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야. 내 친구한테 이상한 짓 하지 마.”
-언제나 이상한 짓은 인간이 하고 있다.
“한 마디를 안 지네.”
-진실에는 이기고 지고가 없다. 멍청한 인간.
상엽은 담비의 덤덤한 눈빛을 보며 말싸움을 그만뒀다.
“동희야. 조심해.”
“걱정하지 마.”
동희는 당분간 설악산에 머물기로 했다. 담비 대장과 합의한 내용이었다.
-인간의 접근을 막아라.
대장 담비는 이런 요구를 했다. 이 역시 합의된 내용이었다.
상엽으로서는 도움을 받은 터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막을 수 있는 부분까진 막을게.”
그렇게 약속하며 설악산을 내려왔다.
그곳을 내려오는 동안, 당연하게도 변종의 습격은 없었다.
“오빠. 느낌이 묘하네요.”
“그렇지?”
송연지는 대장 담비를 처음 만났고 상엽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긴 변종의 영역인데 안전하다니. 기분이 이상해요.”
“사실 지난번에 느낀 게 있는데. 어쩌면 갓코인은 인간끼리의 싸움이 아닐지도 몰라.”
송연지는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하긴 처음부터 인간과 변종의 싸움이었으니까요.”
“변종이 인간을 멸종시키고 이 땅을 지배할 수도 있지.”
“무섭네요. 이런 변종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그들은 설악산을 내려오는 동안 변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사냥감으로 생각했지만 상대도 생명체였고, 대장 담비처럼 뛰어난 지능을 가졌을 수도 있다.
“상상하는 것 이상의 상황이 가능하다는 거지.”
“복잡하네요.”
“아니야. 상황은 복잡해도 결론은 단순해.”
송연지는 그 결론이 궁금했다.
“살아남아서 강해지는 거.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사람도 살릴 수 있을 거고.”
“너무 똑똑해지지 말아요. 오빠답지 않으니까.”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둘 다예요.”
그들은 웃으며 산을 내려왔다.
흑월회의 괴멸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박광신과 김대진 소장은 상엽에게 소식을 들었지만 정치적 활용을 위해 당장은 숨기기로 했다.
또 하나의 이유.
-적설이 살아 있다.
아직 한국에 마지막 흑월회의 암살자가 살아 있는 만큼 그들은 신중히 움직이기로 했다.
“인원수가 줄었으니, 더 위험할지도 몰라. 이제 정말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상엽은 처리하지 못한 적설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대충 유리한 기회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정말 완벽한 기회를 노리겠지.’
위험한 혹을 달고 다니는 셈이었다.
“잡으면 돼. 별거 아냐.”
상엽은 애써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집으로 복귀했다. 송연지는 일이 일단락되자 급히 길드로 돌아갔다.
다시 혼자가 된 상엽은 제일 먼저 오상식에게 습득한 조각들을 넘겼다.
-곧 1차 정산을 하겠습니다.
오상식은 상엽의 성장을 위해 정리를 서두르고 있었다.
상엽은 괜히 그를 압박하지 않고 그냥 알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그가 잠시 쉬려고 소파에 몸을 기댔을 때, 익숙한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응. 형.”
전화를 한 이는 박광신이었다.
-잠시 만나고 싶은데. 김대진 소장도 같이 올 거야.
“알았어.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네.”
상엽은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예전의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이번에도 상엽에 앞서 김대진과 박광신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둘이 너무 친한 거 아니야?”
“질투나면 동생도 껴 줄 수 있어.”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취소.”
상엽은 자리를 잡으며 뜨거운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막 끓인 차지만 예상대로 뜨거운 느낌은 없었다.
“할 말이 있다더니. 무슨 일인가?”
“설악산 때문에요.”
김대진의 질문에 상엽은 설악산의 대장 담비에 대해서 말했다.
“왜 갑자기 설악산인가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제 머리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변종들이 우두머리를 두고 움직인다니. 꽤 위험한 거 아닌가?”
“인간 입장에선 위험하죠. 그런데 문제는 위험하다고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이 넘었다는 거예요.”
김대진은 상엽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상엽은 그의 표정에 상관없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설악산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접근금지지역으로 두는 게 좋겠어요.”
“접근금지라면 내버려두라는 것인가?”
“맞아요. 재미있게도 그 대장 담비, 협상이 돼요. 싸가지는 없지만. 어차피 동물보호법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밀어 붙은 느낌도 있잖아요. 잠시 놔둬 보죠 뭐.”
“내가 직접 만나 볼 수 있겠나?”
김대진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
“변종인데 괜찮겠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저도 장담하긴 어려워서.”
“그래도 해야지. 공무원이잖나.”
“알았어요. 동희에게 연락해 둘게요.”
상엽은 김대진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어차피 협상은 김대진이 직접 하는 게 좋았다.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 때문에 부른 건 아니지 않나요?”
“일단 밥부터 먹지.”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식사까지 차려졌다.
“이거 법에 걸릴 거 같은데.”
“그래서 내가 사기로 했네. 공무원 월급으로 무리이긴 하지만 그동안 해 준 일에 대한 감사라 생각하게. 혹시라도 신고는 하지 말고.”
그들은 식사를 끝낼 때까지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서로 농담을 하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계속했다.
그러다 식사가 끝나고 차가 나와서야 박광신이 주제를 던졌다.
“최근에 한국을 다녀간 자들이 많아.”
“무슨 뜻이야?”
“정찰을 하고 정보를 얻어 간 거지. 유럽과 중국에서 확인된 것만 여섯 길드야. 일본에서도 왔고…….”
박광신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제를 마무리했다.
“북한에서도 다녀갔지.”
“북한?”
“잊었어? 우리는 아직 분단국가야. 변종의 출현으로 전쟁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뿐이지.”
상엽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지 못했다.
“북한의 상태는 어때?”
“변종에 대한 피해는 우리보다도 적어. 군사력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런데 경제력은 여전히 바닥이야.”
변종 출현 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박광신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내가 전에 말한 특수경찰 기억해?”
“응.”
“북한은 그걸 초창기부터 했어.”
국가에서 갓코인 유저를 육성했다는 뜻이다.
“왠지 북한과 어울리네.”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철저히 가려져 있어. 그래서 위협적이지.”
“우리보다는 강하다고 봐야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 엘리트 부대로 양성을 했을 테니까.”
“우리도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야?”
“이미 선발에 들어갔어. 다음 주에 직접 최종선발을 할 거야.”
박광신이 준비했던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는 한국 정부에서 준비하는 유저 중심의 부대에 대한 안건이 담겨 있었다. 흑점 길드가 주축이 되며 김대진이 책임자가 된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선발되는 기준이 체계적으로 담겨 있었다.
현직 기동타격대와 특수부대를 대상으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뒤, 그중 애국심과 충성심이 높은 자들을 선발, 신체능력을 확인 뒤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1차는 50명 규모가 될 거야. 올해 안에 200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고. 최종적으로는 1천 명까지 선발할 거야.”
“형이 더 바빠지겠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야.”
“북한 때문에?”
“아니. 북한 문제가 아니야. 세계의 이목이 한국을 향해 있잖아. 개새끼들, 처음부터 우리 이목을 가린다 했더니 이걸 노린 거였어. 어쨌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먹잇감이 한국이라는 것 말이야.”
역사적으로 한국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수많은 침략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력에 비해 갓코인 유저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침략대상이 되고 있다.
“갓코인 유저들의 힘이 벌써 국가 단위 공권력에 도전할 정도가 된 거라고 봐야지.”
“하긴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상엽조차도 군인이나 경찰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상엽과 같은 사람이 군대처럼 모여서 행동한다면 국가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침략자들에 대한 지원은 자기를 나라에서 할 거란 점이지.”
국가가 직접 나서진 않겠지만 은근히 도와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시작되었단 말이야.”
박광신의 결론은 김대진이 이어받았다.
“3차 세계대전.”
무기를 쓰는 전쟁이 아니라 갓코인 유저들을 이용한 전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긴 흑월회의 존재를 생각했을 때 상엽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실력 있는 갓코인 유저들의 암살을, 세상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비단 그것은 국가의 수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마 이젠 첨단 무기까지 동원하게 될 걸세.”
갓코인 유저들이 만든 분쟁에 약점을 보이는 순간,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확신이었다.
“우리나라라 버티는 방법은 갓코인 유저들을 완벽히 밀어내고 쉽지 않은 나라라는 인식을 주는 수밖에 없어.”
상엽은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박광신과 김대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죠?”
“그냥 알아 두라고.”
박광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진짜 그냥 알아 두라는 거지?”
“물론이야. 하지만 어차피 코인을 모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코인과 유물을 가졌을지는 생각해 봐.”
그는 상엽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형 그 이야기 들어 봤어?”
“무슨 이야기?”
“형이 굶고 있어서 라면을 끓이는 동생이 있어. 그런데 형이 라면 끓여 오라 그러면 갑자기 다 끓인 라면도 주기 싫어지거든.”
그 이야기에 박광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아는 사람이 그래?”
“아니까 그러는 거야. 라면은 내가 끓여 주는 거야. 동생은 그냥 먹기만 하면 돼.”
“……젠장.”
상엽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박광신이 정보를 주고 상엽이 이를 잡으면 그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내가 예를 잘못 든 거야?”
박광신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쳇. 내 머리만 좋아진 줄 알았더니.”
“내가 동생보다 조금 더 좋아서 그럴 거야.”
“위로가 안 돼.”
상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는 받을 거지?”
“당연히 받아야지. 그게 다 코인인데.”
“그런데 경쟁자가 있어. 이건 미리 알려 둘게.”
“경쟁자라니?”
“알잖아. 우리 대장.”
흑점 길드장 강청. 상엽은 짧지만 그와 함께 했던 전투를 떠올렸다.
“그 아저씨와는 계속 경쟁하게 되네.”
“우리 대장이 그걸 원하거든. 동생이랑 경쟁하는 거.”
“삭발빵이라고 전해. 이번엔 진짜 대머리로 만들 거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장 편인 거 이해하지?”
“쳇. 다 덤벼.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한국을 지키기 위한 경쟁이었다.
‘사람 잡는 게 최고지.’
상엽은 한국으로 몰려올 사냥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 * *
상엽에게 정보가 전달된 것은 일주일 후였다. 그런데 그 정보가 상엽의 신경을 건드렸다.
-유럽의 화이트 길드 정보원이 동생을 지켜보고 있어.
“날 왜?”
-공개된 한국의 최강자니까. 정보를 얻고 싶은 거지.
“그럼 내 뒷조사도 하고 다니겠네?”
-당연하잖아.
상엽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알았어.”
그는 박광신의 정보를 토대로 정보원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꽤나 실력이 있는 스카우트였던 모양이다. 상엽이 노력해도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았다.
다만 번화가로 들어가자, 놈도 참지 못하고 거리를 좁혀 왔다.
‘잡았다.’
쇼핑몰로 들어가면서 상엽은 확신했다.
그는 쇼핑몰 입구로 들어갔다가 재빨리 2층에서 뛰어내려 정보원을 잡았다.
일반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정보원의 멱살을 잡고 근처의 빌딩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유령아. 준비해.”
상엽은 별다른 협박 없이 바로 추종자를 이용해 기억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붙잡힌 정보원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저, 전 적이 아닙니다!”
정보원은 20대 후반의 금발머리 유럽인이었다. 상엽은 그의 표정이 워낙 간절해서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1분 준다. 날 설득해 봐.”
“전 부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부탁?”
“동생이 많이 아픕니다. 그런데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뭔 개소리야? 그런데 날 왜 찾아와?”
상엽은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테, 테리아의 은총만 있으면 동생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테리아의 은총 회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정보원은 눈물까지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거짓말처럼 보이진 않았다.
“동생?”
“네. 그렇습니다. 부모님도 없이 하나밖에 없는 동생입니다.”
상엽은 누나가 떠올랐다. 그의 손은 자연스레 정보원의 멱살을 놓았다.
이에 정보원이 무릎까지 꿇으며 부탁을 했다.
“동생만 살리고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동생이 몇 살이야?”
“열한 살입니다.”
상엽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개자식이 동생을 팔아먹네.”
상엽은 다시 사내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기 시작하자 사내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그런데 사내의 손에 날카로운 쇠줄이 잡혀 있었다.
“지랄한다.”
쾅!
결국 상엽은 사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그렇게 급한 부탁이 있는데 3일 만에 날 찾아왔다고?”
상엽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사람 감정까지 이용하는 놈들이라 이거지? 좋아. 죄책감은 없겠어.”
사내의 몸으로 추종자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엽은 추종자가 사내를 지배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정적을 깨우는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입력되지 않은 번호였다.
상엽은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급한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도, 도와주세요. 마루나 실장님이 납치되셨어요.
‘이건 또 뭐야?’
-부탁이에요! 실장님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하셨어요! 도와주세요!
여자는 울먹이며 다시 한 번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