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7화 (57/300)

# 57

상엽은 손을 흔들었다.

촘촘한 회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는 관심 없다는 듯이 옆을 지나쳤다.

‘인사도 안 받아 주네.’

토라진 상엽이 입술을 삐죽였을 때, 뭔가가 그의 앞에 섰다.

유령 추종자였다.

상엽은 추종자를 보며 묘한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속으로 말하시면 됩니다.

‘쳇. 기분 좀 내려고 했더니.’

상엽의 주변으로 해초들이 물결에 흔들리며 작은 공기방울을 만들었다.

바닷속.

상엽은 그곳에서 사쿠라 길드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숨 좀 쉬자.’

상엽의 말에 유령 추종자가 먼저 수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안전합니다.

상엽은 고개만 내밀어 충분히 호흡을 하고는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도발은 충분히 해 뒀고.’

그는 김판종을 도발했지만 흥분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 자식은 별거 아냐.’

김판종에 대한 상엽의 마음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용해야 돼.’

예전의 상엽이라면 흥분해서 정면 돌파를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니까.’

그는 김판종을 그저 사쿠라의 길드원 정도로 인식했다.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감정 조절을 하게 된 것이다.

‘서열 5위까지. 그 자식들만 조심하면 돼.’

상엽이 원하는 건 개인 전투였다.

다섯 명과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그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오함마 암살자. 다시 간다.’

상엽은 늑대 인간의 모습에 오함마를 들고 바람처럼 접근하는 암살자를 상상했다.

‘뭔가 안 어울리긴 하지만…….’

그가 상상해도 이미지가 이상했다.

-주인님. 다른 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상엽의 상상은 유령 추종자의 보고로 인해 현실로 돌아왔다.

-전달하겠습니다.

상엽의 눈동자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바닷속의 풍경이 사라지고 유령 추종자의 눈을 공유했다.

‘같이 움직이고 있어.’

두 대의 승용차에서 다섯 명이 내렸다. 상엽은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정찰을 끝냈다.

‘그럼 좀 흔들어 줘야지.’

상엽은 바닷속에서 위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쾅!

한적한 도롯가를 달리던 바이크가 폭발과 함께 터져 나갔다.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는 상엽이 해머를 들고 서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들어.”

상엽은 가루가 되어 흩어진 바이크의 전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라진 시체 근처에서 유물과 유산 조각을 챙겼다.

-가까운 곳에 또 한 명 있습니다.

유령 추종자가 다음 목표를 발견하자 상엽은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

15층 건물이었지만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어디야?’

상대는 폭음을 듣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상엽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다 낮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심판.”

쿠릉!

사건 현장에 막 도착한 사쿠라 길드원의 머리 위로 지름 10미터의 거대한 사각 해머가 떨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자 상대는 놀라서 급히 몸을 날렸다.

쿠쿵!

해머는 도로를 완전히 부숴 버리며 파편을 날렸다. 그리고 이를 피한 사내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사나운 바람을 느꼈다.

쾅!

등 뒤에서 접근한 상엽은 그의 몸을 그 자리에서 터트려 버렸다.

“나 암살자 같았지?”

-훌륭하십니다.

“좀 감정을 실어서 아부해 주면 안 돼?”

상엽은 조각을 챙기고는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반응 좀 볼까?’

3분이 채 되지 않아 상엽이 우려하던 다섯 명의 전사가 도착했다. 하지만 바다에 숨은 상엽을 찾아내지 못했다.

‘스카우트가 죽었잖아.’

상엽은 사쿠라 길드원들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전멸시킨다.’

그는 다시 자리를 옮겼다.

후쿠오카에서의 암투는 사흘간 지속되었다.

그 사흘이 지났을 때, 남은 사쿠라 길드원은 단 8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상엽에게 암습을 당하거나 유인 작전에 걸려들었다.

“바다였다.”

사쿠라 길드는 사흘이 지나서야 암습의 실체를 알았다.

상엽이 바다를 이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터라 단 한 번도 뒤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바다를 향해 수십 개의 칼날 바람이 날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한 칼의 형상이 파도를 가르며 튀어 나갔다.

하지만 상엽이 바닷속으로 숨어드는 순간, 모두 목표를 잃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바닷가에 모여 있던 그들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해머가 떨어졌다.

“피해라!”

테라다의 외침에 모두 자리를 옮겼다.

쿵! 쿵! 쿵!

연속된 세 개의 심판.

그중의 하나가 한 명을 짓이겨 버렸다.

“7명 남았어!”

다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상엽이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사쿠라의 다섯 전사와 김판종, 그리고 김판종에게 불만을 품었던 야베.

사쿠라의 생존자는 이들뿐이었다.

“반드시 잡는다.”

테라다는 결국 몸을 돌렸다. 지금 당장 상엽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스킬을 가진 상엽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었다.

“대응할 수 있는 스킬을 배워야 한다.”

테라다는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고 몸을 돌렸다.

7명의 생존자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상엽은 뭍으로 올라왔다.

“나 이러다 돌고래 되겠어.”

그동안 습격으로 획득한 코인을 수영과 수중 호흡에 투자하면서 그의 스킬은 둘 다 7단계에 이르렀다.

-헤리오스의 바다의 자유: 수영

1단계-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

2단계-수영 속도가 빨라진다.

3단계-바다에서 체온이 느리게 변한다.

4단계-해류를 명확히 느끼게 된다.

5단계-부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6단계-수압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다.

7단계-수중에서의 행동이 빨라진다.

모든 단계의 특징에 따라 수영 속도는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상엽은 이제 느린 물고기와 비슷한 속도로 수영을 할 수가 있었다.

-헤리오스의 바다의 숨결: 수중 호흡

1단계-물속에서 5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2단계-물속에서 10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3단계-물속에서 15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4단계-물속에서 20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5단계-물속에서의 시야가 크게 상승한다. 수중 생물이 적개심을 가지지 않는다.

6단계-물속에서 25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7단계-물속에서 30분 동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해녀가 된 거지.”

이로 인해 다른 스킬들은 증가가 없었다.

바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큰 힘이 되었다. 변종들의 위험을 피하는 것은 물론, 어둠을 이용한 암습으로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심판 스킬이 생긴 터라 그 효과는 더욱 배가 되었다. 상엽이 두 스킬을 계속 강화한 것은 앞으로도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녀석들을 떼어 놓진 못했네.”

결과적으로 사쿠라 길드를 괴멸 직전까지 몰았지만 상엽의 진짜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사쿠라 길드에서 가장 강한 7명만 남은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제 와서 상엽에게 기회를 줄 리가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상엽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다.

“물속에 들어가서 생각하자.”

최근 그에게 생긴 버릇이었다.

몸을 자극하는 압력과 부력이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고, 차분하게 생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는 바로 물속으로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어.’

상엽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천천히 다시 되짚었다.

‘어차피 서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는 상황…….’

현재 상황을 판단하던 상엽은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

‘아니지. 난 이대로 끝내도 손해 볼 게 없지.’

물론 상엽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는데.’

철거반에서 건물 내부 철거를 할 때였다.

공사가 막바지에 달했을 때, 건물주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공사비 협상을 요구했다.

소장이 이를 거절하자 갑자기 소방 점검이 있다며 공사가 중단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철거반은 큰 곤욕을 치렀다.

-싫으면 중단하고 나가.

건물주는 그 말을 하며 버텼다.

소방 점검은 건물주가 인맥을 통해 만들어 낸 사건이었고 결국 철거반은 사흘이나 공사를 하지 못했다.

다음 일정이 잡혀 있는 철거반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이 이어졌고 결국에는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끝내야 하는 쪽과 여유가 있는 쪽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공사비를 깎아 주고 마무리했지.”

상엽은 욕심으로 가득한 건물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해 볼까?”

결정을 내린 상엽은 물고기처럼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테라다는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받았다.

-정상엽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상엽은 한국의 부산항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사진이 워낙 명확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행 기차를 탔습니다.

문제는 이 정보는 테라다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상엽은 일본에 있는 모든 길드의 주목을 받았다. 당연히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은 모든 길드에게 보고가 되었다.

쾅!

스카우트에게 있었던 스킬에 이어 수영 스킬까지 배운 테라다는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설마 이대로 돌아간다는 건가?”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단 7명밖에 남지 않은 사쿠라 길드를 다른 길드들이 가만히 둘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지금까지는 상엽이 있어서 특별히 나서지 않았지만 만약 전쟁이 끝났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7인 길드가 규슈를 모두 관리할 수는 없다.

생각하지 못한 타이밍에 전쟁에 대한 뒤처리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상엽과의 전쟁이 끝났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영악한 놈!”

항상 냉정하던 테라다의 표정이 무너졌다.

“일령회를 소집한다.”

일령회.

규슈 지방에서 사쿠라 길드와 선이 닿은 정치인들의 모임이었다.

전쟁을 하던 테라다는 당장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닷새가 흘렀다.

상엽은 여전히 한국에 있었고 이 정보는 모든 일본 길드에 전달되었다.

설악산 사냥터에서 홀로 사냥을 했기에 이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용하던 길드들은 닷새가 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있는 길드는 제1 블랙 길드 데스문이었다.

데스문은 노골적으로 규슈의 정치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테라다는 이를 알면서도 무력 충돌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 블랙 길드까지 규슈로 진입하려 했고, 이것은 제1 화이트 길드 료사기리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블랙 길드의 영역 확장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에겐 명분이 충분했고 미리 준비를 한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소수의 사쿠라 길드는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령회를 시작으로 료사기리와도 접촉을 했고 결국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통합을 제안한다.

료사기리는 협상 조건으로 통합을 걸었다. 대신 후쿠오카에 대한 모든 권한을 테라다에게 남겨주기로 했다.

사실 통합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다.

-흡수.

7명의 생존자가 료사기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통합은 그냥 테라다의 쉬운 결정을 위해 선택한 단어일 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세부 사항을 조율한다.

모든 칼자루는 료사기리가 쥐고 있었다.

늦은 밤.

테라다는 고층 아파트 서재에서 홀로 술잔을 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쉬기로 한 것이다.

‘열흘인가?’

상엽이 사라진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동안 사쿠라 길드는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겨우 이거 하나 때문에.”

책상 위에는 유물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샐러맨더의 신전 조각.

테라다가 간절히 원하는 신전의 조각이었다.

이미 네 조각이 있었고, 남은 두 조각 중의 하나를 김판종이 가지고 있었다.

한국 지부라는 원대한 계획도 있었지만 신전 조각 역시 김판종을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챙!

테라다는 거칠게 책상을 쓸었고 술잔이 벽장에 부딪치며 깨졌다.

그때, 그의 집무실 문이 열렸다.

테라다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에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술친구는 저승에 많을 거야. 야베라는 녀석은 방금 갔어.”

정상엽.

한국에 있던 그가 테라다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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