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갓코인 유저들에게 전투는 숙명이다.
반대 진영의 유저를 만났을 때는 매우 높은 확률로 싸움이 벌어졌고 같은 진영이라고 하더라도 안전한 건 아니었다.
-상대를 제거해서 이득을 얻는 시스템.
이것은 갓코인의 핵심이었다.
“참 편하게 컸나 보네.”
휙! 휙!
상엽은 상체를 젖혀서 다가오는 두 개의 단검을 피했다.
김아연, 도성그룹 회장의 외동딸.
도성그룹을 상엽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아는 기업은 실생활에서 메이커를 주로 보는 전자 제품이나 건설 회사들이었다.
도성화학으로 시작한 도성그룹은 해외 자원 관련 분야가 많아서 상엽은 모르고 있었지만 재계 순위 20위에 있을 만큼 거대 기업이었다.
챙.
상엽이 단 한 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두 개의 단검이 땅에 떨어졌다.
김아연은 공포를 이기지 못해 공격을 시도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다른 두 명은 김아연을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아빠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김아연은 손목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상엽은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어린아이 같다고 느꼈다.
“돈과 권력이 있어도 절대 살 수 없는 게 하나 있거든.”
상엽은 해머를 들어 올렸다.
“목숨.”
쾅!
김아연의 몸은 해머가 만들어 낸 폭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3단계 유저라는 놈들이 싸움은 초짜고, 생각하고 말하는 건 초등학생보다 못하고.”
상엽은 남은 두 명을 보며 말했다.
“결정적으로 갓코인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 했잖아.”
이제 심판을 내릴 시간이었다.
“쉬운 사냥감, 이게 너희들 현실이야.”
상엽이 남은 두 명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한 명이 대뜸 무릎을 꿇었다.
깔끔한 외모에 안경을 낀 사내였다. 오히려 외모는 자존심이 강하게 보였다.
하지만 안경 사내는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도 잊고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그는 바닥에 머리가 닿을 만큼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본 나머지 한 명도 그 옆에 앉았다.
“살려 주세요!”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20대 중반 여자였다.
상엽은 이미 습득한 그들의 신상을 떠올렸다.
“박한수, 성안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 마루나, 루나 엔터테인먼트?”
그의 시선이 마루나라는 특이한 이름의 여자에게 고정되었다.
‘루나 엔터테인먼트면 꽤 유명한데.’
상엽은 잠시 고민했다.
‘누나 사건에 도움이 되겠는데.’
마루나는 루나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외동딸이었다. 회사의 이름을 외동딸의 이름으로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유령으로 확인해 볼까?’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없을 거야. 차라리 알아 오라고 하는 게 좋겠어.’
상엽은 결정을 내렸다.
“내가 너희들을 살려 줘야 하는 이유가 뭐지? 갓코인 유저는 서로를 사냥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말을 들은 박한수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유물과 유산 조각을 전부 꺼내 놓았다.
마루나도 살기 위해 같은 행동을 했다.
“그냥 죽이고 가져가면 돼. 그래야 뒤탈도 없고.”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나마 그들은 목숨이 소중한 걸 알고 있었다. 상엽은 이미 결정을 내렸음에도 괜히 시간을 끌었다.
그 침묵의 시간이 두 명에게는 사형 재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상엽은 천천히 판결을 내렸다.
“돌아가. 그리고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 연락을 안 받거나 시킨 일이 늦으면 바로 죽는 거야.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 해 보든지.”
상엽은 파이어스처럼 심판자가 되어 결론을 내렸다.
“너희들을 죽이는 건 너무 쉬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둘은 은총을 입은 신도처럼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했다.
“돌아가. 곧 지시가 있을 테니까.”
그들은 행여나 상엽이 마음을 바꿀까 봐 얼른 일어났다. 그런데 급히 자리를 떠나려는 그들을 상엽이 다시 불렀다.
“잠깐.”
그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내 바이크 건드리지 마라.”
그들이 타고 온 차는 이미 상엽에 의해 박살 난 상태였다. 상엽의 바이크까지 사용할 수 없다면 돌아가는 길이 결코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알아서 가겠지.’
핸드폰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뭐해? 가.”
둘은 쫓기는 사냥감처럼 빠르게 등을 돌렸다.
“상엽아, 왜 살려 둔 거야? 그냥 두면 골치 아플 텐데.”
“누나 사건 좀 알아보려고.”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미안해.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뭐가?”
상엽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세 명이나 소멸시켰잖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재계 서열 20위 기업 오너의 외동딸이 죽었다.
검찰 총장의 외아들이 죽었고, 한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 기업의 장남이 죽었다.
갓코인 유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이는 재벌을 떠나서 세상의 모든 가족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모든 걸 걸고 널 잡으려고 할 텐데.”
“재벌이라서 할 수 있는 것도 많겠지?”
“그럴 거야.”
“잘됐네.”
상엽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덤비는 놈은 죽이고, 도와주는 사람은 도와준다.”
언제나 같은 결론이었다. 그래서 고민이 길지 않았다. 스스로의 명분에 당당하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응!”
그들은 전리품을 챙기고 설악산 정복에 나섰다.
* * *
-예전에 양평 별장에서 벌어졌던 비밀 파티에 대해서 알아봐. 기획사 연습생들이 접대하러 불려 갔어.
-이하나에 대해서 전부 조사해서 보고해. 작은 버릇부터 주변 평가, 연습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소문도 전부 긁어모아.
박한수와 마루나는 각각 이런 명령을 받았다. 명령은 다르지만 마지막 말은 같았다.
-일주일. 그때까지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으면 내가 널 찾아갈 거야.
죽음을 의미했다.
상엽이 갓코인 유저에 대해 얼마나 냉정한지 눈으로 본 터라 그들은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이건 할 수 있는 일이야.’
혹시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그들에게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었고 그저 빠르게 움직여서 목숨을 연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강해져서 벗어나야 돼.’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상엽을 절대 이길 수 없지만 모든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그들은 명령을 받은 즉시 지시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상엽과 동희는 빠르게 설악산 봉우리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부 섬멸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들은 가장 강한 녀석을 찾기로 했다.
“오랜만이네!”
쾅!
반달곰이 상엽의 해머에 쓰러졌다. 예전에는 목숨을 걸고 도주했던 녀석이었다.
반달곰이 남긴 유물과 유산 조각은 동희의 차지였다. 대신 상엽은 음료와 음식을 계속 공급받았다.
“대청봉으로 간다!”
설악산에는 700개가 넘는 봉우리가 있었고 대청봉은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다른 봉우리들을 연습 삼아 처리하며 상엽은 대청봉에 있을 특이 변종을 떠올렸다.
“담비라고 했지?”
“응? 담비가 뭐야?”
옆에서 따라오던 동희가 물었다.
“우리나라 최상위 포식자. 변종이 되기 전에도 최고였대. 나도 몰랐는데 군인 아저씨 자료 보고 알았어.”
담비는 족제빗과의 동물로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특성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상위 포식자인 멧돼지까지 사냥하는 동물로 호랑이가 사라진 생태계에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이렇게 생겼어.”
상엽은 동희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다.
몸길이가 겨우 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진만으로는 위협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냥을 시작하면 누구보다 무서워지는 동물이 담비였다.
“가 보면 알겠지.”
아직 누구도 사냥하지 못한 최고의 포식자.
“내가 지리산 산신령이야!”
상엽은 담비와의 일전을 위해 대청봉으로 향했다.
대청봉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이었다.
“이거 긴장되는데.”
지금까지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부터 변종들이 보이지 않았다.
정상이 100미터 남은 지점이었다. 상엽이 크게 뛰면 여유 있게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아, 찾아.”
유령 추종자는 하늘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미 하늘과 우거진 나무 사이는 정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흙이 튀어 올랐다.
수백 마리의 담비는 상엽과 동희를 중심으로 분수처럼 튀어 오르며 날카로운 울음을 토했다.
‘고스트 실드.’
상엽은 감히 반격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단 원형의 고스트 실드를 만들어 동희와 자신을 보호했다.
채챙!
고스트 실드가 버틴 시간은 겨우 1초 정도였다.
‘이건 무슨.’
고스트 실드에 긁힌 자국은 천 개가 넘었다. 수백 마리가 지나가면서 최소 10번 이상을 긁어 댄 것이다.
‘실드가 없었으면 죽었겠어.’
상엽은 오랜만에 변종에게 위협을 느꼈다.
“가자.”
담비들의 서커스 같은 공격은 계속되었다. 결국 상엽과 동희는 고스트 실드가 깨지는 순간 최대한 몸을 숙이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일부러 폭발을 일으키며 시선을 끌었다.
‘유령아, 대장 찾아.’
다행히 동희는 상황 파악을 하고 공격보다 방어를 우선시하며 끝없이 움직였다.
‘특이한 스킬이네.’
동희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 나무토막을 남기고 급히 뒤로 물러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상엽은 이를 확인하며 반격을 준비했다.
‘피라냐도 아니고.’
변종 담비들은 바닥에 닿으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고, 같은 행동을 반복할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한 방에 가자.’
상엽은 숨을 들이켜며 담비들의 그물망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면서 고스트 실드를 피부에 압축했다.
‘고스트 체인.’
실드에 이어 고스트 체인까지 몸에 두른 상엽은 수백 마리와 뒤엉킨 형태가 되었다.
‘심판.’
쿠릉!
하늘에서 해머가 떨어져 내릴 때까지 상엽은 그 자리에서 버텼다.
그리고 해머가 떨어지기 직전에 스트라이크로 빠져나왔다.
콰쾅!
담비의 절반이 해머에 깔려 사라졌다.
수백 줄기의 회색빛이 상엽에게 흡수되는 장관이 펼쳐졌고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쾅! 쾅!
해머와 체인, 심판 스킬이 다시 반복되며 담비들의 숫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비들이 상엽을 집중 공격하자 동희도 전투에 나섰다.
‘만만치가 않아.’
실드와 체인은 수십 번이나 깨졌다가 다시 생성되는 걸 반복했다.
‘약해졌어.’
계속된 소멸에 실드와 체인의 위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갑옷이 없었으면 죽었겠는데.’
드바란의 투구, 테리아의 은총.
이 유산들이 상엽을 지켜 주고 있었다.
“상엽아!”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동희가 갑자기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사각형 형태의 흙이 튀어 오르며 둘을 보호하는 담이 만들어졌다.
“빨리 마셔.”
동희는 그 틈에 음료수를 건넸고 둘은 동시에 이를 마셨다.
“후우, 좋아.”
“3분밖에 안 돼.”
“그 정도면 충분해.”
팽팽해진 근육의 힘에 만족할 때, 동희가 만든 벽이 무너졌다.
그런데 예상했던 공격은 없었다. 담비들은 바닥에 잔뜩 엎드려서 날카로운 위협만 하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대장의 등장이었다.
‘저게?’
의외로 대장 담비는 다른 녀석들보다 체구가 작았다. 대신 눈에 띄는 붉은 털에 블랙홀처럼 공허한 동공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담비의 수는 100여 마리.
그리고 대장 담비가 전투에 참여했다.
“자, 이기는 놈이 산신령이야.”
상엽이 자신감을 보이며 다가갈 때였다.
-돌아가라.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상엽은 급히 물러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엽아…….”
“너도 들었냐?”
“응.”
둘의 시선은 자연스레 담비 대장을 향했다.
“지금 네가 말한 거야?”
-돌아가라.
“무슨…….”
상엽은 진심으로 놀라서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 변종이 말을 했어.”
“나도 들었어.”
대장 담비는 여전히 공허한 눈빛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