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6화 (96/300)

# 96

검찰청 취조실이었다.

상엽은 그곳에서 10분을 기다렸다.

“너희들이 준비한 게 뭐든 빨리해. 지루해지고 있으니까.”

검찰청 입구에서 충돌은 없었다. 두 명의 금발 유럽인은 상엽을 그냥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천정 모서리의 카메라와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취조실에서 상엽은 한쪽 벽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너희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는지 똑똑히 지켜볼 거야. 엿 같은 공무원 새끼들.”

상엽은 이곳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찾아온 것은 단순한 오기가 아니었다.

‘숨어 있지 말고 튀어나와.’

결국 상엽의 돌발 행동을 우려했는지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40대 중반의 사내가 들어왔다.

“김차웅 검사입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엽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상엽의 맞은편에 앉은 김차웅은 서류를 뒤적일 뿐, 말이 없었다.

“왜? 할 말이 없어? 없는 죄를 만들려니까 골치가 아파?”

김차웅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힘이 없는 놈이었으면 네가 어떻게 했을까? 겁주고 윽박지르고, 그래서 없는 죄를 있다고 만들고.”

상엽은 외부에서도 여러 사람이 듣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반대로 힘이 있으면 있는 죄도 없애 주고, 그걸로 커넥션이나 만들고.”

그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자! 해 보라고! 힘 있는 놈한테 없는 죄 만드는 거! 나도 어떻게 하는지 참 궁금하거든!”

상엽이 소리를 높이자 취조실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김차웅은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상엽의 기세에 눌린 김차웅은 결국 다급히 취조실을 나갔다.

“죄송합니다? 알긴 아네. 병신 새끼들.”

김차웅이 떠나고 취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할 말 없으면 간다.”

상엽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 다시 취조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금발 머리의 귀여운 여인이었다.

“안녕.”

상대는 불어를 사용했지만 상엽에겐 정확히 들렸다.

“그래. 안녕. 왔으면 앉아.”

상엽은 마치 주인처럼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내 이름은 마리야. 어차피 물어볼 거 같아서 미리 말해 주는 거야.”

“관심 없는데.”

“나한테 관심 없는 남자는 본 적이 없어서.”

마리는 금발을 찰랑이며 상엽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엽은 이를 보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검사야?”

“아니.”

“그럼 수사관이야?”

“당연히 아니야.”

상엽은 이를 듣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이들을 향해 외쳤다.

“검찰청 꼬라지 잘 돌아간다! 사명감이 없으면 자존심이라도 있든가! 이 병신들아!”

이 말을 들은 검사와 수사관들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검찰청 내부에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고, 마음대로 정보를 보는 것도 모자라 취조실까지 들어왔다.

“화를 내려면 나한테 내야지. 왜 벌레들한테 소리를 쳐? 그런다고 벌레들이 달라져?”

마리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좋아. 금발 싸가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한테 선택권이 있다는 걸 알려 주려고.”

“친절하네. 일단 들어 볼까?”

“간단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첫 번째 선택지야.”

“그건 패스. 다음 선택지는?”

마리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항하다 죽는 거. 이게 두 번째 선택지야.”

“아깝네.”

“뭐가?”

“내 시간 말이야. 그런 말이나 듣자고 온 게 아닌데.”

마리는 그 말에 오히려 더욱 여유를 부렸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더 이상 우리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살려 줄 수도 있어.”

“그럴 일은 없어.”

“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거야? 나라에 대한 충성? 한국 남자들은 전부 군대에 가서 충성심이 높다던데. 그런 거야?”

“충성? 무슨 개소리야?”

상엽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집 지키는 거야.”

“집?”

“누가 내 집을 가져가려고 해. 그런데 주인이 그냥 있어야 돼?”

“재미있는 발상이네.”

“넌 이게 재미있겠지. 그런데 난 너랑 대화하는 게 별로야. 그래서 그냥 본론만 말하고 싶은데.”

“그래?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할 말은 없고.”

상엽은 허리를 세우며 마리를 똑바로 쳐다봤다.

“할 일은 있지.”

촤랏!

상엽의 손에서 고스트 체인이 튀어나왔다.

‘한 놈만 잡아간다.’

그가 검찰청에 직접 온 이유였다.

어떤 식으로든 아레나의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 중에 한 명만 잡아가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일단 알아야 돼.’

박광신은 상엽이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상엽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광신이 형도 내 실력을 정확히 몰라.’

그래서 직접 알아보려고 했다. 이를 위해 단 한 명이 필요했다.

“흥.”

고스트 체인이 마리의 몸을 감기 직전이었다. 그녀의 몸이 갑자기 사라져서 상엽의 등 뒤에 나타났다.

깡!

상엽의 뒷덜미에서 소음이 발생했다. 마리가 상엽의 뒷목을 그었지만 드바란의 투구가 이를 막은 것이다.

상엽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녀의 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마리는 다시 한 번 사라져 반대쪽에 나타났다.

‘텔레포터.’

아레나에 유명한 텔레포터가 있다는 건 박광신을 통해 들었다.

‘상관없어.’

상엽은 마리를 향해 다시 뛰었다.

그 순간, 취조실 벽을 무너트리며 두 명의 사내가 달려왔다.

‘지금.’

상엽은 그들을 확인하자 갑자기 방향을 바꿔 외부로 통하는 벽을 향해 뛰었다.

콰릉!

취조실 벽이 무너지며 상엽의 몸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다칠 몸이 아니었다.

두 명의 금발 사내는 곧장 상엽을 뒤쫓아왔다.

그때였다.

상엽이 뛰어내리는 방향에 누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희였다.

상엽이 내려서고 금발 사내가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발목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발목이 완전히 잘려 나간 사내들의 땅속에는 수십 마리의 담비가 있었다. 곧 담비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빨리.”

상엽은 쓰러진 사내의 심장에 주먹을 날렸고 동희는 녹색 액체의 주사기를 또 다른 사내의 몸에 꽂았다.

사내들은 곧바로 정신을 잃었고 상엽은 둘을 모두 둘러메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담비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치잇!

마리의 몸이 사라졌다가 10미터 후방에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의 종아리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상처를 남긴 담비는 어느새 동희의 품으로 돌아왔다.

“대장 담비. 너 처음으로 마음에 든다.”

-꽤 재주가 있는 인간이군.

대장 담비는 단숨에 처리하지 못한 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일단 가자.”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됐다. 상엽과 동희는 검찰청을 떠났고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마리는 담비의 존재로 인해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악귀 같은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 * *

검찰청의 방문 계획을 들은 것은 박광신을 통해서였다.

상엽은 이 말을 듣자 동희와 함께 계획을 세웠다.

‘광신이 형은 반대했을 테니까.’

그리고 소수로 움직이는 게 편했다.

상엽은 계획대로 두 명의 사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유령추종자를 통해 기억을 읽어 냈다.

‘엄청나네.’

길드 아레나의 총 인원은 300명을 넘었다.

그중에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만 200명이 넘었고 모두 3단계 유저였다.

2단계 이하 유저는 훈련조로 분류되어 체계적인 사냥에 나서거나 특별한 스킬을 익히도록 권유받았다.

‘체계적이네.’

이미 그들은 하나의 군대처럼 움직였고 국가 같은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벨기에는 그들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상황이었다.

아레나가 전략적으로 벨기에의 변종들을 전멸시키는 계획을 실행했고, 덕분에 벨기에는 한국처럼 안전지대로 분류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건 선발대로 20명.’

2명이 죽었으니 이제 18명이 남았다. 그들이 선발대만 온 것은 유럽 치안에 많은 개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래서 20명의 정예를 뽑았다.

‘마리가 문제군.’

마리를 통해 아레나 길드원들은 언제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당장 전투인원이 전부 넘어온다면 끔찍한 일이 될 듯했다.

“마리를 잡아야 돼. 무조건 그게 우선이야.”

“쉽지 않아 보이던데.”

상엽도 쉽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명의 기억을 얻게 되자 더욱 어렵다는 걸 알았다.

‘무리한 작전을 쓰다가는 내가 당할 텐데.’

상엽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인터넷을 본 동희가 급히 TV를 켰다.

“상엽아.”

TV화면에는 상엽의 얼굴이 크게 비춰지고 있었다.

-검찰 조사를 받던 용의자 정상엽을 긴급수배합니다. 변종 사냥꾼인 정상엽은 극히 위험한 인물이니 발견하시는 분들은 절대 접촉하지 마시고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국 수배령이 내려졌다.

이를 본 상엽은 불쾌한 듯이 말했다.

“사진 좀 예쁜 거 쓰지.”

그는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엽아. 괜찮아?”

“아니. 별로. 뭔가 버림받은 기분이네.”

한국을 지키려 했던 그의 결정이 전국적인 비난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모든 오해가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대부분의 이들이 상엽이 죽길 바랐다.

“상엽아.”

“응?”

힘없는 대답에 동희는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너 지금 독립투사 같아.”

“뭐?”

“멋있어.”

동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에 상엽은 우울한 기분 속에서도 웃고 말았다.

“역시 친구가 최고야.”

상엽도 엄지를 세웠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그들은 다시 힘을 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상엽은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김대진은 파면을 당했다. 특수치안대는 해체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많은 군인들이 옷을 벗었다.

가장 큰 문제는 흑점이었다.

박광신은 흑점의 모든 길드원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 한국을 지키던 시스템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변화가 없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오빠. 놀다 가.”

짙은 화장에 속옷이 훤히 보이는 여자가 지나가는 사내의 소매를 잡았다.

사내는 그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고 다시 길을 걸었다.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하수구의 악취가 코를 파고들었지만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내에겐 큰 감흥이 없었다.

골목으로 방향을 튼 사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수색해.’

그의 명령에 따라 유령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바람처럼 주변을 훑었다.

-안전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상엽은 붉은 불빛 아래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여인에게 다가갔다.

“얼마야?”

흥정이 이루어졌고 상엽은 사창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창가 내부는 좁은 복도에 겨우 침대 하나가 들어가는 방이 늘어선 형태였다.

상엽은 안내를 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잠깐만 기다려.”

흥정을 했던 여자가 준비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상엽이 이를 잡았다.

“연수 만나러 왔어.”

그 말에 짙은 화장의 여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강차연이 보내서 왔다고 전해.”

상엽은 그 말을 끝으로 여자를 놓아주었다.

5분쯤 흘렀을 때, 쪽방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짧은 핫팬츠에 셔츠를 걸친 여자가 나타났다.

“어머. 이게 누구야? 해외로 도망간 거 아니었어?”

“잘 지냈어?”

강차연의 정보원 가연수.

상엽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익숙한 곳이 아니라서.”

“왜? 좀 즐기다 가지.”

“알다시피 쫓기는 몸이라.”

“그럼 여기가 더 안전해.”

상엽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경찰 누나가 널 만나 보라고 해서 왔어.”

“언니는 잘 지내지? 국방부에 들어가고 나서는 만나질 못했네. 지금은 어디 있어?”

“모르는 척 하지 마. 다 알고 왔으니까.”

“쳇. 가련한 여인으로 봐주면 안 돼? 사랑도 잃고 이 꼴로 살고 있는데.”

“여기 있는 건 그냥 숨어 있기 위해서고, 연락은 네가 안 했다고 하던데.”

“오빠. 원래 이렇게 매너가 없었어?”

“매너는 있는데 시간이 없어.”

상엽의 대답에 가연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뭔가를 상엽 앞에 내밀었다.

“이걸 찾으러 온 거지?”

가연수가 내민 것은 주사기였다. 그 안에는 하얀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수고했어. 다음에는 이걸 섞으면 돼.”

상엽은 주사기를 받는 대신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마. 널 걱정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알아. 하지만 이런 일은 내가 해야 돼. 고귀한 사람들은 밝은 곳에서 놀아.”

가연수는 홀로 강차연의 복수를 대신하고 있었다.

“언니는 제복을 입었을 때가 제일 예뻐. 그걸 지켜 주고 싶었는데.”

강차연이 국방부에 들어가고 난 뒤에 가연수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활을 지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레나 길드의 등장 이후에 강차연은 파면을 당했다.

가연수는 이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아레나 길드원 중에 한 명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접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식 공급책이 되었다.

강차연이 이를 알고 그만두라고 하자 가연수는 이곳에 숨어 버린 것이다.

상엽은 이를 알고 가연수에게 동희가 만든 물약을 건넨 것이다.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같이해 줄 테니까.”

“쳇. 매너가 있긴 있네.”

가연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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