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또 거지네.”
상엽은 캔디까지 구입하면서 남은 코인을 모두 소진했다.
“신체 강화하려고 했는데.”
“뭐야? 내가 강매라도 했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뭔가 허무한 느낌은 들어.”
그는 아공간 가방과 유물, 유산함을 모두 대형으로 교체했다.
지혈 진통제와 피로 회복제도 충분히 구매하면서 여기에 소진된 코인만 10만 코인이었다.
여기에 상점 업그레이드 비용 10만.
남은 30만 코인은 스킬 하나를 구입하는 데 소진했다.
“그 스킬이 널 살려 줄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이게 얼마짜린데.”
상엽은 자신이 구입한 스킬을 다시 보았다.
-가리오스의 환영 걸음: 팔각 대시
원하는 경로를 미리 설정해 빠르게 질주한다.
1단계-60도 방향으로 한 번 꺾을 수 있다.
2단계-70도 방향으로 두 번 꺾을 수 있다.
3단계-80도 방향으로 세 번 꺾을 수 있다.
4단계-90도 방향으로 네 번 꺾을 수 있다.
시작이 2만 코인이었고 4단계까지 구입하는 데 30만 코인이 들었다.
‘연습만 충분히 하면 유용할 거야.’
상식을 넘어선 움직임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이동이 직각으로 꺾이는 것이다.
거리와 경로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이런 기술이 필요해.’
일본에서 스트라이크의 한계를 알게 된 상엽은 이를 보완할 스킬을 원했다.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한 팔각 대시가 그 결론이었다.
“자, 이제 됐지?”
“응.”
“그럼 난 부족한 잠을 보충하러 가야겠어.”
“알았어. 고마워.”
“또 봐.”
레나가 돌아갔고 상엽은 잠시 소파에 앉아 팔각 대시를 그려 보았다.
‘네 번 꺾을 수 있다.’
대시를 떠올리자 하얀 점이 나타났다.
“좋아.”
하나의 점을 머릿속으로 찍고 90도로 꺾인 다른 지점에 다시 찍었다.
그렇게 상엽은 직사각형의 네모를 완성했다.
‘TV, 싱크대, 화장실 앞, 소파.’
소파에서 출발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가자.”
상엽은 곧장 점을 향해 뛰었다. 그의 몸이 점에 닿자 원래 사람이 그렇게 달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음 방향으로 움직였다.
속도는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욱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경로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쾅! 쾅! 쾅! 쾅!
정확히 네 번.
네 개의 점에 있던 가구들이 모두 부서졌다.
그 파편들이 거실에 흩날리며 집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우, 이게 뭐야?”
상엽의 몸은 다친 곳이 전혀 없었다.
“내 집을 철거할 뻔했네.”
그는 시험을 그만두고 청소를 해야 했다.
상엽은 가까운 사냥터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코인 수집이 목적이 아니라 팔각 대시의 훈련을 위해서였다.
첫날은 팔각 대시가 오히려 위기를 자초했지만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응용까지 가능했다.
‘90도.’
상엽의 머릿속에는 도형처럼 직각 형태의 그림들이 그려졌다.
‘거리를 짧게 하면.’
세 개의 점을 통과하면 순식간에 상대의 등 뒤에 설 수도 있었다.
‘점에 닿는 순간 속도를 높인다.’
이는 훈련을 통해 알아낸 특징이었다. 점을 통과하면서 가속이 가능했다.
‘해 보자.’
상엽은 눈앞에 있는 늑대를 훈련 상대로 잡았다.
정면으로 뛰어가던 상엽이 늑대 앞에서 오른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왼쪽으로 두 번 더 꺾자 늑대의 등이 보였다. 이미 뒤를 점령했음에도 상엽은 한 번 더 방향을 바꿨다.
‘위로.’
마지막 점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다.
가속이 붙은 그대로 위로 떠오른 상엽은 공중에서 스트라이크를 시도했다.
그러자 방향이 180도로 꺾이며 상엽이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콰쾅!
땅은 폐허가 되었고 늑대는 깨끗하게 소멸했다.
‘마지막 가속이 사라졌어.’
180도로 꺾는 바람에 애써 붙인 가속이 사라진 것이다.
‘90도만 되도 가속이 유지되는데.’
응용할 것이 많은 스킬이었다.
“이거 무지 욕심나는 스킬인데?”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사용하자 그 효율은 더욱 높았다.
“비싼 값어치가 있어.”
상엽은 이 스킬이 120도 이상으로 꺾이는 상상을 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임이 가능했다.
“좋아. 계속해 보자.”
한 가지에 계속 집중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루한 반복이지만 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상엽이 훈련을 멈춘 것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희야!”
훈련 중인 양평으로 반가운 인물이 찾아왔다.
“상엽아!”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이는 동희였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전화가 안 되는 곳에 있었어.”
“신전?”
“아니, 중국 우루무치.”
중국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우루무치는 설원이라는 지역 때문에 특이한 변종이 많았다.
개체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타나는 변종들이 강한 걸로 유명했다.
다만 우루무치의 도시들이 모두 파괴되면서 문명의 흔적은 사라지고 있었다.
일반 전화기로는 전화도 할 수 없는 곳이 우루무치였다.
“거긴 왜 간 거야?”
“강해지려고.”
동희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는 뜻이다.
“밥은 먹었어?”
“먹어야지. 너 오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헤헤. 내가 특제 도시락으로 싸 왔어.”
동희는 아공간에서 돗자리를 꺼내고 그 위에 음식들을 차렸다.
“뭐가 이렇게 많아?”
“전부 몸에 좋은 거야. 균형 있게 좋으려면 다 먹어야 돼.”
상엽 앞에는 다섯 개의 도시락이 놓였다.
그 안에 담긴 음식은 밥을 포함해서 열다섯 가지나 됐다.
“좋아, 먹자!”
상엽은 마다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전혀 안 늘었어!’
맛은 여전했다. 웬만한 고통은 모두 이기는 상엽이지만 동희의 음식은 도전 그 자체였다.
‘먹자! 몸에 좋은 거야!’
상엽은 결국 동희가 반도 먹기 전에 그릇을 모두 비워 냈다.
“후우, 배부르다!”
혹시나 다시 음식을 내놓을까 봐 상엽은 선수를 치며 배를 두드렸다.
“헤헤. 5분쯤 지나면 효과가 나타날 거야.”
“예전하고 다르네.”
“효과가 너무 커서 하나씩 나타나면 몸에 무리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천천히 동시에 나타나게 했어.”
상엽은 동희의 말대로 5분을 기다렸다. 그러자 배 속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뭐야?’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고 큰 힘이 발생했다. 그 힘은 곧 거센 파도처럼 몸 전체를 집어삼켰고 갑자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짧았다. 그리고 폭발의 힘이 고스란히 몸 전체로 뻗어 나갔다.
“우와.”
상엽은 자신의 몸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지속 시간은 30분이야. 이제 많이 길어졌어.”
상엽은 30분이 넘는 전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말은 모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는 뜻이었다.
“동희야, 잠깐만 여기 있어.”
상엽은 강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넓고 물결이 거센 곳을 찾았다.
“후읍.”
그는 숨을 들이켜며 힘을 모으고 바닥을 찼다.
쾅!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땅이 꺼지고 그의 몸은 500미터까지 솟구쳤다.
상엽은 그 상태에서 낙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강이 가까워지는 순간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콰콰쾅!
미사일이 떨어진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강물이 거친 꽃 모양으로 흩어지며 바닥을 드러냈고 땅이 갈라지며 흙까지 튀어 올랐다.
흐름이 바뀌어 버린 강물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굉음을 발생시켰고 흙과 물이 섞인 비가 쏟아졌다.
“우와!”
동희는 강물의 흐름마저 바꾸어 버린 상엽의 힘을 보면서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그 감탄은 상엽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빈 공간을 채우기 전에 뭍으로 올라온 상엽은 자신의 힘에 놀라고 있었다.
정확히는 동희의 도시락에 놀란 것이다.
‘이건 상점 1단계 정도의 힘인데?’
3단계 유저가 4단계 유저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동희야, 너 이 도시락 또 누구한테 줬어?”
“아무도 안 줬어. 나만 먹어 봤어.”
“이거 비밀로 해. 아마 난리가 날 거야.”
“정말? 그렇게 좋아?”
“최고야.”
“헤헤. 아직 부족해서 연구 중인데.”
상엽은 동희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으로 느꼈다.
“훌륭하다, 친구!”
“방금 내가 본 거도 최고였어. 널 좀 따라갈 줄 알았는데 더 멀어져 버렸네.”
“넌 내가 못하는 걸 하잖아. 내가 볼 땐, 네가 더 대단해. 이건 진심이야.”
“헤헤.”
동희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 웃음에 상엽도 웃었다.
“놀러나 가자.”
“응!”
그들은 변종 구역인 양평을 여유롭게 산책하기 시작했다.
* * *
쾅!
“그런 변종이 있어?”
쿵!
“응. 신기한 변종도 많아. 신기한 재료들도 있어.”
쾅!
상엽은 달려들던 늑대의 머리를 해머로 찍고 동희에게 물었다.
“재료?”
쿵!
동희는 은빛 장갑을 낀 주먹으로 늑대의 턱을 부수며 대답했다.
“재료도 있고 특별한 물품도 있어. 정령의 정수 같은 거 있잖아. 그것보다 훨씬 좋은 약재도 있더라고.”
“신기하네.”
“한국 사냥터에서는 없는 물품들이야. 그래서 우루무치까지 간 거고.”
“아, 음식 재료 구하러 갔구나.”
쾅! 쿵!
그들은 사냥을 하면서도 대화를 끊지 않았다. 이미 양평의 변종 정도는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엽은 그렇다고 쳐도 동희도 이젠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몇 단계 상점까지 갔어?”
“나? 3단계 마스터하고 오늘 4단계 상점 들렀다가 왔어.”
“진짜?”
상엽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로 듣자 성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야?”
“음식이랑 유물 조각이랑 교환했어.”
“아…….”
“그런데 이제 너무 좋은 음식을 요구하더라고. 그래서 그만뒀어.”
동희는 브로커 세 명을 고용해서 전 세계적으로 음식을 팔았다.
그가 만드는 가장 간단한 음료수와 신체 상승 3단계 정도의 효과가 있는 도시락이었다.
높지 않은 가격에 팔았지만 워낙 많이 팔아서 획득하는 코인이 어마어마했다.
결국 동희는 4단계 유저가 될 수 있었다.
“좋아! 내 친구가 강해졌어!”
“내 친구는 원래 강했어! 지금은 더 강하고!”
“크크!”
“헤헤.”
그들의 사냥은 유쾌했다. 상엽은 진짜 친구와의 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이제 네 이야기도 좀 해 봐.”
“한 편의 드라마를 듣게 될 거야.”
“기대하고 있어.”
그들은 점점 더 깊숙한 지역으로 들어섰고 상엽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엽은 누나의 이야기부터 백섬과 흑점, 사쿠라 길드에 이어 중국 오룡회까지 모든 사건을 말했다.
“우와.”
동희는 이야기가 끝나자 사냥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했다.
“너 많이 힘들었겠다.”
“대신 얻은 것도 많잖아.”
“대단해.”
동희는 충분히 감탄을 한 뒤에야 상엽에게 물었다.
“그럼 이하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모르겠어. 일단 경찰 누나가 안미영 사건을 쫓고 있어. 난 그냥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답답하겠다.”
“경찰 누나 말대로 하는 게 좋더라고. 내가 필요하면 연락을 할 거야.”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사냥을 멈췄다.
“라면 끓여 먹을까?”
“내가 할게.”
“아니야. 이번에는 나한테 맡겨. 나도 라면은 잘 끓여.”
상엽은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라면은 연지가 잘 끓이는데. 연락이 안 되네.”
“신전에 한 번 더 들어간다고 했어.”
“어? 연락한 거야?”
“응. 한 달 전에 연락했어. 네가 준 신전은 다녀온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또 신전에 간 거야? 그 정도면 신전 중독 아냐?”
상엽은 아직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신전을 송연지는 두 번이나 다녀왔고 지금은 세 번째 신전에 들어가 있었다.
“무사히 와야 할 텐데.”
“강한 애잖아. 꼭 올 거야. 그때까지 나도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같이 놀지.”
“강해지려는 이유가 그거야?”
“응? 방해 안 되고 같이 놀고 싶어.”
상엽은 동희의 순수한 마음에 웃고 말았다.
“네가 만든 음식만으로도 충분해.”
“헤헤.”
“맛 연구는 좀 하자. 무슨 뜻인지 알지?”
“응! 하고 있어! 많이 나아졌잖아.”
상엽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훌륭하더라고.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할 거 같았어.”
거짓말을 훌륭히 해낸 상엽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라면이 끓기 시작해서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
“아 참, 상엽아. 너 유명해졌더라. 브로커들이 많이 알던데?”
“일본 사건 때문이지 뭐.”
“그런데 네 소문에 이상한 점이 있었어.”
“뭔데?”
동희는 수증기가 올라오는 냄비를 보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전부 네가 블랙 유저인 줄 알던데?”
허를 찔린 상엽은 잠시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