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아저씨, 광신이 형 괴롭히지 마요.”
“첫인사치고는 독특하군.”
“아저씨 성격 보니까 광신이 형이 골치 좀 아프겠네요.”
“하하! 역시 유쾌한 친구야.”
강청은 상엽의 스스럼없는 인사가 마음에 들었다.
“길드 잘 지켜요. 내 상상력이 무너지면 안 되니까.”
“물론이야. 목숨을 걸고 지킬 생각이네.”
“뭐,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몇 명이나 처리한 거예요?”
“세 명밖에 안 되네.”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3단계 유저 세 명을 혼자 상대했다면 꽤나 실력자였다. 게다가 단순히 신체나 스킬 강화로 판단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우락부락한 느낌은 아니지만 드러난 피부는 힘줄이 솟아 있고 강한 근육이 돋보였다.
“운동 많이 하셨네요.”
“원래 좋아하는 편이야. 그래도 노동으로 다져진 자네만큼은 아니지.”
“이제 8명 남았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광신이가 자리를 마련해 줄 게야. 우리는 선택만 하면 되겠지.”
강청은 여유롭게 말을 하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더니 초코바 하나를 상엽에게 내밀었다.
“먹겠나?”
“뇌물이면 안 먹고요.”
“별다른 의미는 없네. 그냥 두 개가 있어서 하나를 주려는 것뿐이야.”
“좋아요.”
상엽은 강청이 내민 초코바를 받아먹었다.
“사쿠라 길드를 무너트린 이야기.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해 주겠나?”
“기회가 되면요.”
“고맙네.”
강청의 말에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저씨, 너무 그렇게 예의 차리지 말아 줄래요?”
“불쾌한가?”
“아저씨가 그러면 저도 예의를 갖춰야 하잖아요. 그냥 편하게 해요. 광신이 형이 형이면 아저씨도 형인데. 아저씨 형.”
“아저씨 형? 하하!”
처음 듣는 호칭에 강청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또 하나의 초코바를 꺼내 입으로 가져가더니 상엽을 보며 먹기 시작했다.
“그 눈빛 이상한데요.”
“내 목표를 눈으로 보고 있다네.”
“목표요? 싸우자고요?”
“아니. 자네를 넘어설 것이야. 반드시.”
그 말에는 솔직함과 강한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상엽은 그의 직설적인 화법이 마음에 들었다.
“저보다 약할 것 같지 않은데요.”
이는 진심이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지만 간단한 승리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강청은 그동안 목숨을 걸고 강해지는 길을 걸었다. 신전에도 다녀왔고 상엽처럼 몇 달 동안 사냥만 하기도 했다.
상엽의 행동이 그의 경쟁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김판종과 강청.
그들은 같은 경쟁심을 가졌지만 해결하는 방법은 달랐다.
김판종은 상엽을 죽이려 했지만 강청은 목표로 삼고 뛰어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삐빅.
그들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강청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준비가 됐군. 세 무리로 나눠졌다는데 어떻게 하겠나?”
“제일 많은 쪽은 제가 갈게요.”
“그럼 난 제일 강한 쪽으로 가지.”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강한 쪽에 갈게요.”
“그럼 난 대장을 잡겠네.”
“아씨!”
상엽은 기 싸움에서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님.
다행히 유령 추종자가 그의 생각을 깨워 주었다.
“전 스카우트가 있는 쪽으로 갈게요.”
아오나의 신전 조각을 위해서였다.
“그럼 대장은 남겨 두지. 사실 광신이가 그렇게 하라고 했네.”
“쳇.”
“먼저 가겠네.”
그가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엽의 스마트폰으로 정보가 도착했다.
현재 경로와 예상 경로가 나타난 정보였다.
“이럴 때 보면 광신이 형이 제일 무섭다니까.”
그의 의도대로 상대방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엽은 마다하지 않고 정보를 따라 움직였다.
* * *
상엽의 헌터 아이에 상대가 걸렸다.
“겨우 잡았네.”
그들 중에 스카우트가 있었기 때문에 상엽을 감지하고 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엽은 정보를 토대로 꽤 추적을 하고서야 그들을 헌터 아이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속도는 상엽이 훨씬 빠른 터라 그들의 거리는 점점 더 좁혀졌다.
“유령아, 확인해.”
유령 추종자의 범위까지 진입하자 상엽은 여유를 가졌다. 다만 그들이 움직이는 장소가 마음에 걸렸다.
‘이것들 봐라.’
그들은 인천의 최고 번화가를 향하고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민간인의 피해가 예상됐다.
“나 암살자야. 사람 잘못 봤어.”
상엽은 자신 있게 그들을 쫓았다.
그들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고 결국 상엽의 시야에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의 옥상을 뛰던 그들은 상엽이 다가오자 인도로 내려갔다.
쾅!
그들이 내려서는 충격에 주변에서 비명이 속출했다.
자정이 되기 직전이라 술 취한 사람들도 있었고, 늦은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도 많았다.
‘이것들이.’
상엽은 굳이 내려가지 않고 건물 위에서 그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저 자식이다.’
그는 제일 먼저 스카우트를 확인했다.
‘무섭게 생긴 아줌마.’
왜소한 체격에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고개를 돌려 상엽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의 스킬로 상엽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끼아!
어느 순간, 유령 추종자가 비명을 질렀다.
“친구끼리 반갑게 인사해야지.”
유령 추종자 앞에 또 다른 유령 추종자가 나타났다. 스카우트의 추종자가 상엽을 살피기 위해 접근하다가 발각된 것이다.
“찢어 버려.”
유령 추종자의 모습이 날카로운 톱날처럼 변하더니 반대쪽 추종의 몸을 갈라 버렸다.
-당분간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추종자끼리의 실력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럼 나도 시작해 볼까?”
상엽은 드디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스트라이크.”
낙하하는 속도에 스트라이크가 더해졌다.
그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자 스카우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눈에는 다가오는 상엽이 분명히 보였다.
은신을 감지하는 스킬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다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피해!”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이미 상엽이 지척에서 나타났다.
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지름 10미터의 커다란 구덩이가 생성되었다.
스카우트는 그 한 방으로 사라졌고 나머지 두 명은 그녀의 희생으로 죽음을 면했다.
“아악!”
비명이 속출했다. 상엽의 한 방에 주저앉은 시민만 열 명이 넘었다.
그들에겐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일단 처리하고.’
상엽은 전리품을 챙기지도 않고 가까이 있는 사내를 향해 뛰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자였다.
그는 어느새 양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돌진하는 상엽을 막는 게 먼저였다.
사내가 쌍칼을 교차하며 방어 스킬을 펼쳤다.
쌍칼 사내의 칼은 빛을 뿌리더니 방패의 환영을 만들어 냈고 온몸의 피부가 바위처럼 굳기 시작했다.
방어에 자신이 있는 자였기에 상엽의 돌진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동료는 상엽의 뒤에서 도끼를 꺼내 공격을 준비했다.
‘감히 막는다고?’
상엽은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쩌엉!
엄청난 기파가 터지며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로 굳은 사내의 몸이 유리처럼 깨져서 소용돌이로 흡수되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빛으로 흩어져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그 순간, 상엽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등을 노리던 사내는 이미 방향을 바꾼 뒤였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던 유령 추종자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악!”
“저건 뭐야?”
방향을 바꾼 사내는 갑자기 거리에 있던 여자 한 명을 붙잡더니 목에 도끼날을 올렸다.
“다가오지 마라.”
인질극이었다. 상엽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어쩌자고?”
“다가오면 죽이겠다.”
“야, 나 경찰 아니야. 시민을 구해야 할 의무는 없어.”
“멈춰라!”
사내가 손에 힘을 주었고 여자의 목에서 작은 핏줄기가 흘렀다.
피부를 파고든 것이다.
“이것 참.”
여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상엽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본 것이 상엽의 실수였다.
목숨을 지키고 싶은 인간의 눈빛은 간절할 수밖에 없다.
“알았어. 뭘 원해?”
“돌아가라.”
“뭐, 그러든지. 대신 그 여자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내가 안전해지면 놓아주지.”
“진짜 개새끼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엽은 무기를 내리며 돌아섰다. 그리고 전리품을 챙겨 그 자리를 떠났다.
‘유령아, 지켜보고 있어.’
사내는 상엽이 사라지자 여자를 안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상엽의 반대 방향으로 10여 분을 달렸다.
상엽이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건물의 옥상 위에서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꺼냈다.
그때, 그의 발아래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천장을 부수고 위로 솟구친 기파는 그대로 사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유령 추종자는 여인의 팔을 잡아당겨 기파의 범위를 벗어났다.
“별거도 아닌 게.”
상엽은 전리품을 챙기고 쓰러진 여자를 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누나, 다음부터 변종 사냥꾼 보면 그냥 피해요. 어설프게 카메라로 찍지 말고.”
“네?”
“몰라서 내버려 둔 게 아니에요. 귀찮아서 그냥 둔 거지.”
여인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핸드폰 카메라로 상엽과 변종 사냥꾼을 찍고 있었다.
“알아서 삭제해요. 그걸 공개했다가는 다음에는 인질극으로 안 끝나요. 내가 직접 누나 찾아갈 거니까요.”
상엽은 더 이상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건물을 내려갔다.
‘여기 수리비는 흑점한테 넘겨야지.’
그 생각이 들자 상엽의 기분이 좋아졌다.
* * *
화이트 길드 오룡회.
길드장 왕구정은 이를 갈고 있었다.
“한국 놈 따위에게 당한단 말이냐!”
왕구정은 화가 나서 발을 굴렀고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강한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강하다고 해 봐야 한국 놈들이 얼마나 강하다고!”
왕구정은 부길드장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원래가 머리보다는 힘으로 싸우는 스타일이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래서 우리 길드가 무너졌지.’
부길드장 황성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길드장님, 지금은 피하는 게 우선입니다.”
“닥쳐라! 더 이상 갈 데가 있단 말이냐?”
“훗날을…….”
짝!
결국 왕구정은 황성의 뺨을 후려쳤다. 황성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고 입 안에서는 부서진 이빨이 돌아다녔다.
“두 번 도망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서 도주했다는 사실을 치욕으로 느끼던 그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약하다고 알려진 한국에서 다시 도망갈 수는 없었다.
“몇 놈이든 직접 상대해 주마!”
결국 그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상대를 기다렸고 흑점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그들을 포위했다.
“오룡회라서 다섯 명만 남은 거야?”
그들 앞으로 금빛 해머를 든 사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양손검을 든 중년 사내가 함께 있었다.
“아저씨 형.”
“말하게.”
“많이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죠.”
“대장은 3점으로 하지.”
“게임을 할 줄 아는 분이시네.”
그들은 오룡회의 정면으로 다가왔다.
“겨우 두 명이?”
상엽과 강청의 의도를 알아차린 왕구정은 분노해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의 수하들도 뒤를 따랐다.
“벌칙은 뭐로 하겠나?”
“삭발빵 어때요?”
“하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받아들이지.”
챙! 쾅!
두 개의 소음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둘 다 못 말리겠네.”
박광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길드장님, 정말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까?”
“너 지금 저길 끼어들 수 있다고 생각해?”
전투조 조장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해안가의 버려진 공장 부지는 이미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먼지와 폭발로 인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땅은 완전히 뒤집어졌고, 외부로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기파로 피부가 베일 듯했다.
“팝콘 있어?”
“네?”
“영화 보는 거 같아서.”
말과 달리 박광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저 두 사람이 우리 길드를 공격한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네? 갑자기…….”
“예를 들어서 말이야. 저런 괴물 두 명이 우릴 습격하면 막을 수 있냐고.”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투조 조장은 솔직히 대답했다. 누구보다 경쟁심이 높은 그였지만 지금 눈으로 보는 장면은 감히 범접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에 저런 인간이 몇 명이나 될까?”
“예상할 수 없습니다.”
“당장 중국만 해도 꽤 있을 텐데.”
박광신은 영화 같은 싸움을 보면서 미래를 예측했다.
“내일부터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해. 성장이 빠른 사람은 가능한 모든 특혜를 줄 거야. 그리고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거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알겠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거야. 저들은 이미 군대를 넘어섰어.”
쿠릉!
박광신의 말을 증명하듯 하늘에서 금빛 대형 해머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박광신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폭격기에서 떨어트린 폭탄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