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5화 (55/300)

# 55

세 명의 감시자들은 사쿠라의 길드원들이었다.

그들은 화이트 길드 료사기리의 눈치를 보느라 오사카에서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처리하겠다.

료사기리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상엽에겐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그들도 무라카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명분 때문에 사쿠라는 상엽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다.

-료사기리는 사쿠라가 약해지길 바라고 있다.

결국에는 사쿠라가 상엽을 처리할 것이라 믿었고, 그 과정에서 사쿠라가 큰 피해를 입으면 관리 영역에 변화를 줄 생각이었다.

그들도 사쿠라의 완전 몰락은 바라지 않았다. 다만 이번 기회에 사쿠라 길드를 하위 조직으로 만드는 계획까지 있었다.

-료사기리는 블랙 길드와의 싸움에 자신감이 생겼다.

화이트 길드 료사기리.

그들은 사쿠라가 약해져도 블랙 길드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블랙 길드를 견제하며 사쿠라와 상엽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사정들로 인해 상엽은 사쿠라의 방해 없이 무라카와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멀어지고 있습니다.

세 명의 사쿠라 길드원들은 최대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은 눈이 아니라 망원경을 통해 상엽을 살폈다.

그중의 한 명은 헌터 아이를 마스터해서 상엽의 그레이 코인을 분명히 보고 있었다.

그는 망원경 없이도 상엽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었다.

“계속 거리를 유지한다.”

사쿠라 길드의 본거지와 히로시마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다만 이곳은 료사기리와 사쿠라의 중립 지역이라 직접 활동하는 게 가능했다.

-히로시마에서 끝낸다.

사쿠라 길드는 상엽과의 싸움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전면전으로 상대한다.

그것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에 전투 능력 상위 10명의 길드원들이 히로시마로 오고 있었다. 이는 사쿠라의 전력 대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정찰조 3명은 상엽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는 역할만 맡았다.

“2시간 남았다.”

길드원들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그들은 세 방위에서 상엽을 주시하며 언제든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도주에는 자신이 있는 자들만 선별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들의 작전에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어?”

옥상 위에 있던 상엽이 갑자기 움직였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감시자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사쿠라 길드의 가장 큰 오산이 바로 이것이었다.

-오사카에서의 상엽의 성장.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누구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상엽이 향하는 곳은 10단계 헌터 아이를 가진 사내였다.

30대 후반으로 사쿠라 길드에서는 한 명밖에 없는 스카우트였다.

전투 능력도 만만치 않아서 꽤나 소중한 인재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뛰어난 전투 능력도 일반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이게 무슨…….’

그는 상엽이 움직이는 순간부터 등을 보이며 달아났다. 어설프게 벗어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엽은 건물을 몇 개나 뛰어넘고 눈앞에 있는 걸 불도저처럼 부숴 버리며 최단 거리로 달려왔다.

스카우트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빌딩 유리창을 깨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업무 중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스카우트는 그 틈에 복도로 나서려 했다.

건물 안이라면 어떻게든 따돌릴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건물 복도로 나선 그가 조금은 안심할 때였다.

쾅!

천장이 무너지며 돌이 쏟아졌다. 그리고 돌 틈에 사람 한 명이 섞여 있었다.

“술래잡기 끝.”

결국 스카우트는 또 한 번 도약을 했지만 상엽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수고했어.”

-주인님께 충성을!

상엽은 추격의 핵심이었던 유령 추종자를 칭찬하며 스카우트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아직 죽지 마. 넌 유령이와 좀 놀아야 하니까.”

그는 기절한 스카우트를 어깨에 메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 시간 뒤.

상엽은 스카우트의 목을 꺾었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아냈기 때문이다.

“유령아.”

-네. 주인님.

“객관적으로 내가 그 녀석들과 싸워서 전멸시킬 수 있을까?”

-주인님은 완벽합니다.

“아니. 아부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주인님은 절대 지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이제 이런 거 안 물어볼게.”

상엽은 스카우트의 기억을 통해 전력을 파악했다.

분명 현재의 자신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그렇지만 상대는 사쿠라 길드였다.

그리고 그가 우려하는 다섯 전사는 건재했다.

“객기 부릴 때가 아니야.”

상엽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전에 못했던 거 하자.”

그는 결정을 내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상식이 형, 후쿠오카에서 만나자.”

그는 오상식과의 약속 장소를 변경했다.

후쿠오카.

사쿠라 길드의 본진이 있는 곳이었다.

늦은 밤.

상엽은 얼굴만 내놓고 누워 있던 모래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사용 트럭이었다.

“아으, 잘 잤다.”

그는 트럭 기사에게 약속했던 100만 엔을 건넸다.

“비밀만 지켜요.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트럭 기사가 인사를 하며 떠났고 상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후쿠오카 입성.”

그는 감시의 눈을 피해 후쿠오카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사쿠라 길드의 본진을 향해 달렸다.

“분명해. 난 똑똑해졌어.”

스스로의 작전에 만족하며 그는 후쿠오카 외곽에 있는 놀이동산에 도착했다.

사쿠라 길드의 본진은 건물이 아니라 영업을 중단한 놀이동산이었다.

변종에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고 복구를 했지만 영업을 재개하진 않았다.

상엽은 이미 이곳의 위치와 주요 지점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조금 헷갈리지만 뭐.”

그는 거침없이 놀이동산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 원래 고객 센터로 사용하던 건물로 뛰어갔다.

‘일반인은 없는 곳.’

쾅!

“공사 시작.”

단 한 방에 건물 전체 벽에 금이 갔다. 그리고 또 한 번 타격이 이루어졌을 때,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기둥과 이에 연결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루로 흩어졌고 그 사이에서 뭔가가 튀어 올랐다.

상엽은 거침없이 그들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다른 녀석들 찾아봐.”

상엽은 건물에 있던 다섯 명을 모두 처리했다. 사무직과 연락책들이라 전투에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도주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물에 있던 자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신체 능력 차이가 너무 컸다.

무라카를 쫓지 못했던 상엽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상엽의 속도가 빛처럼 빠르게 느껴졌다.

결국 도주한 세 명도 처리되었다.

“더 있을 텐데.”

유령 추종자는 최대 거리로 올라가서 정찰을 시작했다.

-이미 도주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일 가까운 녀석 찾아.”

상엽은 집요했다. 추격이 가능한 자를 찾아 뒤쫓았고 결국 3명을 추가로 처리했다.

총 11명.

“부족해.”

상엽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헌터 아이에 뭔가가 잡혔다.

‘한 놈이 접근하는데.’

꽤 용기를 가진 자가 있었다. 다른 이들은 도주했지만 그는 복수를 선택했다.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한 것이다.

‘어서 와. 기다려 줄 테니까.’

상엽은 일부러 그가 접근하길 기다렸다. 그렇게 200미터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가자.’

상엽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 갑자기 드바란의 투구가 튀어나왔다.

‘응?’

공격에 자동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 시원한 가려움이 생겼다.

드바란의 투구와 테리아의 갑옷이 동시에 반응을 한 것이다.

‘정신 공격?’

상대는 상엽의 눈을 마주 보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기를 놓고 투항한다. 투항한다. 투항한다.”

스킬 신의 명령.

일종의 최면술이었다.

상대는 상엽이 정신 공격에 약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반격을 선택했다.

“너 뭐하냐?”

상엽은 사내가 원하는 대로 무기를 내려놓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투항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됐네.”

퍽!

상엽의 주먹이 사내의 뒷목을 때렸다.

유령 추종자는 능숙한 심문관이었다. 다만 이를 위해 상엽은 잔인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살려는 의지를 꺾기 위해 죽기 직전의 상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대가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유령 추종자가 기억에 있는 모든 걸 읽어 냈다.

“이건 쓸 만한데.”

상엽은 사쿠라 길드의 비상 매뉴얼을 알아냈다.

“다음 장소로 가자.”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 통신 장비가 마련된 대피소가 있었다.

상엽은 또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변종 늑대는 한번 목표를 물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다.

자신이 죽든, 목표물이 죽든. 둘 중의 하나였다.

“늑대…….”

한 사내가 죽는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

“내 가면이 그렇게 인상적이야?”

“지독한 늑대…….”

사쿠라 길드원은 그렇게 느꼈다.

적당한 것은 없었다.

12명을 죽이고도 상엽은 끝까지 추격을 계속했고 결국 열일곱 명을 처리했다.

그의 습격은 해가 뜨고서야 멈췄고 상엽은 전리품을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

사쿠라 전투 요원들은 무너진 놀이동산에서 괴성을 질렀다.

그들이 떠난 사이에 본거지는 완전히 무너졌고,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인원들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빠른 도주로 살아남은 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밤새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조센징은 한 명도 안 죽었군!”

울분을 토하던 길드원 한 명이 이를 갈며 외쳤다.

실제로 김판종은 전투 요원으로 함께 움직여서 무사했고, 놀이동산에 있던 4명도 무사히 도주했다.

“야베! 말조심해라!”

김판종이 참지 못하고 야베라는 덩치 큰 사내를 향해 외쳤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빌어먹을 조센징!”

김판종의 찢어진 눈이 매섭게 변하며 그의 정장 안에서 촉수가 튀어나왔다.

“모두 그만.”

크지 않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로 야베와 김판종의 갈등은 끝났다.

사쿠라 길드장 테라다.

그의 말 한마디는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

190에 이르는 신장에 근육질로 다져진 몸매에 압도적인 눈빛을 가진 사내였다.

4단계 후반 유저.

그는 사쿠라 길드의 자랑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자를 잡는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른 의견 있나?”

테라다는 상황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동료들의 한을 푸는 가장 빠른 방법도 같다. 불만은 그 뒤에 들어주겠다.”

“죄송합니다.”

야베의 사과에 이어 김판종도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찾아라.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사쿠라 길드원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런데 김판종은 명령을 따르는 대신 테라다에게 다가갔다.

“길드장님.”

“할 말이 있나?”

“제가 유인하겠습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은 김판종이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끝이다.’

설사 상엽을 잡는다고 해도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김판종은 직접 뭔가를 해야 그 후에도 힘을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험한 자다.”

“알고 있습니다.”

테라다는 무심한 눈으로 김판종을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겠다면 우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테라다의 뒤로 네 명의 사내가 함께 있었다.

사쿠라의 다섯 전사들.

길드의 태생부터 함께한 최강의 전사들이었다.

“얼마든지 걸겠습니다.”

김판종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간.

상엽은 히로시마 공항과 가까운 건물 옥상에 머물고 있었다.

“자, 빨리 와라.”

그는 오상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화 비용도 충분히 모았어.”

열일곱 명을 처리한 그는 유물을 전부 흡수하며 32만 코인을 모았다.

처리한 숫자에 비해 그렇게 많은 코인은 아니었지만 유산 5단계 강화에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제 파이어스의 망치가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제발 무사히 와라. 진짜 힘들었다.”

파이어스의 망치를 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때, 상엽의 헌터 아이에 화이트 유저의 존재가 잡혔다.

“유령아, 알아봐.”

어느새 이름이 유령이 되어 버린 추종자가 상엽의 명령에 따랐다.

‘신기하단 말이야.’

최근 들어 유령 추종자는 정보 전달 방식을 간단하게 바꿨다.

상엽이 전투 중이 아닐 경우 자신이 보고 있는 시야를 직접 보여 주었다.

눈이 연결이 되는 것이다.

정확히는 영혼이 연결되어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지만 상엽은 실시간으로 눈과 귀를 빌릴 수 있었다.

이 역시 아오나의 조각을 추가로 습득하면서 가능해진 능력이었다.

그런데 무심코 시야를 공유하던 상엽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저 자식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인물이 보였다.

“김판종!”

상엽의 심장에서 불길이 치솟는 듯했다. 그런데 그 불길은 곧 사라졌다.

그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전투는 피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오상식의 문자였다.

“김판종, 너 운 좋았다. 일단 신의 오함마부터 찾고 보자.”

이제 어차피 같은 적이었다. 실제로 상엽은 김판종을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신의 오함마로 심판해 주지.”

상엽은 김판종의 유인 작전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