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3화 (53/300)

# 53

심부름센터는 불법적인 일을 하지만 거대 범죄 집단에 소속된 자들은 별로 없었다.

야쿠자들을 보면 꼬리를 내리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었다. 대신 정보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톤보리의 야쿠자들이 무너진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수장인 무라카의 소멸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다.

‘도톤보리를 정리한 한국인.’

그가 직접 나타났으니 놀란 건 당연했다. 그들은 바로 직전까지 상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 이 여자 찾아내. 빨리.”

상엽은 다짜고짜 그들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상대가 반응이 없자 상엽은 해머를 들어 테이블을 찍었다.

쾅!

그 소음이 심부름센터 직원들의 정신을 깨웠다.

“무조건 찾아내. 금액은 다섯 배로 줄 테니까.”

상엽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자 그중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굴 찾으시길래…….”

그는 슬쩍 상엽이 내민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았다.

“이 여자는…….”

“누군지 알지?”

“치호…….”

“알면 됐어. 빨리 찾아. 오늘 밤 안으로 찾으면 열 배로 준다.”

센터 대장은 침을 크게 삼키더니 뒤에 있는 직원들을 보았다.

그들의 반응은 같았다.

‘이런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

야쿠자 하나가 완전히 무너졌고 대장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런 일에 휘말리기에는 가진 힘이 너무 약했다.

“이것들이!”

마음이 급한 상엽은 해머를 집어 던졌다.

쾅!

벽에 커다란 구멍이 나며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좋은 말로는 안 들으니까 너희들 방식대로 한다.”

상엽은 대장의 뒷목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찾아. 해 뜰 때까지 못 찾으면 너희들이 죽는 거야. 알아들었어?”

대장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시작해. 그리고 너희들이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너희들이 실패하면 오사카에 있는 심부름센터는 전부 부숴 버릴 테니까.”

상엽은 대장에게 채찍에 이어 당근을 선물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도톤보리는 너희들 거야. 약속하지.”

“네? 그게 무슨…….”

“무라카는 내가 처리했어.”

멍해 있는 대장에게 상엽은 쐐기를 박았다.

“이번 일 하나로 너희들 위치가 달라질 거야.”

대장의 눈빛에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희망이 생겼다.’

당연히 사람은 희망을 잡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장은 당장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작업 시작해! 연결되는 센터에 모두 전화 돌려서 아침 전에 찾으라고 해! 자고 있는 놈들도 전부 깨워!”

그는 열의를 가지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심부름센터에서 나온 상엽은 아이리를 고급 호텔로 안내했다.

“우선 여기서 지내. 오늘 밤은 위험할 테니까.”

“잘될 거예요.”

“그 말 들으니까 정말 잘될 거 같은데?”

“기다릴게요.”

시간이 없었던 상엽은 아이리를 두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제발 찾아라.”

그의 스마트폰으로 심부름센터 직원들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위치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유명한 인물이라 영원히 숨지는 못할 거야.’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교토로 가는 건 위험한데.’

유산 하나를 얻었지만 일본 최강의 화이트 길드가 있는 본거지로 들어가는 건 꺼려졌다.

‘지금은 사쿠라에 집중해야 돼.’

아직 사쿠라와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오사카에 있는 것도 이젠 알겠지.’

그 난리를 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상엽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아침에는 오사카를 떠야 돼.’

호텔의 로비를 나오는 순간, 상엽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리, 안녕.’

그녀를 다시 찾아올 수는 없었다.

‘너도 위험해져.’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

* * *

무라카의 첫 번째 부인 치호.

교토 출신의 대학생이었지만 생활고로 인해 캬바걸이 되었다.

뛰어난 미모에 도쿄 대학이라는 학력까지 겸비한 그녀는 큰 인기를 끌었고, 당연히 무라카의 눈에 띄었다.

무라카는 도톤보리에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치호를 아내로 만들었다.

치호 역시 캬바걸이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는 터라 무라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세 명의 부인 중에서 스스로 결혼을 선택한 유일한 여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라카의 폭력성과 비정상적인 취향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냈다.

지옥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던 그녀의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갔고 무라카도 흥미를 잃었다.

그때부터는 그저 폭력과 명령을 따르는 인형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미모였다.

그리고 그 미모로 인해 진심으로 접근하는 남자가 있었다.

변호사 마사토.

마사토는 무라카의 다섯 변호인 중의 한 명이었고 치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치호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 마사토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상엽의 습격이 그것이었다.

-무라카의 부하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지금 도망가면 절대 찾지 못합니다.

그 말이 치호를 움직였다.

사라졌던 희망에 기댄 치호는 마사토의 차에 올랐다.

그녀는 교토로 가고자 했지만 마사토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막 변종 정리가 끝난 지역에 한적한 시골이 있습니다.

치호는 받아들였고 둘은 오사카를 떠났다.

* * *

상엽은 바이크 한 대를 구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사카를 벗어났다면 분명히 기록에 남을 거야.

오사카와 교토로 이어지는 고속 도로는 일본에서도 집중적으로 관리를 하는 지역이었다.

특히 오사카는 경제의 중심지라서 모든 국도에 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심부름센터 직원들은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직 오사카에 있을 수도 있고.”

상엽은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 때였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보가 업데이트되었다.

-와카야마로 이어진 국도로 무라카 변호사였던 마사토가 통과한 것으로 확인됨.

상엽이 그 정보를 확인한 순간, 전화가 걸려 왔다.

심부름센터 대장이었다.

“말해.”

-마사토는 치호를 짝사랑하던 변호사입니다.

상엽은 특별한 가능성에 대해서 떠올렸다.

“목적지가 어디야?”

-와카야마는 최근에 변종 처리가 이루어진 지역입니다. 허가증이 없으면 통과할 수 없습니다.

“마사토라는 변호사는 허가증이 있어?”

-그렇습니다.

무라카의 개인 변호사였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와카야마의 변종 처리는 완벽한 거야?”

-와카야마는 처리가 되었습니다. 최근 거주 허가 지역으로 이주민을 선별하고 있습니다.

상엽은 그 말에 큰 문제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와카야마까지 가는 국도는 안전해?”

최근에 토벌이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보통 그런 작전은 대대적인 공습부터 시작을 한다.

국도는 병력을 지속적으로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토벌 작업을 진행한다.

-국도에 대한 특별한 정보는 없습니다.

“이동 경로 설명해.”

상엽은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밤 3시였다.

치호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국도 위로 파도 소리가 흘러들었다.

감정이 사라졌던 그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두운 바다는 공포의 상징이지만 그녀에겐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음악가로 보였다.

그렇게 사라졌던 감정이 조금씩 살아나자 웃음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이제 그녀가 먼저 말을 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저와 함께 와 주셔서.”

“당신은 항상 친절했어요.”

“앞으로는 더 친절할 겁니다.”

치호는 마사토를 보았다. 마사토도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대형 멧돼지가 잡혔다.

쾅!

차는 그대로 멧돼지를 들이받았다.

멧돼지는 내장이 터진 채로 튀어 올랐지만 그들의 차도 무사하지 못했다.

쿠쿵!

엉성하게 이어져 있던 가드레일에 그들의 차가 끼었고 겨우 추락을 면했다.

“으…….”

마사토는 신음 소리를 내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괘,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아요.”

갓코인 유저인 치호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표정에는 놀란 감정이 떠올랐다.

마사토는 급히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런데 치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빨리 내려야…….”

마사토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동차 앞 유리로 뭔가가 뛰어내렸다.

크릉!

늑대였다.

그리고 자동차 주변으로 또 다른 늑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상엽은 국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확인해야 돼.’

다른 정보에 비해 마사토의 정보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변종이 가져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상엽은 해변 도로를 따라 바이크 엔진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최고 속도로 달렸지만 시간 차이가 너무 컸다.

-한 시간 전에 출발했습니다.

그나마 상엽은 어둠에서도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망할.’

상엽의 눈에 거의 걸레가 되어 버린 자동차 한 대가 보였다.

끼익!

급히 바이크를 세운 상엽이 자동차 주변을 살폈다.

터져 버린 핏자국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갈가리 찢긴 양복과 구두가 보였다.

“마사토.”

찢어진 양복 주변에 떨어진 지갑을 통해 피해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지갑에 이어 마사토의 것으로 보이는 신체 일부와 피부 조각들이 발견됐다.

“치호도 당했나?”

상엽은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을 찾았다.

치호는 갓코인 유저였던 만큼 끝까지 저항했을 것이다. 상엽은 계속해서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상황이 그리 희망적이진 않았다.

흔적은 한 곳에서 멈췄고 바닥에 피가 뿌려져 있었다.

‘당했어.’

갓코인 유저라서 시체는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바위와 흙을 적신 핏자국은 그대로 남았다.

상엽이 이를 확인하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크릉!

늑대 한 마리가 멀리서 붉은 눈을 빛냈다.

털이 송곳처럼 서 있고 어금니가 이빨 밖으로 튀어나온 늑대였다.

‘300그레이 코인.’

상엽은 늑대의 수치를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네가 가져갔냐?”

선두에 선 늑대들의 뒤로 수십 마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

각각 유물과 유산을 가지게 되면서 특별한 변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치호가 당한 건 확실해졌고.”

상엽은 조사를 그만두고 해머를 꺼냈다.

“너희들이 내 물건을 가진 거 같은데.”

그는 다가서는 늑대들을 당당히 마주 섰다.

“내가 지리산 산신령이야. 산적 아니고 산신령.”

상엽은 거침없이 늑대들을 향해 뛰었다.

* * *

전투는 치열했다.

폭음이 난무하고 찢어진 살점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늑대와 늑대 인간의 싸움이었다.

야성 대 야성.

늑대 인간으로 변한 상엽은 반란을 제거하는 우두머리 같았다.

그의 손에 늑대의 목이 뜯겨져 나갔고 해머에 닿는 것은 어김없이 부서졌다.

유물과 유산을 흡수한 늑대들은 강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중급 블랙 상점의 신체 강화는 상엽의 힘에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광기의 외침.’

광기의 외침은 상엽의 모든 신체 능력을 전부 상승시켰다. 전투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발동을 시킨 것이다.

늑대 인간 상엽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상대를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평소 같으면 피할 수 있는 공격도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에 집중했다.

-주인님!

그나마 유령 추종자가 상엽의 이성을 깨워 주었다.

‘고마워.’

늑대 10마리가 처리됐을 때, 상엽은 이성을 찾았다. 하지만 광기의 외침을 풀 수는 없었다.

후유증으로 인해 더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엽은 끝까지 이성을 붙잡으며 전투를 계속했다.

‘하나씩 확실하게.’

유령 추종자가 그의 싸움을 도와주었다.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유령 추종자는 위험한 위치에 있는 늑대들의 시선을 끌었고 때때로 빛을 뿌려 눈을 멀게 했다.

그들의 팀플레이는 굳이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쾅! 쾅!

연속 스트라이크에 늑대 두 마리가 추가로 쓰러졌고 전투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무 마리가 열 마리가 되고, 다시 다섯 마리가 되는 데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무너지기 시작하자 늑대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상엽의 눈에 주저하는 늑대가 보였다.

‘대장.’

늑대들의 우두머리였다. 상엽은 그 찰나의 순간에 고스트 체인을 날렸다.

늑대는 날카로운 체인의 끝을 피했지만 채찍처럼 휘어져 몸을 감싸는 것까지 벗어나진 못했다.

챙!

체인에서 일제히 가시가 튀어나왔고 늑대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났다.

대장이 죽는 순간, 늑대들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상엽은 광기의 외침이 끝나기 전에 남은 늑대들을 처리했다.

펑!

마지막 늑대를 죽이는 순간, 상엽도 광기의 외침을 풀었다.

온몸의 근육이 물에 던진 종이처럼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나른함 끝에는 환희가 있었다.

“찾았어.”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

상엽의 눈에 그 문양이 선명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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