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4화 (54/300)

# 54

오상식은 오사카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는 위조된 신분으로 일본에 입국했고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역시 있다.’

갓코인 브로커 오상식.

상엽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보통 갓코인 유저들은 브로커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브로커를 건드린 갓코인 유저는 금방 소문이 나면서 더 이상 다크 마켓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브로커들이 거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절대적인 규칙이 아니었다.

-그걸 감안하고도 이익이 크다면?

브로커는 결코 안전한 직업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식을 사고 은신이나 도주 스킬을 주로 강화하기 때문에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브로커로서의 업무 능력 외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생존 능력이었다.

오상식은 오사카 공항을 빠져나오다가 기둥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몸의 근육이 뒤틀렸다.

그리고 기둥을 지나온 그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50대 중반의 주름진 얼굴이 되었고 옷도 남색 정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의 거울

자신이 기억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1단계가 3만 코인인 스킬이었다.

오상식은 이를 5단계까지 올렸고 5명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오상식은 택시 승강장으로 이동하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안전해.’

이를 확인하고서야 그는 택시에 올랐다.

택시 운전사까지 이상 없음을 확인한 오상식은 뒷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 화면에 그동안 상엽에게 받은 물건과 거래 내역이 나와 있었다.

‘남은 유물 조각은 3개, 유산 조각은 2개.’

그동안 받은 물품에 비해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을 처분한 것이다.

‘지금은 그래야 할 시기니까.’

오상식은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서 당장 상엽에게 필요한 거래를 했다.

‘그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다.’

이를 알게 된 오상식은 모든 업무를 상엽에게 집중했다.

‘하늘을 꿈꾸는 자에겐 날개를 달아 줘야지.’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같은 시간.

상엽은 도톤보리 근처의 고급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아이리가 함께였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침대에서 흘린 땀을 비누로 씻어 내고 있었다.

“저도 빨리 신체 강화를 해야겠어요.”

“왜?”

“당신을 위해서요.”

“지금도 훌륭해.”

아이리는 샤워기가 쏟아 내는 물줄기 안에서 상엽을 끌어안았다.

“이러면 참을 수가 없는데.”

상엽은 목적을 잃고 다시 한번 그녀를 안았다.

오상식과 약속 장소를 정한 상엽은 옷을 챙겨 입고 아이리를 보았다.

“걱정 마요. 제가 가질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아니까.”

“내가 그렇게 비싸 보여?”

“좋은 남자가 생기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거예요. 그런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언제든 오세요.”

아이리는 상엽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위로가 되는 여자야.’

늑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상엽은 아이리를 다시 찾았다.

함께 잠을 자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걸로 시작해.

아이리에게 유물 조각 하나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5천 코인짜리 유물이었고 아이리가 자신을 도와준 보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분위기에 취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상엽도 조금은 쉴 시간이 필요했다.

“명심하세요. 남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만이에요.”

아이리는 그러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상엽의 전화기에 남겨 놓았다.

“당신과 만난 건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에요.”

“나도 그래.”

상엽은 아이리와 다시 입맞춤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다 꼭 해야 하는 말이 떠올랐다.

“또 보자.”

곧 갓코인 유저가 될 아이리에게 하는 말이었다.

오상식과 상엽이 만난 곳은 오사카의 시내의 대형 쇼핑몰이었다.

상엽이 도착했을 때, 오상식은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철판 위에 구워지는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있었다.

“맛있습니다. 같이 드시죠.”

“일본에서 보니까 이상하게 반갑네.”

상엽은 오상식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오상식은 곧바로 상엽에게 양피지 두 묶음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상엽 씨에게 받은 유물과 유산을 정리해서 한 가지 유산을 완성했습니다.”

“진짜야?”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손해를 보는 장사였으니까요.”

상엽은 오상식의 능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테리아의 은총. 뛰어난 치유 능력을 가진 갑옷입니다. 특수 기술도 쓸 만하실 겁니다.”

오상식은 자세한 내용을 상엽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했다.

테리아의 은총.

-치유의 신 테리아가 전사 바에트에게 선물한 갑옷. 뛰어난 자가 재생 능력이 있으며 특수 기술로 ‘회생’이 있다.

-스킬 회생

1년에 한 번 모든 상처를 완벽히 회복하게 된다.

“1년에 한 번?”

“강화를 하면 시간이 줄어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상엽은 덤덤히 대답하는 오상식을 보며 물었다.

“이거 구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제 직업입니다. 쉬운 일만 하는 건 전문가가 아닙니다.”

“형, 너무 멋있게 말하지 마. 사랑하고 싶어지잖아.”

“말씀드렸다시피 많은 손해를 보고 완성했습니다. 앞으로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실제로 테리아의 은총은 많은 유저들이 노리는 물품이었다.

뛰어난 생존 능력으로 인해 브로커들조차도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것을 오상식이 모든 힘을 쏟아부어 완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다섯 개 나라를 직접 다녀왔다.

“그리고 이건 활동비입니다.”

오상식은 상엽에게 전 세계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건넸다.

“현재까지 정산된 30억입니다.”

“30억?”

“주신 물품에 비하면 많은 돈이 아닙니다.”

상엽은 하마터면 오상식을 껴안을 뻔했다.

“나 그냥 형 사랑할래.”

상엽이 어떤 말을 하든 오상식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어? 알았어.”

상엽은 유산 보관함에서 모든 조각을 꺼내 오상식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모은 유산 조각만 30개가 넘었고, 유물 조각은 오상식이 미리 언급한 다섯 개만 넘겨주었다.

그중에는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도 있었다.

“전 바로 중국으로 가서 왕수를 만나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

“한국에 오시면 길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알았어.”

오상식은 테이블 위에 돈을 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상엽이 얼른 그의 돈을 들어 돌려주었다.

“밥은 내가 살게.”

“괜찮습니다.”

“이거 써 보고 싶어서 그래.”

상엽이 카드를 들어 보였다. 지금까지 항상 현금으로만 결제를 했기에 카드를 써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가, 매정한 형. 하지만 사랑해.”

오상식은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식당을 떠났다.

오상식과 헤어진 상엽은 쇼핑몰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주 이용하는 장소가 옥상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흡수.’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었던 유물 조각을 전부 흡수했다.

본래 무라카가 가진 것부터 치호의 유물 조각까지 흡수하자 코인은 35만 코인이 되었다.

‘딱 좋네.’

상엽은 지체 없이 레나를 소환해서 테리아의 은총을 5단계까지 강화했다.

총 31만 코인이 들었고, 나머지 4만 코인은 남겨 두었다.

“두 번째 유산이라니 빠르네.”

“세 번째도 구할 수 있을 거 같아.”

“손에 쥐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마.”

“안심해도 될 사람이 움직이고 있어.”

레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많이 성장했네. 처음에는 바보처럼 무모한 짓만 하더니.”

“그거 놀리는 거지?”

“아니, 칭찬하는 거야. 이젠 인간관계도 넓어졌고, 전투 능력도 강해졌고. 솔직히 훌륭해.”

상엽은 레나의 진심 어린 칭찬이 낯설었다.

“그냥 평소처럼 비난해.”

“난 솔직할 뿐이야.”

레나는 상엽을 살짝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안심하지 마. 성장할수록 위험해지니까. 그러니까 만족하지 말고 성장해. 당장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잖아?”

“이제 좀 너답네. 역시 매력적이야.”

상엽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입을 맞췄다.

* * *

테리아의 은총.

모든 유산은 강화를 하면 스킬도 함께 강화가 되는 방식이었다.

스킬 회생.

본래 1년에 한 번이던 시간제한이 5단계가 되자 50일로 줄어들었다.

50일에 한 번은 죽지 않는 한, 완벽한 몸으로 회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테리아의 은총이 가진 기본 재생 능력도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테리아의 은총이 5단계가 되자 상엽은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가려운 곳을 긁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지속되다가 서서히 사라졌고 그때부터는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상처뿐만 아니라 피로도 회복이 되는 것이다.

갑옷이 가지는 기본 방어력 역시 뛰어난 편이었다.

그의 약점이었던 방어 능력이 두 개의 유산으로 인해 훌륭히 보완이 되었고, 상황에 따라 변수를 만들 스킬 역시 추가로 얻게 됐다.

‘화이트 상점에 갈 수 있으면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비밀을 지키느라 중급 화이트 상점에 가지 못한다는 부분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상엽은 도톤보리 식스헤븐 앞에서 바이크에 올랐다.

그가 바이크에 오르는 동안, 곁에 있는 사내 한 명은 마치 주인을 보시는 노예처럼 허리를 굽히며 따라다녔다.

“감사합니다, 보스.”

“보스는 지랄.”

허리를 숙이는 사내는 심부름센터의 대장 와타나베였다.

“전에 있던 놈들 절반만 먹어. 절대 장사 방해하지 말고.”

상엽은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도 좋다고 했다.

와타나베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홀로 무라카 일당을 전멸시킨 상엽이 있는 한, 거대 야쿠자들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 말 잊지 마.”

상엽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너희들이 위험해도 못 도와줘.

혹시나 다른 갓코인 집단에서 도톤보리를 이용해 상엽을 유인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와타나베는 도톤보리를 원했다.

“아이리 잘 지켜.”

상엽은 그 말을 남기며 식스헤븐의 입구를 보았다. 아이리는 슬픈 표정으로 상엽을 보고 있었다.

“또 보자.”

“네, 꼭 다시 봐요.”

상엽은 환한 웃음을 남기고 오사카를 떠났다.

“자, 다시 전쟁 시작.”

그가 향하는 곳은 사쿠라 길드가 있는 규슈 지역이었다.

* * *

먼 거리를 이동한 상엽은 다음 날 오후에 히로시마에 닿았다.

배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바이크를 이용하다 보니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아직 하루를 더 가야 규슈에 갈 수 있었지만 상엽은 히로시마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했다.

-내일 히로시마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파이어스의 조각을 입수했습니다.

오상식은 무사히 조각 교환에 성공했다. 파이어스의 망치 조각이 완성된 것이다.

오상식은 위험을 감수하며 직접 히로시마에 오기로 했다.

덕분에 상엽이 그토록 원하던 결과물을 내일이면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설렘과 동시에 아쉬움도 있었다.

‘강화 비용이 부족해.’

드바란의 투구와 테리아의 은총은 모두 5단계로 강화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강화를 하지 않았을 때와 강화 후의 능력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현재 상엽에게 남은 코인은 4만 코인이었고 이걸로는 3단계 강화도 할 수 없었다.

“하루 만에 몇 만 코인을 사냥할 수도 없고.”

일본 사냥터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 터라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무리하지 말자. 그래도 2단계까지는 강화할 수 있으니까.”

상엽은 바이크를 히로시마 경계선 안쪽에 주차시키고 도심으로 들어갔다.

히로시마는 한국에 있는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주인님.

상엽이 식당가로 들어섰을 때였다.

유령 추종자의 목소리에 상엽은 걸음을 멈췄다.

-적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헌터 아이에 걸리지 않는 자들도 유령 추종자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유령 추종자는 상엽의 머리 위로 1킬로미터나 떠올라 감시 위성처럼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너 요즘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데.”

-강해지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아오나의 신전 조각이 세 개로 늘어나면서 유령 추종자는 능동적인 성향이 강해졌다.

‘아오나의 다른 스킬도 있을 텐데.’

상엽은 최근 들어 아오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기회가 되면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상엽은 일부러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옥상이었다.

-접근하는 자는 셋입니다.

유령 추종자의 보고에 상엽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강화 비용이 오고 있단 말이지?”

상엽은 해머를 꺼내 들고 그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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