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상엽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장흥의 항구에 서 있었다. 변종출현지역이지만 그에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 때가 됐는데.”
그는 데스문의 선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술을 가지고 가지.
켄사로가 직접 연락을 해서 상엽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그들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았지만 밀항의 형태로 들어오기로 했다.
당연히 해군에는 연락해서 그들을 막지 않았다.
“늦을 리가 없는데.”
상엽이 30분을 더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전화벨이 울렸다.
박광신이었다.
-데스문 길드의 방문이 취소됐어.
“왜?”
-대통령 결정이야. 일본의 협력은 받지 않겠다고 했나 봐. 아픈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야.
“무슨 개소리야?”
-정치적인 압력이야. 데스문 길드의 합류가 큰 힘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한국의 군사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미친놈들!”
상엽은 화가 났다.
“그래서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김대진 소장의 입장이 난처해질 거야. 더 이상 밀어붙이는 건 무리야.
겨우 1차 접근을 막아 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정치인들에게 쓸데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김대진 소장의 입지가 너무 높아지니까 견제가 들어가는 거야.
상엽은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았다.
“일단 내가 올라갈게. 군인 아저씨를 만나야겠어.”
-기다릴게.
상엽은 먼 길을 온 보람도 없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정부의 입장은 이러했다.
-국방력을 더욱 강화한다. 다만 일본의 도움은 받지 않는다. 이는 향후 일본이 한국을 침공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라는 이름이 한국인에게 주는 인상이 그러했다. 하지만 상엽과 박광신은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기존 기득권 세력을 인정해라.
언제든 태클을 걸 수 있으니 마음대로 날뛰지 말라는 뜻이었다.
1차 군사작전의 대성공 이후로 침략시도가 없어지자 위기감이 사라진 것이다.
“밥그릇 싸움할 때가 아니잖아!”
서울에 도착한 상엽은 곧바로 국방부를 찾아갔다. 그런데 국방부 앞에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무장한 군인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상엽이 무시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군인 한 명이 앞을 막았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정석이 형. 이럴 거야?”
특수부대에서 특수치안대로 자리를 옮긴 가정석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형. 여길 그냥 부숴 버리는 수도 있어. 막을 자신 있어?”
“상엽 씨를 막으라는 건 김대진 소장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뭐?”
“폭력적인 상황을 막으라고 했습니다. 전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가정석은 특수치안대 소속이었고 김대진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따랐다.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쳇.”
김대진이 직접 부탁을 한 이상, 상엽도 마음대로 깽판을 부릴 수가 없었다.
“오래 못 기다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상엽은 결국 화를 달래며 걸음을 돌렸다.
그가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박광신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상엽으로서는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박광신이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자들이 얼마 전부터 견제를 시작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극단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말해 줄 수 있어?”
“대통령 명령이야. 그리고 여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법적으로는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 명령이 외부의 도움 없이 한국의 힘만으로 나라를 지키라는 거야?”
“맞아. 나도 지금 국방부 회의에서 제외됐어.”
“뭐?”
“임시 제외라고는 하지만 그 뜻은 분명해. 독점하지 말라는 거지.”
갓코인 유저에 대한 모든 정책은 박광신과 김대진이 세웠고 실행을 책임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라를 지켜야 정치도 할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해 봤자 듣지를 않으니까. 그런데 이 부분이 확실히 이상해.”
“뭐가?”
“정치인들이 바보는 아니거든. 이대로는 한국이 무너진다는 걸 분명히 알 거야.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평가하는 게 아니거든.”
박광신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명확히 말했다.
“그들도 갓코인에 대한 정보는 모으고 있어. 앞으로 그게 권력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해외에서 어떤 평가를 하는지도 분명히 들었을 거야.”
“그렇겠지.”
“그게 문제야. 무너질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잖아. 그걸 또 지지하고 있고.”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상엽이 물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게 유일한 가능성이야.”
상엽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박광신에게 물었다.
“형. 정치인 중에 갓코인 유저이면서 죽여도 될 만큼 나쁜 놈 있어? 이번 명령에 동의하는 놈 중에.”
박광신은 상엽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표정관리를 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형. 지금 웃고 있는 거지?”
“난 동생이 참 좋아.”
“이미 준비했을 거 같은데.”
박광신은 대답 대신 이름이 적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3명의 이름이 있었다.
“민재식. 3선 국회의원. 3단계 후반 갓코인 유저로 예상돼. 파악된 범죄만 13건. 법적으로는 사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아. 증거도 확보했고.”
그 외에 두 명도 같은 방식이었다.
“자. 여기 증거.”
박광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증거까지 보여 주었다.
강간과 살인교사는 기본이었고 직접 살인을 즐긴 녀석도 있었다.
고급 양복과 금색 배지 뒤에 숨겨진 악마의 얼굴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도로 쓰려고 조사했던 건 아니었는데.”
상엽은 그 명단을 받았다.
“누굴 선택할 거야?”
박광신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에 상엽이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무슨 선택?”
“그중에 한 명…….”
“뭘 골라? 다 잡아야지.”
상엽은 남은 두 명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국회의원 민재식.
50대 후반의 3선 의원인 그는 고급 승용차 뒷자리에서 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20대로 돌아간 것 같단 말이야.”
최근 그는 중급 블랙 상점에서 5단계 신체 개조를 마쳤다.
“차이나타운으로 가지.”
기사는 익숙하게 방향을 잡았다.
차이나타운에 도착했을 때쯤 민재식은 양복 대신 츄리닝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과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이미 그의 고급 승용차는 돌아간 상태였고 민재식은 늦은 밤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갔다.
한국과 중국이 뒤섞인 차이나타운 중에서도 그가 도착한 곳은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툭.
목까지 문신을 새긴 덩치 하나가 그의 몸을 치고 지나갔다.
덩치 옆에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고 얼굴을 가린 민재식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꺼져. 병신 같은 새끼가.”
덩치는 두꺼운 팔을 들어 올려 민재식을 위협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
퍽!
민재식의 주먹이 덩치의 턱을 때렸다. 덩치의 턱뼈가 완전히 박살 나며 피와 뼈가 동시에 튀어 나갔다.
여자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민재식의 손이 그녀의 목을 잡았다.
“끄윽…….”
민재식은 여자를 제압한 상태에서 쓰러진 덩치를 보았다. 덩치는 피가 쏟아지는 턱을 잡으며 몸을 떨고 있었다.
이를 본 민재식은 마스크 안에서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직 또 하나의 과정이 남았다.
“넌 다른 방식으로 죽여주지.”
민재식의 손의 그녀의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난감을 만지듯 그녀의 몸을 돌렸다.
여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민재식은 영역 안의 사자처럼 자신의 본능을 모두 드러냈다.
그렇게 본능을 한껏 채우고 났을 때, 여자의 치마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더러운 년놈들.”
그는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벌레를 밟듯 두 명의 얼굴을 짓뭉갰다.
콰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그는 이내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한 놈을 더 잡아 볼까? 아니. 년이 좋으려나?”
“지랄을 한다. 병신.”
그의 혼잣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이에 놀란 민재식이 얼른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미 그가 알고 있는 인물이 서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네가 어떻게…….”
“일반인한테 그러고 싶냐?”
상엽은 잔인하게 죽은 두 명의 시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신분이 다르지 않나?”
민재식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국회의원 민재식. 이 개새끼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민재식은 순식간에 칼을 꺼내 상엽의 목을 향해 찔렀다.
‘안경철 의원을 죽인 놈이다.’
공식적으로 안경철은 실종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대부분이 상엽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민재식은 그 상황에서 놈에게 욕까지 듣자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래서 기습을 선택한 것이다.
‘잡았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했다. 칼날이 정확히 상엽의 목에 닿은 것이다.
깡!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상엽의 얼굴에 갑자기 늑대 모양의 마스트가 생성된 것이다.
드바란의 투구를 다시 집어넣은 상엽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웃어. 이제 두 번 다시 못 웃을 테니까.”
쾅!
상엽의 주먹이 민재식의 배에 꽂혔다. 민재식은 그 한 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민재식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곁에는 또 다른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은 쓰러진 채로 몸을 떨며 거품을 게워 냈고, 눈이 뒤집히며 진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코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끝으로 숨을 거뒀고 곧 빛으로 흩어졌다.
‘한정구 의원!’
민재식은 소멸한 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함께 점심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떨고 있는 사람도 익숙했다.
‘이재수 의원…….’
자신을 포함한 셋 모두 정치권에서 꽤나 유명 인사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들의 신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 다음 개새끼.”
유령추종자가 만신창이가 된 이재수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한정구와 같은 운명이 되었다. 창백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재식은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워, 원하는 게 뭔가? 뭐든 하겠네. 부디 목숨만 살려 주게!”
“원하는 거?”
“말하게! 그게 뭐든 들어주겠네.”
“널 죽이는 거.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부탁이네!”
“거참. 시끄럽네.”
상엽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고스트 체인의 그의 얼굴을 감아 버렸다.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나니까.”
상엽은 단호하게 민재식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재수가 빛으로 부서지고 추종자는 예정대로 민재식의 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상엽의 전화기가 울렸다.
-김대진이네.
“말씀하세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그만두게.
상엽은 김대진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이미 끝났어요.”
상엽은 전화를 끊고 떨고 있는 민재식을 보았다.
“읍! 읍!”
“거짓말하는 거 들었지? 그런데 그거 알아?”
그는 민재식이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 네가 죽으면 그 말이 진실이 돼.”
유령추종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민재식의 몸으로 들어갔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아저씨. 좀 만나야겠어요.”
세 명의 국회의원을 처리한 상엽은 휴식 없이 김대진과 박광신을 호출했다.
그가 직접 두 명을 부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만난 곳은 국방부와 멀지 않은 고층 빌딩의 옥상이었다.
상엽은 차가운 새벽바람이 부는 곳에서 둘을 기다렸고 약속된 시간이 되기 전에 둘 모두 옥상 위에 나타났다.
박광신은 멀쩡한 모습이지만 김대진은 며칠 사이에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주겠나?”
김대진은 다그치기 전에 이유를 물었다. 상엽이 무작정 화가 나서 처리하진 않았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 아저씨.”
“말하게.”
“배지 단 놈 중에는 개새끼가 왜 이렇게 많아요?”
“나에게 하는 말인가?”
김대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상엽이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말고요. 제가 처리한 세 명요.”
“뭔가 알아낸 건가?”
“결론부터 말해 줄게요.”
상엽은 둘을 호출한 이유를 말했다.
“개새끼들이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해요.”
김대진과 박광신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