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78화 (78/300)

# 78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어요.”

이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분증을 확인한 군인은 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분도 되지 않아 상엽 앞에는 무장한 경찰 20명이 열을 맞춰 입구를 막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을지는 예상할 수도 없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상엽의 전화기에서도 불이 났다.

-이보게. 청와대는 무슨 일인가?

-상엽 동생. 거긴 아니야.

김대진 소장에 이어 박광신까지 그를 말렸다.

-지금 바로 가겠네. 조금만 기다리게.

-상엽 동생. 갈 거면 나랑 같이 가.

둘은 곧장 청와대로 달려온다고 했다. 그들까지 나서자 상엽도 무작정 뚫고 들어가기가 민망해졌다.

“공무원 한 명 만나는 게 뭐가 이렇게 어려워?”

상엽은 일단 전화를 끊고 입구에 있는 경찰들을 다시 보았다.

“그냥 다 부숴 버릴까?”

상엽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한 마디에 경찰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상엽의 웃음이 마치 악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엽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헬기소리가 들렸다.

“저 형도 참 요란하게 오네.”

300미터까지 하강한 헬기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빠르게 떨어지던 사내는 10미터 위에서 뭔가에 걸린 듯 잠시 떠오르더니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상엽 동생. 항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헬기에서 내린 이는 박광신이었다.

“민원 하나 넣으려고 온 건데? 형까지 나설 일은 아니었다고.”

“청와대잖아. 사람들 보기에 안 좋아.”

“사람들한테 진짜 안 좋은 건 저 안에 있는데.”

상엽은 청와대 안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임중훈이라는 새끼가 있거든. 내가 뭘 좀 알게 됐어. 미성년자 불러다 더러운 짓도 하고, 비밀파티도 했고, 그거 주최한 양아치를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더라고.”

“무슨 말이야? 위장?”

“오명진. 그 새끼 안 죽었어. 시신을 바꿔치기 했더라고.”

박광신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비서실장 임중훈이 비밀파티 주최자인 오명진을 빼돌렸다 이거지?”

“맞아. 그래서 잡으러 온 거야.”

“그런 이유라면 잡아야지.”

박광신도 상엽이 쫓는 비밀파티를 알고 있었다.

그것이 누나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이미 큰 비밀이 아니었다.

“그래도 상엽 동생. 여기에서 이러는 건 좀 곤란해. 상엽 동생도 잘 알잖아.”

“뭘?”

“왜 이래, 모르는 것처럼. 여길 무너뜨리면 치안이 무너지는 거야. 알잖아? 치안이 무너져도 여기 있는 놈들은 살아. 힘없는 국민들만 죽지. 혼란스러워져도 먹을 게 없어져도 여기 있는 놈들은 잘 먹고 잘 살아. 죽는 건 국민이지.”

이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 똑똑한 형은 이래서 피곤해.”

“이제 진정된 거지?”

“별로 흥분한 적도 없어. 흥분은 저쪽이 했지. 어쨌든 형, 임중훈은 만나야겠는데? 지금 당장.”

“알았어. 내가 해 볼게.”

박광신은 곧장 여러 곳에 통화를 시도했다.

“3분만 기다려. 답이 올 거야.”

“쳇. 뭐가 그렇게 쉬워?”

“동생이 우리 길드에 들어왔으면 여길 그냥 통과했을걸?”

“됐어. 기분 나빠. 이제 한국을 위해서 어쩌고 하는 말도 안 들어.”

박광신은 토라진 상엽의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야. 그건 인정해야 돼.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비판하고 투쟁해야 하는 건 맞지만 무작정 나쁜 나라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아.”

“형도 정치하려고?”

“그냥 사실을 말한 거야. 우리나라의 나쁜 점은 수도 없이 많지.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도 정말 많고. 하지만 1등과 비교하면 어느 나라든 전부 문제가 있는 거야.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가 1등은 아니더라도 꽤 상위권 나라거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박광신은 불만이 가득한 상엽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래서 지키고 싶은 거잖아. 지킬 가치가 없다면 이미 버렸겠지.”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 나라는 날 힘들게만 했거든.”

“그건 인정해. 그래서 상엽 동생이 청와대를 박살 낸다고 해도 난 아마 이해할 거야. 권력을 줬지만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낸 건 정치인들의 책임이니까.”

박광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연락이 왔다.

“10분 뒤에 만나자네. 직접 나오겠다고.”

“죽일 수도 있어.”

“말했잖아. 난 이해할 거라고.”

상엽은 그 말이 거짓말로 들리지 않았다. 이는 은근히 위로가 되었다.

“형이 임중훈을 살린 걸지도 몰라.”

“그건 우리나라에 너무 큰 죄를 짓는 거 같은데? 그런 놈은 죽어야 하는데.”

박광신은 웃었다. 그 웃음에 상엽의 화도 금세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데 상엽 동생.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응? 내가?”

“집들이. 왜 날 초대하지 않는 거지? 내가 선물도 준비해 놨는데.”

“아…….”

“지금까지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해할게.”

상엽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세 명이 다녀갔어. 정식 집들이는 아니었고.”

“세 명이 전부 여자였다면 이해하지.”

“여자였어.”

“상엽 동생. 많이 늘었는데?”

“형의 상상력에서 많이 배웠지.”

실제로 세 명 중에 초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레나뿐이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내가 다음 차례는 되겠지?”

“물론이지. 내가 이 나라에서 쫓겨나지만 않으면.”

그들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이것이 박광신이 가진 힘이었다. 굳이 스킬이 없더라도 사람의 감정을 잘 조율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고, 박광신은 원래 이런 부분에서 타고난 인물이었다.

잠시 후, 검은 고급승용차 한 대가 청와대 입구로 나왔다.

임중훈이었다. 그는 뒷좌석에서 창문을 내린 채로 박광신을 보며 말했다.

“타지.”

그 말에 박광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랄하지 마시고 내려서 사과부터 하죠. 뒈지기 싫으시면요. 이미 당신은 한 번 죽었던 거나 다름없거든.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당신을 한 번 살려 준 거라 볼 수 있지.”

임중훈은 이마가 넓고 눈이 큰 사내였다.

그 큰 눈이 박광신의 말로 인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내답게 금세 원래의 거만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이에 상엽이 박광신 앞으로 나섰다.

“뭐. 타라니까 탈게.”

상엽은 뒷좌석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자 손가락이 철판 안으로 파고들었다.

쾅!

뒷좌석 문이 완전히 뜯겨져서 상엽의 손에 들렸다.

그 순간 경비대를 포함해 운전사, 임중훈까지 모두 놀라서 입을 열지 못했다.

경찰들은 한발 늦게 총을 꺼내며 상엽을 둘러쌌다.

“뭔 차가 이렇게 약해?”

상엽은 경찰들을 무시하고 뜯겨져 나간 문을 바닥에 던졌다.

“왜? 타라고 해서 문 열었는데. 문제 있어?”

차 안에 있던 임중훈은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경찰들을 물렸다.

“광신이 형. 나중에 연락할게.”

“그래. 상엽 동생. 결과나 알려 줘.”

인사를 마친 상엽은 거만한 표정이 무너진 임중훈의 옆에 앉았다.

“뭐해? 출발해. 이왕이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상황에 따라서 꽤 잔인하게 죽을 수 있거든. 시민들이 놀라면 곤란하잖아.”

임중훈은 마른침을 삼키기만 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35층 빌딩의 옥상이었다.

임중훈은 옥상에 도착하자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었다.

‘이렇게까지…….’

상엽은 35층 빌딩을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뛰어올랐다. 그것도 임중훈의 목덜미를 잡은 채로 뛴 것이다.

‘인간이 아니다.’

임중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아. 똑똑한 놈들 상대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러니까 규칙을 말해 줄게. 생각하고 대답하면 죽는 거야. 그냥 떠오른 그대로 대답해.”

상엽은 파이어스의 망치를 꺼냈다.

“거짓말 같으면 시험해 봐도 좋고.”

임중훈 대통령비서실장은 지금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다.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반대의 입장이 되었다.

“오명진. 알지?”

임중훈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는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이었다.

퍽!

상엽의 주먹이 그의 배에 꽂혔다.

“끄윽…….”

숨이 막힌 임중훈은 그대로 꼬꾸라져서 속을 게워 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곤란은 사람을 가장 놀라게 하는 증상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이성이 마비된다.

오로지 살 수 있는 방법만 찾는 것이 본능이었다.

그런데 그 곁에 있는 상엽은 꼬꾸라진 그의 뒷목을 밟았다.

“살살 때렸으니까 운이 좋으면 살 거야. 죽으면 할 수 없고.”

상엽은 실제로 그가 스스로 숨을 쉴 때까지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뒷목을 밟아 바닥에서 몸부림치도록 했다.

대한민국 청와대 비서실장 임중훈.

그는 마치 아이의 손에 짓눌린 곤충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임중훈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엽은 그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고개를 젖혔다.

“오명진. 몰라?”

같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조금 전보다 빨리 주먹을 휘두르려 했다.

이에 임중훈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압니다!”

“시체 바꾸라고 지시했지?”

“네? 아! 제, 제가 했습니다.”

“생각하지 말랬잖아.”

쿵!

이번에는 등이었다. 숨이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에 몸을 떨었다.

“으…….”

“다시 묻는다. 시체 바꾸라고 지시했지?”

“네. 했습니다.”

임중훈은 드디어 생각을 지우고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숨이 가쁜 것도 꾹 참고 그는 어떻게든 성실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오명진 어디 있어?”

“중국으로 밀항했습니다.”

“중국 어디?”

“청도항으로 들어갔지만 육로를 이용해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성형과 신분세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계획입니다.”

“직접 그렇게 말했다고?”

“네. 죽음을 위장한 건 오명진의 계획이었습니다. 전 그저 도와준 것뿐입니다.”

상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네가 도와준 거지?”

“오명진의 재산을 문제없이 해외로 빼돌릴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그걸 도와주고 넌 뭘 얻었는데?”

“오명진의 비밀파티 장부에서 제 이름을 지워 주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임중훈을 명단 제외를 해 주는 대가로 안전하게 일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질적인 증거가 될 오명진의 장부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죽은 것처럼 꾸민 거. 누가 한 거야?”

“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정보가 그것뿐이라면 넌 여기서 죽어.”

임중훈의 눈알이 빠르게 굴렀다.

“도깨비! 오명진이 그를 도깨비라고 불렀습니다.”

“도깨비?”

상엽은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박광신이었다.

“형. 도깨비라는 놈 알아?”

-도깨비? 들어 본 적 있어. 일단 정보 좀 정리하고 다시 연락할게.

2분쯤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임중훈에겐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상엽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는 심장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갓코인 유저인 건 확실해. 그런데 이 자식 좀 특이해.

“뭐가?”

-이 자식 원래 의사였던 놈인데 지금은 우선제거대상이야.

“우선제거대상?”

-우리가 본격적으로 치안유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처리해야 될 놈. 내가 그래서 별명을 기억하고 있었어.

“무슨 짓을 했는데?”

-이놈. 싸이코패스거든. 개인병원에서 자기 환자들을 일부러 고통스럽게 죽였어. 성폭행부터 엽기적인 살인도 있었고. 그런데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귀신처럼 사라졌어. 물론 출동한 경찰은 모두 죽었고. 갓코인 유저인 걸 몰랐던 거 같아.

상엽은 설명을 듣고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 놈이 오명진을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 그것도 죽이는 게 아니라 시체를 바꿔치기 하는 건데.”

-나도 그건 모르겠어. 그런데 그놈이 바꿔치기 한 거야?

“그런 거 같아.”

-잘됐네. 이번 기회에 잡자. 어차피 잡아야 될 놈이었어.

“알았어. 고마워.”

상엽은 전화를 끝내고 다시 임중훈을 보았다. 상엽의 눈빛을 본 임중훈은 얼른 시선을 내렸다.

“넌 벌레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네?”

“난 말이야. 벌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상엽은 감정이 사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귀찮아.”

그가 임중훈을 대하는 솔직한 감정이었다.

“귀찮은 새끼.”

상엽은 임중훈의 뒷덜미를 잡고 건물을 뛰어내렸다. 그리고 가까운 경찰서 입구로 끌고 갔다.

“자수해. 죄는 많이 지었으니까 자격은 충분할 거야.”

그는 임중훈을 경찰서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죽은 것처럼 살아. 산 것처럼 살면 다시 올 테니까.”

임중훈의 표정에는 더 이상 거만함이나 권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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