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63화 (63/300)

# 63

상엽은 TV를 보거나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니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하나.

상엽은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룹 릴리스의 리더 이하나.

뉴스는 그녀의 모든 것을 기사로 만들었고, 대부분이 찬양 일색이었다.

165 정도의 신장이지만 늘씬한 느낌이 들 정도로 슬림한 몸매를 가졌고, 얼굴은 선한 눈매에 동양적인 미인형이었다.

‘누나랑 동갑이네.’

가장 많은 CF를 찍는 연예인인데다 이미지가 워낙 좋아서 모든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20대 중반 연예인이 이하나였다.

뉴스만 봐서는 안미영의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기사는 믿지 마. 가공품이니까.”

“알아.”

그들의 차는 고급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언니, 어떻게 된 건데. 말 좀 해 주라. 응?”

가연수는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누구도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에이씨. 진짜 이럴 거야?”

“연수야.”

강차연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가연수를 불렀다.

“응, 언니. 이제 말해 줄 거야?”

“내려.”

“뭐?”

“안미영 감시해.”

“아씨! 이유라도 말해 줘야지!”

어쩔 수 없이 상엽이 가연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 그럼 이하나가 나쁜 년이야?”

“뭐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상엽의 설명에 만족했는지 가연수는 불만 없이 차에서 내렸다.

“이하나 만나면 사인 좀 받아 줄래?”

“연수야, 문 닫아.”

“역시 언니는 시크한 게 매력이야. 사랑해.”

가연수는 윙크를 하더니 문을 닫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시끄러워질 수도 있겠는데.”

강차연은 신중한 표정이었다.

“안미영의 말이 사실일까?”

상엽이 재차 묻자 강차연은 고개를 저었다.

“진술에 완벽한 진실은 없어.”

“그래?”

“같은 사건을 겪어도 진술은 전부 다르거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진실은 그저 진술이 되는 거야.”

“그럼 안미영의 말도 못 믿는다는 거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아니야.”

“그럼?”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그게 중요해. 가짜를 걸러서 진짜만 남겨 둬야지.”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그게 강차연이 수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 * *

이하나의 스케줄을 체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하면 되겠네.”

팬 사인회였다.

인터넷 기사에서 쉽게 검색이 되었고 서울이라서 거리도 멀지 않았다.

상엽이 도착한 행사장은 서울의 대형 쇼핑몰이었다.

소형 콘서트를 해도 될 만큼 큰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사인회였지만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공연장 제일 안쪽에서 시작된 줄은 입구를 빠져나와 복도까지 이어졌고 100명이 넘는 관계자들이 정리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힘으로 뚫고 들어가면 문제가 되겠는데.”

강차연의 판단에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상엽은 가장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변기에 자리를 잡고 추종자를 불렀다.

‘확인 좀 하고 와.’

유령 추종자는 벽을 뚫고 한창 사인회가 열리는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추종자를 통해 상엽은 이하나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음.’

확실히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외모였다.

인터넷 기사에서 떠들어 대는 찬양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옅은 화장이 어울릴 정도로 하얀 피부에 매력적인 눈웃음을 가졌고 얼굴이 워낙 작아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상엽이 외모에 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역시 예쁜 여자들에 대한 경험은 충분했다.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그녀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의 웃음은 밝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조금은 짓궂은 사진 요청에도 웃으며 응했고, 많이 기다린 팬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기까지 했다.

‘가식일까?’

그녀의 행동은 의심을 가지기 힘들 만큼 자연스러웠다. 계속해서 지켜보는 동안, 상엽조차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일단 기다려 보자.’

상엽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나가서 강차연과 함께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사인회는 2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인파가 몰려 한 시간이 연장되었다.

그 결정 또한 이하나의 이미지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터넷에는 팬들을 위해 사인회를 연장한 이하나의 행동이 기사가 되어 뿌려지고 있었다.

드디어 사인회가 끝났고 이하나가 경호를 받으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상엽은 미리 강차연의 차에 올라 뒤를 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좀 이상할 거야. 끝나면 말해 줄게.”

강차연은 이하나의 차를 뒤쫓았고,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차의 내부를 보았다.

두 명의 스타일리스트와 두 명의 매니저가 넓은 밴 안에 타고 있었다.

“하나야, 수고했어.”

“실장님도 수고하셨어요. 다음 스케줄은 라디오죠?”

“20분짜리 게스트니까 힘들지 않을 거야. 여기 대본.”

조수석에 탑승한 30대 중반의 사내가 이하나에게 대본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이하나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대본에 열중했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듯이 좌석 옆에 놓여 있던 쇼핑백을 뒤에 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내밀었다.

“소영 언니, 생일 축하해요.”

“어머? 기억하고 있었어?”

“당연하죠.”

그녀는 너스레를 떨며 생일 선물을 넘겨주고는 다시 대본을 보았다.

그 후로도 이하나는 본인의 스태프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했다.

30분의 이동이 끝나고 이하나가 방송국 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추격도 끝났다.

“뭘 한 거야?”

모든 게 끝나고서야 강차연이 물었다.

하얗게 눈이 변한 채로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상엽을 보며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훔쳐본 거야. 유령이를 통해서.”

“유령이? 네가 소환하는 유령이 그런 능력도 있어?”

“누나는 안 훔쳐볼게. 약속해.”

강차연은 입꼬리만 올려 살짝 웃고는 다음 계획을 말했다.

“자, 이제 만나 봐야 할 거 같은데.”

“그러게. 그런데 좀 이상해.”

“뭐가?”

“팬들 앞에서는 그렇다고 쳐도, 매니저들한테도 너무 잘하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자연스럽고.”

“시간이 지나서 변했을 수도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간이잖아.”

“그런가?”

강차연은 방문객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고 상엽에게 주의를 주었다.

“선입견은 안 돼.”

“알았어.”

그들은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절차가 있었지만 그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비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령아, 찾아.”

건물 하나를 수색하는 건 유령 추종자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분쯤 지나자 유령 추종자는 이하나의 위치를 찾아냈다.

바쁜 스케줄 탓에 이하나는 곧장 라디오 부스로 들어갔고, 그 후에야 기회가 생겼다.

매니저와 함께 복도를 걷는 이하나 앞을 상엽이 막아섰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누구십니까?”

실장으로 불리던 30대 중반 매니저가 이하나와 상엽의 사이를 막아섰다.

“정다혜 동생.”

“정다혜? 하나야, 아는 사람이야?”

실장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이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정다혜라면 그…….”

“자살.”

“응. 미안해. 정말 다혜의 동생이라고?”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상엽의 요청에 이번에도 실장이 나섰다.

“지금 하나는…….”

“실장님, 괜찮아요. 시간이 얼마나 있나요?”

“20분 뒤에는 출발해야 돼. 그런데 너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괜찮아요.”

이하나는 의외로 순순히 상엽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혜 동생이구나. 무슨 일이야?”

“우리 누나 사건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내가 아는 건 다 말해 줄 수 있어. 그런데 별로 아는 게 없어서 도움이 될진 모르겠어.”

“뭐든 듣고 싶어.”

“알았어. 여기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까…….”

“함께 온 사람이 있어.”

그제야 강차연이 상엽의 뒤에서 나타났다.

“강차연이야. 전직 경찰인데 지금은 그만뒀어. 정상엽 누나 사건을 조사 중이야.”

이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제 차로 갈까요?”

그녀로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고 상엽과 강차연도 받아들였다.

이하나는 상엽의 요청대로 정다혜와의 인연을 말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강차연과 상엽의 표정이 묘해졌다.

“다혜와 저는 라이벌이었어요. 제가 연습생이 되었을 때, 다혜는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었거든요.”

“라이벌?”

“선의의 경쟁이었어요. 전 다혜를 이기기 위해 죽도록 연습을 했고 다혜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리고 결국 함께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고요. 데뷔가 정해졌을 때, 처음으로 다혜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몰래 맥주도 한잔 마셨고요.”

그때를 회상하며 이하나는 슬쩍 웃음을 보였다. 씁쓸한 느낌이 묻어 있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안 좋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같은 멤버 중의 한 명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게 밝혀졌거든요.”

“안미영의 스폰서를 말하는 건가?”

“이미 알고 오셨나 보네요. 맞아요. 우연히 미영이의 핸드폰 문자를 보고 그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미영이뿐만이 아니었어요. 미영이가 소개를 해 줘서 세 명이나 스폰을 받고 있었던 거죠.”

미성년자의 스폰서.

이는 심각한 문제였지만 이하나와 정다혜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혜와 저는 미영이에게 안 좋은 관계를 끊으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 알리겠다고 했죠. 결국 미영이는 우리 말을 듣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하나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다시 그 파티에 간 거예요. 그런데 다혜가 미영이를 설득하겠다며 그 장소를 따라갔어요.”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그게 끝이었어요. 저도 같이 갔더라면 다혜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입술을 떨며 눈물을 떨구는 이하나를 보며 상엽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의 감정에 휩쓸려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안미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둘 모두 정다혜의 라이벌이라 했고, 스폰서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했다. 다만 그 주체가 너무 달랐다.

상엽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강차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가 국회 의원 정득수, 맞아?”

“네, 맞아요.”

“아버지 덕을 많이 봤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악플러들이 하는 말이죠. 덕이 아니라 손해만 봤어요. 아빠는 제가 연예인인 걸 싫어하시거든요.”

이 역시 안미영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

“방송에서 몇 번 웃으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민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 외에는 아직도 아빠랑은 아무 말도 안 해요.”

강차연 역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차 밖에서 대기 중이던 매니저가 창문을 두드리더니 손목을 가리켰다.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말해 줘서 고마워.”

“저도 다혜가 그렇게 된 게 이상해요. 다혜는 절대 자살할 아이가 아니거든요. 어떻게 된 건지 꼭 밝혀 주세요.”

그녀는 간절한 표정으로 강차연을 보았다.

“그럴 거야.”

강차연이 먼저 차에서 내렸고 상엽이 그 뒤를 따랐다.

이하나의 차가 급히 출발을 하자 상엽은 긴 한숨을 쉬었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 모르겠어.”

“유령을 이용해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 진짜야?”

강차연 역시 그런 방법까지 생각했다.

“가능해. 그런데 그걸 당한 사람은 죽어.”

“음, 그럼 못 쓴다는 거네.”

강차연이 원하는 방식은 절대 아니었다.

“피해자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같은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

한 명은 분노를 드러내며 거칠게 말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짙은 슬픔을 실어 말했다.

어느 쪽이든 진실을 포장하기에는 적절한 감정이었다.

“둘 중의 하나는 범인이겠지?”

“아닐 수도 있어. 둘 다 범인일 수도 있고.”

“복잡하네.”

상엽은 마음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그때, 강차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언니!

가연수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상엽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안미영이 사라졌어!

“무슨 말이야? 설마 네가 놓쳤다고?”

-그게 아니야. 방금 교통사고가 났거든! 그런데 안미영이 사라졌어.

“교통사고? 자세히 말해 봐.”

-아오!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해?

가연수는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안미영은 소멸했어! 갓코인 유저였다고!

그 외침에 상엽과 강차연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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