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72화 (72/300)

# 72

국회 의원 안경철.

상엽은 시선을 무시하고 건물과 인도를 최대한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무조건 직선거리로 달리기 위해서였다.

‘사건이 커지고 있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국회 의원 집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상대는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가서 보면 돼.’

상엽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비우고 오로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10분 후.

상엽은 인사동의 고급 주택가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가 있는 한강 변의 아파트와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찾아.”

유령 추종자가 먼저 가연수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유령 추종자는 자신이 본 것을 전송했다.

이를 본 상엽은 곧장 2층 고급 주택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 문이 아니라 벽을 뚫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그 소음이 내부에 있던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소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실 중앙으로 달렸다.

쿵!

상엽의 돌진에 걸린 누군가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그 자리에 떨어졌다.

“괜찮아?”

“컥! 컥!”

가연수는 대답 대신 거친 기침을 토해 냈다.

방금 전까지 한 사내에게 목이 잡힌 채로 몸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 오빠.”

“이것들을…….”

“그냥 튀어요. 빨리요.”

가연수는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상엽의 손목을 잡았다.

상엽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일단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들어왔던 벽을 향해 뛰었다.

내부의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상엽은 안경철의 집을 나섰다.

“유령아, 추격자 확인해.”

말하지 않아도 추종자는 이미 뒤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상엽은 일단 최대한 사건 장소에서 멀어졌다.

“됐어.”

상엽은 25층 빌딩의 옥상에서 가연수를 내려놓았다.

-추격자는 없습니다.

“후우.”

가연수는 바닥에 드러누워 길게 숨을 쉬었다.

“나쁜 새끼.”

“나?”

“아니요. 내 목 잡은 새끼요.”

“어떻게 된 거야?”

“언니는 괜찮아요?”

그녀는 상엽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강차연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냥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자.”

상엽은 다시 그녀를 안으려 했다.

“저 이제 괜찮은데요. 남자 손길은 별로라서.”

“살려 준 인사가 참 달콤하네.”

“갚을게요. 한 번 살려 줬으니까 두 번 살려 줄게요. 그럼 됐죠?”

“그럴 일이 있을까?”

“그럼 이렇게 해요. 정말 위험한 거 세 번 해 줄게요. 됐죠?”

“뭐 그 정도면 괜찮은데.”

가연수는 협상이 완료되자 상엽을 보며 허리를 숙였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어색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상엽은 알고 있었다.

‘인사해 본 지 오래됐겠지.’

그녀로서는 최선을 다한 감사 인사였다. 노가다판에도 자존심만 남은 인물들이 많은 터라 상엽은 그런 사람에 익숙했다.

“경찰 누나는 우리 집에 있어.”

“휴, 다행이다.”

“쓰러지기 직전에 우리 집에 도착했어. 기절하기 전에 너 구해 주라고 유언처럼 말하던데?”

그 말에 가연수가 금세 울상을 지었다.

“어, 언니!”

그녀는 상엽보다 먼저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강차연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가연수는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강차연을 돌봐 주었다.

“근데 오빠.”

“왜?”

“언니한테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죠?”

“치료해 준 거는 이상한 짓 아니지?”

“어떻게 치료했냐에 따라 달라요.”

상엽은 고개를 저으며 거실로 나갔다. 다행히 강차연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분위기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서야 강차연이 눈을 떴다.

“연수야…….”

“언니…….”

“손 좀 치울래?”

“응?”

가연수는 강차연의 볼을 만지고 있던 손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쳇. 기절했을 때 덮쳐 버리는 건데.”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가연수는 물을 챙겨 강차연에게 주었다.

“일어났어?”

“네가 구해 준 거지?”

“맞아. 국회 의원 집을 부수고 왔어.”

“뭐 어차피 세금 빼돌려서 지은 집으니까 부숴도 돼.”

강차연은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언니, 좀 더 쉬어.”

“유난 떨지 마.”

강철의 여인답게 그녀는 초췌한 얼굴로도 행동만큼은 멀쩡했다.

드디어 그들은 거실에 모였고 상엽은 원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영상으로 건진 게 하나 있어. 안미영의 아파트 CCTV가 아니라 교통사고 당시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

강차연은 안미영의 아파트 CCTV를 분석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다.

결국 안미영이 소멸한 교통사고 현장의 모든 카메라를 확인했고, 한 가지 단서를 잡았다.

교통사고 당시 유리창이 깨지며 튀어 나간 파편이 그것이었다.

명확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내야 했던 그녀는 끝까지 이를 쫓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이어리였다.

안미영의 다이어리에는 그녀의 스케줄과 접대한 사람의 장점과 단점, 취향들이 적혀 있었다.

“꽤 체계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뭔데?”

“실명은 없어. 신상에 대해서도 없고. 전부 별명으로 적어 놔서 누군지 특정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친구 이름이 있더라고.”

유일한 단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안미영이 일하던 룸살롱을 찾아갔고 가능한 모든 아가씨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안미영의 친구를 찾아냈다.

그 친구를 통해 강차연이 알아낸 또 다른 이름이 국회 의원 안경철이었다.

안미영의 친구가 호텔에 함께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경철은 가끔씩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여자를 원했다.

“아주 더러운 취향이 있더라고. 그 대가는 꽤 컸고.”

“뭐 아저씨 취향은 됐어.”

“왜요? 오빠, 들어 봐요. 오빠 취향일 수도 있잖아요.”

“됐어.”

강차연은 둘의 짧은 실랑이를 지켜보다 이야기를 계속했다.

“안미영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 안경철에게 어떤 사진이 있다고. 그게 안경철의 보호 장치인데 그 사진에 안미영도 있대. 그게 불안했다는 거야.”

“사진?”

“오래된 사진이라고 했어. 그래서 안경철의 집을 수색한 거야.”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다?”

“안미영의 친구 한미라. 우리가 수색할 걸 알았다면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을 거야.”

모든 이야기를 들은 상엽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그게 어떤 사진일까?”

“직접 보기 전에는 몰라. 하지만 안경철이 안미영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확률이 높아.”

“어째서?”

“변종 사냥꾼. 날 습격하고 연수까지 잡을 정도의 실력자야. 아무리 국회 의원이라도 그런 실력자를 경호원으로 데리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

“안미영을 죽인 사냥꾼이 그들 중의 하나라는 거야?”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확신은 아니야. 하지만 정황 증거는 또 있어.”

강차연 대신 가연수가 말을 이었다.

“내비게이션요. 안미영 차의 내비게이션을 조사해 봤는데 안경철 집 근처의 편의점으로 찍혀 있었어요.”

“음, 확실히 가능성은 있네.”

상엽은 안경철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차라리 그냥 만나 볼까? 어차피 시끄러워졌는데.”

“권력자를 너무 무시하지 마.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신중해야 돼. 한 가지는 확실해졌으니까.”

“뭐가 확실해졌는데?”

강차연은 선명한 비웃음을 보였다.

“숨길 게 있다는 거야. 우리가 접근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는 거지.”

“목숨 걸고 알아낸 게 그거야?”

“당장은 그래.”

그녀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어쨌든 이제 위험선은 넘은 거 같고.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좀 보고 올 테니까.”

“너무 압박하면 안 돼. 최후의 순간이 되면 증거를 없애 버릴 테니까.”

강차연은 여전히 경찰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누나, 한 가지만 물을게.”

상엽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차연에게 물었다.

“안경철, 그 자식 나쁜 놈이야?”

“나쁜 놈이지.”

“죽여도 될 만큼?”

강차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나비 효과가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에는 우리가 찾는 것이 있을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았어. 이번에는 나한테 맡겨.”

상엽은 강차연과 가연수에게 차례대로 웃어 주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도착했다.

가연수가 보내 준 안경철에 대한 자료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얼마나 나쁜 놈인지 직접 봐요. 난 그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가연수의 메시지에 상엽의 입에서 웃음이 새고 말았다.

“처음으로 의견이 맞네.”

그는 다시 안경철의 집으로 움직였다.

* * *

상엽은 안경철의 집과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직선거리로는 꽤 먼 거리였고 중간에 건물들도 있어서 들킬 염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유령아, 다녀와.”

유령 추종자는 명령대로 안경철의 집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보고가 들렸다.

-접근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방어막이 있습니다. 뚫을 수는 있지만 들키게 될 것입니다.

보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절 보는 자가 있습니다.

“뭐?”

-접근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돌아와.”

상엽은 유령 추종자에게 위험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것들 봐라.”

지금까지 추종자를 막은 이는 없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헌터 아이도 거의 발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에게 특별한 능력자가 있었다.

“직접 보면 되지 뭐.”

상엽은 추종자를 대신해서 자신이 직접 저택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20미터 떨어진 주택의 옥상으로 올라가서 안경철의 집을 지켜봤다.

옥상에서 몸을 낮춘 것도 아니어서 일반인도 상엽의 존재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미 추종자의 존재를 들킨 터라 상엽은 자신이 지켜본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저택의 담벼락 안에서 두 명의 사내가 상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상엽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먹을 뒤집으며 가운뎃손가락을 펴 주었다.

상대가 움찔하는 것이 명확히 보였다.

“어쩌라고? 엿 같으면 덤비든가?”

굳이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뛰어난 사냥꾼이라면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명의 사내는 도발에 응하기보다 한쪽을 보며 묵례를 했다.

누군가 나타난 것이다.

“저놈이 대장인가?”

30대 초반에 청바지를 입은 사내였다. 상의는 캐주얼한 정장이었고 평범한 체구였다.

장난꾸러기처럼 여유 있는 표정이 특징인 그는 상엽을 보더니 슬쩍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지랄.”

그런데 사내는 여유롭게 몸을 돌리더니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 있다 이거지?”

상엽은 자신의 도발이 먹히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경찰 누나, 미안해. 이번에는 내 방식대로 할게.”

그는 가볍게 뛰어올라 안경철 저택의 담벼락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담벼락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 새끼가!”

결국 한 사내가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다시 나오면서 그를 말렸다.

“진정해.”

사내는 담벼락으로 오더니 고개를 들어 상엽을 보았다.

“무단 침입입니다.”

“나 아직 안 들어갔는데?”

“발이 넘어오셨습니다만.”

상엽은 보란 듯이 몸을 옆으로 돌려 발을 담장 밖으로 뺐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담벼락 위에 있었다.

“이제 안 넘어갔는데?”

“담장부터가 경계선입니다만.”

“그래?”

상엽은 손을 들었다가 담장을 내려쳤다. 그 충격에 담장 전체에 금이 가며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담장은 없는데?”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이제 장난은 그만할까?”

사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상엽에게 물었다.

“뭘 원하십니까?”

“안경철을 만나야겠어.”

“약속은 하셨습니까?”

“아니.”

“그럼 만나실 수 없습니다.”

단박에 거절을 당하자 상엽은 하늘을 가리켰다.

“아침 9시 넘었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근무 시간이라고.”

“약속을 하셔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내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상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세금 내는 걸로 월급 받는 국회 의원이잖아. 그럼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어야지. 그러라고 세금으로 월급 주는 거잖아.”

사내는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선약이라도 있어?”

이번에도 사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기세를 잡은 상엽은 모두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월급 주는 사장이 직원 만나는 게 뭐가 이렇게 어려워? 당장 튀어나와!”

상엽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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