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83화 (83/300)

# 83

“끌끌. 네년을 부회주에 앉힌 것은 그 잘난 엉덩이나 흔들라고 한 게 아닐 텐데.”

노인은 평소와 달리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적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흑월회의 회주 막악선.

지팡이를 쥔 노인 막악선은 적설의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쫙!

넓은 1층 거실이 모두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났지만 적설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서서히 엉덩이 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시선을 내리며 고통을 참았다.

막악선은 적설의 주변을 돌며 불쾌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암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흑월회의 명성에 똥칠을 하다니.”

쫙!

그는 다시 한 번 적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네가 가진 미모는 어떻게 쓰는 거지?”

“암살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쫙!

“그런데 네 미모를 가꾸는 데 빠져서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죄송합니다.”

쫙!

“살수는 죄송해선 안 된다. 잊었나?”

쫙!

적설의 하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검은 미니스커트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노인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흑월회의 명성은 네 목숨을 몇 개나 가져와도 부족하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지켰어야지.”

쫙!

결국 흔들리던 적설이 무너졌다. 그녀의 둔부에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네년의 자만심이 일을 망친 것이다.”

“기, 기회를 주십시오.”

“그럴 의지가 있다는 걸 먼저 증명해라.”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적설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살이 터진 엉덩이가 보였다.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는지 볼까?”

노인은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를 만신창이가 된 적설의 엉덩이에 부었다.

검은 가루가 엉덩이의 상처에 닿는 순간, 적설이 비명을 지르며 뒹굴기 시작했다.

“살면 기회를 주지. 죽으면 할 수 없고.”

노인은 비명이 가득한 거실을 떠났다.

* * *

“여름이구나.”

상엽은 숲이 뿜어내는 나뭇잎의 여름향기를 진하게 맡고 있었다.

그는 흑월회가 모두 모였다고 판단한 순간에 서울을 떠났다. 굳이 행보를 숨기지 않았고 친구들도 함께 움직였다.

“얘들아. 산신령 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설악산이었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던 설악산은 그가 선택한 전장이었다.

숲이 우거진 지역은 암살자들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상엽은 굳이 이곳을 찾았다.

“자. 너희들이 원하는 곳에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래?”

상엽은 여유롭게 산길을 걸었다.

예전과 달리 어떤 변종도 그를 막지 않았다.

산책을 하듯 여름의 산을 오른 지 다섯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설악산의 대청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장소였다.

상엽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숲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땡볕을 막고 있는 나뭇잎의 어지러운 그림자가 미로처럼 바닥에 드리웠고 바람 한 점 없는 열기로 인해 온실처럼 공기가 뜨거워졌다.

상엽은 움직이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흔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장까지 19명.’

스카우트 3명을 빼면 전문 암살자만 16명이었다.

상엽은 이미 예상한 일이라 당황하지 않고 피부에 닿는 감각에 집중했다.

‘정말 없는 거 같네.’

그 공간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어떤 생명체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암살자들은 완벽히 흔적을 숨겨서 방향을 가늠할 수 없도록 했다.

“나도 좀 배워 둘걸. 훔쳐보기 좋을 텐데.”

상엽의 도발에도 상대는 반응이 없었다.

* * *

흑월회주 막악선은 우거진 나무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기며 상엽을 지켜봤다.

‘감은 좋은 녀석이군.’

15명의 수하들이 미리 자리를 잡았고 그 중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상엽은 움직이지 않았다.

‘똑똑한 녀석은 아니지만.’

막악선은 웃었다.

상엽이 중심으로 들어오는 순간, 수하들의 위치를 조종해 모든 방향을 막았다.

살수들의 포위망이 형성된 것이다.

‘기다린다.’

기다림은 살수들의 기본이었다.

완벽한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한 그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상엽을 지켜보기만 했다.

살얼음 같은 침묵의 시간은 한 시간을 넘어섰다. 그러자 상엽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견디지 못하면 죽어야지.’

막악선은 웃었다.

상엽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최소 세 명 이상의 살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먼 살수들은 스킬을 준비했다.

결국 상엽은 열 가지 이상의 공격을 견뎌야 한다.

지금까지 이를 견뎌 낸 자는 없었다. 막악선은 목표 제거를 확신했다.

툭.

상엽이 한 발을 내딛었다. 살수들은 그 순간에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상엽은 살수들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고스트 체인.

상엽의 손에서 열 줄기의 체인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체인은 정확히 세 명의 살수를 노렸다.

세 명의 살수는 놀라며 몸을 움직였다.

기습이었지만 살수들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상엽은 가장 가까이서 떠오른 살수를 향해 스트라이크를 펼치며 다가갔다.

그 순간, 상엽을 향해 날카로운 기파들이 날아왔다.

상엽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속도였다. 하지만 이는 상엽의 의도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쾅!

그의 몸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꺾였다.

처음부터 목표는 근처에 있던 살수가 아니었다. 상엽의 움직임에 공격을 하려던 살수들이 급히 손을 거두며 뛰어올랐다.

그런데 상엽의 이동이 또 한 번 꺾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트라이크를 터트렸다.

두 번의 방향전환으로 인해 세 번째 살수는 반응이 늦고 말았다.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몸은 폭발에 휩싸였다.

이에 중심을 잃자 묵직한 해머가 머리로 날아들었다.

쾅!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을 살수들은 기회로 이용했다.

살수들이 마치 바둑판을 그리듯 교차하며 상엽의 주변을 향해 뛰었다.

그런데 상엽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이는 별로 훌륭한 선택이 아니었다. 살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고 품에서 십수 가지의 암기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공중에서 상엽은 웃고 있었다.

“걸렸어.”

그 말은 상황을 지켜보던 막악선의 귀에도 들어갔다.

‘미끼?’

막악선이 이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갑자기 그들이 서 있는 바닥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스카우트조차도 감지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변종?’

천 마리가 넘는 담비들이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상엽을 보느라 고개를 들고 있던 살수들이 순식간에 담비들에 휩쓸렸다.

숲 전체에서 튀어 오른 담비들은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살수들을 덮쳤다.

살수들은 어떻게든 담비들을 벗어나려 했지만 그 숫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엽의 반격이 시작됐다.

쾅! 쾅!

담비의 공격에 살수들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어김없이 상엽의 공격이 떨어졌다.

담비에 직접 죽는 살수가 생기기 시작했고, 겨우 빠져나갔다고 생각하면 상엽에게 당했다.

담비들의 장벽은 흑월회의 포위망을 넘어섰다.

땅속에서 끝도 없이 튀어나왔고 심지어는 나무 위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공격에 살수들은 반격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걸음이 늦어지면 상엽의 밥이 되었다.

그렇게 3분이 지났을 때-!

장벽을 벗어난 살수는 겨우 3명뿐이었다.

그들은 간신히 안도를 하였지만, 사실 진짜 위험은 그때부터라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도주하는 살수 한 명이 목에서 피를 쏟고 쓰러졌다.

대기하고 있던 송연지의 공격이었다.

그녀는 또 한 명의 살수를 쫓았다. 미친 듯이 도망치던 살수가 깜짝 놀라 몸을 비틀었다.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송연지가 거리를 좁혔다.

세 번의 공격과 세 번의 방어.

이 와중에도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을 보며, 송연지는 흑월회의 명성이 왜 그리 높은 건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설악이다.

송연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집중했던 그의 머리로 세 마리이 담비가 떨어져 내렸다. 살수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안타깝게고 그게 그의 마지막 행동도 되고 말았다.

촤앗!

살수의 목에서 다시 피가 튀어 올랐다.

살수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동희의 식용유 능력에 감탄한 송연지였지만, 이 비린내만큼은 정말이지 진저리쳐지게 싫었다.

‘아, 정말 샤워하고 싶어 죽겠네.’

송연지는 벌써 능선 너머까지 도망치고 있는 살수를 쳐다봤다.

“하나는 놓쳤네.”

송연지는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고 상엽의 곁으로 돌아왔다.

“하나 놓쳤어요.”

“괜찮아. 그놈도 살아 돌아가긴 힘들 테니까.”

상엽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웃으면서 고개를 저으면 완벽한 비웃음이 된다.

“열셋 죽인 건가?”

“그렇게나 죽였어요? 시간도 얼마 안 됐는데. 그것보다 유물 반반씩 가르기로 한 거 아시죠?”

소멸한 살수는 모두 13명.

그들이 남긴 유물은 담비들과 반반씩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 합의는 동희가 맡았다.

상엽이 설악산을 선택한 것은 처음부터 이 함정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기한단 말이야. 그 산신령 담비.”

“그러게요. 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위치도 거의 정확했어. 담비들의 이동도 암살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고.”

“이제 끝내러 가야죠?”

담비 한 마리가 그들을 보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은 암살자들의 위치를 잡아낸 것이다.

“가자.”

이젠 입장이 바뀌었다. 상엽과 송연지가 남은 잔당들을 쫓기 시작했다.

* * *

막악선은 불쾌했다.

‘인간이 변종을 조종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움직일 수 있다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크앙!

도주하는 그를 향해 모든 변종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그나마 막악선은 별다른 위험 없이 속도를 높였지만, 뒤따르는 스카우트 세 명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남은 암살자마저 부상을 당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 산을 벗어나지 못하면 죽는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들.”

그는 갑자기 이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부상을 꾹 참고 뒤따르던 살수가 이를 보며 걸음을 멈췄다.

촤앗!

막악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크악!”

살수가 그대로 죽어 흩어졌다. 수하의 유물을 챙긴 그가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산개해서 이동한다.”

이 상황에서 그의 명령은 스타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명령이었다.

스카우트들은 그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세 명의 스카우트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고 이는 변종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했다.

지팡이를 쥔 노인, 막악선은 길게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숲을 질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열 마리의 담비들이 튀어나왔다.

담비들은 살아 있는 암기였다.

막악선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몸을 틀며 담비들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담비무리들이 나타났다.

‘예상했다는 건가?’

막악선은 그물에 걸린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도주로에도 담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담비들이 그를 직접 처리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담비가 나타났다는 것 그 자체다.

담비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동경로를 들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등 뒤에서 달려올 상엽을 의식한 막악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큭큭큭…… 노부가 이리 쫓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그는 도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이리 도망만 다닐 순 없지.”

막악선은 더 이상 담비를 피하지 않고 공중에서 굽어 있던 허리를 활짝 펼쳤다. 놀랍게도 그의 허리가 평범한 사람처럼 펴지기 시작했다.

“모조리 죽여 주마.”

촤라랏!

사방으로 수백 개의 칼날 같은 기파가 터져 나가며 담비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그리고 뒤따르던 표범들마저 막악선이 던진 거대한 못에 이마가 뚫렸다.

그가 마음먹고 공격을 시작하자 변종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너희들에게 두려움이란 걸 가르쳐 주마.”

그가 전투를 결정했을 때였다.

다시금 달려들던 변종무리들이 녹색 독무에 휩싸여 핏물로 흩어졌다.

“회주님, 지금은…… 물러나시죠.”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일한 살수, 적설이 말했다.

“길은 뚫어 놓았습니다.”

“산 걸 보니 스스로 가치는 인정한 것이구나.”

막악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설을 넘어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적설이 만들어 놓은 길은 진한 독향이 남아 있어서 변종들이 접근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막악선은 최고의 속도로 산을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난 막악선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녀석들은 진짜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마음을 다질 때였다.

푹!

막악선의 눈동자가 주먹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무심한 눈동자로 자신을 보고 있는 적설이 있었다.

“실패도 모자라 수하들을 전멸시키다니.”

“너, 너, 네가…… 감히!”

적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막악선의 심장을 뚫은 단검을 비틀었다.

“흑월회의 명성은 내 목숨뿐만이 아니라, 네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적설은 막악선에게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입에 담았다.

“무엇보다…… 당신의 노예는 그날 죽었어. 고맙게도 난 이제 더 이상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

막악선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오자 적설은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네 피도 색은 똑같네.”

막악선은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이 가르친 대로 찔렀어. 숨도 쉴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곳이지. 걱정 마. 저 녀석들은 내가 반드시 처리할 거니까.”

막악선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가 쓰러졌고 검은빛으로 부서지더니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내 예쁜 엉덩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그녀는 막악선이 가지고 있던 유산과 유물을 챙기며 설악산을 다시 보았다.

“정상엽. 진짜는 지금부터야.”

적설의 붉은 입술이 비릿한 웃음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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