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90화 (90/300)

# 90

“크하하!”

켄사로는 진심으로 웃었다.

“내 평생 이렇게 유쾌한 펀치는 처음이야. 내가 졌어! 인정해!”

유쾌한 패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켄사로는 처음으로 알았다.

“좋아! 네가 원하는 걸 말해 봐.”

“흑점이랑 연합해. 동등한 조건으로.”

켄사로는 대답에 앞서 요다를 보았다. 요다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좋아! 약속하지!”

“그 약속. 믿어도 되겠지?”

“내 목을 걸고 약속한다!”

“두 번 실망시키지 마. 난 네가 꽤 마음에 드니까.”

“내가 어떤 남자인지 분명히 보여 주지. 기대해라.”

“기대는 무슨.”

나머지는 박광신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한 상엽은 자신이 던진 보관함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나열된 조각을 챙기려 했다. 그런데 허리를 숙이며 요다와 눈이 마주쳤다.

“왜?”

“이건 선물 아닙니까?”

“아닌데.”

“그 정도 매너는 보여 주시죠.”

상엽은 뜻밖의 의견충돌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만 가져.”

“두 개로 하시죠.”

요다의 뻔뻔한 제안에 켄사로가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이게 네가 사과하는 방식이냐?”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두 개만 주시죠.”

특이한 사과방식이었다. 상엽은 어이가 없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좋아. 두 개만 골라 가.”

바닥에 진열된 조각은 유물 조각 6개. 유산 조각 4개였다. 상엽은 요다가 그중에 두 개를 고르도록 했다.

요다는 망설임 없이 유물 조각 하나와 유산 조각 하나를 들더니 이를 켄사로에게 전했다.

가시 모양의 유산 조각이었다.

“길드장님께 꼭 필요한 유산이었습니다.”

토레몬트의 가시장갑.

켄사로는 그 마지막 조각을 드디어 입수했다. 그리고 유물 조각은 흡수를 통해 유산을 강화하는 데 쓰일 것이다.

“받은 게 많아졌군요. 이제 서로 균형이 맞는 거 같습니다.”

“균형이라니?”

“앞으로 제가 해 드릴 일에 대해서입니다.”

“알아듣게 말해.”

“제가 상엽 씨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잘못한 것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조각들로 균형을 맞췄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걸 해 줄 건데?”

요다는 대답 대신 자신의 유산 보관함을 꺼냈다. 그러더니 같은 모양의 조각 3개를 꺼냈다.

그런데 상엽은 그 모양이 익숙했다.

“거산의 손아귀. 상엽 씨가 2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상엽은 오상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거산의 손아귀는 힘을 강하게 해 주는 장갑입니다. 특수스킬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역사에서 힘으로는 최고 수준에 속한 신입니다.

한국으로 도주해서 부활을 꿈꾸던 왕구정을 잡고 얻은 유산이었다.

왕구정이 2개를 가지고 있었고 오상식의 의견대로 상엽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건 제 영업비밀입니다.”

요다는 그렇게 말하며 조각 3개를 상엽에게 넘겼다. 이로서 유산 거산의 손아귀가 완성되었다.

상엽은 조각을 받으며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너 이걸 언제부터 모았어?”

“상엽 씨가 획득한 그 순간부터입니다.”

“왜?”

“상엽 씨를 한 번쯤 이용할 수 있는 카드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요다는 그런 인물이었다.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닙니다. 상엽 씨는 제가 가진 많은 카드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 말은 좀 아껴. 당사자 앞에서 그러니까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잖아.”

“유산을 완성하면 다시 좋아지실 겁니다.”

요다는 당당했다. 상엽은 모범생 같은 외모의 요다가 처음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광신이 형보다 더 무서운 녀석일지도 몰라.’

둘은 언뜻 비슷한 역할과 능력을 가졌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달랐다.

요다는 박광신에 비해 더 많은 수단을 이용했다.

“좋아. 일단 이걸로 퉁 치지 뭐.”

상엽은 뜻밖의 거래에 만족하며 불쾌했던 감정을 지웠다.

“한국에서 봐.”

“아끼던 술을 가져가지.”

켄사로와 인사를 마친 상엽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 * *

거산의 손아귀

-거산 몰링카를 지키던 신의 장갑. 힘이 강화되며 특수스킬로 거신 강림이 있다.

-특수 스킬 거산 소환.

정해진 지점에 바위산이 솟아오른다.

산의 규모는 스킬레벨에 따라 달랐다.

1레벨 거산 소환은 겨우 1미터 정도의 벽이 생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전투에서는 응용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스킬과 힘 상승에 만족한 상엽은 그동안 모은 코인으로 거산의 손아귀를 5레벨까지 강화했다.

그렇게 레나와 헤어진 상엽은 오상식을 만나기 위해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1차 정리가 끝났습니다. 절반 정도 진행됐습니다.

상엽이 오랫동안 기다린 순간이었다.

절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상엽이 획득한 조각이 워낙 많았고 가치도 높아서 엄청난 수치가 나왔다.

‘800만 코인을 이렇게 빨리 맞추다니.’

오상식은 전부 처리하면 1,500만 코인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상엽이 800만 코인을 먼저 맞춰 달라고 요청했다.

‘일단 미뤘던 걸 전부 할 수 있겠어.’

상엽이 800만 코인을 요청한 것은 어떻게 사용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3단계 마스터로 가자.’

현재 그의 신체강화 상태는 상황에 따라 강화를 중단한 부분이 있었다.

하급 화이트 상점.

근력 10단계, 순발력 10단계, 정신력 5단계.

하급 블랙 상점.

근육 10단계, 유연성 8단계, 피부 5단계.

중급 블랙 상점.

머리 6단계, 몸 6단계, 팔 6단계, 다리 6단계.

중급 화이트 상점.

힘 5단계, 민첩 5단계, 정신 5단계, 감각 5단계.

하급 상점 신체강화를 전부 10단계로 올리면 13만 7,600이 필요했고 중급 블랙 상점은 384만 코인, 중급 화이트 상점은 396만 8천 코인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800만 코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효율을 생각하면 다음 단계 상점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엽은 강화 10단계마다 발생하는 대폭 증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상엽은 신체 강화 3단계 마스터를 결정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말하는 마스터와는 전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양쪽 상점 전부 마스터.’

당연히 다른 이들보다 2배의 코인이 필요했다.

‘능력은 3배 이상이지.’

강화가 진행될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올 때가 됐는데.”

상엽은 강화를 앞둔 마음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단 1초도 늦는 법이 없던 오상식은 시간이 되었음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유물을 들고 있어서 위험할 텐데.’

무려 800만 코인을 들고 있는 셈이었다.

불안해진 상엽이 약속했던 서울역 광장의 벤치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어? 인터넷에서 본 사람이다!”

누군가 상엽을 보며 외쳤다.

10대 후반의 여고생이었다.

“야. 조심해. 변종 사냥꾼이잖아.”

“아니야. 친절해 보이잖아.”

여고생은 상엽에게 다가오더니 핸드폰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사진 한 번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상엽이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최근 영상이 문제가 된 것 같은데.’

박광신의 빌딩 앞에서의 싸움이 문제였다. 상엽의 얼굴이 명확히 잡혔고 이는 당연히 화제 영상이 되어 지금도 이슈가 되었다.

‘변종 사냥꾼에 대한 관심도 위험 수준이고.’

그나마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은 낭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의견이 많아 진실이 가려진 상황이었지만 사냥꾼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여고생은 마치 연예인을 본 것처럼 간절한 눈으로 부탁을 했다.

“알았어. 빨리 찍어. 시간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여고생은 일말의 공포심마저 사라진 표정으로 상엽의 팔짱을 끼며 핸드폰을 조작했다.

그때였다.

상엽은 등 뒤로 다가오는 서늘한 감각에 급히 몸을 돌렸다.

‘실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그저 기운을 조종해 뒤를 보도록 한 것이다.

‘옆?’

팔짱을 끼고 있던 여고생을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핸드폰 사진의 초점을 잡고 있었다.

‘앞!’

여고생의 친구.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상엽의 옆구리로 날카로운 뭔가가 다가왔다. 상엽은 반사적으로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피하면 그대로 여고생의 몸이 관통되는 상황이었다.

푹.

옆구리로 따끔한 충격이 닿았다. 다행히 갑옷과 고스트 실드로 인해 긴 바늘 형태의 암기는 끝이 살짝 들어온 정도로 그쳤다.

상엽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암기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희미한 비웃음을 담은 표정의 여인이 서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처음과는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적설.’

살아남은 유일한 암살자 적설.

“오늘은 그냥 경고야.”

그녀는 사이좋은 연인을 대하듯 입술이 닿은 손바닥을 상엽 쪽으로 튕기더니 몸을 돌렸다.

“찍을게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여고생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같이 온 친구 말이야. 누군지 알아?”

“네? 무슨 말씀이세요?”

“같이 있던 친구. 몰라?”

“전 여기 혼자 왔는데요.”

여고생은 정말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알았어. 빨리 찍어.”

상엽은 여고생의 요청대로 사진을 찍어 준 후에 벤치를 떠났다.

같은 시간.

오상식은 서울역 광장이 보이는 5층 빌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적설이 떠나는 것을 발견한 그는 뒤늦게 상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강제로 주사 맞은 기분이야. 몸은 괜찮은데 기분이 별로야. 5살만 어렸어도 울었을 거야.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있는 곳으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 적설이 절 노릴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결국 그들은 약속장소를 바꿔서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상엽은 유물을 건네받고 바로 강화를 진행했다.

화이트 상점은 이번에도 중국을 이용했다. 정부의 도움으로 충분히 신분을 숨길 수 있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강화를 진행하려 이동하는 내내 오상식의 말이 머리에 남았다.

-최근 적설이 상엽 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기다려 본 것입니다.

오상식은 여러 번 이런 시도를 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반응이 없었는데 상엽과 만나는 순간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적설이 흑월회 회주를 죽이고 힘을 흡수했습니다. 위험한 인물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상엽도 적설의 능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보였던 자신감이 마음에 걸렸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상엽은 골치 아픈 상황을 뒤로하고 강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800만 코인이 모두 소모되었을 때, 상엽은 아무도 몰래 태백산을 향했다.

그가 처음 갓코인을 시작한 곳이었다.

그는 파이어스의 망치를 꺼내 들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산신령이 돌아왔다.”

상엽은 힘껏 공중을 향해 뛰었다.

우거진 숲을 뚫고 튀어 올라 달빛을 받은 상엽은 늦은 귀가를 하는 새처럼 여유롭게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평화가 깨지며 다시 아래로 추락할 때, 그는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강화된 신체와 강화된 유산.

그 힘을 모두 담은 일격이었다.

콰쾅!

파이어스의 망치가 평화로운 산속의 힘을 때리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그 힘은 땅속 깊이 전달이 되었고 웅장한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폭발이 일어났다.

지축을 뒤흔드는 울림에 나무가 쓰러졌고 태풍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찢어지고 부서진 나무들이 가루가 되어 하늘로 치솟았고 타격지점에는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웅덩이가 형성되었다.

“후우.”

상엽은 숨을 내쉬며 행동을 멈췄지만 충격파가 만들어 낸 지옥 같은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단 한 방이었다.

그 한 방에 주변 지형이 변해 버렸다.

“그냥 바다에서 할걸.”

상엽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5분 후.

상엽은 김대진의 전화를 받았다.

“미안해요.”

상엽은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렇게 말했다.

-역시 자네였나? 태백산이라고 하기에 그럴 거라 생각했네.

“문제가 큰가요?”

-모든 정부단체에 비상이 걸렸네. 미사일 실험이 있는지, 지진이 발생했는지, 전부 체크 중이라네.

“제가 재앙이 되어 버렸네요.”

-그 힘이 우리나라를 지켜 줄 것이라 믿네.

“너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공무원 같잖아요.”

상엽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재앙. 신의 힘.”

그의 주변은 신의 분노가 떨어진 것처럼 어떤 생명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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