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52화 (52/300)

# 52

무라카의 세 번째 부인.

리사라는 이름의 부인은 스물두 살의 여린 여자였다.

캬바 클럽에서 일을 하던 여자였고 결혼식이나 법적인 신고 없이 부인이 되었다.

-오늘부터 내 부인이다.

그 한마디로 부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라카는 그녀를 갓코인 유저로 만들었다.

유물 흡수를 통해 갓코인 유저가 된 그녀는 최하급 블랙 상점에서 개조 5단계를 진행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 하지만 무라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무라카의 성적인 욕구와 유물과 유산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라카가 다크 마켓에서 여러 이름을 사용한 것은 모두 부인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는 위험한 거래에서는 오히려 부인을 이용했다.

“그래서 이제 날 죽일 건가요?”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였지만 눈빛은 표독스러웠다. 무라카에게 어떤 짓을 당했는지 얇은 옷 곳곳에 멍 자국이 보였다.

‘채찍.’

상엽은 상처를 보고 무기를 대번에 알아봤다.

“안 죽여. 내가 찾는 건 조각 하나야. 나머지는 너 가져. 무라카는 이제 없으니까.”

“지금 뭐라고 했어요?”

“무라카는 죽었어.”

상엽의 말에 리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침을 삼켰다.

“정말인가요?”

“정말이야.”

리사는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에 아이리가 앞으로 나섰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무라카가 괴롭히지 못해요.”

리사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졌다. 작게 벌어진 잇몸에도 피가 고여 있었다.

구타의 흔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 채찍 자국은 기본이고 어깨와 목, 팔뚝은 손바닥 모양의 멍이 있었다.

강하게 움켜쥐어서 생긴 멍으로 보였다.

블랙 코인의 힘으로도 아직 멍이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은 상처라는 뜻이었다.

상엽이 그녀의 상처를 보자 리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 블랙 유저로 만들면서 말했어요. 더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더 많은 기쁨이 된다고…….”

“어느 정도로 개새끼인지는 나도 잘 알아.”

“그런 사람이 죽었다는 건가요?”

상엽은 리사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자, 이제 기회가 왔어. 무라카가 남긴 유물로 뭘 할지는 스스로 결정해. 대신 내가 원하는 조각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리사는 상엽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 시간 없어. 원하는 조각이 없어도 널 내버려 둘 거야. 그러니까 빨리 보여 주지 않을래?”

“이 사람 말대로 하세요. 좋은 사람이에요.”

아이리가 거들고 나서야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유물 보관함을 꺼냈다.

‘그레이 상점 물건이 아니네.’

그녀의 유물 보관함은 특이했다. 상엽이 가진 것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유려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보관 용량도 훨씬 컸다.

게다가 유물 조각과 유산 조각을 동시에 보관했다.

‘무라카가 사 줬겠지.’

상엽은 리사가 바닥에 늘어놓은 유물과 유산을 하나씩 살폈다.

경품 추첨을 기다리는 떨림을 느끼며 드디어 모든 조각이 공개되었다.

‘없어.’

9개의 유물 조각과 8개의 유산 조각이 있었다. 하지만 상엽이 원하는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은 없었다.

“다른 부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

상엽은 목표를 바꾸려 했다. 그런데 리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유령 추종자가 튀어나와 괴성을 질렀다.

추종자의 비명에 두 여인뿐만 아니라 상엽도 놀랐다.

“너 왜 그래?”

-유물!

유령 추종자는 빛을 뿌리며 바닥에 있는 조각 하나에 앉았다.

상엽은 그제야 그 조각을 알아봤다.

유산만 살피느라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다.

“아오나의 신전 조각.”

상엽은 유령 추종자의 흥분을 이해했다.

“이거 하나만 가져갈게. 괜찮지?”

리사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부인들의 위치, 이것만 말하면 넌 안전해. 물론 다른 부인들도 안전할 거고.”

“야, 약속…….”

그녀는 확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하려다 그만뒀다.

“남자들의 약속은 믿을 수 없지…….”

“그건 무라카 이야기고. 난 아니야. 물론 모든 약속을 지키진 않는데 지금은 지킬 거야.”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저항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명만 알아요.”

상엽은 위치를 듣고 아파트를 나섰다.

두 번째 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야야, 좀 들어가 있어.”

-네. 주인님.

유령 추종자는 이제 얼굴뿐만 아니라 몸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충성을 맹세한 기사처럼 힘 있는 느낌이었다.

상엽은 유령 추종자의 성장을 좀 더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좋은 느낌이야. 이제 세 조각 모았어.’

뜻하지 않게 아오나의 조각을 획득한 상엽은 기분 좋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저쪽이에요.”

상엽의 품에 안긴 아이리가 왼쪽을 가리켰다.

“이제 적응이 되나 봐?”

“재밌어요.”

“스릴을 즐기는 타입이네.”

“당신이 주는 스릴이라면 좋아요. 왠지 안전하게 느껴져요.”

상엽은 웃으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아파트 단지의 가장 높은 층이었다.

두 집을 하나로 연결한 스위트룸으로 문을 두 개나 지나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아이리는 상엽의 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주었다.

세 번째 부인 리사와 영상 통화를 시켜 준 것이다. 이로써 상엽의 말을 빠르게 믿었고 유산과 유물 조각을 확인했다.

‘없어.’

하지만 결과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유물을 찾으시는데요?

상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에 있는 가버문트 조각의 문양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은 이를 한참 동안 보더니 말을 이었다.

-분명히 봤어요, 이 부분.

“진짜?”

두 번째 부인은 문양의 왼쪽 아래를 가리켰다. 특이한 날개가 그려진 부분이었다.

-이 날개, 분명히 기억해요.

“어디서 봤는데?”

-유산 조각을 나눠서 보관할 때 봤어요. 그 조각은 치호가 가지고 갔어요.

“치호가 누군데?”

-첫 번째 부인이에요.

상엽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어?”

-치호는 오사카 외곽에 살고 있어요. 주소를 드릴게요.

상엽은 주소를 받자마자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택시를 타고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 30분이 상엽에겐 며칠처럼 길게 느껴졌다.

택시가 신호에 걸릴 때면 내려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아이리가 상엽을 위로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상엽의 마음을 아는 듯했다.

배려가 깊은 여자였다.

“아이리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요. 갑자기 자유가 되니 오히려 무서워요.”

“걱정 마. 부하들도 전부 처리했으니까.”

“그건 알아요. 도톤보리 전체에 난리가 났으니까.”

“그런데 뭐가 무서워?”

상엽의 질문에 아이리는 빠르게 지나가는 오카사의 풍경을 보았다.

“제가 저들 속에 섞일 수 있을까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해?”

“제가 만족하지 못할까 봐요.”

상엽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이에 아이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최고의 캬바걸이 되고 싶었어요. 남들은 손가락질하는 직업이지만 전 여기가 좋아요. 연예인을 꿈꿨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최고의 캬바걸이라…….”

“이상한 꿈이죠?”

“갓코인을 알게 되면 이상한 꿈이란 없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거든.”

“갓코인이라. 저도 가지고 싶네요.”

“유물 하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 물론 추천하진 않아. 정말 위험하거든.”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일반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죠?”

아이리의 말은 또 한 번 상엽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될 수도 있겠어.”

상엽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는 똑똑하네.”

“그 말은 자주 들어요.”

아이리는 어느 순간부터 상엽의 손을 꼭 잡으며 웃고 있었다.

그 손길의 부드러움을 상엽은 뒤늦게 느꼈다. 그녀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체온은 안정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이제 다 왔어요.”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그들을 태운 택시는 고급 주택가로 들어섰다.

모든 주택이 정리된 도로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이 대부분이었고 마치 경연을 하듯 아름다운 외관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이리는 상엽에 앞서 주소를 확인하며 도로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한 집을 가리켰다.

“여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엽이 움직였다. 그의 몸은 거의 빛으로 흩어지는 느낌이었고 순식간에 담을 넘었다.

정원에 벽 대신 만들어진 통유리를 부순 상엽은 곧장 유령 추종자를 불러냈다.

“찾아.”

상엽은 다급한 마음에 첫 번째 부인에 대한 배려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렇게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인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유령 추종자가 상엽 앞에 섰다.

-없습니다.

“뭐?”

-숨겨진 공간까지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상엽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

간절히 바라는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찾았어요?”

뒤늦게 집 안으로 들어온 아이리의 질문에 상엽은 고개를 저었다.

“치호는 없어.”

아이리는 상엽의 말을 듣고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간이 아니라 가구의 서랍들을 열었다.

“뭐 하는 거야?”

“스스로 나간 건지 확인하려고요. 시간이 충분했잖아요. 저도 소식을 다 듣고 있었을 정도니까.”

상엽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스스로 원해서 도망간 거 같아요. 다급하게 뭔가를 챙긴 흔적이 있어요.”

“망할.”

가장 쉬운 방법은 사라졌다.

“찾아. 무조건 찾아야 돼.”

상엽은 집 안에 걸려 있는 사진 하나를 주목했다.

무라카와 함께 찍은 결혼사진이었다. 그 외의 다른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치호.”

사진 속의 여인은 슬픈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단아한 느낌의 여성은 무라카의 팔짱을 끼며 웃고 있었지만 예쁜 웨딩드레스만큼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나까지 슬프게 만들지는 마.”

상엽은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고 몸을 돌렸다.

“보물찾기 끝. 이제부터 숨바꼭질.”

그는 고급 주택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령 추종자의 정찰 범위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이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치호에겐 다른 도시로 갈 만큼의 시간이 있었다.

일단 상엽은 아이리와 다른 두 부인을 통해 치호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정보는 그녀의 고향이었다.

-교토 출신이에요.

상엽은 그 지역을 듣고 잠시 말을 멈췄다. 떠오르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제1 화이트 길드, 료사기리의 본거지.

사쿠라를 압도하는 가장 큰 화이트 길드의 본거지가 바로 교토였다.

“곤란한 곳으로 갔을 수도 있겠네.”

상엽이 홀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제가 좀 알아볼까요?”

“방법이 있어?”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알아요. 조금 위험한 사람들이긴 한데.”

“나보다 위험해?”

상엽의 질문에 아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함께 가면 위험하진 않겠네요.”

“그럼 바로 움직이자.”

이제 아이리는 자연스럽게 상엽의 목에 팔을 감고 품으로 뛰어올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오사카의 가장 번화한 도심의 낡은 상가 단지였다.

좁은 골목에 희미한 가로등만 남아 있는 지역은 화려한 오사카의 도심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고 눈이 녹은 물이 도심의 비린내를 머금고 흘러내려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확실히 여자 혼자 오기는 위험한 곳이네.”

“저기예요.”

상엽은 아직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아이리를 통해 어떤 곳인지는 들었다.

‘불법 심부름센터.’

이렇게 이해하는 걸로 충분했다.

“꽉 잡아.”

상엽은 아이리가 가리킨 2층 건물의 창문으로 뛰어올랐다.

챙!

산산이 부서진 유리를 뚫고 들어선 상엽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깡패 새끼들아! 사람 좀 찾자!”

다섯 명의 사내는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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