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상엽은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붉은 스포츠카가 가로등을 들이받은 현장이었다. 이미 사고 차량은 치워졌지만 파편은 바닥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사건 현장이 보이는 거리에 가연수가 서 있었다.
상엽과 강차연을 발견한 그녀는 빠른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의도적인 교통사고였어. 트럭이 안미영의 차를 들이받았고, 운전자가 안미영의 상태를 살폈어.”
“그리고?”
“소멸했어. 운전자가 죽인 거야.”
“운전자는?”
“사라졌어.”
의도적인 살해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인 사건이 될 수는 없었다.
시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지? 그것도 하필 우리를 만난 날?”
상엽의 의문은 자연스레 다른 용의자로 이어졌다.
“이하나?”
“단정하지 마. 이하나가 움직였다면 그동안 계속 안미영을 감시했다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이런 암살을 시도할 세력이나 인맥이 있다는 거고.”
단순히 이하나를 의심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네.”
상엽은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상대방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어.”
“맞아. 안미영에게 꼭 숨겨야 하는 뭔가가 있었다는 뜻이야.”
“일단 그녀의 집에 다시 가 봐야겠어.”
“이제 꽤 익숙해진 모양이네.”
“시간을 투자하면 배우는 게 있어야지.”
그들은 가연수를 사건 현장에 남겨 두고 안미영의 집으로 향했다.
“음.”
안미영의 집은 이미 깨끗하게 털려 있었다.
가구를 제외한 모든 물품이 사라진 것이다. 서류나 종이는 물론, 화장품과 속옷, 휴지까지 사라졌다.
“CCTV.”
“내가 확인해 볼게.”
강차연이 경비실로 향했고 상엽은 안미영의 집에 남았다.
“유령아, 뭔가 있는지 찾아봐.”
유령 추종자는 벽 속까지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유령아, 우리가 이하나 따라갈 때, 주변 감시했지?”
-의심스러운 자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하나가 제일 의심스럽다는 건데. 그런데 자신이 의심받을 걸 알면서도 그런 일을 했을까?”
이런 추리는 상엽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경찰 누나 말대로 사실만 보자. 괜히 예상해 봐야 결론은 없으니까.”
상엽은 버릇처럼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 군인 아저씨가 웬일이지?”
상엽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
-통화 가능한가?
“네, 괜찮아요.”
-혹시 시간이 된다면 만나고 싶네. 박광신과도 만나기로 했다네.
둘이 약속 시간을 잡고 상엽까지 부르는 것이다. 그저 밥이나 먹자고 부르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일단 시간과 장소는 알려 주세요. 갈 수 있으면 갈게요.”
-알겠네.
상엽은 전화를 끊고 강차연을 기다렸다.
10분쯤 후에 강차연은 찾아오는 대신 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일단 전부 복사했어. 돌아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섣불리 움직이지 마. 조심하고.
“알았어.”
당장 상엽이 할 일은 없어졌다.
“무슨 일인지 가 보자.”
상엽은 누나 사건을 잠시 접어 두고 김대진이 말한 장소로 이동했다.
* * *
상엽이 도착한 곳은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이런 곳은 또 처음이네.’
고급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가득하고 기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급 한옥집의 커다란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한복을 입은 남자 안내원이 상엽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정중하게 인사를 한 종업원은 곧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일행이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언질을 받은 듯, 안내원은 중앙의 커다란 한옥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본채의 뒤에 다섯 개 정도의 별채가 있었고, 상엽은 그중에서도 가장 먼 곳으로 안내되었다.
“여깁니다.”
안내원은 입구까지만 안내를 하더니 돌아갔다.
내부로 들어서자 이미 자리를 잡은 김대진과 박광신이 보였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김대진은 이제 준장이 아니라 소장이었다. 게다가 소속도 국방부 산하의 특별 부서로 옮겼다.
한국 갓코인 유저와 직접 소통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살이 빠지셨네요. 찔 줄 알았더니.”
“꿀보직으로 온 줄 알았더니 아니더군. 후회하는 중이네.”
상엽은 비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상엽 동생. 한국 오면 바로 찾아올 줄 알았더니.”
박광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좀 쉬었어. 안 그래도 곧 가려고 했어.”
그들이 간단한 인사를 하는 사이, 음식이 차려졌다.
음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전통 과자와 과일, 차가 전부였다.
음식보다는 비밀 이야기를 하러 오는 곳인 듯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상엽은 종업원이 모두 나가고 주변에 감시자가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김대진을 보며 물었다.
김대진도 뜸 들이지 않고 본론을 말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네.”
차로 혀를 적신 김대진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가벼운 것부터 말하지. 최근 미국의 독립 방송에서 갓코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네. 꽤 정확한 내용을 방송할 모양이야.”
“사람들이 믿을까요?”
“나도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네.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 직접 나섰다더군. 그냥 묻힐 방송은 아니라는 거지.”
정부에서 나섰다면 그만큼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갓코인의 실체가 공개되면 엄청난 혼란이 있을 것이네. 누구나 갓코인 유저가 되고 싶어 할 테니까.”
“서로의 코인을 빼앗으려는 사람도 늘겠죠.”
“치안이 무너질 수도 있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다.
“강한 자는 법을 벗어나려 할 테고, 범죄 집단, 코인 시장, 연쇄 살인까지 다양한 부작용이 있겠지.”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나요?”
“막을 수는 없지. 노력은 하겠지만 언제든 밝혀질 사실이니까. 이미 제대로 공개된 정보도 꽤 있고.”
“그래요?”
“다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 뿐이네. 신의 능력을 사는 코인이라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니까.”
아직 많은 사람이 믿지는 않았다.
“어쨌든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예방은 해야 하지 않겠나?”
“음, 그렇죠. 그러라고 세금 내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 같은 공무원들이 살이 빠지는 거라네. 일반인으로 구성된 치안 조직으로 갓코인 유저를 막으려니 답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대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강차연이 있던 특수기동대를 기억하나?”
“갓코인 범죄를 잡는 경찰 말인가요?”
“그때는 정부도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라네.”
“다른 계획이 있나요?”
“특수치안대라는 조직을 신설할까 하네. 정부의 정식 조직이고, 블랙 유저를 중심으로 모을 것이네.”
그 말에 상엽은 의문이 들었다.
“흑점을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그리고 이 계획의 핵심은 모집이 아니라 육성이지.”
“육성이라면…….”
“군인과 경찰 중에서 국가 충성도가 높은 인원을 뽑아서 갓코인 유저로 육성하는 거지. 그들을 이용해 변종 사냥 팀도 만든다면 국민들 안전도 지켜질 테니까.”
“아…….”
김대진의 계획은 치밀하고 거대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꼭 필요해. 지금 한국 갓코인 유저의 힘으로는 결국 다른 나라 유저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국가전이 될 거라고 생각해?”
“아니. 집단전이 되겠지. 그래서 더욱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돼. 유리한 점이 많으니까.”
확실히 국가의 보호 아래 육성이 된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신체적으로 뛰어난 자들을 선발한다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테라다도 그랬지.’
사쿠라 길드장 테라다는 특별한 스킬이 아니라 업어치기로 상엽을 던져 버렸다.
“충분히 이해했어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치안대장을 맡아 주겠나?”
“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저보고 공무원이 되라고요?”
“어떤가? 시험은 보지 않겠네.”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네요. 그런데 거절할게요.”
“고민도 하지 않는 건가?”
상엽은 차를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곧 한국을 떠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게 끝나면 심각하게 고민해 볼게요.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할 수가 없어요.”
상엽은 누나를 살려야 했다. 그래서 더 강해져야 했고, 더 위험한 사냥터에 가야 했다.
한국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일이 해결되면 고민해 보겠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네, 약속해요.”
“일단 그걸로 만족하지.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세.”
“아, 두 가지라고 했죠. 이게 가벼운 문제라니 두 번째는 왠지 무섭네요.”
그들은 다과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두 번째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네.”
“뭔데요?”
“중국의 갓코인 집단 하나가 한국으로 들어왔네.”
“음.”
“오룡회라는 집단이지. 광동성 세력 싸움에서 패배한 잔당들이네. 그런데 그 잔당이라고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라서 말일세.”
김대진은 상엽에게 서류철을 내밀었다. 상엽은 그 자리에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중의 중요한 내용이 상엽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열여섯 명이라. 그런데 용케 간부들이 다 살아남았네.’
수하들을 모두 버리고 간부들만 넘어와서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좋은 곳이지.’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만 갓코인 유저의 힘은 약한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흑점이 토벌을 진행할 생각이네.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상엽은 자료를 다시 한번 보았다.
‘강하네.’
3단계 유저가 6명, 4단계 유저가 4명, 3단계를 마스터한 4단계 유저가 5명이었다.
‘뭔 패잔병이 이렇게 강해?’
이 정도면 사쿠라 길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정도였다.
상엽은 서류에 없는 내용을 물었다.
“도대체 누구랑 싸운 패잔병인데 이렇게 강해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박광신이 대신했다.
“본래 광동성 최고 화이트 길드였는데 기습을 당했어. 라이벌 블랙 길드가 광서성 블랙 길드와 연합을 해서 처리해 버린 거지. 그 과정에서 배신도 있었던 거 같아.”
“그럼 패잔병 처리는 안 하는 거야?”
“그게 문제가 좀 있어. 그들이 연합하는 바람에 광서성 화이트 길드도 연합을 해 버렸거든. 그래서 분위기가 살벌해졌지.”
“음.”
“중국은 한국과 분위기가 달라. 매일 전쟁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돼. 그만큼 치열한 땅이니까. 호전적인 민족이기도 하고.”
“삼국지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것보다 치열할걸?”
상엽은 박광신의 확신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다니?”
“안 그래도 속이 답답했거든. 땀 좀 흘리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 같아.”
“설마…….”
박광신은 상엽을 빤히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당장?”
“이유만 말해 줘. 그냥 관광 왔는데 죽이면 이상하잖아.”
“이미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살인, 강간, 강도 등등. 감옥 밥이 아까울 정도야.”
상엽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겠다고?”
“더 할 말 있어?”
“기다려. 그래도 우리 길드에서 도와줄 테니까.”
“됐어. 지켜 줘야 할 사람이 있는 게 더 골치 아파.”
그는 박광신의 말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인천 차이나타운.
“한국에 중국이 있었네.”
처음 차이나타운을 접한 상엽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중국 간판들을 신기하게 보았다.
상엽은 박광신이 더 정확한 정보를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대충 위치만 알면 돼.’
그에겐 가장 확실한 정보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아, 찾아.”
상엽은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을 유령 추종자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아주 천천히 차이나타운을 걸었다. 사람이 많아서 추종자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남은 관광객처럼 차이나타운을 구경했다.
화려한 불빛의 유흥가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섰고 여기저기서 한국말과 중국말이 섞여서 들리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30분쯤 거리를 걸었을 때, 유령 추종자가 상대를 찾아냈다.
-3명이 함께 있습니다.
“잘됐네. 안내해.”
상엽은 유령 추종자를 따라갔다.
-아트로.
룸살롱이었다.
외부도 화려했지만 내부의 인테리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대리석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혼자 오셨습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한 명이 맞아.”
“네?”
카운터 앞에 있던 웨이터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니, 한 명이라고.”
“안내하겠습니다.”
상엽은 작은 룸으로 안내되었고 웨이터는 물 한 잔을 따라 주더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늘씬한 몸매를 한껏 뽐낸 30대 초반의 마담이 들어왔다.
옆이 트인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라서 걸을 때마다 하얀 다리가 전부 드러났다.
“처음 오셨죠?”
“응.”
상엽이 뭔가 대화를 하려 할 때, 유령 추종자가 급히 보고를 했다.
-한 명이 움직입니다.
“1분만 있다 들어올래? 중요한 전화가 있어서.”
마담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에 상엽은 유령 추종자를 통해 홀로 움직이는 사내를 확인했다.
‘화장실이라. 암살하기 좋은 곳이네.’
상엽은 눈을 감아 본래의 시야를 되찾았다.
“오함마 암살자가 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