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비업체와 경찰차들이 집을 에워쌌다.
“보는 눈이 많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침묵을 지키던 사내는 다시 여유롭게 웃으며 상엽에게 물었다.
“어쩌라고?”
상엽은 오히려 파이어스의 망치를 꺼냈다. 그러자 사내는 손을 내밀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진정하시죠.”
“난 진정한 상태야. 아주 냉정하게 여길 부술 생각이고.”
“이것 참, 곤란하군요. 전 복잡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내가 단순하게 풀어 줄게.”
“3일 후에 다시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때는 당신의 유령 추종자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으실 텐데.”
“무슨 개소리야?”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뜻밖의 말을 했다.
“파견 근무가 3일 남았단 말입니다. 이 정도로 끝나면 별로 보고할 것도 없고 조용히 넘어갈 거란 말이지요.”
“파견 근무?”
“아, 모르셨습니까? 설마 우리가 한국의 정치인 하나를 목숨 걸고 지킬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상엽은 사내의 뒤에 있는 자들을 다시 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한국인이 아니군.”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어쨌든 오늘은 조용히 돌아가시고 내일 다시 오시지요. 아, 근처에서 지켜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는 이번 근무가 진심으로 귀찮았다.
“그리고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개인적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어설픈 노동조합 같은 길드에 들어가지 마시고 말입니다. 화이트 유저든 블랙 유저든 상관없습니다.”
사내는 명함을 건넸다.
-베스트 클럽, 시드
“이름이 시드야?”
“그렇습니다. 꽤 유명한 이름이지요.”
“난 들어 본 적 없어.”
“그건 유감입니다.”
상엽은 시드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너 인상이 별로야. 못 믿겠어.”
“이것 참,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시드는 자신 있는 얼굴로 상엽에게 말했다.
“우리가 강차연을 정말 놓친 거라 생각하십니까?”
“뭐?”
“전 분쟁을 원치 않습니다. 진짜 싸워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니까요. 강차연을 죽이면 정상엽 씨가 나설 테고, 그래서 적당히 보내 준 겁니다. 물론 끼어들지 않았다면 가연수도 보내 주었겠죠.”
그 말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주에 능하지 않은 강차연이 그런 몸 상태로 혼자 탈출했다는 것은 분명히 이상했다.
“날 이미 알고 있네.”
“자료를 받았으니까요. 꽤 시끄러운 일을 많이 벌이셨더군요. 사실 자료를 보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을 만큼요.”
“너 인상 별로라니까.”
“그건 유감입니다.”
사실 상엽도 굳이 이곳에서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귀찮게 대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이 녀석들이 누구인지는 알았고.’
이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목적 때문에 이렇듯 깽판을 부렸다.
‘그 사진이라는 걸 찾아야 하는데.’
상엽은 이걸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시드.”
“제 이름을 기억하셨군요.”
“협상하자.”
상엽은 급격히 목소리를 낮췄다. 이에 시드 역시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둘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흘 동안 안경철 안 건드릴게.”
“원하는 건 뭡니까?”
“추종자만 내버려 둬.”
“그건 곤란합니다. 추종자에게 물리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할 거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해.”
상엽은 자신의 조건을 정리했다.
“너희들이 물러날 동안, 안경철은 어떤 위협도 받지 않을 거야. 당연히 다치는 일도 없을 거고.”
“거절한다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싸워야지. 한쪽이 소멸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시드는 자신이 보았던 자료를 떠올렸다.
‘결국 전멸시켰지. 독한 놈이다.’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도 경고하지요. 약속을 어기고 안경철에게 어떤 위해라도 가한다면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차연과 가연수, 그녀들도 처리하겠습니다.”
“치사한 새끼.”
“약속을 지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킬 거야. 그건 그거고 치사한 건 치사한 거니까.”
둘의 협상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야,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뭡니까?”
“나 이대로 그냥 가기는 좀 쪽팔리는데?”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어마어마했다. 무기까지 꺼낸 마당에 그냥 돌아서기가 창피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하군요. 좋습니다. 기회를 만들어 드리지요.”
시드는 슬쩍 상엽에게 다가와서 입을 가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놀란 척하고 빨리 사라지시면 됩니다. 사람들은 제가 뭔가 협박을 한 거라 생각할 겁니다.”
“치사한 놈. 자기만 돋보이려고.”
“그 정도는 감안하시죠.”
쾅!
상엽은 발을 크게 구르며 뛰어올랐다. 그는 새처럼 날아올라 건물 몇 개를 넘어가 버렸다.
“자, 돌아들 가시죠. 이제 여기는 안전합니다.”
시드는 경비업체와 경찰들을 물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 * *
시드는 약속을 지켰고 유령 추종자를 막는 힘은 사라졌다.
상엽은 가까운 호텔에 자리를 잡고 안경철을 지켜봤다.
안경철은 서재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서재 문 밖에는 두 명의 사내가 경계를 서고 있었고, 집 곳곳의 경호원은 시드를 포함해서 열한 명이었다.
‘이 자식들은 뭐지?’
길드로 보이지는 않았다. 상엽은 안경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신경이 쓰였다.
‘한국인은 아닌데.’
동양인은 시드와 외부를 감시하던 두 명뿐이었다. 내부에는 외모가 분명히 다른 서양인들이 있었다.
‘일단 안경철에 집중하자.’
지루한 잠복이었다.
‘절대 형사는 안 해야지.’
그렇게 3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불안해하던 안경철은 뭔가 결심한 듯 전화를 걸었다.
“안경철입니다.”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정상엽이 찾아왔습니다.”
-끊지.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다시 전화를 했지만 상대방이 받지 않는 듯했다.
‘전화번호.’
상엽은 안경철의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기억했다.
‘좋아. 하나씩 따라갈 수 있겠어.’
의외의 소득을 올린 상엽은 더욱 안경철에 집중했다.
‘사진을 보험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면 두 종류지. 철저하거나 겁이 많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그는 상엽의 등장으로 초조한 상태였다.
이미 정상엽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서재로 들어왔다. 문소리만으로도 그는 크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놀라지 마시지요.”
“노크라도 좀 해 주시오.”
“다음에는 그러겠습니다.”
들어온 이는 시드였다.
“미리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컴퍼니에 경호 연장 신청을 하셨더군요.”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소?”
“연장 신청은 거절되었습니다.”
“뭐요? 내가 그동안 해 준 게 얼만데…….”
“착각하셨군요.”
시드는 상엽을 대할 때와는 달리 차가운 눈빛으로 안경철에게 말했다.
“당신이 해 준 것보다 우리가 그동안 지켜 준 비용이 훨씬 비쌉니다.”
“그건…….”
“3일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시드는 그 말을 하고 서재를 떠났다.
확실히 그들은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드가 더 높은 사람으로 보였다.
시드가 떠나자 안경철은 더욱 불안해졌다.
“그냥 넘어갈 자가 아니다. 사흘이라…….”
그는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안경철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생각으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고!’
상엽이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경철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얼마 되지 않아 초췌한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일단 누나한테 전화번호 좀 알아보라고 하자.’
상엽은 강차연에게 전화를 걸어 유일하게 얻은 단서를 건넸다.
-내가 알아볼게. 나도 나가려던 참이야.
“좀 더 쉬어.”
-멀쩡해.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움직여야겠어.
“누나, 그럼 이것도 좀 확인해 줄래? 안경철을 보호하는 녀석들 말이야.”
상엽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강차연에게 알렸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강차연은 알아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도 상엽은 안경철을 감시했다. 그러면서 추종자를 통해 금고가 있는지 살폈다.
-있습니다.
서재에 걸린 그림의 뒤였다.
“아!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상엽은 자신의 머리를 탓하며 추종자를 금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안에는 각종 증서와 1억 정도의 현금이 있었고 장부 세 권이 들어 있었다.
“사진이 있나 찾아봐.”
-책 내용은 볼 수 없습니다.
“이거 실망인데.”
-절 강화해 주시면 가능합니다. 2단계면 될 것 같습니다.
“너 지금 협상하자는 거냐?”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코인 없어.”
아쉽게도 장부 내부의 내용은 추종자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저건 무조건 확보해야겠어.’
그 외에 따로 보관된 사진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장부 안에 끼워 놓았을 수도 있어서 속단하기는 일렀다.
“다른 곳도 찾아봐.”
상엽이 한창 안경철의 집을 수색할 때, 예상치 못한 전화가 왔다.
-마루나예요.
“말해.”
-말씀하신 자료 준비해 뒀어요. 어떻게 전달해 드릴까요?
“메일로 보내. 주소 보내 줄 테니까.”
상엽은 전화를 끊고 메일 주소를 메시지로 보내 주었다.
‘벌써 일주일이구나.’
많은 일이 있었던 만큼 시간을 인지하지 못했다.
“유령아, 뭔가 발견하면 말해.”
상엽은 추종자에게 감시를 맡겨 놓고 메일을 확인했다.
-이하나 보고서.
“정성스럽게 썼네.”
결재 서류처럼 제목까지 붙여서 단락이 나뉘어 있었다.
연예계의 뒷소문부터 데뷔 전에 떠돌았던 이야기, 현재의 루머까지 전부 정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상엽은 데뷔하기 전의 소문을 먼저 살폈다. 그런데 그의 눈을 자극하는 내용이 보였다.
-이하나의 아버지 국회 의원 정득수가 미담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정득수는 이를 현재 대표인 오명진에게 판매했고, 그때쯤에 이하나가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이하나는 연습생 시절부터 대표 오명진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고, 대표실에 홀로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릴리스 데뷔 전에 본래 다른 멤버로 이루어진 데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대표 오명진이 이사진의 반대에도 해체를 강행했다.
일단 눈에 띄는 건 이 정도였다. 다음은 이하나에 대한 데뷔 이후의 소문이었다.
-이하나와 예능 PD들의 커넥션에 관한 많은 소문이 있다. 능력에 비해 많은 푸시를 받았고, 기존에 있던 멤버를 교체하는 강수까지 둔 경우가 많다.
-이하나의 CF 데뷔는 대기업 간부들이 직접 지목해서 이루어졌다.
-릴리스의 멤버들은 이하나에 대해 공식적인 인터뷰를 제외하곤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대기실을 같이 쓰는 다른 연예인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상엽이 보던 이미지와는 다른 것들이었다.
다음은 현재의 내용이었다.
-2년 전부터 이하나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본래 신경질적이고 무례하던 이하나는 그때부터 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바뀌어 지금은 모든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녀의 집은 서울에만 3채, 경기도 2채, 강원도 1채이며 이 중에 매니저조차도 서울 여의도의 집 외에는 출입하거나 방문할 수 없다.
최근에는 소문이 많지 않았다.
‘확실히 같은 업계라서 정보가 많네.’
다만 확실한 사실보다 소문이 많았다. 그리고 첫 보고서라서 그런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상엽은 마루나에게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 소문들이 사실인지 확인해.
그러면서 자신의 눈에 걸렸던 것들을 표시해서 보내 주었다.
막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끄려 할 때, 또다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지. 살려면 보고해야지.”
이번에는 성안그룹 둘째 아들 박한수였다.
-비밀 파티는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변종의 출현 전에는 양평 별장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후에는 장소를 옮겨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메시지는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 왔다.
-박한수입니다.
“말해.”
-그때 파티를 주최한 사람을 알아냈습니다.
상엽이 원하던 것보다 훨씬 큰 정보였다.
“누구야?”
박한수는 자신이 알아낸 이름을 말했다.
-오명진, 미담 엔터테인먼트 대표입니다.
상엽은 예상치 못한 이름에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