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81화 (81/300)

# 81

서울 강남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여인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문만큼은 아니네.”

바쁜 시간을 피해 예약을 하고 한가로이 식사를 하던 여인은 실망한 듯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앞에는 겨우 한 점이 썰려 나간 스테이크가 놓여 있었다.

관능적인 눈빛에 어울리는 타이트한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 비싼 스테이크에 흥미를 잃고 와인잔을 들었다.

“음.”

그녀의 매혹적인 눈이 서울 강남의 바쁜 풍경을 주시했다.

“탐나는 도시야.”

와인잔에 붉은 립스틱이 살짝 묻었다.

그때, 그녀의 여유를 방해하는 진동이 울렸다.

“말해.”

-그냥 자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낮잠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노리고 있는 걸 알고 있다더니?”

-의뢰인까지 찾아냈습니다. 직접 확인한 정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가 된 걸 알고 있는데도 낮잠을 자고 있다? 밤에 잠을 설치기라도 한 거야?”

-밤에도 7시간이나 잤습니다.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흥미로운 녀석이네. 계속 감시해. 아직 움직이진 말고.”

-네. 부회주님.

흑월회 부회주 적설.

그녀는 베일에 가려진 흑월회에서도 부회주를 맡고 있었다.

“직접 온 보람이 있어.”

본래 이번 일은 그녀가 직접 나설 만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냥 한국이 보고 싶어서요. 곧 격전지가 될 텐데.’

그렇게 말하며 직접 합류한 것이다.

“한국은 역시 흥미로운 곳이야.”

그녀는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그리고 결제를 위해 카드를 건네주며 말했다.

“한국 최고 레스토랑이라고 하더니. 여기 주방장이 한국의 격을 떨어트렸다고 전해.”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웨이터는 심장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 *

이른 아침.

“누구지?”

상엽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유령추종자가 자연스럽게 문밖의 상황을 살폈다.

“만능 CCTV냐?”

그런데 상엽은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타이트한 검은 원피스를 입은 관능적인 여인이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수상합니다.

게다가 더욱 이상한 것은 유령추종자의 반응이었다.

보통 갓코인 유저가 접근하면 추종자가 먼저 알아내서 경고를 했다.

상엽이 암살목표가 되고도 여유롭게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여인은 갓코인 유저로 보였지만, 추종자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접근했다.

상엽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일단 만나 보면 알겠지.”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안녕.”

여자는 손바닥을 보여 주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래. 안녕.”

상엽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 주었다.

“중국인 친구는 없는데.”

“이제부터 만들면 어때?”

“난 외모보다 마음을 보는 편이라서.”

“예쁘다는 거지?”

단순히 예쁘다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선 외모였다. 상엽은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과 몸매에 빨려 드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색이 팜므파탈의 매력을 더해서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스킬인가?’

상엽은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 정도로 상대는 완벽을 넘어선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키스할래?”

여인은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공격이 상당히 강하네.”

“한국 오면 멋진 사내와 꼭 키스하고 갈 거라고 마음먹었거든. 그래도 아무나하고 키스하는 여자는 아니니까, 너도 손해 볼 건 없지 않겠어?”

“거절할게.”

“왜?”

“말했잖아. 마음을 본다고.”

“내 마음이 어떨 거 같은데?”

“흐응-!”

상엽은 웃으며 말했다.

“변종보다도 세 배는 독할 거 같은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들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살피고 있었다. 특히 상엽은 한 가지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헌터 아이에 안 걸려.’

상대의 보유 코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코인을 소모했거나 감추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적설. 내 이름이야.”

“정상엽.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연히 알지. 그런데 아쉽네. 꽤 재미있는 사내 같은데 죽여야 한다니.”

“보통 암살자들은 몰래 와서 죽이고 가는 거 아니야?”

“난 평범한 암살자가 아니라서.”

적설은 우아하게 손을 저으며 얇은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상엽의 눈빛을 보더니 아름답던 미소는 비웃음으로 변했다.

“날 잡으려고?”

“좋은 기회잖아. 암살자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해 봐. 난 쉬운 여자가 아니거든.”

둘은 한 걸음 거리에 서 있었다.

상엽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을 뻗었다. 목표는 그녀의 목이었다.

그런데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연기로 흩어져서 상엽의 등 뒤에 나타났다.

하지만 상엽도 곧바로 몸을 돌리며 다시 팔을 뻗었다.

그러자 적설은 미끄러지듯이 뒤로 이동하며 상엽의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 꼬시는 솜씨가 별로네.”

“집 안으로 데리고 왔으면 반은 성공한 거 아니야?”

“그게 남자들의 착각이지.”

“그 착각이 용기를 만드는 거고.”

“용기가 아니라 폭력이야.”

“지금은 그 폭력이 필요한 때니까.”

상엽이 팔각대시로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접근하기도 전에 적설의 몸이 다시 연기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베란다 문을 열고 난간에 서 있었다.

‘빠르다.’

문제는 사전 동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연기로 흩어져 버린다.

이는 다음 동작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첫 만남은 여기까지. 첫 인상은 별로였어. 다음에는 좀 더 노력해.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설은 고층 아파트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상엽은 곧장 쫓아가서 떨어지는 그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중간쯤에서 작은 반동으로 몸이 떠오른 그녀는 새처럼 다른 건물 뒤로 숨어 버렸다.

목표를 잃은 상엽은 심판 스킬을 사용할 틈도 찾지 못했다.

그때. 상엽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삐빅.

베란다에 사각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폭탄?’

시간을 표시하는 타이머는 2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1초가 되는 순간, 상엽은 얼른 폭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어 그 안으로 던져 넣었다.

아공간을 닫자 폭음이나 폭발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벌한 여자네.”

상엽은 적설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보았다.

* * *

흑월회에서 투입된 인원은 총 다섯 명이었다.

적설이 작전 책임자였고 한 명의 스카우트와 세 명의 암살자가 팀을 이뤘다.

“좀 어때?”

적설이 상엽을 만난 것은 불안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약간의 힘을 보여 줌으로써 감정적인 허점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뛰어난 암살자가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든 일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있습니다.

“뭐?”

한가로이 인도를 걷던 적설이 걸음을 멈추며 되물었다.

자신과 만난 것이 불과 30분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엽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쇼핑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재미있는 놈이네.”

그런 장소라면 은밀히 처리할 수는 없지만, 죽이는 것은 훨씬 쉽다.

일반인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기습을 하기가 용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회주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절호의 기회입니다.

“좋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도해 봐.”

적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서도 감성적으로는 찜찜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몰아가는 맛이 없는데.’

적설은 이미 상엽의 암살계획을 짜 놓았다.

그 핵심은 감성적으로 최대 불안상태를 만든 후에 직접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런 방식은 시간적 여유가 있고, 상대의 수준이 중급 정도일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상엽의 자료를 봤을 때, 단순하지만 꽤나 우직한 성격이라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좋은 기회가 와서 이런 과정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직접 가 봐야겠어.”

적설은 불안을 참지 못하고 작전 장소로 이동했다.

동대문의 대형 소핑몰.

주말이라 사람들이 북적였고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스치며 걸었다.

그중에는 상엽도 있었다.

상엽 역시 많은 사람들과 어깨와 팔뚝을 스치며 걸었다.

‘멍청한 건가?’

작은 바늘 하나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었다. 팔뚝 스칠 때 살짝 그어 주면 끝이다.

이를 모르는지 상엽은 신중하게 셔츠를 고르느라 등 뒤를 지나가는 사람도 신경 쓰지 못했다.

-시작하겠습니다.

한 명의 스카우트가 주변에 다른 방해요소가 없음을 확인하고 작전 실행을 보고했다.

“시작해.”

적설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그 과정을 지켜봤다.

첫 암살자가 접근했다. 청바지에 줄무늬 셔츠를 입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전혀 위화감이 없이 섞여 들어간 암살자는 한참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상엽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둘의 팔이 스치고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상엽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에 암살자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다른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암살 시도는 없었다.

신중을 위해 그저 떠본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잠시 후, 두 번째 암살자가 접근했다. 그리고 세 번째 암살자는 한 발 뒤에 뒤따랐다.

두 번째 암살자는 30대 후반의 외모였다. 안경을 끼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땅딸보였다.

그는 무거운 몸이 불편한 듯 땀을 흘리며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좁은 매장의 옷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땅딸보는 상엽에 앞서 다른 사람과 먼저 몸을 부딪쳤지만, 별다른 실랑이 없이 계속해서 옷을 골랐다.

그러다 드디어 상엽의 곁으로 접근하더니 최대한 몸을 펴며 뒤를 지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배가 상엽에게 닿으며 자연스레 몸을 밀치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능숙한 한국어였다.

이에 상엽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그때였다. 한 발 뒤로 뒤따르던 사내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그것이 상엽의 눈에 걸렸다.

상엽이 반응을 하려는 순간, 가장 먼저 매장으로 들어왔던 암살자가 등으로 접근했다.

진짜는 첫 번째 사내였던 것이다.

여러 번의 주의로 첫 번째를 잊게 하고, 결정적인 시선을 세 번째가 끈 다음, 진짜 암살을 하는 방식이었다.

과정은 길지만 그 움직임은 단순하고 빨랐다.

땅딸보로 인해 행동에 제약까지 생긴 터라, 상엽은 등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끝난다고?’

적설이 이 생각을 할 때였다.

“언니. 코 성형했네.”

적설의 숨겨진 약점을 건드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적설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날카로운 세 줄기 손톱이 얼굴 앞을 스쳤다.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젖혀 공격을 피한 적설의 몸이 연기로 흩어지는 순간, 매장 안에서 누군가 쓰러졌다.

적설은 물러서면서도 이 장면을 분명히 보았다.

첫 번째 암살자의 목이 꺾였고, 두 번째 땅딸보의 머리에 해머가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흑월회의 암살자들은 일반 전투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흑월회의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몇 초 만에 둘이나 제압을 당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우. 써.”

상엽은 세 번째 암살자를 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그의 입 안에는 동희가 준 환역이 썩은 생선 비린내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저씨. 죄송해요. 전부 변상할게요. 이 녀석만 처리하고요.”

상엽은 세 번째 암살자를 향해 접근했다.

“언니. 어디 봐. 나랑 놀아야지. 내가 지금 빨리 샤워를 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빨리 끝내자.”

현재 송연지의 온몸에는 피부를 자극하는 기름이 발라져 있었다.

-스카우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기름이야. 신체능력 상승도 있어.

동희가 만든 연금술 물약이었다.

그런데 마치 생선을 세 번쯤 튀겨 낸 식용유 같은 느낌이었다.

송연지는 이 기름을 온몸에 바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 정도는 돼야지. 일이 재미있어졌어.”

적설은 수하들이 처리되었음에도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송연지. 오늘은 인사만 하고 갈게.”

“언니. 그렇게는 안 되지.”

“다음에는 내가 마음껏 괴롭혀 줄게. 기대해.”

적설의 몸이 연기로 흩어졌다. 하지만 송연지는 반달 모양의 유산을 꺼내며 추격을 시작했다.

두 여인은 엄청난 속도의 추격전을 벌이며 쇼핑몰을 빠져나갔다.

그사이, 상엽은 마지막 암살자의 목을 잡고 있었다.

‘강하다.’

암살자는 그렇게 느꼈다.

단 한 번 공격을 피했고, 그다음에는 목이 잡히고 말았다.

속도에는 자신이 있는 그였지만 상엽의 손을 벗어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자료는 거짓이었다.’

그의 죽음은 잘못된 자료부터 시작이었다.

‘유령아. 준비해.’

상엽은 마지막 암살자를 통해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그런데 목이 잡힌 암살자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암살자의 몸이 폭발할 것 같다고 느낀 상엽은 얼른 목을 꺾어버렸다.

결국 세 번째 암살자도 그렇게 처리가 됐다.

“뭐. 할 수 없지.”

상엽은 세 번째 암살자가 빛으로 흩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매장을 다시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그들이 남긴 유물과 유산 상자가 있었다.

“이래서 쇼핑을 끊을 수가 없어.”

그는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한 여인처럼 웃으며 상자들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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