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49화 (49/300)

# 49

덩치들은 당황했다.

산적처럼 수염을 기른 한국인은 귀찮다는 듯이 덩치들을 지나갔다.

어깨를 잡고 목을 졸랐지만 한국인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주먹을 날린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 씨. 귀찮게.”

한국인은 단 한 번 손가락 두 개를 펴서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덩치들의 턱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손가락 두 개로 일어난 일이었다.

“야, 야쿠자.”

상엽은 여성을 괴롭히던 블랙 유저 앞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다섯 발 앞까지 접근하자 사내의 몸이 흔들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챙!

순식간에 상엽의 옆구리에서 고스트 실드의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상엽의 손이 허공을 잡았다.

푸른빛의 갈고리를 손에 쥔 사내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훔쳤다.

입맛을 다시는 살쾡이의 모습 같았다.

“꽤 하는데?”

상엽의 예상을 뛰어넘은 속도였다. 신체 개조가 없었더라면 반응하지 못할 만큼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격을 했다?’

사내는 상엽의 손이 다가올 때의 묵직한 힘을 기억했다.

“제대로 붙어 볼까?”

상엽은 참지 않고 블랙 해머를 꺼내 들었다.

“쳇, 블랙 유저였군.”

사내는 블랙 해머를 보더니 웅크렸던 몸을 폈다.

“이득도 없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지.”

“그건 싸움을 걸기 전에 말했어야지.”

“인사라 해 두지.”

사내는 그 말을 하며 등을 보였다. 상엽이 미처 뒤따르기도 전에 사내는 발을 굴려 높이 치솟았다.

“뭐가 저렇게 빨라?”

상엽도 굳이 뒤따르지 않았다.

“인사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사내의 갈고리는 급소가 아니라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려 했다.

막지 않았더라도 옷이 베이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특이한 녀석이네.’

상엽은 사내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 뒤를 돌았다.

“으음…….”

쓰러진 여성이 신음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여성은 흔들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상엽을 보았다.

‘눈이 참 예쁘네.’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지만 웬일인지 얼굴은 건드리지 않았다.

‘얼굴도 예쁘구나.’

상엽은 연예인을 보는 착각이 들었다.

하얀 피부에 크고 맑은 눈이 특징이었고 선한 입매에 어울리는 계란형의 얼굴이었다.

‘무지 예쁘네.’

상엽은 여성이 갓코인 유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일단 병원부터 가요.”

상엽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여성이 고통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렸다.

‘잔인한 녀석이었네.’

여성의 몸 곳곳에는 갈고리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대신 가장 아픈 곳만 골라서 건드려 놓았다.

“조금만 참아요.”

상엽은 여성을 안고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성은 응급실에서 한 시간 만에 눈을 떴다.

“아이리라고 해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리의 몸에는 열 개의 치료 흔적이 남았다. 소독을 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걸로 충분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시간 만에 눈을 뜬 것은 고통에 대한 피로 때문이었다.

“그 자식은 누구예요?”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모른 척하세요.”

아이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꼭 알아야 해서 그래요.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렸어요.”

아이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라카라는 자예요. 제가 일하는 캬바 클럽의 사장이고, 도톤보리에만 다섯 개의 캬바 클럽을 가지고 있어요.”

“무라카?”

상엽은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녀석한테 오함마 열쇠가 있단 말이지?’

그는 아이리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도톤보리에 큰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해요.”

“야쿠자예요?”

“네. 기존의 세력을 밀어내고 캬바 클럽과 나이트 클럽, 마사지 업소를 장악했어요. 지금도 세력을 넓히는 중이에요.”

상엽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오상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비밀이 많은 자입니다.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상엽은 무라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거친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가 얼굴에 남아 있었다.

“도톤보리를 떠나세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아이리는 어쩌다 그 꼴을 당한 거예요?”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러다 잡혔고요.”

“왜 도망가려고 했는데요?”

“그가 결혼하자고 했어요.”

“도망가야겠네요. 아주 멀리.”

상엽의 말에 아이리가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은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웠다.

“왜 결혼하자고 했는지 알겠어요.”

이번에는 아이리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자들은 달콤한 말을 잘 만들어 내죠.”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런 평가는 처음이라서.”

“그 말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캬바 클럽에서 아이리 정도의 미모면 하루에도 몇 명의 사내를 상대하게 된다.

어떻게든 그녀를 유혹하려는 남자들과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어쨌든 괜찮아졌다니까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도와주셔서.”

“어차피 시간이 남아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상엽은 응급실 밖을 보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응급실 안으로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곧장 아이리에게 다가왔다.

상엽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을 막았다.

“괜찮아요.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요. 제가 돌아가면 전부 끝나요.”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무라카의 네 번째 부인이 되는 거죠.”

아이리는 침대를 내려와서 사내들의 곁으로 갔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일은 이제 잊으세요.”

그녀는 인사를 하더니 사내들과 함께 돌아갔다. 상엽은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섣불리 끼어들지 말자. 할 일이 많아.’

감정에 휘둘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위치에 있었다. 상엽은 붙잡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뒷모습도 예쁘네.”

하늘거리는 뒷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했다.

도톤보리는 해가 져도 사람의 발길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대부분의 도심이 그렇듯이 자연을 밀어낸 네온사인들의 빛이 현대식 장관을 이루어 냈다.

상엽은 그 거리를 걸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뒤에 야쿠자가 있고, 불법과 퇴폐가 있으며 암투가 벌어졌다.

“신의 오함마.”

해가 지길 기다리며 상엽은 오로지 이 생각만 했다.

“조각 하나 찾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그에게 열 개가 넘는 유산 조각이 있었지만, 원하는 유산 조각 하나를 얻기는 무척 어려웠다.

“기본 무기에서 벗어나 보자.”

상엽은 그 시작점인 식스헤븐 캬바 클럽으로 향했다.

클럽이 밀집한 지역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호객꾼들이 남성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상엽도 짧은 거리를 가며 세 장의 전단지를 받았다.

전단지에 있는 여성의 사진은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성매매를 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의 짓궂은 터치도 없기 때문에 캬바 클럽에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모이고 있었다.

“식스헤븐.”

상엽은 전단지의 사진에 유혹되지 않고 첫 번째 목적지로 들어섰다.

식스헤븐은 주변 캬바 클럽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입구는 5성급 호텔의 로비처럼 넓었고 압도적인 인테리어로 시선을 끌었다.

상엽이 들어서자 웨이터로 보이는 남성이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당당하게 들어서려던 상엽의 앞을 막았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뭐?”

“이 복장으로 출입이 불가능하십니다.”

청바지에 티셔츠.

겨울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수염을 깎지 않고 머리는 그저 물로 씻어 낸 상태였다.

‘깽판치고 들어갈까?’

상엽은 그 생각도 했지만 일단은 신중하기로 했다.

“알았어. 기다려.”

상엽은 얼른 근처의 미용실과 옷 가게를 들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검은 정장에 수염은 사라졌고 짧은 스포츠머리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었다.

그의 변신에 웨이터는 상엽을 몰라볼 정도였다.

웨이터는 상엽을 보더니 조금 전과 달리 정중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홀로 연결된 화려한 장식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색 카펫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테이블이 보였다.

미녀들이 자신을 뽐내는 드레스를 입고 비싼 양복을 입은 사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사카 최고 규모의 캬바 클럽은 거대한 성에서 열리는 파티 같은 분위기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은 곳은 홀의 중앙 부근이었다.

상엽은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안주와 술을 시키고는 웨이터에게 말했다.

“무라카 불러와.”

“네? 사장님과 약속하셨습니까?”

“했어. 교환할 물건이 있다고 하면 알 거야.”

상엽은 웨이터가 인사를 하고 물러서자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쁜 여자가 왜 이렇게 많아?’

마치 미인 대회를 보는 듯했다. 박광신의 건물에서 열렸던 간이 미인 대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인원수와 규모도 압도적이었고 무엇보다 대화를 하는 태도나 몸짓이 정갈하고 세련되었다.

“그래 봤자 술집이지.”

상엽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마시며 무라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엽이 예상한 인물이 테이블 앞에 섰다.

얼굴에 칼자국이 교차해 있는 사내.

어제 만난 야쿠자 무라카였다.

“안녕.”

무라카는 상엽의 목소리를 듣자 눈빛이 매서워졌다.

“뭐야? 날 못 알아보는 거야?”

“크크. 재미있는 놈이군. 따라와라.”

“뭘 따라와? 그냥 여기서 거래해.”

상엽은 다리를 꼬며 품속에 있는 양피지 두 장을 꺼냈다.

“자, 이거 줄게. 넌 뭘 줄래?”

상엽은 두 장의 양피지 중의 한 장을 무라카에게 던졌다.

드바란 투구.

그 유산의 한 조각이었다.

무라카는 상엽의 도발에 소리 없이 웃음을 보이더니 웨이터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빠른 거래를 원한다니 그렇게 하지.”

무라카는 상엽이 던진 양피지를 다시 테이블 위에 놓더니 테이블을 떠났다.

1분쯤 지났을 때, 기다리던 무라카 대신 다른 이가 상엽 앞에 섰다.

겨울에 홀로 자란 청초한 백색 꽃에서 여름에 활짝 핀 화려한 꽃으로 변신한 여인이었다.

아이리.

그녀가 상엽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녀는 상엽이 말하기도 전에 뭔가를 알아차렸다.

“당신이군요.”

“어떻게 알았어? 다들 못 알아보던데.”

“웃음요. 잊기 힘든 웃음이라서요.”

“어쨌든 반가워. 그런데 난 당신을 기다린 게 아닌데.”

“무라카가 불러서 왔어요. 앉아도 될까요?”

상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ㄷ’ 자 고급 소파에 상엽이 중앙에 앉고 아이리는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웨이터가 가지고 온 술과 음료를 정리하더니 상엽의 잔을 채워 주었다.

‘의도가 있을 텐데.’

무라카는 10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아이리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중국 사람인가요?”

“그렇게 보여?”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말투를 보니까 일본 사람은 아닌 거 같아서요.”

신의 소통으로 인해 상엽의 말은 아이리에게 간결한 일본어로만 들렸다.

“한국 사람이야.”

“그랬군요. 한국 남자들은 자상하다더니.”

“사람마다 달라. 그리고 때에 따라 다르지.”

“때에 따라서요?”

“지금 말이야.”

상엽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한국 남자는 자상하면서도 화가 나면 미친놈처럼 거칠어지거든.”

아이리가 불안한 표정을 했지만 상엽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가 딱 그럴 거 같아.”

“좋은 일로 찾아온 건 아니군요.”

“좋은 일로 온 거야. 그런데 무라카의 거래 방식이 좋진 않은 거 같아서.”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라카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보란 듯이 아이리의 옆에 앉더니 어깨를 감싸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무, 무슨…….”

“가만있어.”

무라카의 한 마디에 아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

얇은 드레스 위로 아이리의 일그러진 가슴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무라카의 시선은 상엽을 향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군.”

“왜?”

“물건을 가진 녀석이 이리로 오는 중이라서 말이야. 20분쯤 걸릴 테니 술이나 마시지.”

“20분이라…….”

상엽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러다가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건 바보겠지?”

“크크, 내가 가진 물건이 꼭 필요할 텐데. 그게 아니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고.”

무라카는 아이리를 만지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악!”

고통을 느낀 아이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상엽은 어떤 동요도 없었다.

대신 무라카에 대한 평가는 확실해졌다.

“난 이래서 깡패 새끼들이 싫어.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거든.”

상엽이 해머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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