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이른 아침이었다.
대한민국 뉴스는 한 가지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유명 인사들의 비밀파티가 밝혀진 것이다.
명확한 증거사진이 있었기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비밀파티 명단이 떠돌았다.
강차연은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이 처벌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명진의 죽음도 이슈가 되도록 했다.
오명진의 자살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가장 잘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파는 연예계 전체로 퍼졌다.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이하나에 대한 취재경쟁도 뜨거웠다.
오명진에 대한 모든 것이 기사화되었고 자연스레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최근 미담 엔터테인먼트에 자체 감사가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은 것이다.
결국 언론은 내부감사와 비밀파티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했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이 온통 이 문제로 시끄러울 때, 상엽은 양평에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었다.
안경철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었다.
안경철은 양평의 강 아래에 묻혔고 상엽은 그의 죽음을 직접 확인했다.
-별다른 건 없어. 유서도 친필이고, 통화목록도 깨끗해. 최근에는 만난 사람도 없어.
더 이상 상엽이 쫓을 근거가 없었다.
‘이하나.’
이제 남은 단서는 이하나가 유일했다.
‘안미영 혼자 누나를 죽일 수는 없어.’
상엽이 가장 의심하는 부분이었다. 여자 혼자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나무에 목을 매단 것처럼 꾸미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땐 갓코인도 없던 시절이다.
공범이 있다고 봐야 하는데…….
‘이하나일까?’
상엽은 고개를 저었다.
조사를 해 보고 싶었지만, 사실 그녀에 대한 의혹이 많지 않다. 죄가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고문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런 작은 의심 하나하나를 모두 쫓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마치 사건이 전부 끝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상엽은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끝내 준 거 같잖아.”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첫 번째 이상한 부분. 오명진은 절대 자살을 할 놈이 아니다.
상엽은 이 부분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분명히 시신을 봤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돈 때문에 그런 짓까지 한 놈이, 고작 내부감사가 무서워서 자살을 해?”
이는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서울로 복귀한 그는 집이 아니라 오명진의 장례식을 찾아갔다.
많은 연예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오명진의 명복을 빌었다.
상엽은 옆 건물의 화장실에서 추종자를 통해 이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 자리에는 이하나도 있었다.
그녀는 쓰러질 것처럼 눈물을 흘리다 매니저의 부축을 받으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상엽은 이하나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자신의 차에 돌아가서도 이하나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마치 가족을 잃은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매니저는 오랫동안 이하나를 위로한 뒤에야 차를 출발시켰다. 상엽도 그 후로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을 살폈지만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다. 오명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것이 살인혐의가 되진 않는다.
그렇게 깊은 밤까지 장례식장을 살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비밀파티 멤버는 아무도 안 왔네.’
안경철이 작성한 명단에 포함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 체포된 이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자들뿐이었다.
명단에만 이름을 올린 인물은 아직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자들 중에 한 명일 가능성이 큰데.’
상엽은 인내심을 가지고 장례식을 지켜봤다.
장례식 마지막 날이었다.
조문객의 방문은 점심시간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발인을 함께할 가족과 지인들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 지인에는 이하나도 있었다.
이하나는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창백한 얼굴로 식장을 지켰다.
기자들은 나름대로 예의를 지키느라 멀리서 간간히 셔터를 눌렀고 미리 설정한 저지선은 넘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발인 직전에 가족들이 안치실로 들어갔다.
자식은 없었고 부인과 30대 중반의 여동생, 그 외에는 친척이었다.
그런데 안치실 안에서 마지막 제사를 지내던 중에 작은 다툼이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여동생이었다.
“새언니. 정말 화장할 거야?”
“네. 아가씨. 그이가 원했던 일이에요.”
오명진의 부인은 20대 후반이다. 결혼한 것은 고작 3년. 나이도 시누이보다 어리다.
그렇다고 해도 친척들 앞에서 오명진의 여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반말을 했다.
“새언니. 우리 오빠랑 대화한 적은 있어? 별거한 지가 2년이 넘었는데?”
“가끔 통화는 했어요.”
“아이고 그러셨어요? 가끔 통화했는데 화장하라는 말은 용케 들었네?”
다른 친척들이 그녀를 말렸지만 성질을 감당하지 못했다.
“막말로 오빠가 남긴 유산만 먹겠다는 거 아니야? 자식도 없고, 별거 중이었던 부인 앞으로 전 재산을 넘긴다고? 그게 말이 돼?”
왜 싸우나 잠시 지켜봤는데, 한참 뒤에야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문제는 돈에서 시작한다.
“아가씨. 그이가 남긴 재산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세요? 내부 감사 때문에 전부 압수당하면 전 가져가는 것도 없어요.”
“그래? 그래서? 오빠가 남긴 재산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요?”
“미담 엔터테인먼트 주식. 나한테 넘겨. 다른 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아가씨. 지금 우리 장례식 중이에요. 이제 곧 발인을 할 거고요.”
“말 돌리는 거야?”
상엽은 그 대화를 지켜보다 의문이 들었다.
‘화장한다고 했지?’
요즘 화장을 많이 하는 추세라고 해도 가족들이 저렇게 반대하고, 친척들도 못마땅해하며, 심지어 여동생의 반대는 지나칠 정도로 완고하다.
‘그런데 굳이 화장을 한다?’
상엽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실제로 오명진의 부인은 상엽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오명진은 젊은 여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2년 동안 별거 중이었던 부인에게 모든 유산을 남기는 것도 이상하고.’
외부에는 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끄러운 말도 없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들으니 분명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장례식장에서도 부인의 자격에 대한 말이 많긴 했었다.
‘유서를 직접 쓴 걸까?’
부인의 말대로 남는 게 없다면 유산을 남긴다는 유서를 쓸 이유가 없다.
상엽의 의심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하나씩 정리하자. 지금 제일 이상한 건 화장한다는 거니까.’
화장을 한다는 건 시신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말은 시신에 뭔가…… 이상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연은 생각이 정리되기 무섭게 명령했다.
‘유령아. 관 속으로 들어가.’
추종자는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시신 확인해.’
상엽은 오명진이 죽은 걸 직접 확인했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주인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뜻밖의 소식!
상엽은 숨을 거두고 누워 있는 관속의 시신을 직접 보았다. 닮았지만 분명히 아니다.
‘이건 뭐야?’
상엽은 혼란스러웠다.
‘그게 가짜였다고?’
그는 오명진의 시신을 직접 보았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시신을 간단히 확인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일부러 보여 준 건가?’
상엽은 눈을 감았다.
‘하긴…… 그런 스킬이 있을 수도 있지.’
상엽이 경험한 상점에는 없던 스킬이지만, 유물과 유산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스킬이다.
‘이것으로 분명해진 건가?’
상엽은 드디어 의문을 풀었다.
‘오명진, 그 새끼는 살아 있어.’
그의 예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발인이 끝날 때까지 상엽은 지켜보기만 했다.
오명진을 대신한 신원불명의 시신이 제일 먼저 화장터로 옮겨졌다.
돌아가도 될 일이긴 하나, 상엽이 확인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분명히 이 안에 있다.’
누군가 시신을 바꿨다면, 그 일이 끝나는 것까지 정확히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상엽은 화장터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사내를 발견했다.
고개를 숙여 표정을 감추는 자였다.
30대 후반으로 군인처럼 절제된 모습이었다. 그는 장례식에서도 두 번쯤 봤던 자였다.
그전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에서까지 보이니 분명히 느껴진다.
상엽은 돌아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화장터 다음으로 이어진 납골당. 그때까지도 사내는 눈에 안 띄는 위치에서 일행의 뒤를 따르고만 있었다.
그렇게 납골당 안치가 끝났고, 모였던 사람들도 작별인사를 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명진의 부인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이하나와 그룹 릴리스의 멤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명진의 부인을 낯설어 했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하나가 포함된 그룹 릴리스는 보는 이가 아플 정도로 눈물을 쏟아 내다가 밴을 타고 납골당을 떠났다.
상엽은 떠나는 이들을 멀리서 끝까지 지켜봤다.
재미있게도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오명진의 부인과 지켜보던 사내가 전부였다.
둘은 꽤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었는데, 그 상대가 1시간쯤 지속된 뒤에야 사내가 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마치 모르는 사이인양 부인의 곁을 스쳤다.
“이제 다 끝난 거죠?”
입을 연 사람은 부인이었다.
“그렇습니다.”
사내가 그 말을 끝으로 멀어지려 할 때였다.
“잠깐 스톱.”
상엽은 드디어 지루한 잠복을 끝냈다.
“거기 아줌마. 이제 그만 슬픈 연기 안 해도 돼. 지금은 가짜 장례식인 거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네?”
“어쨌든 아줌마는 좀 기다려. 일단 저 녀석하고 할 말이 있으니까.”
상엽은 군인 같은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사내가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어 총을 꺼냈다.
“어쭈!”
상엽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군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군인의 뒤에서 나타났다.
“군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긴 했는데, 정말 군인이었어?”
놀란 사내가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총구를 다시 겨눌 수는 없었다.
상엽은 그의 권총을 직접 잡았고 그대로 구겨 버렸다.
그 힘에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력이야 제법 있겠지만 그래 봐야 일반인이다.
상엽은 오히려 그 점이 아쉬웠다.
“차라리 변종 사냥꾼이었으면 쉬웠을 텐데.”
그는 군인의 양쪽 어깨를 내려쳤다. 어깨가 박살 난 군인은 이를 악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대단하네. 비명도 안 지르다니.”
상엽은 쓰러진 그의 양쪽 무릎을 밟았다.
“총은 쓰지 말았어야지. 이러면 살려 둘 수가 없잖아.”
사지를 모두 박살 낸 상엽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부인의 앞으로 끌고 갔다.
부인은 공포에 질려서 떨고 있었다.
“이제 좀 장례식에 어울리는 표정이네.”
상엽은 부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줌마도 곧 이렇게 될 거야.”
“사, 살려 주세요.”
“그래, 하는 거 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게. 아줌마가 총을 꺼낸 것도 아니고. 그럼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전부 말해.”
부인은 몸을 떨며 쓰러진 사내를 다시 보았다. 그러더니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 아는 것만 말해.”
“시체를…… 화장하면 된다고…… 그러면 전부 끝난다고 했어요.”
상엽은 좀 더 기다렸지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끝이야? 이 정도로는 아줌마를 못 살려 주는데.”
“남편의 시신만 화장하면 내부감사도 끝낼 거고, 숨겨진 재산까지 전부 상속받게 해 주겠다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이미 공포에 질려서 그 말을 듣는 것에도 큰 집중력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런 제안을 누가 했는데?”
부인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쓰러진 군인을 가리켰다.
쾅!
결국 상엽은 해머를 꺼내서 바닥을 내려쳤다.
“아줌마.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죽어. 다음 기회는 없어.”
생전 처음 보는 사내가 찾아와서 이런 제안을 했다고? 그 말을 믿고 남편 시신을 화장했다고?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상엽은 순진하지 않았다.
부인이 아는,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제안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람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을 것이다.
상엽은 부인이 사주한 사람을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몰라? 기억 안 나? 그럼 됐어. 그냥 죽어도 돼. 물어볼 사람은 많으니까.”
쾅!
상엽은 쓰러진 군인의 머리를 해머로 내려쳤다.
뇌수가 사방으로 튀면서 바닥에 잔인한 흔적이 남았다.
“이 자식은 나한테 총을 겨눴으니까 당연히 죽는 거고. 아줌마도 남편의 가짜 죽음에 동조하고 재산을 노렸으니까 별로 살 가치는 없는 거 같고.”
상엽은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부인은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임중훈!”
상엽이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비밀파티 명단에서 봤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부인은 고개를 숙이며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인이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 상엽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임중훈의 신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있는 장소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완이 철저한 장소에 도착한 상엽은 경찰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보았다.
“청와대라…….”
대통령비서실장 임중훈. 그가 있는 장소는 청와대였다.
“젠장, 그래 봤자 관공서지.”
상엽은 청와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