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7화 (97/300)

# 97

갓코인 유저들은 다양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범죄자를 비롯해 성직자까지 직업에 따른 제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약 중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마약 그들에게 갓코인은 또 다른 마약이었다.

신체 개조와 강화를 하게 되면 마약에 대한 후유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그레이 상점을 통해서 완벽한 치료도 가능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본래 마약이란 인간의 가장 민감한 감각을 끌어낸다. 그런데 갓코인 유저가 되면 이런 자극이 약하게 느껴지게 된다.

강한 자극에 길들여진 그들은 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마약을 찾게 된다.

게다가 더욱 강하고 독한 약을 찾기 마련이었다.

“크크.”

아레나 길드의 한센은 환각에 빠져 있었다. 그의 곁에는 똑같이 환각에 빠진 다섯 명의 여인이 나체로 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한센은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았다. 여인에 비해 다섯 배의 약물을 주입했지만 4단계 갓코인 유저의 이성을 삼키지는 못했다.

모두가 나체로 뒹구는 호텔로 유일하게 옷을 입은 여인이 들어섰다.

옷을 입었다고 하지만 망사스타킹에 핫팬츠는 오히려 더욱 자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한 손에 주사기를 들고 다가서는 여인은 바로 가연수였다.

한센은 그녀를 보는 순간 짐승처럼 달려들어 허리를 감았다.

“허니가 날 좀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좋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가연수는 능숙하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며 주사기를 세웠다.

“좀 더 강한 걸로 준비했는데.”

“지금은 널 함께 가지고 싶은데. 그동안 너무 기다렸단 말이지.”

“나는 좀 비싸. 괜찮겠어?”

“기다려 주는 건 끝났어.”

한센은 그녀의 허리를 감고 셔츠를 찢어 버렸다. 거친 손길에 속옷이 드러났지만 가연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좋아. 대신 나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

가연수는 들고 있던 주사기를 자신의 팔뚝에 꽂았다. 그리고 하얀 약물을 주입했다.

그녀의 눈이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감기고 곧 뜨거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난 준비됐는데. 넌 어때?”

가연수는 또 하나의 주사기를 꺼냈다. 그러자 한센은 가연수의 핫팬츠마저 찢어 버렸다.

“빨리!”

그는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가연수는 이에 혀로 입술을 적시며 주사기를 가져갔다.

한센은 아무런 의심 없이 약물을 받아들였다.

짜릿한 감각이 그의 몸으로 퍼져 나갔고 곧 나른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한센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약이 강한 거야. 곧 괜찮아질 거야.”

가연수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한센을 감쌌다. 그리고 곧 한센은 정신을 잃었다.

-10분 안에 빠져나와.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마.

상엽은 그렇게 말했다. 가연수는 한센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렸다.

* * *

가연수는 상엽이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어서 와. 여기가 우리 아지트야.”

“아지트라면 무슨 건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고정관념이야. 여기가 훨씬 안전하고 쉴 곳도 많아.”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양평의 이름 없는 산이었다.

작은 산에 상엽과 동희가 머물렀고, 멀지 않은 산에 흑점 길드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여긴 내 친구 동희. 네가 주입한 약물을 만든 사람이야.”

“이제 그게 뭔지 말해 줄래?”

가연수의 질문에 동희가 대답을 했다.

“세균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가연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동희는 그 표정을 보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명이 좀 어려웠지? 미안. 자세히 말해 줄게. 그 약은 전염병 바이러스가 있어. 물론 막 죽이고 그 정도 위력은 아니야. 극심한 근육통을 일으키는 정도야.”

“그렇게 친절한 말투로 말하지 말아 줄래? 소름 돋잖아.”

“아. 미안.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전염병은 갓코인 유저에게만 영향이 있어.”

“그런 게 가능해?”

“응. 가능해. 정확히는 일반인도 전염이 되지만 미미한 통증을 일으키는 정도야. 그런데 강화된 유저의 근육에만 반응해 큰 통증을 유발하는 거지.”

그 말을 하면서 동희는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환약이 들려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진흙을 뭉쳐 놓은 것 같았다.

“백신이야. 먹어.”

“전혀 백신 같지 않은데?”

“효과는 같아.”

가연수는 상엽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서야 백신을 복용했다.

“3일만 쉬어. 3일 후부터는 재미있어질 테니까.”

“왜 3일이야?”

“녀석들이 제일 아픈 시간이거든.”

근육통의 효과는 열흘 정도 지속된다. 전염 후에 조금씩 나타나는 근육통은 3일째가 되면 최고조에 달한다. 통증은 사흘 정도 지속되고 그 후에 점점 사라진다.

“해독제가 없으면 그레이 상점에서 치료하는 수밖에 없어.”

“난 뭘 하면 돼?”

“보호해 줘야 할 사람이 있어.”

“누구?”

“경찰 누나. 지금 군인 아저씨랑 정득수라는 국회의원을 보호하고 있어. 싸움이 시작되면 그들도 위험할 거야.”

파면을 당한 그들은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다.

“알았어.”

가연수가 돌아가자 상엽은 동희와 함께 다음 작전을 실행했다.

‘파악한 건 다섯 지점이야.’

담비들은 다섯 지점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엽과 동희, 박광신과 강청, 담비 대장이 각 지점의 책임을 맡았다.

‘분명히 올 거야.’

전염병을 퍼트린 지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동희는 근육통이라고 했지만 상엽은 이를 직접 겪어 보고 지옥 같은 고통을 맛봤다.

그게 1일차였다. 그래서 상엽은 서울에 존재하는 다섯 지점의 그레이 상점을 지켰다.

상엽은 가장 익숙한 레나의 클럽 주변을 지켰다. 클럽 내부는 전투가 불가능한 지점이었지만 길거리는 아니었다.

‘마리가 오진 않겠지?’

그는 여전히 마리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검찰청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 만에 아레나는 한국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공식적으로 넘어온 인원만 50명이었고, 마리의 워프존을 통해 이동도 활발해졌다.

아직은 그들이 여론을 생각해서 무리한 정책을 쓰지 않고 있지만 이미 정치적으로는 많은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핵심 인물들이 모두 아레나 편에 섰던 자들로 바뀌었고 법률개정도 준비 중이었다.

‘결국 대통령도 허수아비가 될 텐데.’

지금 그런 과정이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국민들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강력한 우방을 얻었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었다.

그나마 의식 있는 자들이 현실을 말했지만 큰 목소리에 묻힌 속삭임일 뿐이었다.

‘왔어.’

여러 생각을 하던 상엽은 적의 등장에 숨을 죽였다.

인원은 2명.

그들은 마스크를 하고 인파 사이에 섞여 있었다.

‘많이 아플 텐데.’

그들은 애써 태연한 척 걷고 있지만 상엽의 눈에는 미세한 떨림이 정확히 보였다.

‘마리가 아닌 건 아쉽지만.’

사람이 많은 거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안심하고 있었다.

“악당이 간다.”

상엽은 곧장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상대도 실력이 있는 만큼 뛰어난 반응속도를 보였다. 하지만 근육의 통증이 그들을 느림보로 만들었다.

쾅!

둘은 기습적인 첫 공격을 피하며 양쪽으로 흩어졌다. 훌륭한 대처였지만 상엽의 이어지는 공격까지는 막지 못했다.

“저, 정상엽이다!”

“악!”

폭발의 혼란이 끝나자 일반인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상엽은 예상했던 반응이라 전투에 집중했다.

한 사내는 이미 처리가 되었고 나머지 한 명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추격전은 그에게 유리한 선택이 아니었다.

평소 속도를 내지 못한 사내는 곧 상엽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뭘 그렇게 억울한 표정이야? 도둑놈 주제에.”

쾅!

상엽은 결국 사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두 명은 좀 아쉬운데.’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으니 다시 이곳을 찾는 자는 없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간다.’

상엽은 답답했던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지난 보름 동안 몸을 숨기고 은밀히 움직일 때마다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 집인데.’

상엽은 그때의 답답함을 분노로 바꾸며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다.

* * *

아레나의 대처는 빨랐다.

다섯 곳의 그레이 상점에서 여덟 명이 소멸했다. 상엽의 함정이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극한의 근육통이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수 없도록 했다.

-그레이 상점은 소환서로 사용해. 직접 가는 건 금지야.

한국의 책임자인 마리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본부에 치료사 요청하고, 지원 병력 요청해.

마리는 화가 끓었지만 적절한 명령을 내렸다.

-녀석들 위치 파악하고 절대 놓치지 마. 오늘로 전부 끝낼 테니까.

그녀는 오히려 이 사건을 기회로 삼았다.

‘그냥 꼭꼭 숨어 있으면 하루라도 더 살 텐데. 역시 미련한 녀석들이야.’

마리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에 일어난 사건은 자정이 넘어가면서 그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정상엽이 서울을 벗어났습니다. 변종 출현지역으로 진입했습니다.

마리는 다른 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정상엽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정상엽만 잡으면 돼.’

마리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담비들의 위치 파악해. 그전에는 절대 접촉하지 마.”

그녀는 정상엽보다 담비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변수라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자들이 있는 곳을 슬쩍 건드려 봐.”

이 명령은 충실히 실행되었고 담비들의 숫자가 대부분 파악되었다.

-정상엽 근처에는 담비가 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디어 마리에게 기회가 왔다.

“정예 전투요원 투입해. 목표는 사살.”

마리는 그 명령을 내리고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와인 저장고를 열었다.

“이 방이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그녀는 치우지 말라고 지시한 쓰레기통을 보았다. 그곳에는 명패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검찰총장.

검찰총장의 명패는 쓰레기로 버려져 있었다. 이는 본래 이 방의 주인이었던 자의 명패였다.

검찰총장의 집무실을 개인 사무실로 바꾼 그녀는 창가로 걸어가 높이 떠오른 달을 보았다.

“긴 하루였어.”

갑작스런 전염병 소식에 그녀는 이를 처리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원인을 파악하고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를 지시하는 것 모두 그녀의 명령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상엽. 너도 이제 끝이야.”

그녀는 긴 하루의 마음이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 믿었다.

“악당 소멸. 호호.”

그녀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와인잔에 닿았다.

같은 시간.

상엽은 추격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10명.’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상대의 실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거리가 500미터까지 줄어들었을 때, 상엽은 이동을 멈췄다.

그가 대비를 할 틈도 없이 어느새 10명의 상엽의 정면에 내려섰다.

모두 4단계 이상의 유저들이었다.

“인사는 생략하지. 한국 관광을 해야 돼서. 허락된 밤이 하루밖에 없거든.”

10명의 리더는 대머리 흑인이었다. 그는 뛰어난 전투능력을 인정받아 10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의 팀장이 되었다.

이번에 마리의 요청을 받아 막 한국에 도착한 터였다.

“한국 여자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해가 뜨기 전엔 확인할 수 있겠군.”

“대장 나는 3명.”

“나는 5명.”

그들은 경쟁하듯 숫자를 높였다.

“야야. 외국인들. 그건 일단 날 잡고 나서 해야지.”

“허세라도 부리겠다는 건가?”

상엽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대머리 흑인은 그것이 허세라 판단했다.

“빨리 끝내지.”

리더가 명령을 내리자 그를 제외한 9명이 일제히 뛰어올라 스킬을 펼쳤다.

상엽은 엄청난 스킬의 폭풍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벽은 다양한 위협을 동반한 채로 급격히 다가왔다.

그 순간, 상엽이 공중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사선으로 튀어 오른 상엽을 본 아레나 길드원들은 능숙하게 공격 형태를 바꿨다.

그들은 곧바로 상엽을 향해 뛰어오르며 접근전을 펼쳤다.

하나하나가 날카로웠고 급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상엽의 경로가 바뀌었다. 공중을 향해 팔각대시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레나 길드의 정보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었다.

그들은 상엽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향을 막았다. 하지만 상엽은 당황하지 않고 정면을 향해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잠시 시야를 가렸지만 상대는 거침없이 공격을 계속했다.

그때, 상엽의 몸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고스트 실드를 밟고 내려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허용되지 않았다. 9명의 포위망이 그대로 형성되며 함께 떨어졌다.

겨우 한 발 차이였다. 그런데 그 한 발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리더가 상엽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리더의 은빛 창은 정확히 상엽의 목을 노렸다. 엄청난 기세는 드바란의 투구로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에 상엽은 고스트 체인으로 창을 쳐 내며 겨우 방향을 바꿨다.

대신 포위망을 벗어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팟!

그럼에도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리더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든 것이다.

그때, 리더 앞으로 세 명의 사내가 나타나 동시에 방어스킬을 펼쳤다.

상엽은 이를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콰쾅!

엄청난 기파의 폭풍이 몰아쳤다. 대지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고 주변은 폐허로 변했다.

방어스킬은 산산조각이 났고 상엽의 전진도 멈췄다.

“크크.”

리더가 웃었다. 상엽이 자랑하던 정면 공격이 드디어 막힌 것이다.

그런데 상엽도 웃었다.

“병신.”

상엽의 몸이 이상한 잔상과 겹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잔상은 상엽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어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위력은 20퍼센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방어스킬은 사라진 후였다.

-아오나의 유령잔상.

-시전자의 행동을 따라하는 잔상이 생긴다.

1단계 - 시전자의 힘을 1% 발휘한다.

2단계 - 시전자의 힘을 3% 발휘한다.

3단계 - 시전자의 힘을 5% 발휘한다.

4단계 - 시전자의 힘을 10% 발휘한다.

“나는 10명. 개새끼들아.”

처음 펼쳐진 스킬은 앞을 막았던 세 명의 사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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