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86화 (86/300)

# 86

마루나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상엽과 마주 앉았다.

그들은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해장국집에 들렀고 방석을 깔고 앉은 넓은 홀에 자리를 잡았다.

“배고프다면서?”

상엽은 본래 그냥 돌아가려 했지만 배가 고프다는 말을 외면하지 못하고 해장국집에 왔다.

“잘 먹겠습니다.”

마루나에게 상엽은 그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엽은 그 점이 어이가 없었다.

“고마워요.”

숟가락을 들었던 마루나가 슬쩍 눈을 마주치며 다시 인사를 했다.

“야. 너.”

“네.”

“너 해장국 먹어 본 적 없지.”

“네? 그걸 어떻게…….”

“너 양념 하나도 안 넣었거든.”

상엽은 마루나 앞으로 소금을 비롯한 각종 양념을 내밀었다.

“아…….”

“이리 줘 봐.”

먹는 것 앞에서는 관대해지는 상엽이었다. 그는 직접 양념을 첨가해 해장국의 진짜 맛을 완성해 주었다.

“먹어.”

마루나는 작게 웃음을 보이더니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해장국을 먹었다.

그러더니 눈동자가 커졌다.

“어머. 맛있어요.”

“당연히 맛있지. 어서 먹어.”

상엽도 함께 수저를 움직였다. 그런데 마루나는 상엽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착각하지 마. 널 위해서 구해 준 게 아니니까.”

“그래도 고마워요.”

“나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생각은 안 해?”

마루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날 꾀어내려고 널 납치한 거잖아. 나 때문이라고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아니에요. 그들은 저한테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 온 거예요.”

이는 상엽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말해 봐.”

마루나는 그제야 오늘 일어난 일의 진실을 말했다.

마루나가 갓코인을 알게 된 것은 당연히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한국 검은 돈의 대부 마병석.

그녀의 아버지는 어두운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집단과 마찰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의 고리대금업자들과 마찰이 생겼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금괴를 밀수하는 과정에서 제3집단이 끼어들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에 대해 마병석은 최초 계약조건에 따라 잃어버린 금괴에 대한 돈은 지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의 고리대금업자들은 마병석이 꾸민 일이라며 협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마루나를 납치하는 상황까지 된 것이다.

“그런데 날 왜 기다린 거야?”

“그건…….”

마루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상엽이 인상을 쓰자 진실을 말했다.

“제가 아빠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상엽 씨 이름을 들었을 때 표정관리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캐묻기에 친구라고 했어요.”

“친구?”

“어쩔 수 없었어요. 아빠한테 제가 사실은 상엽 씨 노예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어쨌든 아빠가 그들에게 저와 상엽 씨가 친하다고 말한 거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상엽 씨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나까지 잡으려는 계획으로 한국에 왔다?”

“네. 맞아요.”

상엽은 소리가 나도록 숟가락을 밥상 위에 놓았다.

“죄송해요.”

상엽은 화가 났지만 실제로 마루나가 잘못한 건 없는 상황이었다.

“그자들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엽 씨 전화번호를 비서에게 남겨 뒀어요.”

이게 오늘 있었던 일의 진실이었다.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어.”

“상엽 씨.”

“나 그 호칭 무지 거슬리는데.”

“그럼 주인님이라고 할까요?”

“그건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잖아.”

“그럼…….”

둘 모두 마음에 드는 호칭을 떠올리지 못했다.

“동생님? 이것도 이상하죠.”

“당연히 이상하지.”

“선생님. 스승님. 사부님. 이런 건요?”

“장난해?”

“그럼 팀장님은 어때요? 사장님이나.”

그나마 거부감이 없는 호칭이었지만 상엽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소장님이라고 해.”

“네?”

“철거반 소장님. 그런 느낌으로.”

“네. 소장님.”

드디어 대충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소장님. 우리 아빠는 괜찮은 거죠?”

“걱정 마. 안 건드려.”

“고마워요. 앞으로 제가 소장님이 시키는 건 뭐든 열심히 할게요.”

“원래 우리 계약이 그거야. 내가 명령하면 넌 하는 거.”

“이젠 목숨에 마음까지 걸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마루나는 상엽에게 가지고 있던 거부감을 지워 버렸다.

“속으로 수천 번 소장님을 불렀어요. 제발 구해 달라고. 이번에만 구해 주면 평생 뭐든 다 하겠다고.”

“그냥 시키는 일이나 잘해.”

“앞으로 뭐든 시켜 주세요.”

“뭐든? 자신 있어?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놈이 아닌데.”

“오늘 소장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비참해졌을 거예요. 그 자식들의 노리개가 되어서 죽는 것보다 못하게 살았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 담긴 인사가 계속되었다. 그러자 상엽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상엽은 마루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국 식겠다. 어서 먹어. 고생했을 텐데.”

“네!”

마루나는 그제야 웃으며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상엽은 한 가지 실수를 깨달았다. 밥을 먹는 그녀의 옷이 찢어져서 속옷이 보였던 것이다.

상엽은 바로 셔츠를 벗어 마루나에게 내밀었다.

“입어.”

마루나는 감격한 표정으로 상엽을 보더니 느리게 속마음을 말했다.

“훌륭한 몸이네요.”

그녀는 셔츠가 아니라 상엽의 탄탄한 상체를 보았다.

“너 그 눈빛 뭐냐?”

“아.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라서요.”

“뭔가 끈적했는데.”

“제가 본 가장 매력적인 몸이었어요. 이건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에요.”

“옷이나 입어.”

“네! 감사합니다!”

마루나는 상엽의 셔츠를 입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말했다.

“냄새 좋네요.”

경계가 허물어진 마루나는 상엽이 상상하지 못한 모습의 여인이었다.

* * *

일주일 후.

상엽은 장문의 보고서를 받았다.

-이하나의 소문과 진실 1편.

“역시 사람은 진심으로 일해야 돼.”

마루나가 보낸 보고서였다. 그동안 보냈던 다양한 내용은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자세한 내용이 있었다.

-대표 오명진과 이하나에 대한 소문.

상엽이 확인하라고 지시한 첫 번째 소문에 대한 상세 보고서였다.

지금까지도 충실했지만 이번에 받은 보고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하나는 데뷔 전부터 대표 오명진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마루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고 그런 근거를 상세히 적어 놓았다.

-박서영. 미담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었으나 데뷔를 하지 못했고 루나 엔터테인먼트에서 연기자로 데뷔. 현재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배우입니다.

-그녀가 미담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당시, 오명진이 이하나와 싸우는 목소리를 우연히 들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이하나가 오명진 대표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개면 개답게 주인이 하는 손짓 발짓이나 보고 꼬리나 흔들라고. 어설프게 주인과 친구라고 착각하지 말고.

상엽은 보고서에 적힌 단어가 주는 느낌에 잠시 말을 잊었다.

“그 이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고?”

지금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오명진은 상엽과도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

“오명진이 이하나의 개였다?”

개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가 있다. 상엽은 보고서 내용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이하나가 데뷔 이후, 갑자기 푸시를 받았던 것은 오명진이 직접 영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내용이 비정상적인 영업임을 증명했다.

-이하나를 무리하게 캐스팅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불법으로 취득했고, 이는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정치권의 힘으로 무마되었다.

이하나의 아버지인 정득수가 힘을 썼다는 것이 마루나의 판단이었다.

‘결국 미담 엔터테인먼트는 엄청난 무리수를 두면서 이하나를 스타로 만들었다는 건데…….’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없는 거래였다. 이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가 있었다.

-오명진의 죽음 이후에 밝혀진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재무지표는 부도 직전이었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출금액이 수백억에 이른다.

-추적 끝에 그 돈의 일부가 이하나의 강원도 별장을 구입하는 데 흘러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마루나가 이를 확인한 것은 돈세탁을 하는 과정을 누군가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보고서를 위해 아버지의 힘까지 이용한 것이다. 마병석도 딸이 납치되었다 구출된 이야기를 듣고는 모든 힘을 다해 도와주었다.

“결국 이하나가 사라진 돈을 이용했다. 이거지?”

보고서를 모두 읽은 상엽은 이하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말투와 표정.

그 모든 것이 진실로 보였다.

“도대체 넌 어떤 여자야?”

그냥 넘어가기에는 계속해서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상엽이 소파에 앉아 이하나에 대해 깊이 집중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연지네.”

전화를 건 이는 송연지였다.

-산적 오빠!

그녀는 언제나 밝은 목소리였다. 이에 상엽의 고민도 잠시 사라졌다.

“한국에 온 거야?”

-네! 나 위로주 좀 사 줄래요?

“왜?”

-길드에서 쫓겨났어요!

밝은 목소리와는 달리 심각한 내용이었다.

“어디야?”

상엽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송연지를 만나러 갔다.

트레저 헌터 길드 콜렉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콜렉터 길드는, 유산과 유물에 대한 정보가 다크 마켓을 능가할 정도였다.

본래 전투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길드이기도 했다.

그런 트레저 헌터 길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입 길드원이 들어왔다.

신입 길드원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신전을 연속으로 통과하며 단숨에 길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밝고 명랑한 성격과 달리 트레저 헌터로 움직일 때는 악마처럼 집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출신 송연지.

그녀는 1년 만에 두 개의 신전을 통과했고 최고 수준의 정보들을 모아 왔다.

그런데 그녀에겐 몇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기밀 정보 유출.

이는 트레저 헌터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였다.

하지만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았고 워낙 열심히 하는 길드원이라 가벼운 처벌로 끝났다.

그런데 그 처벌이 문제였다.

-3년간 귀국을 금지한다.

송연지의 문제는 모두 한국에서 발생했고 전부 정상엽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콜렉터 길드는 3년간 귀국금지라는 어떻게 보면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에 송연지가 고집을 부렸다.

-한국이 위험해요. 전 한국을 지키러 가겠어요.

이것이 발단이 되었다.

정보를 다루는 집단인 만큼 콜렉터 길드도 현재 한국이 폭풍전야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송연지가 이 정보를 확인하고 귀국을 결정한 것이다.

콜렉터 길드는 결국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송연지는 정보 누설 금지 협약과 유물 조각들을 남겨 놓고 귀국길에 올랐다.

송연지는 문을 닫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뭔 청승이야?”

상엽은 5분도 되지 않아 그녀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직접 뛰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빠도 마셔요.”

캔맥주를 받은 상엽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오빠. 이렇게 보면 서울의 밤도 참 예뻐요. 매연에 찌들고 먼지에 가려져서 뿌옇게만 보일 거 같은데.”

그녀는 술에 취한 것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지야.”

“네?”

“취한 척 그만할래? 왜 선수끼리 뻥카야?”

“하하하!”

결국 송연지가 표정을 바꾸며 웃음을 터트렸다.

상엽과 송연지 정도가 되면 취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특히 맥주로 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혈관에 알콜을 직접 주입해도 취할까 말까인데.”

“분위기 좀 맞춰 주면 안돼요? 그것도 매너라고요.”

“너 힘들어 하는 거 보기 싫어서 그래. 어떻게 된 건지나 말해 봐.”

“칫.”

송연지는 자신이 콜렉터 길드를 나오게 된 과정을 전부 말했다.

“어때요? 나 멋있죠? 대한민국을 지키러 온 22살 여자! 이 정도면 칭찬 받을 만하지 않나?”

“별로. 그냥 멍청한 거 같은데.”

“쳇. 그런데 오빠는 왜 한국에서 이러고 있는데요? 한국을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상엽은 그 질문에 고민 없이 대답했다.

“내가 머리는 똑똑한데 이놈이 멍청해.”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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