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5화 (95/300)

# 95

“골치 아프네.”

상엽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벽에서 유령추종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찰을 시도했다.

하지만 추종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조차 많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어떤 정보도 흘러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외부에서 파악할 방법도 없었다.

길드 아레나는 한국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결정을 내려야 돼.”

현재 청와대를 대규모 군병력이 둘러싸고 있었다. 당연히 김대진과 박광신도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최종 결정권자가 김대진이 아닌 것이다.

“형.”

“동생. 잠깐만 나가서 이야기하자.”

임시 막사에 들어갔던 상엽은 박광신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위기가 안 좋아.”

“왜?”

“대통령이 관련된 일이라 김대진 소장이 전권을 쥘 수가 없어. 아마 장기전이 될 거 같아.”

“저 녀석들은 그걸 노릴 텐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쪽으로 시선이 너무 집중 되서 그동안의 경계상황이 무너지고 없어.”

지금까지 촘촘하던 정보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촘촘하던 그물이 끊어지는 느낌이야.”

상엽은 멀리 있는 막사를 보았다.

실제로 김대진은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원장이야. 그 뒤는 수도방위사령관이고.”

수도방위사령관은 이런 상황에서 꽤 힘을 발휘하는 듯했다.

“군인 아저씨랑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지?”

“맞아. 거기다 국회의원장과는 사이가 좋아. 그래서 계속 지켜보자는 쪽으로 가고 있어.”

이야기를 듣는 상엽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형은 어떻게 판단했는데?”

“청와대를 버려야 돼.”

“화끈하네.”

“집중포격으로 싹 쓸어버리는 게 지금으로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야.”

“절대 실행할 수 없겠는데?”

“아마도.”

상엽은 청와대의 높은 벽을 빤히 쳐다봤다.

“형. 내가 저거 부수면 감옥에 가는 거야?”

“정치적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을 거야.”

“형이 처리해 줄 수 있지?”

“그건 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돼.”

“왜?”

박광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동생이 죽을 테니까.”

상엽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가 들어갔을 거야. 그래서 더욱 폭격을 해야 하는데…….”

박광신은 지금 상황이 매우 불쾌했다.

모든 것이 상대의 의도대로 되는 느낌이었다. 이미 주도권을 잃었고 대통령의 안위를 파악하느라 제대로 된 작전조차 펼칠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어느 쪽인지도 모르고.’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대통령과 아레나의 관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상엽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박광신에게 말했다.

“형. 방법이 있을 거 같아.”

“어떻게?”

“우리에게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 그렇지.”

박광신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 있었다.

“다녀올게.”

“그래. 조심하라고 해. 일단 상황을 알아내는 게 중요해.”

상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전지역을 떠났다.

그가 도착한 곳은 경찰들의 경계선 밖에 있는 빌딩의 옥상이었다.

“상엽이는 옥상을 좋아하니까.”

상엽이 만난 이는 동희였다.

상엽은 짧은 인사를 끝내고 현재 상황을 모두 알려 주었다.

“그러니까 정찰을 해 달라는 거지?”

“응. 가능하겠어?”

동희는 대답 대신 품에 안겨 있는 담비를 보았다.

-다녀오지.

대장 담비는 간단히 대답하더니 동희의 품에서 내려왔다.

상엽이 대장 담비를 다시 만난 것은 한 시간 후였다.

“걸리진 않았어?”

-들어가지 않았으니 걸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낸 거야?”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인간만이 아니다.

대장 담비는 여러 생물체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아직 변종이 되지 않은 쥐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와대를 실제로 정찰하고 돌아온 것은 담비가 아니라 쥐였다. 그래서 촘촘한 경계망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 상황은 어때?”

-인간은 백 명 이상이다.

담비는 청와대 내부 상황을 바닥에 그리기 시작했다.

발톱을 긋는 것만으로도 콘크리트 옥상 바닥에는 선명한 선이 그어졌다.

‘이건 무슨 설계도네.’

담비의 정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청와대 내부 지도가 완벽히 그려졌고, 사망자와 생존자의 위치가 정확히 찍혀 있었다.

“형. 좀 와 봐야겠어.”

상엽은 혼자 판단하기보다 박광신을 직접 불렀다.

박광신은 담비의 배치도가 완성될 때쯤 옥상에 도착했다.

“이렇게까지…….”

놀란 건 박광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담비의 배치도에 표시를 시작했다.

“그건 뭐야?”

“적의 위치.”

박광신은 내부 상황을 상상하며 적으로 판단되는 자들을 골라냈다.

“이렇게 보면 최소 20명. 많으면 30명도 넘겠어.”

박광신도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다.

“일단 상황은 알겠는데…….”

첫 단계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에 무리하게 들어가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광신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인질들이 위험하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

박광신은 지금의 대치가 일반적인 인질극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청와대 내부에 있는 명단을 받았는데 조력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아레나의 입성을 주장했던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 게 뭔지 알아?”

“뭔데?”

“무혈입성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상엽도 그 점이 이상했다.

아레나는 최대한 피해 없이 들어오길 원했다. 이것은 한국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한국 국민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었다.

“뭔가가 있어.”

박광신은 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들이 고민을 할 때였다. 갑자기 박광신의 핸드폰이 시끄러워졌다.

이름을 확인하고 다급히 전화를 받은 박광신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형. 왜 그래?”

“상황이 종료됐어.”

“종료되다니?”

“인질들이 풀려났어. 테러리스트들은 제압됐고.”

“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박광신과 상엽이 다급히 청와대로 달려갔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특수부대와 경찰들이 이미 청와대 내부로 들어갔고, 인질들은 모두 풀려났다.

상엽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와대 내부로 들어섰다.

‘이건 뭐야?’

죽은 자들의 시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경호원들의 시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테러였다고?’

청와대를 장악한 20명의 유럽인들은 모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인질의 피해는 없었고 이미 청와대를 빠져나간 후였다. 그리고 경찰들의 대화 내용이 들렸다.

-대통령은 무사하다.

상황은 그렇게 종료가 되어 버렸다.

결말이 이상한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그런데 언론의 플래시를 받은 한 인물이 있었다.

-박한국.

한국 출신의 유럽인이었다.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대통령을 구출한 영웅.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한국 출신의 벨기에 외교관이 고향의 대통령을 구하다.

언론이 좋아할 내용이었다. 이는 아주 극적인 드라마가 되었다.

그의 활약을 칭송하는 인터뷰들이 뒤따랐다.

온 국민의 시선이 모였던 만큼 그가 스타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엽은 뒷맛이 찜찜했지만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언론은 한 명의 영웅을 위해 그날 하루의 전파를 모두 소진했다.

‘뭔가 있어.’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났을 때, 박한국이라는 이름의 벨기에 대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신뢰받는 뉴스에 직접 출현을 결정했다. 이는 다시 한 번 이슈가 되었고 경이적인 시청률이 나왔다.

-한국의 비리를 고발합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인해 이슈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엽을 분노하게 했다.

-현재까지 한국은 흑점이라는 변종 사냥꾼 집단과 김대진 소장에 의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처럼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며 이렇게 말했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모범생 같은 외모라 그의 말은 더욱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정상엽이라는 변종 사냥꾼은 상식을 벗어난 혜택을 받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 일본에 국가 주권을 넘기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한국 정부에 연락을 받고 이를 막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으며 마침 그들의 계획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청와대 테러는 대통령을 사살하여 일본 변종 사냥꾼들을 대거 불러들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증거라며 여러 자료를 제시했다.

상엽과 박광신에 의해 일본 길드가 들어오려고 했었다는 건 명백히 밝혀졌고, 김대진이 만든 특수치안대도 문제로 삼았다.

그리고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상엽이라는 자는 지금까지 국회의원 4명을 살해했으며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자식들까지 죽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야말로 핵폭탄급 폭로였다.

비리와 살해.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협력.

모든 것이 교묘하게 비틀려 있었지만 대중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정상엽은 최근 한국을 지키는 영웅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그의 가면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이번 테러를 계기로 우리 아레나 길드는 한국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들의 의도가 명백히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핵심인물들을 밀어내겠다는 거지?”

아레나 길드는 힘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선공을 시작했다.

뉴스가 끝난 후, 한국은 난리가 났다.

공무원이던 김대진은 군인 소속임에도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고, 박광신과 강청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장 큰 비난을 받는 건 상엽이었다.

최근 인터넷에 유명세를 떨친 탓에 그 부메랑은 더욱 심하게 돌아왔다.

대중은 힘을 가진 자의 비리에 분노하고, 그 몰락에 환호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째 아침.

낯선 방문자가 상엽의 집을 찾아왔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상엽에 대한 검찰조사가 진행됐다.

아직 정식 영장은 아니라 강제성이 있지는 않았다. 범죄행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엽이 거부하면 법적 절차에 따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공무원 아저씨들. 한 가지만 물어볼게.”

상엽을 방문한 사내는 두 명이었다. 그들은 애써 무표정을 하고 있지만 긴장한 눈빛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정말 지금 상황을 몰라서 이러는 거야?”

“저희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그딴 소리 말고. 지금까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저씨들은 알 것 같아서 말이야.”

상엽을 찾아오는데 평범한 사람이 올 리가 없었다. 상엽의 예상대로 그들은 기밀을 취급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그냥 순응한다는 거지?”

두 사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상엽이 결론을 내렸다.

“그것도 매국이야.”

상엽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당당히 말했다.

“뭐해? 검찰 가자며. 지금 당장 가자고.”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의도에 따랐다.

상엽은 처음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난 경찰들 절대 안 믿거든.”

그가 공무원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바로 경찰이었다. 누나의 죽음을 은폐하려 한 집단을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그냥 다 부숴 버릴까?”

입구에서 내뱉은 한 마디에 두 사내의 몸이 굳었다.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나라는 왜 팔아먹으려고 해? 쪽팔리지도 않아?”

상엽의 원색적인 비난을 그들은 그냥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찰청 입구에 도착했을 때, 금발의 사내 두 명이 보였다.

그들은 상엽이 다가오자 작은 웃음을 보였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계단으로 인해 그들은 상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엽은 한 계단 앞까지 접근해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공무원 아저씨들 비켜. 원래 목적이 여기까지였잖아.”

“알면서도 온 건가? 멍청하군.”

“동양인들이 그렇지. 생긴 걸 봐. 바보같이 생겼잖아.”

노골적인 인종차별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두 명의 금발을 보며 상엽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난 말이야.”

상엽은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당당히 말했다.

“야동도 동양 거만 보거든. 내 기쁨에 너희들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

그의 손에는 어느새 파이어스의 망치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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