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오전 7시.
오상식은 입국 심사대로 들어서지 않았다.
‘위험하다.’
사쿠라 길드의 본거지인 만큼 모든 부분에 감시가 붙어 있었다.
입국을 심사하는 자리에 평소에 보이지 않던 한 명이 추가로 있었고, 평소보다 심사 시간도 길었다.
후쿠오카는 사쿠라 길드가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었고 공권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내 존재를 정확히는 모를 텐데.’
그들이 무엇을 감시하는지는 오상식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냥 들어서기에는 위험이 컸다.
결국 오상식은 가까운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상엽에게 문자를 보냈다.
-공항에 감시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경로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는 문자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수화물 창고로 가자.’
그가 판단하는 가장 좋은 루트였다. 결정을 내린 그는 곧바로 화장실을 나섰다.
그런데 화장실 입구를 세 명의 사내가 막고 있었다.
“신분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경찰복을 입은 대머리 사내가 말했다. 대머리 사내의 뒤에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10대 후반 소년 한 명이 있었다.
오상식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트레저 헌터.’
트레저 헌터 스킬 중에는 유물 보관함을 찾아내는 자가 있었다.
상대는 유물 보관함으로 인해 오상식의 존재를 알아냈다.
‘들켰나?’
오상식은 머리를 굴리면서도 정중하게 여권을 건넸다.
대머리 경찰은 오상식의 여권을 보더니 옆에 있는 다른 동료를 보았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상식을 보며 말했다.
“잠시 같이 가시겠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오상식은 그 말을 하며 주머니에 있는 전화기를 조작했다.
“부당한 조사는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소란스러워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절 어디로 데려가실 겁니까? 장소를 알아야 동행하겠습니다.”
“공항 내 경찰 조사실입니다.”
오상식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경찰들을 따라갔다.
-공항 내 경찰 조사실.
상엽은 그 말을 되뇌었다.
오상식은 상엽에게 전화를 걸었고 일부러 장소를 남겼다.
‘구해야 돼.’
브로커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현재 상황은 달랐다.
사쿠라 길드는 이미 그런 피해를 무시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
“유령아, 가자.”
상엽은 지체 없이 공항을 향해 뛰었다.
상엽은 후쿠오카 국제공항을 들어섰다.
공항의 정식 입구가 아니라 바다를 통한 활주로였다.
상엽은 몸을 숨길 곳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활주로를 선택했다.
‘시간이 별로 없을 거야.’
처음에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오상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이상, 사쿠라 길드원들이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전에 빠져나간다.’
그렇지만 상황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활주로를 달리던 그는 어느 순간 웃음을 지었다.
“역시 똑똑한 형이야.”
상엽의 헌터 아이에 갑자기 200화이트 코인이 잡혔다.
누구의 코인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곳에 갓코인 유저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유령아, 수색해.”
상엽은 활주로를 질주하며 유령 추종자를 먼저 보냈다.
유령 추종자는 모든 벽을 통과해서 상엽이 원하는 지점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의 상황을 상엽에게 보여 주었다.
좁은 취조실이었고 오상식은 손발이 묶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갓코인 유저로 보이는 세 명의 사내가 있었다.
“주변 수색해.”
상엽은 이동 경로를 확인하며 속도를 높였다.
* * *
쾅!
오상식 앞에 놓여 있던 책상이 둘로 쪼개졌다.
세 명의 사내는 오상식이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상식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널 죽여서 확인하는 수밖에.”
대머리 경찰은 경찰이 아니었다. 갓코인 유저였고 사쿠라 길드의 예비 멤버였다.
여기서 공을 세우면 사쿠라 길드의 정식 멤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상엽의 전담 브로커가 일본으로 출발했다.
이 정보는 웃기게도 중국에서 흘러나왔다.
‘경솔했다.’
왕수의 브로커를 만나고 너무 급하게 움직인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파이어스의 망치라는 물건이 정상엽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그나마 신분을 바꿔서 곧바로 잡히지 않았을 뿐,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협조하면 살려 주지.”
오상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냥은 안 되겠군.”
대머리 사내가 무기를 꺼냈다.
끝이 휘어진 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정상엽이 나타났습니다!”
그 한마디로 잠시 시간이 정지됐다.
“어디야?”
“화, 활주로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 보고는 다시 한번 모든 이의 사고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은 아니었다.
오상식은 눈을 뜨며 웃었다.
그 순간, 오상식 앞에 기괴한 모습의 유령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오상식을 보며 외쳤다.
-엎드려!
귀곡성 같은 명령에 오상식은 몸을 묶던 사슬을 끊고 바닥에 엎드렸다.
콰쾅!
취조실 한쪽 벽이 가루로 부서지며 엄청난 충격파를 퍼부었다.
그리고 상엽이 나타났다.
“누가 우리 형 건드리래? 얼마나 좋은 형인데.”
충격파에 멍해 있던 인물들은 방을 가득 채운 먼지로 인해 상엽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상엽은 유령 추종자를 통해 상대를 정확히 보았다.
쾅! 쾅! 쾅!
세 번의 폭음으로 세 명이 빛으로 흩어졌다.
“형, 가자.”
상엽은 마지막으로 오상식의 손을 잡았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나만큼 빨리 갈 수는 없잖아.”
상엽은 오상식을 어깨에 걸쳤다.
“남자는 처음이야.”
“저도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우린 서로 처음을 공유하는 건가?”
“그 말은 거부하겠습니다.”
“쳇, 낭만 없는 형이야.”
상엽은 자신이 들어왔던 벽을 출구 삼아 취조실을 나왔다.
상엽은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이렇게 빠르다니.’
오상식은 상엽의 속도에 놀라고 있었다.
‘힘이 특기라고 하더니, 이젠 아니구나.’
그는 상엽에 대해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도 상엽은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결국 그들은 사쿠라 길드의 감시를 피해 인적이 드문 해안가에 닿았다.
상엽이 감시를 피하기 위해 수영을 병행했기에 그들은 안전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휴, 아무리 신의 오함마라지만 이렇게 힘들다니.”
“훌륭히 해내셨습니다.”
오상식은 상엽에게 양피지 한 장을 건넸다.
“파이어스의 망치입니다.”
파이어스의 망치 마지막 조각이었다.
“나 눈물 날 거 같아.”
상엽은 마지막 조각을 받으며 보관하고 있던 다른 조각들을 꺼냈다.
“바로 완성하시지요.”
오상식의 말대로 상엽은 파이어스의 망치를 완성시켰다.
“드디어…….”
상엽이 기본 무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파이어스의 망치
집행관 파이어스의 사형 망치. 특수 기술로 ‘집행관의 심판’이 있다.
스킬 집행관의 심판.
원하는 장소에 망치를 떨어트린다.
“집행관?”
“파이어스는 주요 죄수들의 사형을 담당한 신이었습니다. 그가 사형을 할 때 쓰던 무기가 파이어스의 망치입니다.”
“심판 스킬이라.”
상엽은 파이어스의 망치를 다시 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완성된 망치와는 외형이 달랐다.
화려하던 문양은 아직 회색으로 흔적만 겨우 보였고, 손잡이 부분의 붉은 보석은 빛을 반사하지도 못했다.
“강화를 하면 달라지는 건가?”
“그런 종류가 있습니다. 외형이 변하는 무구들은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강화 단계도 높을 것입니다.”
“일단 강화부터 해야겠어.”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상식은 조금 전까지의 위기를 까맣게 잊었는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상엽이 가진 스무 개의 유산 조각을 챙기고는 작별을 고했다.
“혼자 괜찮겠어?”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있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알았어, 형.”
“조심하시길. 사쿠라 길드가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조심은 그 녀석들이 해야지.”
상엽의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며 오상식도 웃었다.
“한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오상식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당당히 그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상엽은 레나를 부르기 전에 심판 스킬을 확인했다.
“심판.”
그는 바다를 보며 심판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20미터 높이의 공중에 지름 5미터의 거대한 망치가 소환되더니 바다 위로 떨어졌다
촤앗!
망치의 충격파로 인해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엄청난 무게와 속도로 인해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폭격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죽이는데?”
상엽은 스킬이 마음에 들었다.
“당장 강화하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레나를 불렀다.
파이어스의 망치 최고 강화 단계는 20단계였다.
외형이 변하는 유산들의 특징이라고 했고, 그만큼 위력을 더 증가시킬 수 있었다.
시작 코인은 똑같이 1만 코인이었지만 최종 단계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코인이 필요했다.
“느낌이 좋아졌어.”
상엽은 오함마의 손잡이 부분을 움켜쥐었다. 마치 맞춤 제작이 된 것처럼 손가락과 손바닥이 감기는 느낌이었다.
“휘두르면 무게가 증가하는 거 같은데.”
파이어스의 망치는 해머 내부에 무거운 추가 있는 것처럼 휘두르면 위력이 증가했다.
평소에는 칼보다 가벼웠고 충격이 터지는 순간에는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 순간이 워낙 짧아서 다음 동작에 무리는 없었다.
“역시 신의 오함마.”
상엽은 외형이 변한 파이어스의 망치를 다시 보았다.
손바닥이 닿는 붉은 보석이 희미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고, 손잡이에 각인된 문양은 은빛을 담기 시작했다.
“있어 보여. 그게 중요한 거야.”
상엽은 해머를 어깨에 걸쳤다. 그의 의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져서 묵직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심판.”
그는 갑자기 바다를 향해 심판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지름 10미터의 망치 헤드가 굉음을 내며 바다를 덮쳤다.
강화를 통해 떨어지는 크기와 속도가 증가한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망치는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며 소멸했고, 상엽은 튀어 오른 물보라를 비처럼 맞으며 서 있었다.
“시원하다!”
그는 신의 무기를 들고 몸을 돌렸다.
세 개의 유산.
중급 블랙 상점의 신체 개조.
스킬 강화.
상엽이 일본에 와서 해낸 일들이다.
처음 밀항을 할 때의 상엽과 현재의 상엽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사쿠라 길드에서는 이를 인정하며 최고의 다섯 전사들이 협공을 준비했지만,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녀석에게…….’
김판종은 이를 갈았다.
처음 상엽의 전투 화면을 봤을 때, 김판종은 개인 전투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신중한 선택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결국 그가 이끌던 길드는 와해되었고, 자신도 길드를 옮겨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처리한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 녀석을 버려서라도.’
신의 유산 말리안의 애완촉수.
-말리안의 몸에 기생하는 촉수.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다른 이의 몸으로 옮겨 갈 수 있다.
말리안의 촉수는 기생수로서 주인을 바꾸는 순간, 몸을 마비시키는 특징이 있었다.
촉수가 몸에 자리를 잡는 과정이었다.
김판종은 이를 이용해 상엽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후쿠오카 거리를 돌아다녔다.
“와라. 내가 반드시 잡는다.”
그는 사쿠라 길드 전원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언제든 다섯 전사가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는 가능하다면 혼자 끝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후쿠오카의 바닷가를 걸어갈 때였다.
-2분 거리 대기 중.
그는 이어폰을 통해 다섯 전사와의 거리를 전달받았다.
‘반드시 잡는다.’
그렇게 후쿠오카의 선박들이 정박되어 있는 방파제를 지날 때였다.
갑작스레 그의 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희미하게 형체를 갖춘 유령이었다.
유령을 보며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김판종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끼아아!
유령은 김판종의 주변을 빠르게 돌며 귀곡성을 토해 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 흔들릴 김판종은 아니었다.
김판종이 위치를 잡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유령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유령은 연기로 흩어지더니 3미터 뒤에서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유령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건 상엽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유령을 통해 상엽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개새끼. 곧 죽이러 간다.”
유령은 그 말을 남기더니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