?”

“그럴 리가 없잖아.”

“더 놀라운 게 있어.”

상엽은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온 중년처럼 말했다.

“이거 전부 너한테 쓸 거야.”

레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팁이라도 주겠다는 거야? 결국 스킬을 강화하겠다는 건 널 위한 거 같은데.”

“나 허세 부리는 데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별로 안 어울려서.”

“쳇. 알았어. 그럼 바로 시작해.”

상엽은 결정한 바를 빠르게 말했다.

“순간증폭 10단계, 유령잔상 7단계, 팔각대시 7단계, 유령추종자 8단계, 마지막으로 테리아의 은총 10단계까지.”

3단계에 머물러 있던 순간증폭은 시작코인이 1천 코인이었다. 코인의 수치가 커진 만큼 충분히 강화할 수 있음에도 공격력에 자신이 있어 내버려 두었던 스킬이었다.

얼마 전, 세 명의 사내가 나서긴 했지만 공격이 막힌 터라 상엽은 순간증폭 10단계를 결정했다.

그리고 유령잔상과 팔각대시는 상엽이 상상한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상엽의 뒤로 잔상이 계속해서 따라붙었고, 상대에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었다.

그래서 4단계였던 팔각대시와 유령잔상을 무려 3단계씩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유령잔상은 아오나 스킬의 시너지가 있어서 설명된 수치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했다.

‘방어가 중요해졌어.’

상엽이 가장 많은 코인을 투자하는 것은 5단계였던 테리아의 은총을 10단계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신의 오함마에겐 미안하지만.’

여러 명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만큼 방어력을 올리는 게 중요했고 그의 선택은 테리아의 은총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유령 추종자는 싸움의 변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추종자는 혼자서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갓코인 유저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찰이나 시선을 끄는 능력을 탁월했지만 전투에서는 아쉬운 면이 있었다.

유령잔상을 강화하면서 함께 강화를 하면 이젠 갓코인 유저도 무시하지 못할 힘이 발휘될 것이라 생각했다.

“총 2천만 천육백 코인이야.”

“결제해.”

“결제? 무슨 카드 써?”

“아. 미안. 금액이 워낙 커서 버릇이 됐네.”

그렇게 상엽은 2천만 코인을 오직 스킬과 유산 강화에만 투자했다.

“너 울어?”

“아니야. 이건 그냥 배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조건 반사 같은 거야.”

상엽의 남은 코인은 120코인이었다.

2천만이 넘던 수치가 120으로 떨어지자 강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허탈함이 널 지켜 줄 거야. 이제 스킬도 훌륭해졌네.”

“네가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어?”

“객관적으로 말해 준 거야. 이제는 제법 밸런스가 맞아 가는 느낌이야.”

상엽은 자신의 스킬을 다시 한 번 살폈다.

헌터아이 4단계.

스트라이크 10단계.

순간증폭 10단계.

고스트 실드 10단계.

고스트 체인 10단계.

유령추종자 8단계.

팔각대시 7단계.

신의 소통 4단계.

수영 7단계.

수중호흡 7단계.

유령잔상 7단계.

여기에 유산까지 더하면 더 많은 스킬이 있었다.

테리아의 은총 – 10단계 특수스킬 회생.

드바란의 투구 – 5단계 특수스킬 광기의 외침.

파이어스의 망치 - 5단계 특수스킬 집행자의 심판.

거산의 손아귀 – 5단계 특수스킬 거산 소환.

이름 없는 신의 반지.

상엽은 스킬들을 보자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걸어온 길이었다.

“빨리 시험해 보고 싶은 느낌이네. 알았어. 그만 꺼져 줄게.”

레나는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에 상엽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심해서 들어가. 상황만 되면 집까지 바래다줄 텐데.”

“그건 내가 싫어서.”

“잘 가. 아참 그리고.”

돌아서려던 레나가 상엽을 다시 보았다. 상엽은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걱정하지 마. 안 죽을 테니까.”

“쳇.”

그녀는 결국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또 봐.”

“그렇게 될 거야.”

레나는 그제야 웃으며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홀로 남은 상엽은 곧바로 스킬 확인에 들어갔다.

그가 주목한 건 세 가지였다.

팔각대시 5단계 – 방향이 바뀌는 순간 속도가 증가한다.

유령잔상 5단계 – 잔상이 뒤따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테리아의 은총 특수스킬 회생 – 30일에 한 번 모든 상처를 완벽히 회복하게 된다.

본래 1년에 한 번이던 회생이 30일로 줄었다.

그리고 팔각대시와 유령잔상의 5단계 상승효과는 더 현란한 움직임이 가능하게 했다.

“빨리 싸워 보고 싶은데.”

상엽이 변종이라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소음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상엽은 세로로 갈라진 바위를 보았다.

“너 뭐하냐?”

바위를 쪼갠 건 유령추종자였다.

추종자는 이제 보이지 않던 하체의 모습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먹만으로 바위를 쪼개 버렸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알면 좀 잘해.”

추종자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추종자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 벌어 놓은 돈 다 썼으니까 이제 다시 일하러 가 볼까?”

-주인님께 충성을!

상엽은 추종자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 * *

마리는 화가 났다. 그럼에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참으며 워프존을 만들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이 넘어올 수 있는 워프존은 이틀에 한 번도 버거운 스킬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늘만 두 번째 스킬을 쓰고 있었다.

지독한 두통이 뒤따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벌레처럼 생각했던 상엽과 흑점 길드에게 아레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받은 피해만으로도 그녀의 작전은 실패나 다름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습격해서 처리했더라도 이 정도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상의 피해를 받으면 한국에서 철수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유럽을 지켜야 하니까.’

유럽에는 1위를 다투는 라이벌 화이트 길드가 있었다. 게다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블랙 길드와 연합 길드들이 있었다.

지금 상황에는 모든 길드에게 기회가 있고, 틈을 보이면 잡아먹히게 된다.

그리고 아레나 길드는 좋은 전리품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한국을 노렸듯이 다른 길드가 벨기에를 노릴 것이다.

‘불안해. 놈들이 이걸 모르지 않을 거야.’

마리가 죽을 만큼 싫으면서도 워프존을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100명이 넘는 손실.

120명의 이르는 전염병 환자.

한국으로 와 버린 50명의 지원군.

이 모든 것이 현재 아레나 길드의 현실이었다.

‘박광신. 그 녀석이라면 이걸 이용할 거야.’

그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보며 마리는 박광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집중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리고 힘겨운 말투로 보고를 했다.

“데카르트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데카르트.

유럽 최고의 블랙 길드.

아레나 길드가 싸워야 하는 건 이제 한국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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