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9화 (59/300)

# 59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 최고의 전사였다.

가장 강한 길드의 수장이었고 정부가 그들을 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사내.

김판종은 지금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으득!

늑대 인간은 그의 팔을 물었고 고개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를 제압했던 그의 오른손은 아이 손에 들린 프라모델처럼 뜯겨 나갔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늑대 인간의 긴 손톱이 그의 허벅지를 그었다.

깊게 베인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졌고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그는 바닥에 누워 쉴 수가 없었다.

툭.

늑대 인간은 쓰러지는 김판종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감상을 하듯 그를 들어 올렸다.

목이 잡힌 김판종은 축 늘어진 채로 늑대 인간을 보았다.

분노와 야성이 느껴졌다.

“크흐.”

길게 내쉬는 숨이 입김으로 흩어졌다. 김판종은 늑대 인간 뒤에 밧줄처럼 늘어진 촉수를 보았다.

자신의 자랑이었던 유산의 말로였다.

그 모습이 곧 자신의 미래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때, 늑대 인간이 손을 놓았다.

쿵.

김판종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늑대 인간은 다시 상엽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엽은 무심한 눈으로 김판종을 보았다. 그러더니 아공간에서 정령의 정수를 꺼냈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처럼 김판종의 허벅지에 뿌려 주었다.

“너…….”

“왜?”

상엽이 웃으며 김판종을 보았다.

김판종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러는 거지?”

저항할 힘을 잃은 김판종을 상엽이 살리고 있었다. 상엽은 그의 의문을 곧 풀어 주었다.

“걱정 마.”

상엽은 더욱 짙게 웃으며 이유를 말했다.

“30분쯤 더 살게 될 거야.”

쾅!

상엽은 김판종의 남은 왼손에 해머를 찍었다.

30분 후.

김판종은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처럼 옥상에 누워 있었다.

“기억은 잘 받았고.”

상엽은 쓰러진 김판종의 머리 앞에 앉았다.

“사냥감을 잘못 고르면 사냥꾼이 죽는 거야.”

이미 유령 추종자에 의해 정신이 파괴된 김판종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엽은 꼭 할 말이 있었다.

“내가 이겼어.”

그 말에 김판종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성을 잃었지만 본능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죽는 것만큼 싫었다.

“안녕, 개새끼.”

쾅!

상엽은 김판종의 머리에 해머를 꽂았다.

* * *

김판종을 죽였지만 상엽의 감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김판종은 그 정도 의미밖에 없었다.

상엽이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사쿠라 길드의 남은 네 명이었다.

사쿠라 길드장이 죽은 다음 날.

남은 네 명은 한 가지 선언을 했다.

-사쿠라 길드 해체.

결국 상엽에 의해 일본 제2의 화이트 길드가 해체되었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엽은 이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남은 네 명의 잔당이 제1 화이트 길드 료사기리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고 난 뒤에 돌아오겠다.

이 사실을 상엽은 블랙 길드 데스문을 통해 들었다.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복수를 하려 할 것입니다.

모든 걸 잃은 그들이 오직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상엽은 그들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뒤가 찜찜한 건 싫으니까.’

그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김판종을 통해 네 명의 정보를 충분히 습득했고, 그 기억에는 전투 장면도 있었다.

‘화이트 상점에 가야 돼.’

지리산에서의 사냥과 테라다, 김판종을 차례대로 잡으면서 상엽에겐 많은 코인이 있었다.

테라다는 특히 엄청난 유물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김판종도 특이한 조각이 많았다.

“중국으로 가자.”

상엽은 특이한 방법을 택했다.

한국과 일본에는 감시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식이 형, 중국에서 만나고 싶어.”

-준비하겠습니다.

상엽은 화이트 상점을 찾아 중국으로 갔다.

* * *

상엽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어.”

“휴가라 생각하시지요.”

“무임 승선인데 괜찮아?”

“이름은 다르지만 이미 예약해 두었습니다. 공식적으로 탑승하신 겁니다.”

상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배의 선상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마련된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와인을 들고 여유를 즐겼다.

선상 수영장은 기본이었고 내부에는 클럽과 레스토랑, 호텔보다 좋은 숙소가 있었다.

최고급 크루즈.

오상식이 상엽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물론 상엽은 불법 승선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입니다.”

“정말 휴가네.”

“복잡한 이야기는 저녁 식사 후에 하시죠.”

“고마워, 형.”

상엽은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여유를 즐겼다.

그날 저녁.

상엽은 오상식에게 모든 조각을 펼쳐 놓았다.

테라다와 김판종을 잡은 조각들이었다.

유물 조각 12개, 유산 조각 9개였다.

“엄청난 조각들이군요.”

그전에 가지고 있던 조각들은 상엽이 한국에 잠시 갔던 당시에 모두 넘겨주었다.

개수는 그때가 많았지만 하나하나의 희귀성은 지금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건…….”

오상식은 다섯 개의 조각을 하나로 모았다.

“이게 뭔데?”

“샐러맨더의 신전 조각입니다. 여섯 조각 유물인데 다섯 조각을 테라다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싼 거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물론 나머지 하나를 모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그 신전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오상식은 잠시 기억을 정리하고 상엽의 질문에 대답했다.

“불의 신전입니다. 아직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신전이라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역사를 기반으로 예상하자면 엄청난 불의 힘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의 힘이라.”

상엽은 신전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동희와 송연지를 통해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와는 다르니까.’

그는 오상식이 문양에 따라 배치해 놓은 신전 조각을 보았다.

세상을 태울 것처럼 화려한 불꽃 문양이었다.

그 힘의 상징을 상엽은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 후에 오상식에게 말했다.

“나머지 조각에 대해 알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알아보겠습니다.”

오상식은 샐러맨더의 신전 조각을 상엽에게 내밀었다. 수집을 결정한 유물은 상엽이 가지고 있는 게 그들의 규칙이었다.

“앞으로 유산은 최대한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단계가 된 건가?”

“그렇습니다. 이제 판매는 최소한으로 줄이겠습니다.”

“형이 너무 남는 게 없지 않아?”

“조각의 퀼리티가 높아서 하나만 팔아도 예전의 몇 배는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 유산이면 교환을 통해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상엽은 교환으로 이득을 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100만 원짜리 유산을 150만 원 유산과 교환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게 가능해?”

“가능합니다. 일반 거래와 달리 유산과 유물 거래는 원하는 쪽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크게 손해를 봤지요.”

테리아의 은총을 위해 오상식은 큰 손해를 감수했다.

이제 오상식은 기다리는 쪽이 되기로 했다.

“상엽 씨가 강해지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필요한 유산은 제가 계속 파악하고 있습니다.”

“형이 있어서 다행이야.”

“기분 좋은 말이군요.”

“진심이야.”

오상식은 상엽의 완전한 믿음을 얻었다.

“이 유물 조각은 흡수하시지요.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즐기시면 됩니다. 배 안에 놀 거리가 많습니다.”

“고마워.”

오상식은 인사를 하더니 방을 나섰다.

그들이 만난 곳은 상엽의 방으로, 크루즈 내에서도 스위트룸이었다.

고급 소파에 몸을 기댄 상엽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아. 이 정도면 욕은 안 먹겠어.”

그는 상점 소환권을 꺼냈다.

* * *

상엽은 시원한 물줄기 아래에서 땀을 닦아 냈다.

“너랑 싸우는 게 제일 힘들어.”

상엽과 함께 샤워를 하는 여자는 레나였다.

웬만한 전투에서는 땀도 흘리지 않는 상엽이지만 오늘은 한 시간 만에 침대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난 그런 여자야.”

“인정해.”

“그런데 저 녀석 좀 치워 주지 않을래?”

샤워실 옆에 이제 제법 뚜렷한 형상을 가진 유령 추종자가 서 있었다.

“왠지 훔쳐보는 거 같아서 기분 나빠.”

“훔쳐보기는. 대놓고 보고 있는데.”

“그러니까 기분 나쁘다고.”

“좋아서 그러는 거야.”

상엽은 유령 추종자를 보며 손을 저었다. 그러자 추종자는 샤워실 밖으로 사라졌다.

유령 추종자 7단계.

상엽은 레나를 불러서 추종자에게 선물을 주듯 7단계 강화를 진행했다.

무려 64만 코인이 들었다.

그렇지만 상엽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녀석 때문에 산 게 몇 번인데.’

-주인님께 충성을!

‘이런 말에는 대답하지 마.’

추종자를 강화하고도 상엽에게는 15만 코인이 남았다.

유물 조각을 흡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판종과 테라다가 가진 유물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화이트 상점에서 강화만 하면 딱 되겠어.’

이미 레나를 통해 중국 천진의 화이트 상점 위치는 파악해 두었다.

“무슨 생각 해?”

“응?”

상엽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레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다음 전투는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어.”

“그래?”

“물론이지.”

“어쩌지? 내가 시간이 없는데.”

샤워를 마친 레나는 상엽의 도발을 거절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또 봐.”

그녀는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 * *

중국 천진.

중국은 특이한 곳이었다.

한 나라 안에 1급 위험 지역과 5급 안전지대를 모두 가진 나라였다.

크루즈에서 내린 상엽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숨겼다. 그리고 유령 추종자를 통해 감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화이트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상엽은 다음 단계의 상점을 알아내고 같은 방식으로 중급 상점의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중급 상점 근처에는 감시자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두 명이었다.

상엽은 전화를 걸어 밖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단박에 거절을 당했다.

-첫 만남에서 확인을 해야 가능합니다.

상엽이 화이트 유저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네.”

중급 화이트 상점은 천진 중심가에 있는 금은방이었다. 상엽은 인적이 사라지는 새벽까지 몸을 숨기고 있다가 4시가 되어서야 움직였다.

“일단 좀 자고 있어.”

상엽은 두 명의 감시자를 빠르게 제압했다. 죽이지는 않고 뒷목을 눌러 기절시키는 정도로 끝냈다.

그렇게 두 명을 처리한 상엽은 얼굴을 가리고 금은방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에 문이 열렸고 상엽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강화하러 왔어요.”

금은방 주인은 상엽의 인사에 졸린 눈을 비볐다.

“빨리 오셨군요.”

뱃살이 늘어지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땅딸보였다. 그럼에도 귀여운 느낌의 얼굴이라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상엽은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해 바로 손을 내밀었다.

금은방 주인은 눈을 비비던 손을 내밀어 상점을 열었고 상엽은 중급 화이트 상점의 메뉴를 보았다.

그리고 다른 목록을 제쳐 두고 신체 강화를 확인했다.

힘.

민첩.

정신.

감각.

화이트 상점은 블랙 상점과 달리 기존에 있던 목록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감각이라는 부분이 추가되었다.

“전부 5단계까지 강화해 주세요.”

“12만 4천 코인입니다.”

“해 주세요.”

상엽은 주저하지 않고 강화를 선택했다.

확인을 받은 금은방 주인은 곧바로 강화를 시작했다.

* * *

상엽은 천진의 항구에 서 있었다.

우둑.

그가 걷던 방파제의 발밑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어이쿠. 이거 힘 조절 잘해야겠는데.”

말과 달리 그는 웃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나오는 웃음이었다.

신체 개조와 맞물린 신체 강화는 상상 이상의 결과로 나타났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걷는 힘만으로 바닥이 부서질 정도였다.

이는 블랙 유저 특유의 걸음걸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힘을 주기 때문이었다.

상엽은 파도가 부서지는 자리로 갔다.

웅장하게 밀려오는 파도가 괴수처럼 포효하며 방파제를 때리고 있었다.

상엽은 방파제의 아래로 내려가 파도 앞에 섰다. 그리고 다가오는 파도를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쾅!

폭발이 일어나며 파도가 풍선처럼 사방으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힘의 기파가 파도를 뚫고 바다 위에 잠시 동안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바다는 순간적으로 생성된 빈 공간을 다시 채우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촤앗!

하늘로 치솟았던 파도가 뒤늦게 상엽의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상엽이 보던 바다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일출이었다.

“멋지다! 정상엽!”

상엽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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