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상엽은 도톤보리의 거리를 뛰고 있었다.
“아우, 빠르네.”
무라카는 상엽이 싸움을 시작하려 하자 캬바 클럽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상엽이 뒤쫓았지만 무라카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비만 고양이 같은 자식.”
예전에도 설악산에서 고양이를 쫓아가지 못해서 짜증이 나던 상황이 있었다.
상엽은 그때 이후로 속도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상대를 굳이 추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험해져.’
속도로 앞설 것이 아니면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나았다.
상엽은 추적을 포기하고 몸을 숨겼다.
‘이 자식, 코인도 소모했네.’
헌터 아이에도 더 이상 무라카가 걸리지 않았다.
‘골치 아픈 자식이야.’
상엽은 짜증이 났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 확실해졌어.’
더 이상 협상은 의미가 없어졌다.
“네가 활약할 시간이야.”
상엽의 머리 위로 유령 추종자가 떠올랐다.
“그 자식 찾아내. 유산이든, 정보든 강제로 알아내면 돼.”
추종자는 곧바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후.
골목을 돌아다니며 유령 추종자의 범위를 확대한 끝에 상엽은 무라카의 위치를 알아냈다.
-주변에 적이 많습니다.
감시를 하는 건, 상엽 혼자가 아니었다.
“자기 구역이라 이거지?”
카메라, 행인까지 모두 무라카의 눈과 귀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났다. 상엽이 움직이던 골목 정면에 다섯 명의 무리가 나타나 앞을 막았다.
동시에 뒤에서도 한 무리가 뛰어왔다.
벽을 타고 넘어가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좁은 골목을 형성한 건물 옥상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야쿠자가 아무리 많아 봐야 상엽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무라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뭔가 있다.’
그때, 상엽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제 부품이 뭔가에 걸리는 소리였다.
‘설마?’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옥상에서 불꽃이 튀었다.
탕!
상엽은 상대가 나타나는 순간에 이미 몸을 움직였다. 총알은 바닥에 박혔고, 상엽은 그대로 옥상으로 뛰어올라 해머를 휘둘렀다.
쾅!
총을 쏜 사내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달리 시체는 빛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일반인이었기 때문이다.
진한 피와 함께 뇌수가 사방으로 뿌려졌고 머리를 잃은 목을 통해 계속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제길.”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에 불쾌할 틈도 없이 다시 불꽃이 튀었다.
상엽은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총알을 견뎌 낼까?’
그걸 아직 시험한 적은 없었다. 분명히 일반인처럼 관통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고스트 실드에 신체 강화와 개조까지 있으니 내구력이 꽤 될 것이다.
하지만 총은 원리가 단순하다고 무시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깡패 새끼들 주제에.”
상엽은 최대한 빨리 이동하며 총을 쏜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스트 체인이 뻗어 나가 사내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렸다.
그사이, 건물 아래에 있던 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권총을 들고 있었다.
상엽이 잠시 그들을 보는 사이, 갑자기 뒷골이 서늘해졌다. 이는 본능적인 위기감이었다.
상엽은 본능에 따라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 뭔가가 지나갔다.
‘저격?’
탕!
총알이 도착한 이후에 총성이 들렸다. 이는 거리가 꽤 멀다는 뜻이었다.
‘저격까지 한다고?’
상엽은 놀람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찾아.”
그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뛰었다.
건물 옥상을 맹수처럼 뛰어다녔고, 유령 추종자는 최대 거리에서 저격수를 수색했다.
-찾았습니다.
15층 건물의 7층 사무실이었다. 사람들이 퇴근한 사무실에서 저격을 한 것이다.
쾅!
상엽은 5층 건물의 옥상에서 발을 굴렀다. 그의 몸이 화살처럼 목표 지점으로 날아갔고 폭발로 이어졌다.
창문을 박살 낸 그는 총을 챙기고 돌아서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았다.
“사냥의 규칙 몰라?”
저격수의 뒤통수에 대고 상엽이 사신처럼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냥감을 못 잡으면 사냥꾼이 죽는 거야.”
우둑!
상엽은 저격수의 목을 완전히 꺾어 버렸다.
“깡패 새끼들이 총까지 들고 설친다 이거지?”
상엽은 차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무라카 이 개새끼. 내가 반드시 죽인다.”
그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사이렌 소리가 도톤보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행인들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며 부상자와 사체를 호송했다.
오사카에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경찰차가 도착해서 시민들을 위한 저지선을 만들었고, 구급차는 끝도 없이 사체를 옮겼다.
사체의 모습은 처참했다.
신체 일부분이 완전히 터져 버렸거나 반대로 일부분만 남은 것도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의 내장이 어지럽게 뿌려져 있었고, 핏물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사체는 모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화려한 문신과 오래된 상처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도톤보리를 장악했던 200명의 야쿠자.
사체는 그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거리에는 그들이 놓친 권총과 소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들은 총기를 회수하고 시민들의 접근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고, 구급차들은 최대한 빨리 사체를 치우려 했다.
“빨리 움직여!”
오사카 경찰청장 나베는 신경질적으로 부하들을 재촉했다.
워낙 대형 사고가 난 탓에 집으로 귀가했던 그도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청장님! 범인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열혈 형사 한 명이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달려갈 것처럼 외쳤다.
이에 나베는 다급히 소리쳤다.
“현장 수습에 집중해!”
나베는 추적을 지시하지 않았다.
‘애매한 상황이야.’
이미 경찰은 근처의 CCTV를 분석 중이었다.
녹화된 화면에서는 총을 든 야쿠자와 해머를 든 변종 사냥꾼이 전투를 벌였다.
‘총을 든 순간부터 정당방위 인정이다. 하지만 상대는 변종 사냥꾼인데…….’
나베는 공권력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명령 하나에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섣불리 접근하지 마!”
그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일반 시민의 피해가 확인될 때까지 대기한다.”
야쿠자를 상대로 했다면 범인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다. 하지만 죄 없는 시민이 당했다면 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폭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망할 변종 사냥꾼들.’
예전과 지금은 공권력의 사용 방식이 달라졌다.
‘그들이 공권력을 넘어서고 있다.’
나베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같은 시간.
상엽은 무라카를 추격하고 있었다.
벌써 네 시간째다. 그사이에 야쿠자 200명을 죽이기도 했다.
‘잡을 수 있어.’
화이트 유저들에게 약점이 있듯이 블랙 유저들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체력전으로 간다.’
바로 순수 근육의 힘이었다.
블랙 유저는 계속해서 근육에 무리를 주는 방식이라 지구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웬만한 전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약점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엽은 네 시간 동안 집요하게 추격을 했고, 무라카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헉, 헉.”
숨이 차고 힘이 드는 건 상엽 역시 마찬가지였다.
갓코인을 알게 된 이후로 이처럼 많은 땀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놈이 더 힘들 거야.’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들을 시켜 시간을 벌게 한 것이다.
무라카는 수하들이 죽는 동안, 체력을 보충하고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이런 소모전은 상엽을 이길 수가 없다.
신체 강화의 단단함에 신체 개조의 유연성이 더해졌고, 힘든 상황에서의 인내심도 충분했다.
무라카가 처음부터 상엽의 정찰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면 모르겠지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를 유지한 것이 실수였다.
‘미끼를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무라카는 일부러 상엽에게 위기를 알리며 함정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썼다.
그것이 지금은 양날의 검이 되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이동을 멈췄습니다.
‘그럴 때도 됐지.’
저격수가 있었던 15층 빌딩의 옥상이었다.
상엽은 무라카가 기다리고 있는 빌딩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후우, 술래잡기는 이제 끝인가?”
상엽도 지쳐 있지만 무라카만큼은 아니었다.
무라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상처가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예전의 날카로운 눈빛도 사라졌다.
“협상하지.”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이미 결렬됐어. 다른 제안은 없어?”
“조각을 주겠다.”
“좋아. 당장 보여 주면 협상해 줄게.”
무라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공간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상엽은 그에게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이번 협상 방식은 내가 정할 거야. 일단 그것부터 넘겨.”
그런데 무라카는 양피지의 중앙에 자신의 갈고리를 댔다.
“다가오면 찢어 버리겠다.”
상엽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이에 무라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 다시 협상하지.”
무라카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예상대로 상엽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조건은 동일하다. 대신 시간은 내가 정하지.”
“그걸 믿으라고? 차라리 널 죽이고 빼앗는 게 빠를 거 같은데.”
“날 죽일 수는 있어도 이 유산은 소멸한다. 장담하지.”
그 말을 들은 상엽은 표정을 구겼다.
“아, 이거 진짜 화나는데. 같은 놈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나?”
“무슨 소리지?”
“난 뻥카 치는 새끼를 정말 싫어하거든.”
“뭐?”
“어디서 가짜를 들고 협박이야?”
무라카는 그제야 자신의 머리 위에 희미한 얼굴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적어도 모양은 비슷해야지 믿지. 신발 조각 찾으러 왔는데 방패는 너무하잖아?”
유령 추종자를 통해 유산의 완성된 그림을 확인한 상엽은 무라카의 거짓말을 알아냈다.
“개새끼.”
상엽은 해머를 세우며 무라카를 향해 뛰었다.
무라카는 협박을 그만두고 저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이려는 순간 뭔가가 그의 몸으로 들어왔다.
유령 추종자였다.
무라카가 극도로 지친 상태라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큰 제약은 아니지만 무라카는 모든 행동에 작은 불편함을 느꼈다.
신체가 아닌 정신적인 제약이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이런 싸움에서는 그런 제약이 큰 약점을 만들었다.
“자, 잠깐!”
특유의 속도도 이용할 수 없게 된 그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상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쾅!
결국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그의 어깨에 해머가 꽂혔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그의 몸은 산산이 흩어졌고 곧 빛으로 사라졌다.
“아우, 힘들어.”
무라카를 처리한 상엽은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살려 둘 힘도 없었어.’
무라카를 완전히 제압하고 유령 추종자를 통해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엽도 그럴 자신은 없었다.
‘적당히 싸워서 될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기회를 잡았을 때 끝내야 했고, 결국 해냈다.
-주인님.
숨을 고르던 상엽은 유령 추종자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유령 추종자는 무라카의 시체가 흩어진 자리에 떠 있었다. 그 아래로 유물과 유산이 잔뜩 깔려 있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상엽은 오상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위험한 브로커입니다.
무라카는 갓코인 유저이면서도 브로커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이게 다 몇 개야?”
유물 조각 17개, 유산 조각은 19개였다.
그중에는 완성을 하나 남겨 둔 유물 조각과 유산 조각도 있었다.
“그냥 죽이길 잘했어.”
상엽은 그 자리에서 모든 조각의 사진을 찍어 오상식에게 보냈다.
그 작업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수고했어. 연락 올 때까지 좀 쉬자.”
상엽은 유령 추종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갈된 체력을 회복했다.
* * *
오상식의 연락이 온 것은 10분 뒤였다.
상엽이 원하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빨리 전화를 한 것이다.
-가버문트의 신발 조각은 없습니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인 듯싶습니다.
“쳇, 그냥 사냥으로 생각해야 하나? 그래도 사고를 너무 많이 쳤는데.”
상엽은 멀리서 반짝이는 경찰차와 구급차의 경고등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원하신다면 협상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만.
“방법이 있어?”
-지금 상엽 씨는 유산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뭐?”
상엽이 미처 체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무라카가 원했던 드바란의 투구 조각, 그 나머지를 무라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파이어스의 망치 조각과 교환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완성된 유산을 망치 조각과 바꾸는 건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
오상식은 자신의 판단을 정확히 전달했다.
-차라리 투구를 직접 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망치 조각에 대한 협상은 제가 따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가진 물품이 많으니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상엽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의 오함마냐? 최초의 유산이냐?”
상엽은 21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