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82화 (82/300)

# 82

“쳇.”

송연지는 불쾌한 마음에 바닥을 찼다.

한 시간의 추격전 끝에 적설을 놓친 것이다. 추격만큼은 자신이 있는 그녀였는데, 적설을 끝내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미련을 버리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 장면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옥상이 보이는 35층 건물의 복도 창문이었다.

적설은 매서운 눈으로 떠나는 송연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감히.”

지금껏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 못했다.

‘송연지가 이렇게 강하다니.’

자료와 전혀 달랐다.

추격전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쉽게 처리할 수 없었다. 결국 상엽의 합류를 염려한 그녀는 도주를 선택했다.

‘자료가 틀렸어.’

그도 그럴 것이 송연지는 최근에 신전 하나를 클리어하고 나왔다.

이 정보는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이다.

‘내 손으로 죽이겠어. 건방지게.’

그녀의 얼굴에 있던 여유가 사라졌다.

* * *

-동생. 고생했어. 더 조심해.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고마워. 형.”

상엽은 박광신과의 통화를 끝내고 주변을 보았다.

아직도 아쉬움을 풀지 못한 송연지와 연금술 공책에 푹 빠져 있는 동희가 있었다.

상엽의 작전은 박광신에 의해 세워진 것이었다.

‘두 번은 안 통할 테고.’

적설을 놓친 것이 아쉽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았다.

“어쨌든 그 녀석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거니까.”

“스카우트도 놓쳤어요.”

“괜찮아. 이제 한 번 만난 거니까.”

“다음에는 쉽지 않을 거예요.”

“나도 쉬운 남자는 아니야.”

상엽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보상도 충분하고.”

암살자가 가진 유물과 유산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송연지가 감정을 하고 세 명의 친구가 이를 똑같이 나눴다.

“하나만 잡을 수 있으면 좋은데.”

정보를 캐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이 싸움의 끝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그 녀석을 잡아야겠어.”

“적설이요?”

“아니.”

상엽은 전혀 다른 목표를 잡았다.

“하나 더 있잖아.”

“아!”

“스카우트. 그 자식을 잡아야겠어.”

스카우트는 상대적으로 신체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은신식용유가 필요하겠네.”

동희가 책을 내리며 말했다.

“그걸 또?”

정찰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오빠. 다른 방법 없어요?”

송연지가 말을 하는 사이, 동희는 이미 도구를 꺼내서 제조에 들어갔다.

“어쩔 수 없어. 빨리 잡아야지.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거야.”

그들은 상엽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상대는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암살자가 죽었으니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스카우트가 유일했다.

‘추종자로는 안 되고.’

그들은 추종자의 접근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이를 보는 순간 바로 도주할 것이다.

‘결국 직접 가서 잡아야 한다는 건데.’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카우트는 접근하는 모든 갓코인 유저를 발견할 것이고, 한 번 물러나면 더욱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잠깐.’

상엽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갓코인 유저가 아니면 되잖아.’

그는 결정을 내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같은 시간.

상엽의 아파트를 주시하는 자가 있었다.

30대 후반의 외모로 그가 머무는 곳은 500미터가 떨어진 25층 건물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절대 관찰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사선으로 아슬아슬하게 상엽의 아파트가 가려졌지만 이마저도 극복할 수 있었다.

투명하게 변한 그의 눈동자는 앞을 막는 벽을 투시해서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내용은 입술모양을 통해 알아냈다. 한국어라서 연습이 필요했지만 중요한 정보는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문자?’

상엽이 대화를 멈추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스카우트라도 이를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중국이라면 첨단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쉬운 암살이라 생각하고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왔기 때문이다.

‘뭘 하는 거지?’

그는 더욱 자세히 세 명의 목표물을 살폈다.

본래 두 명이었지만 지난 싸움으로 송연지까지 제거 대상에 포함되었다.

‘음.’

스카우트는 잔뜩 긴장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밤이 되었고 세 명은 모두 잠이 들었다.

송연지가 침실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거실에서 대충 등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다른 암살자들이 올 것이다.’

일단 그때까지는 암살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도록 스카우트는 그 자리를 지켰다. 하루 이틀쯤 수면이 없다고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런데 이른 아침.

상엽이 전화기를 보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상엽은 베란다로 나와 기지개를 켜더니, 스카우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상엽이 갑자기 스카우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500미터.

상엽의 능력이라면 순식간에 닿을 거리다.

스카우트는 곧장 품 안에 있는 연막탄을 바닥에 던지고 등을 돌렸다.

‘도주할 수 있어.’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상엽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일정 거리가 되자 유령추종자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스카우트는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도주하려 했지만 결국 5분도 되지 않아 뒷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자결해야…….’

이를 떠올리는 순간 뒷목이 뻐근해졌다.

“일단 좀 자.”

스카우트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군인 아저씨. 잡았어요. 이제 감시 풀어도 돼요.”

-알았네.

스카우트의 위치를 알아낸 건 김대진이었다.

정확히는 서울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카메라와 위성. 특수부대의 장비까지 모두 동원하자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과학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상엽은 기절한 스카우트는 내려다보며 추종자를 불렀다.

30분 후.

상엽은 흑월회의 실체를 알았다. 그런데 원하던 만큼은 아니었다.

“대장이라는 놈이 의심이 많아. 이 녀석은 직접 만난 적도 없어. 본거지도 모르고.”

“점조직으로 운영된 건가요?”

“그건 아닌 거 같아. 대장만 빼고는 모두 알 수 있어. 총 인원은 22명. 4명이 죽었으니까 이제 18명 남은 거지.”

22명의 암살 조직은 뚜렷한 본거지 없이 각자 생활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명령을 받으면 지정된 장소에 모였고 일이 끝나면 보상을 나눴다.

“본거지를 찾아가는 건 무리겠어.”

상엽이 원하던 정보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소득은 충분했다.

“대장을 빼면 암살자 15명에 스카우트 3명. 이렇게 남았어.”

“아오나의 조각은요?”

송연지의 질문에 상엽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적설이 가지고 있어.”

“반드시 잡아야겠네요.”

“그래야지.”

상엽은 아오나의 마지막 신전 조각을 떠올리며 모든 정보를 친구들과 나눴다.

* * *

비밀조직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적설은 이 보고를 받고 화가 나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상엽은 스카우트를 통해 알아낸 모든 정보를 한국 정부와 흑점에 넘겼다.

그런데 박광신은 이를 비밀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상엽에게 허락을 구한 그는 거대 길드에 선물하듯 정보들을 넘겨 버렸다.

-우리만 알고 있는 건 오히려 위험해.

박광신은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흑월회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직접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대 길드에 정보를 넘기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버렸다.

불과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라 적설로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돼 버렸지?’

쉬운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반쯤은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사실 그녀는 이번 암살 작전보다 앞으로 한국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했다.

그래서 정치인 몇 명과도 이미 약속을 잡아 둔 뒤였다.

-흑월회가 한국 유저 암살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미 소문이 퍼져 버렸고, 흑월회의 명성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돼.”

한국은 여전히 쉬운 지역으로 평가된다. 그런 곳에서 실패했고 정보까지 빼앗긴 것이다.

이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거창하게 끝낼 수밖에.”

흑월회에서는 큰 이슈를 만들어 다시 명성을 회복할 수밖에 없었다.

흑월회의 회주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직접 가겠다. 그리고 한국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암살한다.

“살수들의 파티가 시작될 거야.”

그 시작은 당연히 정상엽이었다.

그리고 흑점을 비롯해 한국의 주요 인사들을 처리해서 흑월회의 무서움을 알릴 계획이었다.

-이 기회에 한국을 지배하도록 하지.

원래는 일 년 후에 실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정상엽을 감시하고 암살 인물들을 선별하라. 목표 인원은 100명으로 설정한다.

100명의 암살 계획.

화가 난 흑월회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 * *

어두운 밤이었다.

상엽은 박광신과 김대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재벌들의 흑월회 암살 의뢰.

이것이 주제였다.

김대진 소장은 어떻게든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아저씨 말대로 봐줬어요.’

상엽은 김대진의 부탁을 이미 들어줬음을 강조했다.

‘흑월회로 끝나면 건드리지 않을게요. 그런데 그럴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결국 제가 죽이게 될 거 같아요.’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박광신은 듣기만 했고, 김대진도 흑월회 외에 다른 집단을 끌어들인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군인 아저씨가 바빠지겠어. 소용없는 일인데.’

상엽은 자신이 만난 노년의 사내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안녕.”

좁은 골목을 지날 때였다.

골목 끝에 서 있는 실루엣만으로도 자극적인 느낌을 가진 여인이 서 있었다.

적설이었다.

“살아서 만났네. 날 죽일 거라고 하더니.”

“인정해. 내 예상보다 매력적인 사내라는 거. 그래서 한 번 더 봐 두려고 온 거야.”

“날 흔들려면 차라리 옷을 벗는 게 어때? 도발이 너무 어설퍼서 지루해지는데.”

“도발이 아니야. 예고를 하러 온 거야. 일주일 안에 넌 죽을 거고, 그 후에 99명이 추가로 죽을 거야. 그리고 한국은 흑월회가 지배하는 거지.”

“거창하네.”

“현실을 미리 알려 두는 거지.”

상엽은 그녀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살면 99명도 사는 건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미 그 말은 신뢰를 잃었어. 내가 이렇게 살아 있잖아. 차라리 내가 제안을 하나 할까?”

상엽은 바람에 흔들릴 것처럼 여린 실루엣을 보며 말했다.

“가지고 있는 유물 상자만 남기고 사라져. 그럼 쫓아가진 않을게. 날 조사했으면 알겠지만 정말 좋은 조건이야.”

“재미있는 제안이네.”

“맞아. 지금은 재미있을 거야. 그런데 나중에는 후회하게 돼. 이건 약속할 수 있어.”

“다음에는 네 목이 떨어질 거야.”

적설은 그 말을 남기더니 사라졌다.

‘99명의 목숨으로 부담을 주겠다는 건가?’

상엽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다른 이의 목숨과 한국이라는 운명으로 상엽을 흔들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전혀 파악을 못했네.”

상엽은 사라진 적설의 자리를 밟으며 골목길을 나섰다.

일주일.

그 기간이 시작되었다.

적설이 예고한 암살의 일주일이었다.

상엽은 동희와 송연지를 일부러 연구소로 보냈다.

‘혼자가 편해.’

18명의 암살조직.

상엽은 이를 혼자 상대하기로 했다.

‘암살이지만 결국 무기가 내 몸에 닿아야 하는 거야.’

그는 싸움을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길 수 있어.’

자신감도 있었다.

“어서 와. 코인이랑 유물은 잔뜩 들고 와야 돼.”

상엽은 여유롭게 한강변을 보며 흑월회를 기다렸다.

같은 시간.

한 노인이 한강공원을 걷고 있었다.

목줄을 맨 작은 강아지가 앞서 걸어갔고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뒤를 따랐다.

허리가 굽은 노인의 얼굴은 인자한 주름이 보기 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이쿠.”

잠시 걸음이 흔들린 노인이 지팡이를 놓치며 주저앉았다. 이에 공원을 뛰던 젊은 여성이 노인을 부축하며 일으켜 주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조심해서 가세요.”

여성이 인사를 하며 다시 조깅을 시작했다. 그런데 채 30미터를 가지 못하고 여성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몸을 말려 쓰러지더니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낄낄.”

여성을 등진 채로 걷던 노인이 바람에 실린 피비린내를 맡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죽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지. 낄낄.”

노인은 여전히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한강을 내려다보는 고급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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