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80화 (80/300)

# 80

흑월회.

중국의 갓코인 유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 중 하나였다.

-소수로 구성된 암살 조직.

그들은 청부살인을 주로 했고 돈 대신 유물을 받았다. 그리고 의뢰 받은 인물은 어김없이 처리했다.

알려진 의뢰만 20건.

드러나지 않은 의뢰까지 따지면 100건이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직접 본 적은 없었고, 얼굴을 본 이는 살아남지 못했다.

근거지가 어디인지, 블랙인지 화이트인지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실존하는 조직이었다.

“우리 길드에서 주시하는 브로커 몇 명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그 브로커가 한국에서 온 자들을 만났고, 그 후부터 다른 접촉을 하지 않고 있어요. 어떤 의뢰를 받아들였다는 뜻이죠.”

트레져 헌터 길드는 정보력에서는 최고를 자랑했고 흑월회는 항상 주목하는 조직이었다.

상엽은 입맛이 쓴 걸 느꼈다.

송연지가 속한 길드에서 알아낸 정보라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 말은 반대로 앞으로 운신의 폭이 준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 브로커가 최근에 한국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이 우리 길드에 잡혔고요.”

“그런데 내가 왜 암살대상이라는 거야?”

“브로커가 모은 정보가 가리키는 게 오빠 같다는 게 우리 길드 분석관의 생각이에요. 요즘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핫하고, 일본에서 사고를 쳤으며, 최근 중국 도망자들과 싸운 인물. 중국 도망자들과 싸움 사람…… 오빠 맞죠?”

“그랬지.”

“정보가 많이 일치해요.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90퍼센트 이상이에요.”

90퍼센트라고 말했지만 송연지는 사실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길드의 일을 뒤로 미루고 다급히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정말 그 짧은 시간에 사고를 얼마나 치고 다닌 거예요?”

“좀 많이 치긴 했지.”

“의뢰자가 누구인지 짐작은 가요?”

상엽도 이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

암살조직이 움직였다는 것은 의뢰자가 있다는 뜻이다.

“의뢰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지?”

“상대가 의도적으로 위장을 했다면 아닐 수도 있어요. 우리가 확인한 건 돈의 흐름이라서요.”

“돈의 흐름이라니?”

“이번 의뢰는 특이하게 중국 돈으로 결제됐어요. 보통 유물로 의뢰를 받는데, 현금을 받았다는 건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다는 거죠.”

“그래서?”

“그 돈의 출처를 추적했어요. 유럽의 비밀계좌였는데 신분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한국인이 관련되었다는 정보는 알아냈어요.”

브로커가 조사한 정보까지 감안하면 한국에서 시작된 의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현금으로 의뢰를 했다고?”

“맞아요.”

“엄청난 금액일 텐데. 얼마인지 알아냈어?”

“대충요.”

송연지는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말했다. 원래는 길드의 정보로 외부유출은 금지인 사항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1조 원이에요.”

엄청난 금액이었다. 흑월회를 움직이는 데 충분한 돈이기도 했다.

“1조 원이라…….”

복잡하던 상엽의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1조 원이나 되는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될까?”

“얼마 안 되죠.”

“누군지 대충은 알 것 같은데.”

1조 원을 지불할 수 있는 부류.

상엽의 기억에 그들과 엮인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나 재벌들이랑 엮인 건가?”

그 말을 들은 송연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엽은 어쩔 수 없이 설악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부 들려주었다.

“하아.”

이야기를 모두 들은 송연지는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았다.

“변태 요리사랑 같이 사고를 쳤다는 거네요.”

“그런 거 같은데?”

“그럼 변태 요리사도 대상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러게. 동희도 연락해야겠어.”

상엽의 행동은 그다지 다급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송연지의 눈에는 불안하게 보였다.

“오빠. 중국 최고의 암살자들이에요. 긴장되지 않아요?”

“어차피 그게 사실이면 긴장해서 뭐해. 차라리 잘됐어.”

“잘됐다니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알아서 찾아오겠다니 잘됐지 뭐. 그놈들은 코인이나 유물도 많을 거 아냐.”

송연지는 상엽의 생각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왠지 서툰 자신감 같지는 않았다.

“오빠. 얼마나 강해진 거예요?”

“이번에 살아남는 거 보면 알겠지?”

상엽의 웃음에 송연지도 왠지 안심이 되었다.

“대비는 확실히 해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죠?”

“야, 뭐 나는 목숨 내던지고 사는 줄 아냐? 나도 목숨 귀중한 건 아니까, 걱정하지 마.”

확답을 들은 송연지는 아공간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상엽에게 내밀며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 길드 기밀서류예요. 보고 파기하세요. 흑월회가 워낙 조심스러워서 정보가 많진 않아요.”

“이래도 되는 거야?”

“안 되죠. 그런데 오빠니까 뭐.”

“나도 똑같아.”

“뭐가요?”

“다른 사람이면 그냥 받는데. 너라서 못 받겠어.”

상엽은 서류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희야. 지금 좀 만나야겠어.”

-나 지금 연구 중인데.

“내가 그쪽으로 갈게. 위치만 말해.”

상엽은 주소를 기억하고 송연지를 보며 말했다.

“같이 갈래?”

“당연하죠. 오빠랑 변태 요리사 두 명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오랜만에 뭉치는데. 맥주라도 사 갈까?”

“오빠. 우리 지금 소풍 가는 거 아닌데요.”

“긴장 풀어.”

“지금 그 말은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자. 동희가 기다려.”

상엽은 어이없어 하는 송연지를 데리고 카페를 나섰다.

* * *

“으악!”

송연지는 비명을 지르며 상엽의 등 뒤로 숨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도 지금 눈앞의 괴물은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도, 동희야.”

“어서 와. 밥 먹었어?”

동희의 피부는 수백 개의 알록달록한 반점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눈동자는 보라색으로 변했고, 손톱에서는 검은빛이 났다.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이 숨을 쉬듯 계속해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진짜 괴물이 되어 버린 모습에 상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괜찮냐?”

“응. 괜찮아. 실험체가 부족해서 나한테 실험을 해서 그래.”

상엽은 송연지와 달리 동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직접 살폈다.

다행히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정신은 원래 이상했으니까.’

동희의 실험실은 서울의 안전선 밖에 위치해 있었다. 버려진 전원주택의 지하실로 변종이 접근하더라도 내부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험은 잘 돼 가?”

“응. 연금술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 요리랑 똑같아. 서로 다른 물질을 끓이고, 추출하고 비벼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거야.”

“하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도 똑같지.”

“응?”

“아니야.”

상엽은 지하실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수백 개의 실험도구를 보았다.

“일단 알아야 할 게 있어. 이야기 좀 해.”

상엽은 동희와 인사를 끝내고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헤헤.”

“야. 변태 요리사 왜 웃어?”

“실험체가 온다는 거지?”

송연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먼저 쏘아붙이려는데 상엽이 나섰다.

“코인과 유물도 함께 오는 거지.”

“헤헤. 잘됐다.”

그들은 기다리던 시합이 확정된 스포츠 선수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지금 나만 급한 거야? 난 암살목표도 아닌데?”

송연지가 아무리 지적해 봐야 상엽과 동희의 여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 * *

루나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외동딸 마루나.

그녀는 깊은 잠을 방해하는 손길에 눈을 떴다. 그리고 사신처럼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버릇없게 계속 누워 있으려고?”

그 한 마디에 마루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속옷이 훤히 비치는 슬립만 걸쳤지만 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앉아.”

사내의 한 마디에 마루나가 침대에 다시 걸터앉았다.

“너 많이 건방져졌구나.”

그 말에 마루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사내는 화장대 앞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서 그녀의 앞에 앉았다.

“신발 벗는 걸 깜빡했네.”

웃으며 말하는 사내는 상엽이었다.

그녀는 노예의 거처를 방문한 주인처럼 강압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박한수. 어디 갔어?”

“모, 몰라요. 연락한 적도 없어요.”

성안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 박한수.

상엽의 지시로 정보를 캐내던 두 명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다?”

상엽의 뒤로 유령추종자가 떠올랐다. 이를 본 마루나가 뒤로 물러나며 다급히 외쳤다.

“저, 정말 몰라요! 정말이에요!”

“다른 사람 듣겠어.”

“죄, 죄송해요.”

유령추종자가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본 터라 마루나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바닥을 밀어내며 물러서는 바람에 모델 같은 몸매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속옷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상엽에겐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아, 알아요. 절대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지시하신 일도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거의 기어가듯이 화장대 위에 있는 자신의 가방을 잡더니 태블릿PC를 꺼냈다.

“여, 여기 있어요.”

그녀는 이하나에 대해 여전히 조사를 하고 있었다. 자료에는 상엽이 지시하지 않은 것까지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럼 박한수라는 건가?”

“네?”

“죽은 네 친구의 부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마루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누군가 그날 있었던 일을 발설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흑월회가 고용될 일도 없었다.

“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박한수와 연락한 적은 없다는 거지?”

“네. 없어요. 그날 이후로 전화도 하지 않았어요.”

“죽은 녀석들 부모님들이 연락을 했을 텐데.”

“전 그냥 모른다고 했어요.”

마루나는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놨다.

“집요하게 물어보긴 했어요. 그런데 정말 전 그날 자리에 없었다고 했어요. 일곱 번쯤 연락이 온 것 같아요.”

“언제가 마지막이었어?”

“일주일 전이었어요. 그 후로는 연락이 없었어요.”

“갑자기 연락이 없었다는 거지?”

“네.”

상대가 포기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봐야 한다. 그 말은 박한수가 입을 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뜻이 된다.

‘박한수가 그들을 이용해서 날 제거하고, 그동안 숨어 있기로 했다. 이게 가장 현실적인가?’

상엽이 마루나를 찾아온 것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새로운 숙제를 줄게.”

“네. 말씀하세요.”

마루나는 살았다는 생각에 얼른 자세를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박한수 찾아. 어디로 갔는지 무조건 알아내.”

상엽은 그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루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참.”

자신이 들어왔던 창문으로 다시 나가려던 상엽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마루나를 보며 말했다.

“너 코 골더라.”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 * *

민앙 그룹 회장 함종석.

그는 평소처럼 8시 30분이 되자 빌딩 입구에 도착했다.

그를 마주한 모든 사원들이 고개를 숙였고 지나갈 때까지 허리를 펴지 못했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0위를 이끄는 인물의 당연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가 회장실로 들어갔을 때,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 같은 사내가 서 있었다.

찢어진 곳이 많은 청바지에 무늬가 없는 하얀 티셔츠를 입은 사내는 회장실과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함종석의 뒤에서 수행을 하던 비서가 앞으로 나서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됐네.”

함종석이 비서를 물렸다.

“나가 있게.”

그의 한 마디에 비서는 고개를 숙이며 회장실을 떠났다.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건 군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저씨. 나 알죠?”

“내 자식 죽인 놈을 모를 것 같나?”

함종석은 상엽을 알아봤다.

그런데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매서웠다.

‘부친은 그래도 호랑이 같긴 하네. 아들은 강아지도 못 된 병아리였는데.’

상엽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함종석을 찾아왔다.

그런데 의외로 그 답은 곧바로 나왔다. 함종석이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승에서 기다리지.”

그 말을 하는 함종석의 눈빛은 어떤 전사보다 강렬했다.

“안 죽여요. 내가 뭐 이유 없이 맨날 사람 죽이는 놈으로 보이나?”

상엽은 함종석의 눈빛을 마주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흑월회가 마지막이에요. 이 뒤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때는 아저씨도 죽어요.”

“내가 포기할 것 같나?”

“아저씨. 지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요.”

상엽은 함종석의 한 발 앞까지 다가가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아들이 죽은 이유가 정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날 탓하기 전에 자식교육을 뒤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함종석도 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